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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수령 인터뷰는 리승환 특유의 직설적인 질문과 거침없는 파격으로 다양한 전문가/관계자와 함께 현상의 이면에 숨겨진 진실을 파헤칩니다. 최근 고교 교과서에서 진화론 설명과 관련한 시조(始祖)새 삭제가 논란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김우재는 이 논란을 일축합니다. 그 대신 사회의 모순이 그대로 이식된 한국 과학계의 구조적 문제에 주목합니다. 미국 UCSF 박사 후 연구원으로 있는 초파리 박사 김우재에게 한국 과학계의 문제점과 대안, 그리고 과학을 한다는 것의 의미를 들어봤습니다. (편집자)
리수령 인터뷰 5(상): 자본에 지배당한 과학계, 황우석은 필연이다
리수령 인터뷰 5(중): 진보와 과학의 만남, 박정희 프레임을 넘어야 한다
리수령 인터뷰 5(하): 초파리 박사의 네이처 논문으로 보는 과학적 검증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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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x id=”tip” head=”인터뷰어/인터뷰이 소개”]
Q. 리승환 : 8년 차 블로거, 4년 차 직장인. 매일 술을 마시고, 매일 폭풍 설사하는 규칙적인 삶을 영위하는 남자. 디지털 한량을 지향하고, 통칭 웹에서는 ‘리승환 수령’으로 불리고 있음. 블로그 현실창조공간을 운영 중. 트위터는 @nudemodel, 페이스북은 /angryswan
A. 김우재(초파리 박사) : 키 크고 학벌 좋고 인물 좋은 3박자를 가지고 있는 남자. 하지만 포닥(박사 후 연구원) 비정규직인 관계로 여자가 있을 리 없다. 최근 세계적 학술지 네이처 뉴로사이언스에 논문을 실을 정도로 우수한 과학자이지만, 트위터에서는 찌질이 짓을 하며 안티질을 자초하는지라 실드를 치기도 어려울 만큼 까이고 있다. 지금은 블로그 휴업 중이지만 사이언스타임즈에서 그의 내공을 읽을 수 있다. 트위터는 @RevoltSci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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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박정희 프레임을 넘지 못하는 진보의 과학관
리 : 당신은 진보의 과학관을 비판한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초 : 정확히는 비판이 아니라 진보 세력의 ‘관’ 자체가 없다. 박근혜 지지하는 사람들은 과학에 대해 ‘박정희 프레임’이라는 명확한 관을 가지고 있다. 그 프레임을 우리 방식으로 이겨내야 하는데, 지금 진보의 과학을 대하는 태도로는 박정희 프레임을 이길 수 없다.
리 : 박정희 프레임? 그건 또 뭔가?
초 : 앞서 서구에서는 선구적인 과학자들이 위대한 전통을 만들었음을 이야기했다. 지금 한국의 과학 프레임을 만든 건 60~70년대의 박정희 시대다. 박정희가 그린 큰 틀은 결국 국민 배부르게 하는 거다. 과학 투자는 이를 위한 도구에 불과하니, 과학자들은 애국심 가지고 헌신하라는 거다. 이 프레임은 과학자를 사회의 도구로, 부속품으로 자리매김시킨다. 그들에게 과학자는 산업역군이고 나라를 먹여 살려야 하는 도구였다. 이렇게 과학자가 주인의식을 가지기 어렵게 해버렸다.
리 : 현재는 그대로인가?
초 : 그렇다. 이 프레임은 민주정부가 들어서고 나서도 변하지 않았다. 그 프레임이 정확하게 황우석에게 나타나지 않았나? 과학기술정책은 민주화와 관계없이 ‘박정희, 박정희, 박정희, 박정희, 박정희…’다. 한 번도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한국 과학기술 정책의 프레임은 박정희 때 성립된 정치와 과학이 관계를 맺는 관계 그대로다. 미국이나 유럽과 달리 정치와 과학은 수평적이지 않고, 정치에 종속되어 있다. 이 틀을 반네바 부시(Vannevar Bush)처럼 바꿀 사람도 없었고, 개혁을 통해 시스템 갖출 여유도 없었다.
리 : 그렇다면 진보는 과학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초 : 과학자들이 자기 연구의 주인으로 설 수 있는 새로운 프레임을 제시해야 한다. 새로운 프레임의 시스템 없이는 노벨상 같은 거 없다. 과학자가 자기 학문의 주인이 아닌 노예로 남아서 정부가 원하는 연구만 해야 하고, 정부가 원하지 않는 연구는 할 수 없는 게 지금의 프레임이다. 이게 얼마나 슬픈 일인가? 적어도 인문학 하는 사람들은 가난해도 강단이 있다. 학문 특징도 그렇지만 정부 비판도 잘 하지 않는가? 과학자들은 그렇지 않다. 정부의 말 잘 듣는 개인데, 자기가 개라는 걸 모르는 개다. 지가 사람인 줄 알아. 신발… 정말 슬픈 짐승들이다.
사람인 줄 아는 개(…)
리 : 이게 표로 연결이 될 수 있다고 보는가?
초 : 물론이다. 진보는 새누리당의 프레임에 끌려다니지 말고, 자신만의 프레임을 제시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프레임 중 하나가 미래에 대한 과학기술 프레임이라 생각한다. 안철수건, 문재인이건 이런 프레임 가지고 오고, 그 정책을 제대로 실현할 수 있다면 대중을 사로잡을 수 있다. 님도 보고 뽕도 따는 전략이라 본다. 과학기술 정책 프레임을 제대로 짜는 건 대선에 큰 영향을 미친다. 내 눈에 박정희는 이미 움직이고 있다.
리 : 박정희가 어떻게 움직이냐? 예수처럼 부활이라도 했는가?
초 : 아씨, 박정희 말고 박근혜…… 책을 출판하는 거나, 과학기술 단체들의 움직임이나 과학대통령 박정희 되살리기가 진행되고 있다. 결국, 누가 도움 되냐? 박정희의 과학 프레임을 넘어서는 건, 단순히 과학이 건강해지는 걸 넘어 이번 대선과 직결되어 있다.
나는 안철수가 뜨는 이유 중 하나로 과학기술까지는 아니겠지만, 과학기술로부터 얻어지는 미래에 대한 비전, 긍정적인 기운의 갈구가 있다고 본다. 이런 걸 만족시키려면 과학이 엄청 중요하다. 진보가 과학기술을 이해하고 존중해야 한다. 대한민국 과학기술 대연합(이하 대과연)이 제시한 이공계 공천 추천을 새누리당은 일부라도 받아들였다. 하지만 민주당은 그냥 과학을 손에서 놓았다. 그럼 표를 완전히 잃은 거다. 통진당은 아예 생각이 없다. 교과서에서 미적분 없애자고 하는 진보신당은 어쩌자는 건지 모르겠고.
리 : 그런 면에서 각하의 과학기술 정책을 까보도록 해 봐라.
초 : 솔직히 까고 말하면, 양적으로는 분명 팽창했으니 이번 정부에서 더 나아졌다.
리 : 오! 나꼼수 빠가 각하를 빨기 시작한다!
초 : 세종시에 만드는 과학 비즈니스 벨트에 쓰는 돈이 얼마인데… 기초과학 연구 지원도 많이 늘었다. 당장 기초과학연구원을 막스 플랑크 연구소 형식으로 구성하려 하고 있다. 기초과학 단장 10명에게 1인당 100억씩 지원한다. 게다가 기한과 제한도 없이 연구하게 한다. 표면상으로는 과학계 숨통 터준 거 이번 정권 맞다. 물론 김대중이 BK21을 통해 대학원생 숨통을 터준 게 시작이지만, 결과적으로 박사만 늘리고 일자리 안 만들어서 지금의 고학력 취업대란을 일으켰다.
그렇게 보면 과학기술 정책에서는 진보와 보수가 뒤집힌다. 솔직히 말해서 과학자는 과학기술 정책만 놓고 보면 이명박, 박근혜 지지하는 게 맞다. 양적 팽창이라도 해 주잖아? 이들이 과학기술을 통해 미래지향적 프레임을 그려나가는 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리 : 과학 기술에 있어서는 새누리당이 오히려 진보적이다?
초 : 이게 꽤 일반적인 현상이다. 한국에서도 과학전쟁 비슷한 게 있었는데, 대표적 논쟁이 과학윤리 외치는 과학사회학자 김환석과 과학비즈니스벨트 기초과학연구원 이사장 오세정 간의 논쟁이다. 과학사회학자 대표와 과학자 대표 사이의 논쟁인 셈이다. 전체적으로 과학사회학자 김환석은 진보적이고, 과학자 오세정은 보수적이다. 막말로 정권에 아부하다가 자리 차지한 게 오세정이니까. 그런데 과학을 바라보는 태도로 바라보면 반대가 된다. 되려 오세정은 진보적이고, 김환석은 보수적이다.
과학을 하면서 정치적으로 진보적으로 사는 건 엄청난 딜레마다. 당연히 과학자 사회가 다양해지니까 진보적인 과학자도 있다. 미국도 스티븐 제이 굴드(Stephen Jay Gould)가 그 대표이듯, 과학계가 건강해질수록 진보적 학자가 나온다. 하지만 한국은 힘들다. 과학자들이 여유를 가지고 사회를 비판적으로 바라볼 여유를 주지 않는다.
리 : 올ㅋ 님 새누리당 들어가삼.
초 : 하지만 내가 새누리당 측의 정책을 비판하는 건 투자의 방향이 잘못됐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비즈니스 마인드에 충실한 박정희 프레임으로 가봐야 자본 종속, 삽질, 토건사업이 된다. 과학기술계의 양적 팽창도 부동산 버블과 같다고 본다. 그래서 질적으로 달라져야 하고, 그걸 하려면 이 기저의 시스템을 갈아엎어야 한다. 당장 하루하루 먹고사는 것만 생각하면 과학계는 이명박, 박근혜를 지지해야 한다. 하지만 멀리 보면 그게 아니다. 박근혜가 대통령이 된다면 아버지의 과학기술정책에서 한 치도 벗어날 수 없다. 그 무서운 프레임의 철학은 40년이 지나도 안 바뀌고 있다.
왜 얼마 안 되는 과학기술자 출신 국회의원들이 새누리당으로 갈까? 뿌리가 박정희에 있는 프레임을 넘어서지 못하는 진보는 안 된다. 박정희 프레임은 경제뿐 아니라 과학에서도 우리에게 주어진 업보다. 이를 넘어서지 못하면 새로운 대한민국은 없다. 난 경제 전문가가 아니니 경제 쪽은 할 말 없지만, 과학기술정책에서 박정희는 엄청난 일을 한 짐으로 남아있다. 이를 넘어서지 못하면 한국의 새로운 과학기술 정책과 아인슈타인은 없다.
리 : 그냥 과학자에게 돈만 버는 역할을 사회가 요구한다면 박정희 프레임이 무조건 잘못됐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초 : 새누리당이건 민주당이건 차라리 아인슈타인 같은 거 바라지 않는다고 이야기라도 하면 좋겠다. 박정희 프레임을 그대로 가져가려면 아이들에게, 시민들에게, 민중에게 아인슈타인이 위대하다는 꿈도 희망도 심지 마라. 그냥 과학자들은 돈 버는 기계라고 해라. 과학문화 운동하는 측에서는 아인슈타인 원한다고 하지만, 정책은 완전히 상반된 거 아닌가? 아인슈타인 못 나오는 정책 추구하면서, 반대편에서는 띄우냐? 애들 이공계 유입시켜놓고 뭐하는 짓이냐? 어차피 대학원 가면 애들은 개차반인 거 다 알게 된다. 그리고 똑똑한 놈들은 의학전문대학원과 법대로 가는 게 이과의 현실이다.
이런 과학기술정책으로는 아이들이 과학에서도 주인이 안 될 뿐이거니와, 이 사회에서도 주인이 될 수 없다. 스스로를 중인으로 여기고, 도구로 생각하고, 자기 한목숨 먹고 사는 거 생각하게 하는 시스템에서 무슨 아인슈타인인가? 지금 시스템에서는 과학정신, 열정 가지고 과학을 즐기면서 할 수 없다. 아인슈타인은 개뿔. 이런 선전은 비겁하고 나쁜 일이다. 이런 과학기술정책을 밀 거면 과학자가 되라고 꿈을 불어넣지 마라. 애들 그렇게 가면 실업자 될 건데. 차라리 의사, 변호사 되라고 이야기해라.
리 : 과학기술계 사람들이 표심 외에 진보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초 : 난 정치적 인간이다. 정치적으로 서로 동의하는 사람들끼리 과학이라는 학문, 인문학이라는 학문을 두고 싸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분명 지금까지 인문학계 사람들이 진보, 좌파 진영에서 운동하면서 기득권 가지고 있었고, 지금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당신들의 친구들이 과학에 있고, 이 사람들을 친구들로 만들면 인문계 위주로 형성된 좌파가 훨씬 더 강해질 수 있다. 단순히 기술적 조언의 수준이 아니라 과학에 대한 새로운 프레임을 제시하고 동의를 얻을 수 있다.
그런데 왜 적으로 만들려 하느냐? 서로 힘을 잘 섞으면, 이명박과 박근혜의 박정희 과학 프레임을 무서워하지 않고, 더 좋은 ‘과학과 함께하는 좌파’를 만들 수 있다. 이게 훨씬 미래지향적이고 비전도 있지 않나? 좀 과감히 주장하면… 좌파가 과학 수용하면 정치계 혁명이 일어날 거다. 옛날 신진사대부들이 입성해서 조선을 바꾼 일이 진보에 일어날 수 있다.
리 : 기술적 부분을 이야기하자면, 광우병 사태 때 기술적 이해가 높은 과학기술인들은 진보에 별 역할을 못하지 않았나?
초 : 이건 전술 문제다. 광우병 문제를 과학의 프레임으로 끌고 들어가면 진보진영이 무조건 진다. 광우병이라는 질병에 대한 연구는 진실/거짓을 나누는 확실한 프레임이 아니라, 불확실성 속에 놓여 있다. 과학이 대답해줄 수 있는 것들이 제한되어 있다는 말이다. 이런 경우 과학을 제멋대로 사용하는 쪽이 이긴다. 그래서 이런 싸움은 과학적으로 이겨봐야 이기는 것도 아니다. 외교와 정치의 문제에 과학을 끌고 들어가면 오히려 꼬이기 쉽다. 물론 과학이 외교적 판단에 도움을 줄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이 판단을 내려주는 재판장의 판사가 되어서는 안 된다.
내가 광우병이 위험하지 않으니 수입해도 된다는 주장에 반대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과학적이라는 말로 자신들의 프레임을 포장하는 축이 왜 항상 가카와 그 일대의 인간들일지 생각해 봐라. 과학은 ‘과학적 확실성’뿐 아니라 ‘과학적 불확실성’도 가지고 있다. 이 둘은 모두 자신의 이익을 위해 과학을 악용하는 세력에겐 좋은 무기다. 과학적으로 광우병 논쟁에서 이기려면 진보진영의 과학자들도 뻥을 쳐야 될 텐데, 그건 과학을 훼손하는 짓이다. 물론 진보진영에 과학자가 있기나 한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광우병 논란은 무조건 ‘국가의 이익’이라는 프레임으로 가야 한다. 거기서 과학은 장식이다. 언제부터 장식이 본질을 가렸나?
7. 과학과 정치는 어떻게 만나야 하는가?
리 : 당신답지 않게 찌질거릴 맥락이 너무 없었다. 찌질거리기 위해 대놓고 정치 이야기를 하자. 이번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더 과학계를 신경 쓰는 듯한 모습을 보여줬다.
초 : 총선에서 대과연이 이공계 국회의원을 늘리려고 꽤 노력했다. 총선에 앞서서 과학기술계인 58명을 새누리당과 민주당에 추천했다. 물론 새누리당이 그나마 좀 더 내놓았지만, 공천을 받은 건 소수였다.
리 : 과학기술인들이 이익집단을 조직해서 이런 압박을 넣는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가?
초 : 전혀. 대과연이 보여주는 모습은 과학자들이 양적 팽창에 완전 몰두 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공계 출신 국회의원 뭐 중요하냐? 이공계 출신이라 해 봐야 학부 출신일 뿐이다. 수학 좀 더 잘 안다고 정치가 변하냐? 열린우리당이 짱 먹을 시절, 국회의원이 2/3가 바뀌어도 국회는 변하지 않았다. 과학자가 국회 들어가도 과학기술 정책은 변하지 않는다. 틀이 잘못됐기 때문이다. 이 틀 바꾸는데 역량 쏟아야 한다. 국회의원 두세 명 만든다고 바뀐다고 된다고 생각하는 건 정치적으로 나이브한 짓이다. 그럼 간호사 10명이 국회에 가면 간호사 처우가 바뀔 것 같나?
리 : 솔직히 간호사가 그 정도 들어가면 간호사 처우가 바뀔 것 같다(…)
초 : 바뀌겠지(…). 그럼 이야기를 바꿔서 야동 좋아하는 사람 100명이 국회에 들어가면 합법화되나?
리 : 이쯤 되면 과학자가 펼치는 논리가 맞는지 의심스럽다(…)
초 : 그렇다면… 검사출신 민주당 의원이 20~30명 들어간다고 검찰개혁이 되는가?
리 : 이번 드립은 좀 성공적이었다.
초 : 후후후… 그렇다. 정치인이란 건전한 상식 가지고 열린 자세로 사람들 의견 청취하고 상식적 판단 내리면 되는 대표자다. 그래서 보좌진을 비롯해 그 사람을 서포트할 인력과 단체를 만드는 게 훨씬 중요하다. 어디 출신 따지는 건 별 가치가 없다.
리 : 과학계가 먼저 변해야 한다고 했는데, 어떤 변화를 이야기하는 것인가?
초 : 과학자들 스스로 정치적으로 각성하는 게 우선이다. 내가 과학 하는 사람들이 참 불쌍한 것은… 이 사람들이 정치적으로 진보, 좌파 된다고 했을 때 얻을 수 있는 텍스트라는 게 흔히들 인문 좌파로 지칭되는 이들의 이야기다. 이공계 학생회가 진보캠프 같은 거 하면서 이 사람들 이야기만 듣는다. 이거 되게 쪽팔린 짓이라 생각한다. 왜 정치적으로 진보적이고 좌파적이라면 그런 사람들을 강의에 데려다 써야 한다고 생각하냐?
과학은 최근의 스티븐 제이 굴드랑 리처드 르원틴(Richard Lewontin)에서도 볼 수 있듯 민중을 위한 과학자 전통이 있다. 영국에서는 심지어 좌파가 과학을 주도했다. 지금의 과학자들은 사회 경제 시스템의 변화에 적응했는데, 그건 진정 과학을 위한 길이 아니다. 이걸 깨달아서 과학자들이 과학의 주인이 아니라 노예가 되어가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과학의 전통을 되돌아보고, 과학의 정신을 찾아내서 되살려야 한다. 이를 무시하고 만든 프레임 위에 이공계만 얹으면 안 된다. 정치적으로 이택광빠, 진중권빠, 김규항빠고 단지 이공계일 뿐이라면, 이게 ‘새누리당 지지하는 이공계인’인 대과연과 다를 게 뭐냐? 자신이 서 있는 학문의 전통과 현실은 생각하지 않고, 남이 말하는 것만 받아들인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
리 : 생각을 바꾸면 끝은 아니고 행동을 해야 한다. 노조라도 만들자는 건가?
초 : 미국은 이미 포닥 조합이 활발히 활동한다. 포닥 조합이 무려 미국 금속노조 산하에 있다. 졸라 강성이다. 나 같은 4년 차 포닥도 연봉 4만 불은 받는다. 미국 물가 고려하면 큰돈은 아니지만, 생활에 문제는 없다. 여기서 한국과의 차이가 있는데, 미국 금속 노조는 박사학위 가진 포닥 노조를 인정해준다. 한국은 그게 안 된다. 유명한 얘기로 양신규라는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이 물리학과 출신으로, 이공계를 엄청 사랑했다. 이 사람이 노동운동 대부에게 이공계 노동자 노동조합 만들게 해달라고 하니까 ‘니들은 블루칼라가 아닌데, 어떻게 노동자냐?’ 식의 대답을 들었다고 한다.
리 : 오오! 노동운동에서도 소외된 과학계!
초 : 내가 인문 좌파 운운하는 사람들과 부딪히는 게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인문 좌파들이 나쁘다는 게 아니다. 한 사회의 과학을 바라보는 시대의 수준을 이야기하는 거다. 노동운동하는 사람들이 과학 모르는 건 문제가 안 된다. 그래도 한 사회가 과학자들의 과학을 서포트하고 집행할 수 있는 문화적 역량이 없으면, 과학이 제대로 발전할 수도, 활용할 수도 없다.
리 :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를 논하려면 과학자가 움직이는 게 차라리 낫다고 본다.
초 : 사회의 인식이 그렇다면, 정치인 눈치를 보거나 과학의 현실을 모르는 이들 꽁무니만 따라다닐 필요가 없다. 과학인들이 먼저 뭉쳐서 움직여야 한다. 산업화 진행될 때 노동자들이 뭉쳐서 노동조합 만들고 경영자들을 견제하지 않았나? 과학자들도 비슷한 시스템에 편입됐다면, 뭉쳐서 견제하는 방법밖에 없다. 그런데 고학력 잉여들은 그걸 못한다. 자기 현실이 얼마나 처참하고 불안한지 알면서도 안 뭉친다. 하지만 여기까지 온 이상 한국에도 조만간 포닥 노조가 생길 거다. 이미 비정규직 연구원 노조가 정부산하 연구소들, 정부 출연 연구소는 공공 노조가 있는 것으로 안다. 이게 일반 분야로 다 퍼질 거다.
리 : 노조를 만드는 건 결국 밥그릇을 요구해야 한다는 것인가?
초 : 그게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한국사회 경제적 특권층은 먹고사는 문제에서 자유로우니까 진보든 보수든 나오고 다양한 짓 할 수 있다. 그런데 과학자는 먹고사는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가뜩이나 구조적 문제 때문에 과학자들이 소외되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경제적 계급을 정치적 계급으로 만들어야 하지 않겠나? 과학자들 뭉치고 각성해야 한다. 정치적, 사회적으로 무시당하지 않으면서 이 사회에 기여한 만큼 대접받을 사람들이 되려면 정치적으로 각성해야 한다. 왜 과학계에서 안철수, 박원순 못 나오는가를 고민해야 한다.
우리 사회 지배하는 사람이 누군지 생각해 봐라. 과학자들 띄워 주고 영웅처럼 이야기하지만, 정치적 발언도 못하게 거세 시키는 문화다. 실제로 대한민국 지배하는 건 의사와 변호사 아닌가? 박원순 변호사, 의사 안철수, 의사 박경철… 과학인들은 그냥 찬밥이다.
리 : 당신도 늦지 않았으니 의사와 변호사가 되도록 해라. 네이처 논문 들이밀며 무릎 꿇고 빌면 로스쿨 넣어줄지도 모른다.
초 : 시끄러워…
리 : 돈도 돈이지만 존중의 측면에서 의사, 변호사와 과학계의 차이는 넘사벽이다.
초 : 일단 과학자들이 ‘정치가 별거냐?’라는 생각부터 가졌으면 좋겠다. 사회운동하는 거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데, 과학자들이 너무 위축되어 있다. 과학자가 정치의식 느끼는 것에 대해 모순을 느끼지 말라고 만든 게 과학과 정치 강연록이다. 과학자에게 정치란 멀리 있는 게 아니라 당신이 사랑하는 과학을 떳떳하게 만들기 위한 활동이다. 국회 가는 것도, 정치 발언도, 당 지지도 두려워할 필요 없다. 생활에서 당 지지하면서 왜 과학자 틀 쓰고는 그런 거 안 하냐? 해야 한다. 당연한 활동이다. 당신이 과학을 사랑한다면.
리 : 대과연의 과학기술계 출신 국회의원 늘리기에 반발했는데,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나?
초 : 당장 과학자 출신 국회의원이 늘어나면 과학계 변할 거라 착각하는데, 자기 집안 단속부터 해야 한다. 자기가 사는 집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제대로 만들지 않으면 정부에서도 뭐 해줄 수 있는 게 없다. 자기 집은 쓰레기 시궁창인데, 정부에다가 뭐 해달라고 해봐야 아무것도 안 변한다.
대과연식으로 해서 바뀌는 거 별로 없을 거다. 과학계에 대한 사회의 인식이 근본적으로 바뀌려면 어차피 지금 과학계의 보수화된 윗대가리를 믿을 수는 없다. 이 사람들 자기들 수명 연장하려고 하는 거지, 과학 발전을 위해 저러는 건 아니라 생각한다. 20~40대 젊은 과학자가 과학노동자 연맹이건 과학기술자 연맹이건, 노동운동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연합을 빠른 시일 안에 구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과총, 대과연 등 내부적으로는 과학 원로들이 지배하고 있는 과학자 연합을 견제하고, 이 사람들과는 독립적으로 국회든 당이든, 정치단체든 실제로 목소리 내고 영향 미칠 수 있는 민주노총이나, 민노당이나, 한국노총이나 이런 애들이 좌지우지하는 것처럼 정치세력화할 게 아니면, 그런 식으로까지 생각하는 게 아니면 정치 얘기 꺼내지 않는 게 낫다.
리 : 그렇기는 하다만 당장 일본의 간 나오토 총리도 물리학 박사 출신이지 않은가?
초 : 선후관계를 잘못 보고 하는 이야기다. 우리나라에서 과학자들의 정치 발언이 터부시 되는 건 사실이다. 이에 반해 일본의 간 나오토 총리는 물리학 박사, 독일의 메르켈 총리는 양자화학 박사다. 중국 공산당은 공학 박사 출신들이 잡고 있고, 이스라엘은 초대 대통령도 과학자였고, 아인슈타인을 2대 대통령으로 만들려고까지 했다. 이 나라들은 과학이 사회와 충돌하지 않고 자기 방식으로 스며들어서 과학인들의 정치 진출이 아무렇지 않다. 하지만 한국은 과학이 사회 속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들지 못했다.
리 : 오… 마치 여자의 마음 속에 들어가듯 자연스럽게 스며들어야 한다는 것?
초 : 그렇다. 일단 과학자들의 정치 진출이 필요하다는 공감대를 형성하는 게 우선이다. 과학계는 이를 위한 부단한 노력을 먼저 해야 한다. 국회의원 몇 명 보내기에 앞서, 과학자가 정치해도 아무렇지도 않은 사회를 만드는 게 먼저다. 이를 위한 첫걸음은 과학계가 건강해지는 것이다. 과학을 사랑하고 열정을 가진 이들이 박정희의 과학기술 프레임을 벗어나, 과학계 내부를 건강하게 만들기 위한 노력과 요구를 멈추지 말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대중의 인식이 동반 성장하고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과학자가 국회로 진출하는 걸 아무렇지 않게 보는 맥락을 형성해야 한다. 그런 일이 일어난 후에야 사회에 과학을 이렇게 봐달라 요구할 수 있다.
아무도 동의할 수 없고, 왜 이공계 출신 국회의원이 필요한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국회의원 몇 명 배출한다고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내부 문제 해결 능력을 기르면 자연히 정치인이 나오고, 서구처럼 과학계에서 정당한 요구를 할 수 있다.
8. 과학 저널리즘의 문제
리 : 과학 기자, 과학 저널리즘이 너무 수준 낮다는 이야기도 있다.
초 : 족구하라고 해.
리 : 어이… -_-…
초 : 과학 저널리즘이 자리 잡히는 건 과학계가 자리를 찾고, 과학자들이 자기가 정치적, 주체적으로 각성한 다음의 이야기다. 먼저 과학계가 순화되고 건강해지면 과학 저널리즘은 알아서 따라온다. 지금 과학 저널리즘의 문제는 알맹이가 없는데 포장만 난무하는 것이다. 실상 포장 벗기면 아무것도 없으니, 포장조차 근사하게 할 수가 없다. 우리나라에 아인슈타인, 파인만, 다윈처럼 포장해서 세계에 내놓을 과학자가 없는데, 무슨 과학 저널리즘이냐? 과학계가 길게 20~3년 보고 전열을 재정비해야 한다. 그렇게 위대한 과학자가 한국에서 나올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 달리다 보면 한국에서 주도하는 과학분야도 생길 수 있다. 이를 언론이 포장하면 당연히 과학 저널리즘이 건강해진다. 아니, 억지로 포장할 필요조차 없어진다.
리 : 과학의 성과에 대한 억지 포장은 과학 저널리즘만의 문제는 아니다?
초 : 그렇다. 시스템상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과학자들은 세계 최초 연구도 아닌데, 연구비 따는 데 도움이 되니까 세계 최고라 이야기해야 하는 압박이 있다. 과학 저널리즘은 섹시한 주제를 물어야 하니까, 어쩔 수 없이 알면서도 포장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실상 지금 한국에서 나오는 논문들은 미국처럼 선도하는 연구가 아니라 꼬리 잡는 연구들이다. 이걸 억지로 포장해서 세계 최초인 것처럼 포장해야 하니까, 과학 저널리즘이 부패할 수밖에 없다. 이 둘의 커넥션이 아주 짬뽕이 되면서 최악으로 흘러가는 게 현재의 과학 저널리즘이다.
리 : 황우석 때 대차게 까이고서도, 별로 변화가 없는 것 같다.
초 : 개인 윤리 차원으로 접근했으니까 당연한 일이다. 그때 과학 기자 선언 쓰고 난리 쳤지만, 뭐가 변했나? 섹시하게 뻥튀기하면서 어떻게든 실용적인 측면이 있다고 떠들어야 하는데 뭘 바꿀 수 있겠나? ‘암 치료에 획기적!’, ‘당뇨병 완치!’ 이딴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는데.
그렇다고 사회 문화적으로 과학을 존중하기라도 하나? 뉴욕타임즈 토요일판 보면 과학 섹션 엄청 크게 나온다. 전에 내가 번역한 도킨스와 윌슨을 까는 H. 앨런 오(H. Allen Orr) 서평도 A4 20~30장 정도 되는 엄청나게 긴 글이 신문 한 면에 꽉 채워진 거다. 하지만 한국 신문은 대부분 신문에 과학 섹션이 없다. 과학을 왜 IT나 기술과 합치냐? 프레시안이 노력한다지만 메이저 신문이 아니잖아? 이건 메이저 일간지가 해야 할 일이다. 한겨레의 사이언스온은 그런 생각에서 도와줬는데 한겨레 웹사이트에서는 링크나 배너도 안 걸고… 그걸 지랄했더니, 형평성 지랄하고 있네. 신발… 오철우 기자가 이런 문제를 잘 알고, 잘 알아서 할 거라 생각하니 긴말은 하지 않겠다.
리 : 오, 오, 오, 오, 빠를 사랑하는 건 훼이크고 오철우 기자님.
초 : 내가 네이처에 실린 논문 보도자료를 안 뿌린 게 이런 과학 저널리즘 때문이다. 오철우 기자가 그래도 신경 많이 써 줬고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나 도움되라고 서울대에서 모 저널에 실은 논문 보도자료를 예시로 주더라. 그런데 보도자료가 무슨 용비어천가다. 이렇게 자기 논문이 유용하다고 외쳐야 기사가 된다고. 그런 짓은 못 하겠더라. 그게 무슨 과학 저널리즘이냐? 자기가 외국 논문을 읽고 관심 있으면, 연구자 찾아가든가 인터뷰하던가 해서 써야 하지 않나? 그런데 우리 과학 저널리즘은 보도자료 낸 거 아니면 외국 기사 보고 베끼는 거. 한겨레 사이언스온이나 좀 다르지. 나머지 과학 기사들은 다 그런 식이다.
리 : 오, 님 꼰대 근성 짱 드셈.
초 : 네이처에 논문 실은 게 그리 대단한 일이겠느냐만… 어쨌든 남들이 볼 때 작은 성과는 아니라 생각한다. 솔직히 어지간한 신문에 한 번씩은 날 수준은 됐다. 취직하는 데 좀 도움이 될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이렇게 과학 시스템 문제 지적한 놈이 이런 용비어천가 보도자료 내 양심과 내 말과 행동과 살아가야 할 미래를 생 생각해볼 때 뿌리는 게 떳떳할까, 이런 고민을 며칠 했다. 그리고 결국 동참하지 않는 게 의미가 있겠다 싶었다. 그냥 별거 아니지만 내 딴에는 정말 고민했다. 이걸 뿌리면 쫙 나는 건데, 신발…
리 : 그러고 보니 네이처도 하나의 저널인데, 걔네가 대단하기는 한가보다?
초 : 킹왕짱이다. 네이처는 세계에서 제일 잘 나가는 국제학술지라 생각하면 된다.
리 : 오래간만에 자기 자랑할 수 있으니 굉장히 신난 것 같다.
초 : (……) 그런데 사실 정말 나쁜 놈들이다. NPG(nature publishing group)가 과학계의 삼성 같은 놈이다. 온라인 저널 구독료를 각 대학에 도서관에 청구하는데, 스탠퍼드 같은 부자대학도 NPG를 비롯한 온라인 저널 구독료에 도서관 예산의 절반 이상을 쓴다. 이게 기본적으로 문제가 있는 게… 연구자들이 논문 실을 때 연구비는 다 세금이다. 그런데 네이처는 연구자가 논문을 싣는데도 돈을 받고, 읽는데도 돈을 받는다. 브랜드 하나 만들고 공으로 먹는 거다. 게다가…
리 : 게다가?
초 : 게다가 정말 악랄하게, 자매지를 엄청나게 많이 만들어놨다. 네이처 본지가 갑이고, 네이처 뉴로사이언스(nature neuroscience), 네이처 셀 바이올로지(nature cell biology) 등 홈페이지 가면 저널이 100개가 넘는다. 그야말로 삼성 별거 아닌 대기업 문어발식 확장이다. 구독료가 엄청나게 높아서 항의서한도 보내고, 서명운동도 했지만, 권력이 네이처에 있으니 꿈쩍도 안 한다. 네이처와 양대산맥에 있는 엘스비어도 마찬가지다. 왜 국민 세금으로 한 연구를 독점해서 폐쇄적으로 운영하냐?
리 : 이에 대한 대응은 없는가?
초 : 그래서 플로스(PLoS; Public Library of Science)라는 과학 공공 도서관이 여기서 생겨났다. 과학의 연구 결과는 모두 공개돼야 한다는 거다. 서양이 아무리 자본주의 종속돼도 이런 과학 정신이 살아있다. 플로스를 만든 사람들이 노벨상 수상자들이다. 모든 논문은 공개되고 공짜로 온라인에서 볼 수 있게 하려는, 과학자들의 아나키스트 정신, 카피레프트 전통이다.
리 : 그러는 당신은 왜 네이처에 기고했냐 -_-…
초 : 나는 아직 갑이 아니다. 현실을 무시할 수는 없고, 교수도 실으라 하고, 같이 연구한 사람들도 있고… 그래도 혹시나 교수가 돼서 갑이 되면 다 플로스에 실을 거다. 이런 게 과학 안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진보 운동, 삶의 운동, 생활 속 정치다. 과학자들이 정치한다고 그러면 거대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이런 거 해야 한다. 국회의원 배출이 아닌, 네이처 독점과 부당한 처사에 대한 투쟁이 먼저다. 그게 정치다. 자기 주변 밀접 관련에 대한 정당한 어떤 정의를 요구하는 게 정치인데, 왜 정치를 이야기하면 특별한 계층이 한다고 생각하는 건가? 그런 게 아니다. 생활정치라는 게 있는 거다.
리 : 결론은 비겁한 자기변명이다.
초 : ……
9. 잡소리
리 : 여담으로 많은 주변인들이 제발 결혼해서 트위터에서 찌질거리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반대로 떡밥 좋아하는 이들은 결혼하지 않고 이대로 살기를 바라는데 어쩔 셈인가?
초 : 두 진영이 토론을 벌이도록 주선해봐라. 토론에서 이기는 쪽의 결정을 따르련다. 물론 나는 청렴하고 결백하며 뼛속까지 청순하다.
리 : 아, 그리고 사이언스타임즈에서는 왜 잘렸나?
초 : 자꾸 과학 칼럼에 빨갱이 정치 이야기한다고 쓰지 말라고 했다.
리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초 : 신발(…)
리 : 예전 트위터를 관둔 게 아버지에게 걸려서라는 이야기가 있는데 사실인가?
초 : 음모론 좋아하냐?
리 : 음모론을 싫어하는 당신은 왜 나꼼수 빠가 됐나?
초 : 속 시원하잖아. 신발! 국민들이 괜히 공감하는 게 아니야!
리 : 과학을 이해하기 위해 좋은 논문과 책을 소개해봐라, 테크트리로 소개하면 더 좋다. 트위터나 블로그 추천도 좋다.
초 : 이런 질문 싫어한다. 과학이 얼마나 다양하고 방대한데 그걸 책과 논문 몇 개로 알려고 드냐? 과학을 머리로 알고 싶은 건지 몸으로 알고 싶은 것인지에 따라서도 공부법은 다르다. 머리로 과학을 이해하는 시늉이라도 하고 싶은 사람들은 ‘과학을 여행하고 싶은 인문학도를 위한 안내서’라는 내 글을 추천한다. 혹시라도 진심으로 과학을 이해하고 싶은 것이라면 주변의 실험실에 한 1년쯤 무료봉사 나가보면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다들 공부가 머리로만 하는 줄 아는지라, 이런 건 다들 안 하려고 하겠지만.
리 : 시건방지기 짝이 없는 당신이 착한왕에게는 유독 굽신거린다. 몇 년간 세미나를 한 것으로 아는데 대체 어떤 작업을 한 건가?
초 : 거의 매주 나는 포항에서 부산으로, 착한왕님은 진주에서 부산으로 와서 ‘생리학사’ 세미나를 했다. 닥치는 대로 읽어나갔었는데, 그때 꽤 많은 공부가 됐다. 생리학사 재미있다. 이거 공부하려면 고전역학부터 화학사까지 다 공부해야 한다. 심지어 아리스토텔레스도 읽고 그랬었다. 물론 칸트니 헤겔이니 마르크스니 다 등장한다. 생리학사는 내 사정이 좀 나아지고, 왕님 사정도 좀 나아지면 둘이 모여서 죽기 전에 정리할 거다. 양키들이 보지 못하는 과학의 다양성이 존재한다. 쿤이고 포퍼고 나발이고 자기들 역사라고 과학을 너무 막 대하는 경향이 있다. 오히려 동양인인 우리가 더 정확하게 지도를 그려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리 : 마지막으로 한 마디 해봐라.
초 : 리승환 수령에게 여친이 있다는 사실만큼 과학적으로 진기한 일도 없다. 피 뽑아서 보내봐라. 유전자 검사 좀 해보자.
리 : 마침 인터뷰 발행 시점에 헤어졌다. 모두 당신의 저주 때문이다.
초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리 : 신발(…)
초 : ……
필자 주 : ‘리수령 인터뷰 5(하): 초파리 박사의 네이처 논문으로 보는 과학적 검증 과정’으로 이어집니다.
김우재의 결혼을 반대합니다.
갑오징어는 결혼조차 할 수 없으니까요. 선택이 가능한 난 행복한 영장류.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김우재 ‘인문좌파를 논하다’ 특집도 부탁드립니다. 초대형 떡밥이 될 것임이 자명합니다.
김우재의 인생을 살리기 위해 그 부분은 과감히 몽땅 편집했습니다.
재미있네요. 나이 좀 들어서 과학에 관심을 가지고 이 책 저 책(주로 진화론 쪽이지만) 읽고 있는 공돌이 출신인데 저같은 이과 출신도 과학을 허접데기로 취급하니 지금의 모습이 어련하겠습니까? 내용 좋구 많은 것을 느끼게 하네요.
많은 이과생이 감동받았다는 기쁨보다, 트위터 찌질이 김우재를 사람으로 격상시켰다는 행복이 더 큰 하루입니다.
어찌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시는지… 뭐 어떤 말씀을 하고 싶으신지는 알겠고, 공감하는 부분도 있으나, 이번 정부의 과학 정책에 대한 평가에 대해서는 100% 동의하기는 어려운 부분이 있네요. 일단 형식적으로는 터준 것이 맞다? 요번 정부들어서 정부출연 연구소들이 대량 통폐합된 것은 알고 계시는지? 그리고 과학자에게 있어 중요한 정치적 이슈가 과학자로서 (여러 가지 심급에서) 정치적 주도권 잡기인 것만은 아니지 않겠어요? 과학운동에 대한 자신의 철학과 공부에 대한 자부심은 상당하신 듯 하나, 정작 연대해야 할 대상에 대한 지식은 짧으신 것 아닌지? 아, 뭐 아무래도 전공한 분야나 관심을 가진 대상에게만 집중하게 되는 것은 인지상정이기는 하나, 감히 조언을 좀 드리고 싶다면 혹 자신이 우물 속에 있는 것은 아닌지 한번쯤 되새겨 보셨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과학운동에 대한 관점을 가진 사람이 한국인 중에 김우재님만 있는 것은 아니겠지요. 정말 과학운동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드신다면, 소통할 수 있는 사람들을 찾아보려는 노력도 중요할 듯 싶습니다.
뉴로사이언스쪽이신듯 한데, 주목을 받는 분야의 사람들에게서 자주 보게 되는 일이지만, 가끔 자기네 분야 말고는 아무 분야도 없는듯, 자신의 입장이 곧 과학기술계의 입장을 대변하는 듯 말씀하는 분들을 자주 보게 됩니다. 물론, 이 글만 읽고 (그리고 사이언스타임즈에 기고하신 글들 몇개를 읽고) 김우재님의 심리를 프로파일링하는 것도 참 경솔한 일이겠으나, 그저 우려를 표명하는 것이라고 받아들여 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만에 하나 김우재님께 정말 그런 부분이 있다면, 어떤 면에서는 그렇게 언급하시는 인문학자들과 진배 없는 일일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지금 언뜻 검색해보니 사이언스타임즈에도 출연연 통폐합에 대한 기사가 있네요. 모르신 건지, 알고도 언급하지 않으신 건지 모르겠습니다. 뭐 제가 보기에 알고도 언급하지 않을만큼 중요하지 않은 일은 아닌 듯 싶습니다만…
그리고 요즘 슬로우 뉴스를 보면서 참 안타까운 생각이 많이 듭니다. 슬로우 뉴스가 표방하고자 하는 느리고 심층적인 뉴스라는 슬로건에 참 많이 공감을 했는데, 올라오는 기사들을 보면 짧은 지식을 바탕으로 그저 개인적인 문제의식에만 기초하여 작성되어지고, 나머지는 어떤 용감함으로 메우려는 것이 아닌가 싶은 글들을 종종 발견하게 됩니다. 정말 슬로우 뉴스를 표방한다면 좀더 나서서 정말 ‘심층’ 조사할 수 있는 것 아닌가요? 그저 자신의 관심영역과 블로거로서 얻기 쉬운 정보에만 의존할 게 아니라 말이지요. 감히 이야기하자면 그 속에 있어야 할 어떤 겸손과 적극성이 부족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용기는 중요한 덕목이지만, 그것만으로는 그렇게 얻고자 하시는 신뢰성을 담보하기 어렵습니다.
아, 앞에 (상)글을 읽어보니 과학사 쪽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그저 비판하기만 좋아하는 사람들이라고 언급을 하신 부분도 있군요. 거참. 비판하는 건 좋으나 쟤네는 욕만 해대서 안돼! 윤리는 중요하지만 삶에 대한 언급이 있어야지!! 뭐 좋습니다. 삶에 대한 언급도 있어야지요. 뭐 좋은데요. 과학기술운동에 대한 적절한 방법과 기준은 그래서 누가 정하는데요? 김우재님은 위에서도 주도권의 획득이 중요하다고 언급하셔놓고, 과학사 연구하는 사람들이 과학자들한테 도움안되는 비판을 하는 이유는 결국 자기가 밥벌이할 수 있는 길을 마련하기 위해서라고 말씀하셨어요. 결국 그들도 주도권 얻으려고 적극적으로 정치 하는 것 아닌가요? 남이 하면 불륜, 내가 하면 로맨스처럼 읽히는 것은 저만의 착각인지 모르겠습니다.
선긋기는 언제나 중요하게 고려되어야할 전술이기는 하나, 스스로에 대한 반성은 항상 같이 가야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여전히 전 겸손함이 참 중요한 덕목이 아닌가 싶어요. 오해하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겸손하기 위해서 할말을 하지 말란 이야기가 아니에요. 내가 하는 행동은 옳고, 남이 하는 행동은 틀리다고 너무 쉽게 생각하는 건 아닌지 주의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렇게까지 이야기하고 오해할까 싶어 이야기하면 참고로 저는 공학쪽 포닥입니다. 아… 그리고 아쉽게도 국내에 체류하고 있네요. 설마 그래서 잉여 연구자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요? ㅋㅋ
cutybug 님께
말씀하신 “짧은 지식을 바탕으로 (중략) 어떤 용감한으로 메우려는 것은 아닌가 싶은 글들”에 대해서 좀 더 구체적인 예시를 주시면 편집팀원들과 함께 깊이 숙고해서 논의하겠습니다. 다만 지금 말씀해주신 cutybug 님의 인상비평만으로는 무엇을 숙고하거나 검토할 여지가 그다지 존재하지 않습니다.
저희는 한정된 자원과 인력으로 기사 하나를 발행하기 위해 여러 번의 편집회의와 피드백 논의를 거치고 있습니다. 물론 부족한 점이 많겠습니다만, 어떤 물적 대가에 대한 욕심없이 그저 자신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진실과 이야기로 정말 치열하게 글을 쓰는 편집팀원(필자)에 대해 저는 아주 큰 자긍심을 갖고 있고, 또 함께 슬로우뉴스를 만들어 간다는 점에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도 돈 벌고 싶고, 좀 더 슬로우뉴스를 키워내고 싶습니다. ^ ^ 특히 이승환, 세칭 이수령은 그런 점에서 아주 존경스럽기까지 합니다.
슬로우뉴스에 대한 기대와 애정으로 주신 조언과 비평에 진심으로 깊은 고마움을 느낍니다. 다만 좀 더 구체적인 예시와 사례를 주시고, 조언해주시면 더욱 고맙겠습니다. 부족함이 많지만 보여주신 사유의 맹아들을 키워서 좀 더 아름다운 꽃과 열매로 더불어 함께 만들어보고자 합니다. 애정과 배려로서 적극적인 의견을 주시는 독자들을 우리는 함께 슬로우뉴스를 만들어가는 아주 소중한 동료라고 생각합니다.
글쎄요. 그냥 한 번 얄밉게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제가 수고스럽게 그렇게 해야하는 건지 잘 모르겠고… 또 사실 한정된 자원에서 어떻게 유의미한 결과를 끌어내고 평가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도 아무래도 제가 대신 할 고민은 아닌 듯합니다. (만약 저에게 하소연하시려는 것이 아니라면요.) 저야 아무래도 직접 언론운동을 하는 입장은 아니지 않겠습니까. 독자로서 소회를 이야기하는 게 할 수 있는 전부지. 그것으로는 충분치 않으시다니 아쉬운 마음이 듭니다.
어쨌든 그래도 기억나는 것만 한두가지 이야기해보겠습니다. 뭐 저는 기자까지는 아니니 굳이 링크를 달지는 않겠습니다.
먼저 슬로우 뉴스 특집 연재가 있었죠? 슬로우 뉴스의 모토와 의의를 여러 기사에 걸쳐 설명하는 기획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 중 오보로 사과 머리말을 달았던 기사가 있었던 것을 기억합니다. 아마 핸드폰 사업 쪽 외신 기사에 대한 인용 보도에 대한 비판이었던 거 같은데요. 그 당시 현직 기자이신 분과 댓글로 논쟁을 벌이셨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팩트의 오류로 인해 오보임이 확실했던 사실 외에도, 상황의 맥락에 대한 분석이 다르셨던 것으로 기억하는데요. 제가 과학기술보도의 전문가는 아니기 때문에 정확한 판단은 어려울 것이나, 저에게는 그 논쟁이 생산적인 성격의 것이라기보다는 좀더 초보적인 실수로 인한 해프닝으로 읽혔습니다.
그리고 그 부패하지 않는 햄버거를 소재로 한 방송에 대한 신뢰도 평가 기사 있었죠? 그 당시 그 기사로 인해 일파만파 논쟁이 일어났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푸드칼럼니스트(인지 정확히 모르겠습니다만)의 블로그에서까지 그에 관한 논쟁이 이어졌던 것으로 기억하는데요. 역시 저는 미생물학의 전문가는 아니기 때문에 무엇이 옳다는 판단을 내리는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 당시 어떤 미생물학을 전공(하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한 분은 이러저러한 이유를 들어 슬로우 뉴스의 비판이 오버라고 언급하기도 했는데요… 뭐 진실이 어떠한지 저는 모릅니다. 다만 제가 받은 인상은, 당시 슬로우 뉴스, 혹은 그것을 옹호하는 분들의 입장은 대체로 논리적인, 혹은 원론적인 입장에 기대어 자신을 방어했다는 것입니다. 이것도 저에게는 실질적 근거의 부족함으로 읽혔습니다.
네, 물론, 한정된 자원으로 의미있는 기사쓰기, 쉬운 일 아닐거라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그 한계는 본인들께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 모든 사람, 모든 분야에 적용되는 일이라는 겁니다. 본인들께서 자원의 한계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제가 모든 기사에 “신뢰할 수 없 – 다고 우리의 이러이러한 자원의 한계와 저러저러한 부분에서는 오직 원론적인 입장에 기초해 몇%의 신뢰도로 생각한다.”라고 다 고쳐쓰라고 이야기한다면 승복하실 수 있겠습니까? 100% 신뢰할 수 있는 과학, 팩트라는 것은 어차피 존재하지 않습니다. 모든 분야마다 현실적인 한계를 감안해서 세우고 있는 타협선이 존재합..니다고 맺으면 누가 그걸 모른대?라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자주 그것이 분명하지 않고 그렇기 때문에 이런저런 권력, 그리고 나태함과 결합되어 사회적인, 구조적인 문제가 될 겁니다. 그리고 물론 그것은 비판해야지요.
하지만 그것이 결코, 자신이 다 파악하지 못하는 맥락을 그저 원론적으로 비판하거나, 시도할 수 있는 선에서 자료를 찾아 상대방의 코밑에 들이미는 것만으로 달성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그것은 (제가 생각하기에) 그저 자의적인 판단에 기초한 비판 밖에 될 수가 없습니다. (혹은 그렇게 보일 겁니다.) 뭐, 슬로우뉴스를 그저 사설의 나열로 만들어 나가고 싶으신 게 아니라면, 그런 인상은 신뢰도를 깎아먹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더불어 그런 태도는 어떤 (적지 않은) 이들에게는 다른 사람들의 맥락은 무시하는 예의없음으로까지 비추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뭐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을 필요는 없지만, 많은 사람에게 무시받을 필요도 없지요.
조금 벗어난 주제이지만, 스스로 슬로우 뉴스의 글의 다수가 (제게는 자꾸 어떤 수준에서의 도돌이표처럼 보여지는) ‘인터뷰 기사’인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자원의 한계도 있겠지만, 저는 사실 여기에도 제가 언급한 문제와 어떤 관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부분은 저도 아직 생각이 다 정리되지는 않기 때문에 다소 보류적인 가능성으로만 언급하겠습니다.
결국, 과연 담보하고 싶으신 것이 어떤 차원에서의 심층성과 신뢰도인 것인지, 아니면 원론적으로 깔끔하게 정리될 수 있는 본인들의 입장이신지가 저는 궁금한 겁니다. 어차피 자원이 한정적이라면 거기서 자신들의 입장을 얼마나 다방면으로 잘 고수할 수 있는지가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니지 않을까요? (만약 제 문제제기가 정확하다면요.) 게다가 기성 언론이 더이상 세태를 잘 따라갈 수 없음을 지적하시는 요인 중에 현실적인 역량으로 정복이 불가능한 부분을 언급하셨으면서, 그것을 극복하려는 본인들의 한계지점이 또다시 현실적인 역량이 되어야만 한다면, 그것은 어떤 측면에서 자가당착인 것 아닙니까? (역시 제 문제제기가 맞다면요.)
뭐 길게 이야기했습니다. 사실 (제 생각에 동감하시는 부분이 있다면) 제가 대안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죠. 저는 다만 감히 (계속해서 주제넘게도) 겸손함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슬로우 뉴스의 모토에는 여전히 동감합니다. 하지만 입장과 분석의 모든 부분을 슬로우 뉴스가 담보할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제 비루한 생각에는 좀더 적극적인 자문을 구하거나 (쉽지 않은 부분일 수도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뭐 네티즌 자문 시스템 같은게 있다면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싶기는 합니다.) 아니면, 좀더 시기마다 집중하는 주제를 한정지으실 수도 있겠지요. 머 이런 것에 대해서 제가 훈수둘 입장은 전혀 아닐 것이고, 그냥 제 figure of speech라고 생각해주세요.
여튼 감정이 상했다면 미안합니다. 건승하시기 바랍니다.
얄밉지 않습니다. 다만 아쉽네요. : )
1. 말씀하신 첫 번째 사례에 대해선 정확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오보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오보에 대해 비평 대상이 된 기사를 쓴 해당 기자의 정당한 항변을 수용했습니다. 그 기사를 쓴 슬로우뉴스 필자께서도 현직 기자신데, 내부적으론 충분히 그 착오에 정당한 사유가 있을만한 것이었으나, 냉정하게도 결국 오보는 오보였기에 그 실수를 인정했습니다. 이것이 왜 성급한 용기로 단정되어야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누구나 실수는 할 수 있는 것인데, 이것을 당연하게, 그리고 겸손하게(그토록 강조하시는) 인정했습니다. 이것이 슬로우뉴스 전반에 대한 인상을 부정적으로 결정짓는 것이라면 저는 그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다른 흠결 없는 저널을 읽으시길 권하고 싶습니다.
2. 햄버거에 대해선 해당 방송을 직접 보시고, 그런 뒤에 관련기사와 논쟁을 다시 한번 읽어주시길 권합니다. 더 이상은 시간낭비라고 여겨집니다. 이것은 제가 감정적으로 불쾌를 느꼈기 때문에 드리는 말씀이 아니라, 적어도 이 문제로 인해 족히 열흘은 고민했기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괜히 더 지리한 시간낭비를 피하기 위한 것입니다. 스스로도 단정할 수 없다 말씀하시면서 왜 왜 이토록 성급한 인상비평을 고수하시는 것인지 저는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끝으로 저는 그저 대화를 하고 싶었을 따름입니다. 부러 얄밉게 말하겠다는 독자께 굳이 악당 역할을 권할 생각도 없고, 저희의 상황을 하소연하고 싶은 생각도 전혀 없습니다. 그저 사람과 사람으로서 이야기를 나누고, 또 그 대화가 서로에게 혹여라도 일말의 즐거움이나마 전해준다면 그 때에 고민도 나누고, 하소연도 해볼 요량이었습니다. 그럴 일이 없을 듯 하여 아쉽다는 것입니다.
건승하십시오.
추가.
다시 읽어보니 제가 좀 경솔하게 감정에 치우친 듯 싶습니다.
써놓은 댓글을 수정하거나 지울 수도 없다 여겨지기에 짧게 부연합니다.
다른 부분은 제가 언급하기 힘들고, 자꾸 인터뷰가 나오는 이유는 저를 제외한 다른 필자분들이 글을 안 써서입니다(…)
뭔가 댓글을 쓰고 나니 팀킬한 느낌이(…)
사실 저도 길게 답변을 쓰고 있다가 추가하신 부분을 발견하여 지우고 다시 씁니다. 만만치 않은 의지와 열정이 있다는 것을 짐작하지 못한 것도 아니고, 치밀한 자기검증이 없었으리라 생각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어차피 이 모든 것의 본질이 사람들과 접점을 만드는 것이라면, 한쪽에서 의지를 세우고 무조건 노력한다고 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를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제가 언급한 문제들로 박터지게 논의하신 것 독자로서 열심히 봤습니다. 관심도 많았구요. 하지만 현재 전문가 집단, 혹은 언론 집단으로서의 확고한 표상을 획득하고 계신 것이 아직 아닌 이상, 얼마나 내 입장이 옳은가 만큼이나 어떻게 보여지고 타인들이 쉽게 신뢰할 수 있는 접점을 만들어 가는가도 (지금도 이미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계시지만) 조금더 신경써주면 좋겠다고 주제넘게 이야기해보고 싶었습니다. 뭐 주저리주저리 말이 많네요.
그냥 제 개인적인 경험을 말씀드리면서 마무리지을까 합니다. 최근 저는 타인에게 어떤 소통의 접점이 될까 하여, 슬로우 뉴스를 제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언론으로 소개했습니다. 나름 이런 좋은 경향을 발견했다는 것에 대한 기쁨도 있었구요. 하지만 최근에 그런 논쟁들이 저를 조금 불안하게 했던 것 같습니다. 나름 믿어볼만한 신생 언론으로 소개했는데, 자칫 의미가 읽히지 못하고 예의없음 혹은 근거없는 건방짐으로 치부되지는 않을런지, 그래서 더불어 제가 만들고자 했던 접점에도 어려움이 생기는 것은 아닌지 하고 말입니다. 그런 개인적인 사정이 섞여 다소 공격적으로 이야기를 하게 된 것 같습니다.
여튼 저도 넘겨짚어 이야기한 것도 많고, 거칠게 말을 꺼내기도 했고, 겸손 운운하고, 참 미안합니다. 그냥 저 친구가 좀 예민하구나하고 너그러이 용서해주시면 고마울 것 같습니다. 덧붙여 김우재님께도, 입장이 약간 다르다 한들 결국 저도 참 잘난 듯, 예의없이 이야기한 점 여기서 사과드리고 싶습니다.
다시 한번, 건승하시기 바라고, 앞으로도 좋은 활동 이어나가셨으면 좋겠습니다.
민노씨님께
새 댓글로 답니다. 이 기회에 그 당시 글들을 다시 한번 읽어보았습니다. 유효한 비판 지점을 발굴하셨던 것은 알겠습니다. 제가 성급하게 디테일을 오해한 부분이 있었네요. (뭐 영상은 보지못했지만요.) 사과드립니다. 다만 변명하면, 제가 주로 언급하고 싶었던 것은 비판이 얼마나 유효하냐 보다, 남들에게 독단적인 인상으로 비추어지는 것은 피하는 것이 좋지 않은가 였다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계속 “인상비평”을 하게 된 거 아닌가 합니다. 뭐, 결국 그것도 제 인상이겠고, 구태의연한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스스로의 분석에 나름 만전을 기하셨을텐데, 그 상황을 치기인 것으로 넘겨짚어 기분이 좋지 않으셨으리라 짐작합니다. 말씀하신 1번의 경우는, 실수를 인정하는 것을 잘못으로 여긴다기보다는, 꽤 큰 모토에 비례해 그런 실수가 저에게는 큰 실망으로 다가온 부분인 듯합니다. 고민하다가 어쨌든 이렇게 남기는 것이 예의인 듯하여 남깁니다.
cutybug 님께 (우리말론 어떻게 읽고, 써야 하는지 헷갈리네요. : )
저는 니체의 단정적이고, 예언적이며, 아주 독선적인 어투를 좋아하기도 하는데, 어떤 책에서 읽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짜라인지, 인간적인..인지), “위대한 정신을 숭배 받기보다는 비판 받기를 원한다.”는 말이 떠오릅니다. 그 말을 참 좋아해서, 그러려고 노력하지만 항상 “사람들이 결국 원하는 것은 칭찬일 뿐이다”(역시 니체의 말인데요)인 상태로 돌아오는 제 자신을 발견합니다. 칭찬엔 관대하지만, 비판엔 옹졸한 건 인지상정인가 싶기도 하고, 또 목소리의 뉘앙스를 느끼기 어려운 문자 텍스트로 이뤄지는 댓글창 대화에선 아무래도 마음이 방어적이 되는 것 같기도 하고요.
각설하고, 큐티벅(?) 님께서 대화를 이어주셔서 깊은 고마움을 느낍니다.
제 성급함과 옹졸함을 들킨 것 같아 민망하기도 하지만요.
앞으로도 종종 대화를 이어갈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혹 공개된 대화가 불편하시면 이메일도 좋습니다. ^ ^)
추.
그냥 ‘민노씨’로 호칭하시면 됩니다.
‘민노님’도 무방하고요.
So he has a beautiful girlfriend. lol
why do I have that dog pic?
제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가카에 대한 증오가 객관적 평가를 방해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나 저도 그게 잘 안되기는 합니다. 다만, 이번 정부 들어 (우여곡절이 많기는 했으나) 기초과학에 대한 지원이 양적으로 팽창한 것은 맞습니다. 과기부폐지나 정출연 통폐합에 관한 논란을 제가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연구재단이 통합되면서 연구비의 규모가 커졌고, 오세정 원장을 주축으로 하는 기초연구원에 지원되는 예산은 한국 역사에서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가 되는 건 맞습니다. 오세정 원장 인터뷰는 한겨레 사이언스온에서 찾아보실 수 있으니 읽어보시면 좋을 듯. http://scienceon.hani.co.kr/archives/29147
제가 뉴로사이언스를 하게 된건 얼마 안됐습니다. 그전까지는 비주류에 속한다고 할 수 있는 분야에 있었으니 그다지 편향된 시각은 아닐 겁니다. 다만, 제가 공학계열 분들의 의견까지 객관적으로 반영한다고 하긴 어려울 듯 합니다.
과학기술계의 정치참여는 이번 정부 들어 더욱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젠 과학기술자들이 직접적으로 정치과학자를 거론하는 수준에까지 이르렀으니까요. 이게 어떤 의미가 될지는 저도 잘 모릅니다. 제가 원하는 방향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저도 항상 이러한 운동의 행보를 비판적으로 주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과학자가 서강대 이덕환 교수인데, 과총 웹진의 좌담회 3편을 읽어보시면 이해가 빠를 겁니다. http://online.kofst.or.kr/Board/?acts=BoardList&bbid=1153
제가 우물 속에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만, 어떤 의미에서 그렇다고 판단하시는 것인지에 대한 근거는 찾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이 부분은 답변하지 않도록 합니다.
출연연 통폐합이라는 이슈만으로 이번 정부의 과학기술정책의 공과 사를 구분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위에서 이미 말했습니다. 그리고 슬로우 뉴스에 관해서는 아래 민노씨와 수령이 친절히 답을 해주셨으니 저는 패스합니다.
다만, 슬로우 뉴스에 보여주시는 그 관심을 (필력으로 보건데) 글로도 보여주실 수 있으리라 사료됩니다. 좋은 컨텐츠를 (공대생의 입장에서) 제공해주신다면 슬로우 뉴스도 더욱 발전할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이 곳은 열정만으로 똘똘뭉친 사람들이 (현재로서는) 선의에만 기반해 운영되는 극빈언론이거든요.
과학사를 포함하는 과학학의 밥그릇 찾기를 비판하는 것과, 과학자들의 밥그릇 찾기를 원하는 것은 상당히 복잡한 문제입니다. 과학자들이 정치화되어야 한다고 할 때, 그 의미가 우리가 단순히 말하는 정치가 아니라는 것은 슬로우뉴스 인터뷰를 비롯해서 새사연 칼럼, 사이언스 타임즈 등에서 밝혀두었는데, 예를 들어 이 글을 읽어보시면 이해가 빠르실 듯 합니다. http://saesayon.org/journal/view.do?paper=20100915113107123&pcd=EC01
과학학이 과학에 연결되는 정도와, 과학이 사회에 연결되는 정도의 차이를 가늠할 수 있어야 로맨스-불륜이라는 님의 반론에 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건 과학사에 대한 일정부분의 지식을 요구하는데, 예를 들어 하버드 총장 코넌트가 과학사를 제도화시켰을 때 거기서 토마스 쿤이 등장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과학사와 과학철학이 어디에서 시작되었고 지금도 누가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지를 알면 답이 쉽습니다. 과학이 하나의 문화가 된 지역에서만, 과학학이 로칼화되고 독창적인 학풍을 형성하게 됩니다. 제 질문은 한국에 그런 과학이 있느냐는 겁니다. 제 답은 없다는 것이고, 따라서 그러한 관점에서 과학학의 오파상 같은 행태와, 과학에 대한 부정적 인식의 확산에만 주력하는 행태를 비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논지의 글들을 사이언스타임즈에 연재했었습니다. ‘과학지식인열전’의 초반부를 읽어보시면 됩니다. 그것으로 충분한 설명이 되었으면 합니다.
겸손이 미덕이라는 말은 무시하겠습니다. 보통 글의 내용과 논지가 아니라 표현과 무례만을 지적하는 것은 가카와 그 일당이 하는 짓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자네 말은 맞는데, 태도가 거슬려”라던가, “너 나이가 몇살인데 그따위 말을 하냐”라던가 “새파랗게 어린 놈이 못하는 말이 없어”라던가. 전 그런 식으로 태도에 집착증이 있는 분들과는 일반적으로 토론을 하지 않습니다만, 슬로우뉴스 측의 간절한 부탁이 있어, 이렇게 답을 합니다 앞으로는 그런 식의 글에는 반응하지 않을 듯 합니다.
마지막으로 국내에 체류하고 있으니 잉여연구자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저도 4년전까지는 국내에 체류하는 잉여연구자였을 테니까요. 시스템 제어를 연구하시고, 오디오에도 관심이 많은 덕후시던데, 연구에 좋은 결실이 있으시길 바랍니다. 글의 내용을 먼저 보고 그 내용에 대한 반박에 집중하는 것이 향후 공부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로맨스-불륜 논증을 제외하곤 실상 그다지 건설적이라고 생각할 만한 구절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건강하십시오.
예전에 워드프레스닷컴 http://wordpress.com 혹은 그라바타닷컴 http://gravatar.com 에 가입하셔서 저 그림을 기본 이미지로 설정하신 적이 있는 것 같습니다.
뭐 겸손 운운한 것이 불쾌하셨을 거라고 생각하고, 위의 민노씨님에 대한 답글에 김우재님에 대한 사과를 올렸습니다. 사실 저는 시스템제어를 연구하고 있지 않고 (연구한 적이 없고), 오디오는 그저 미래에 한번 구비해볼 수 있을까 싶어 상상의 나래를 펼치던 중 한두번 질문을 올렸을 뿐으며 사실 그리 오타쿠라 불릴 만하지 않습니다. 저에 대해 불쾌해지신 이후로 구글링을 통해 제 정보를 찾아보시고, 찾아봤다는 사실을 언급하고 싶으셨나봅니다. 사실 저는 제 정보를 링크로 달아놓은 것도 아니고, 논지와 굳이 관련없는 제 정보를 구글링을 통해 찾아보셔야 할 이유가 뭐였는가 싶습니다. 그런 구글링에 대해 개인적으로 문제의식을 좀 가지고 있어 조금은 불편하다는 언급을 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과학학 연구에 대해 전문가인 것은 아닙니다만, 예전 동료 중에 과학기술운동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지금은 과학학을 연구하는 친구가 있습니다. 그 친구는 원래 인문학 전공은 아니고 공학 전공이었지요. 뭐 과학학 연구가 어떤 토양에 자리잡아야 제 기능을 할 수 있는지가 논의해볼만한 지점일 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가 인터뷰에서 발견할 수 있었던 언급은 그 문제를 둘러쌓고 있는 복잡한 이슈라기 보다는 “과학사 쪽 사람들은 과학자들의 삶에는 관심이 없고, 자기 밥그릇 챙기기에 바쁘다”였습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경험하기로 그쪽 사람들의 열정에 대해서 그렇게 정리해 버리고 끝내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뭐 김우재 님께서 예전 다른 칼럼에 이를 둘러싼 문제에 대해 언급을 하신 적이 있으셨고, 이 인터뷰의 컨셉이 많은 내용을 축약해서 약간 장난스러운 어투로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것은 알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김우재 님의 다른 칼럼을 다 샅샅히 뒤져보고 이 인터뷰에 대해 언급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제가 그럴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김우재 님도 구글링을 통해 훑어본 정보 몇 개만을 가지고 저의 사정에 대해 판단하셨잖아요? 제가 김우재님에게 저는 시스템 제어 연구실에 있었지만 독특한 사정으로 인해 전혀 다른 연구를 했다거나 하는 등의 속사정을 파악하기를 기대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사실 저는 김우재님과 과학학에 대해서 깊은 논쟁을 이어가고 싶은 것도 아니구요.
내용과 무관한 태도만을 가지고 논의의 성격을 규정지어버리는 행태에 대한 비판은 ‘가카와 그 일당들’에 대한 것 외에도 남한 운동의 뒷역사에서 계속되어 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도 예전에는 그런 행태를 제일 싫어 했고, 논의에 있어 예의는 그리 중요한 게 아니라고 생각했던 거 같습니다. 일단 제가 ‘당신 말은 맞는데 태도가 마음에 안들어’라고 이야기한 것은 아니라고 지적하고 싶습니다. ‘당신 말의 이 부분에 동의할 수 없고, 그 태도는 더 마음에 안들어’라고 언급한 것 같구요. “글의 내용을 먼저 보고 그 내용에 대한 반박에 집중하란” 말씀은 그래서 수긍하지 못하겠습니다. 한편, 저는 요즘 논의에서도 예의가 중요하지 않은 것만은 아니라는 문제의식이 조금 생기고 있습니다. (뭐 제가 꼰대가 되어가는 걸 수는 있겠습니다.) 아무리 논의의 내용이 중요한다 한들, 어떤 어법도 모두 수긍될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어차피 사람은 참 한계적이기 마련이고, 타인을 비판할 때 (장기적으로 연대를 고려함직한 대상이라면 더더욱 – 뭐 김우재님의 판단은 어떨지 모릅니다) 논지에 필요치 않은 불필요한 비난을 하는 것은 피하는 것이 좋지 않나 생각합니다.
인터뷰에서 과학사 전공 사람들이 결국 제 밥그릇 챙기기밖에 관심이 없는 듯 암시하신 부분은 상대의 의도에 대한 불필요한 추측이 아닌가 합니다. 상대가 어떤 열정과 진정성을 가지고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는 쉽게 재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그를 그리 쉽게 재단하는 것은 어떤 측면에서 폭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논지에 그리 중요한 부분도 아니고, 그냥 악의를 가진 집단으로 상정하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여전히 토양이 제대로 되어있지 않고, 그래서 관심이 기울여져야 할 부분이 무시된 채 윤리 위원회가 구성되는 것을 비판하실 수는 있겠지요. 하지만 토양이 없기 때문에 그 사람들의 활동을 무의미한 것처럼 암시하시는 거라면 (실제 의도가 그런 것은 아니셨어도) 조심하셨어야 하는 부분이 아닌가하고 저는 거듭 생각합니다. 뭐 지금은 이런 방향이 가장 중요하니까 과학기술 이슈에 관심을 가진 사람은 무조건 여기로 헤쳐모여! 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도 아니잖아요? 그리고 저는 개인적으로 윤리로만 충분치 않다고 해서 윤리가 그때그때 수정되거나 평가절하될 수 있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 사람들과 그 사람들의 방향성이 현재 정말 진정성없는 무엇밖에 되지 않는다고 혹시 믿으시는 거라면 머 어쩔 수 없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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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돌려, 기초과학에 대한 지원이 양적으로 팽창한 것은 좋습니다. 근데 출연연이 통폐합되면서 정부에서 관심을 가지는 분야 몇개를 제외한 나머지 응용분야는 제 개인적으로는 불합리하다고 생각되어지는 축소를 겪어야 했습니다. 예를 들어 원자력 쪽은 (원자력 연구에 대한 여러 정치적 이슈는 일단 차치합시다.) 새롭게 핵융합 연구에 박차를 가하는 상황에서 갑자기 통폐합을 겪어야 했던 것으로 알고 있고, 우리나라 최대 규모 정출연인 ETRI의 경우는 오랜 기간 신규 인원 선발이 제한되어 정규직을 오로지 몇명의 석사 전문연구요원으로만 선발하고 정말 중요한 박사 신입 인력은 모두 비정규직으로 선발되어야 했던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최근에야 이 제한이 약간 풀렸더군요.) 저는 개인적으로 이것이 그냥 몇몇 정출연의 사정이라고 치부될 부분이라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많은 분야의 경우, 이 정출연들이 곧 우리나라 연구의 실질적인 볼륨을 결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문제는 비단 정출연의 문제만도 아닌 것으로 저는 알고 있습니다. 다른 사례도 전해들어 알고 있는 것이 있지만 이는 좀 개인적인 정보가 될 수 있어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이번 정부에서 지원할 분야와 그렇지 않을 분야를 설정하는 방식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뭐 이 문제의식 자체는 김우재 님과 같이 가는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남한에서 과연 이 분야들이 현재 과소평가되어져야할 이유들이 있는지 전 잘 모르겠습니다. 기초과학 연구 지원 증대된 것 좋고, 통합하면서 전체 연구비 규모가 커졌다는 것 맞습니다. 하지만 무리하게 통합을 하면서 결국 정부에서 선택한 분야로만 몰아주기를 하고 있는 꼴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자꾸 듭니다. 이 부분도 정부 정책을 평가하는데에 있어 중요한 공적인 부분 아니겠습니까.
과학기술 지원이 개발 논리로 흐르게 될 위험이 있다고 지적하신 것이 넓게 보자면 제가 이야기한 부분과 상통하는 부분이 있을 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정부 지원 따려고 Fancy한 연구 주제만을 찾아나서게 되는거죠. 하지만 김우재님께서 주된 지원 대상이 되지 못한 그 수많은 응용분야 중 하나를 전공하고 계셨다면 과연 이 부분을 주요하게 언급하지 않고 넘어가셨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현재 이미 벌어지고 있는 문제 사례를 언급하지 않고, (이게 저에게는 다른 분야의 사정을 잘 모르는 것으로 비추어졌던 것 같고) 그저 ‘박정희 프레임’이라고만 이야기되는 것이 저에게는 불편했던 것 같습니다. 뭐 이것을 사소한 문제로 생각하실지는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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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과학과 정치/사회 분야가 만나서 시도되는 경향들 중에는 과학자가 어떻게 사회에서 자리매김할 것인가의 문제 말고도 여러 경향이 있는 것으로 저는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네, 물론 언급하신 문제도 단순하지 않음은 알고 있고, 그래서 제가 ‘여러가지 심급에서’라고 단서를 달았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 이는 제 자격지심이나 욕심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김우재님이 우리나라 과학기술운동을 대표하는 분도 아니고 이는 단순한 인터뷰일텐데도, 과학과 정치에 대한 이야기를 찾아보기가 워낙 어려우니 그런 글에서 과학기술운동의 여러 부분들에 대한 설명이 thoroughly 이루어지기를 제가 내심 바랐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보니 제가 몇가지 부분에서 좀 발끈하여 공격적으로 말씀을 드리게 된 게 아닌가 합니다.
여튼 저도 경솔하게 말씀드린 점 거듭 사과드리고 김우재님의 연구의 발전이 있기를 기원하겠습니다.
프로필 좀 긔엽네여. ㅋㅋㅋ
덧. 여기서 민노님을 ‘민노씨님’이라고 지칭했네요. 이런.
덧덧. 그리고 죽 다시 읽어보던 과정에서, 이 인터뷰에서 결국 과학학에 둘러싼 이슈에 대해서 언급을 다했는데 왜 축소해서 이야기하는가 생각하실까 싶어 부연합니다. 과학학의 발전 방향에 대한 의견을 여러모로 이야기하신 것은 알고 있습니다. 다만, 연구자로서 공감하시겠지만 자신의 연구주제를 바꾸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고, 지도교수 연구주제 따라가기 마련입니다. 물론 말씀하신 것처럼 현재 남한 과학사 전공자들이 연구윤리에만 집중되어 있다면 건강하지 못한 구조일 수는 있겠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자기 밥그릇의 문제로만 치부하실 문제는 아니라는 겁니다. 구조가 더 중요하다는 말씀은 이 경우에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뭐 결국 과학학 전공하는 공학계열 출신 친구에게 들었는데, 다 그런건 아니라는 주관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으신 거였나요? 제 글들을 다 읽으실 필요도 없고, 그러실 필요도 없으리라 생각됩니다만, 그런 글들을 준비작업 삼아, 그리고 그런 논의들에 대해 적어도 님보다는 조금 더 심각하게 고민해온 사람의 농 섞인 인터뷰 정도로 읽으셔도 될 듯 합니다. 길게 쓰셨는데, 역시나 그다지 참고할 만한 근거들과 논증은 보이지 않아 패스합니다. ‘로맨스-불륜 논증’은 참 좋았는데 말이죠. 사실 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조직의 논리에서 크게 자유롭지 못하지요. 님이 정출연의 통폐합에 촛점을 맞추듯이, 저는 기초과학에 대한 지원에 촛점을 맞추게 되는 것일게고, 그런 의미에서 서로 자유롭지 않은 문제에 대해 왈가왈부 할 필요는 없다고 보입니다. 다시 한번 부탁드리건데, 건설적인 비판과 대안이 있으시다면 언제든 블로그나 혹은 슬로우 뉴스를 통해 기고를 해주시면, 그때 답을 해드리던가 말던가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댓글로는 서로 생각이 잘 정리되지 않는 것 같군요. 기고를 원하시면 민노씨에게 혹은 수령에게 부탁을 하시면 됩니다. 그건 언제든 대환영입니다. 한국 과학기술계의 발전에 큰 애정을 가지고 계신 듯 하니 기대해 보겠습니다.
존칭이 더블이니 민노씨가 더블로 좋아합니다.
김우재님께. 새글로 답니다.
1. 에고, 제대로 전달이 안된게 아닌가 싶은데요. 일단 저는 ‘다 그런거 아니다’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도 아니었고, 문화로서 정착되는 과학이 필요하며 그런 관점을 가진 사람들에게도 힘이 실어지는 것이 필요하다는 김우재님의 말씀에 이견이 없습니다. 더불어, (저는 정확히 모르지만 만약 김우재님의 말씀이 정확하다면) 국내의 과학기술에 대한 정치적 시각의 주류가 연구 윤리에만, 혹은 과학자의 삶을 타자화하는 것에만 매몰되어 있다면 그것은 분명 건강하지 않은 형태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저는 그저 김우재님 본인의 논지를 세우기 위해 불필요하게 다른 것을 부차화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국내 과학학의 시각이 편협하다는 주장을 강력하게 하실 수는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그 사람들은 결국 자기 밥벌이에만 관심있는 엉터리들이다라고 규정할 필요와 근거가 있느냐는 거죠. 참여 연대가 어쩌구 들먹여 가면서요. (참고로 전 참여 연대와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제 눈에 이 부분은 그냥 논지도 아니고 주관적인 평가이며, 그냥 마녀 사냥처럼 보입니다. 그 사람들의 시각이 편협하다고 말씀하실 수 있는 관점과 역사적, 철학적 근거들을 많이 준비해 오신 것은 압니다. 그리고 그건 아마도 유효할 겁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세력 자체가 무가치하거나 악의적이라고 이야기하실 수 있는 근거가 됩니까? 있으면 그냥 말씀해주세요. 김우재님이 말씀하신 비전이 실현이 된 사회에서조차 독하게 연구 윤리에 대한 관점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존재해야 하고, 필요할 겁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자기 입장에서 자신들의 논리가 주도권을 잡기 위해 노력하는 게 당연하겠죠. 그리고 전 설령 문화로서의 과학이 정착되지 않은 사회라고 해서 그런 관점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존재 가치가 상실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 사람들이 스스로 주류가 되기 위해 어떤 형태의 부당한 행동을 저지른 구체적인 근거가 있다면 저는 김우재님의 말에 두 말 없이 동의할 겁니다. 하지만 그것이 단지 배경과 관점의 차이라면 저는 김우재님이 그들을 규정하는 방식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김우재님의 중심 논리에는 동의한다손 치더라도요. 전 제가 언급한 문제가 주된 논지가 아니라고 그냥 그렇게 부차화될 문제가 아닌 거 같습니다.
더불어 앞서 구글링에 대해 말씀을 드렸는데, 그에 대한 어떤 반응을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물론 제 입장에서 크게 문제될 것들은 아니었지만, 검색이 가능하다고 해서 굳이 그런 개인적인 정보를 불필요하게 이런 공개적인 자리에서 언급하실 필요는 없었다고 다시 한 번 생각합니다. 어떤 언급을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2. 기초과학이나 정출연 문제가 결국 각자의 논리에서 자유로운 문제가 아니니까 왈가왈부할 것이 아니라고 하셨는데, 뭐 사실 길게 이야기할 필요는 없는 거 같지만 한 번만 더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김우재님께서는 현 정부의 과학기술정책에 대한 적당히 긍정적인 의견을 내놓으면서 ‘본인의 조직 논리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근거로 뒷받침을 하셨습니다. 여기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 아닙니다. 수집할 수 있는 근거에 한계가 있기 마련이죠. 하지만 저는 그것을 그냥 제가 접근 가능한 다른 근거를 들어 약간 다른 측면에서 반박한 것입니다. 이것을 그냥 각자의 사정 소관이니까 언급할 필요가 없다고 하시면 제가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1-1. 덧붙이면 그렇게 저보다 많이 고민하셨음을 강조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제가 애초에 이야기했던 태도에 감정이 상하신거라면 거듭 사과를 드렸고, 필요하다면 다시 사과드릴 수 있습니다. 만약 그런게 아니라면, 언급하고 계신 주제에 한해 저보다 많이 학습하고 고민하셨음을 저는 굳이 부정할 의도가 없습니다. 저는 다만, 얼마나 그 문제에 대해 고민했는지와는 무관한 부분에 대해 문제제기를 했을 뿐입니다. (뭐, 알고보니 국내 과학사 전공들이 정말 불순한 세력임을 드러낼 수 있는 어떤 개연성을 가지고 계신다면 이야기는 달라지겠습니다.) 그럴리는 없겠지만 혹시 알지 못하면 입을 다물고 있으라는 점을 시사하고 싶으신 거라면, 비판하신 ‘가카’의 행태와 어떤 측면에서 비슷한 잘못일 수 있지 않은가 하는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제가 언급한 문제가 그저 부차적인 문제, 논의의 본질을 흐리게 위해서 뿌리는 떡밥으로 생각되실지 모르겠습니다. 만약 그렇게 생각되신다면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전 결단코, 논지가 중요하다는 이유만으로 부수적인 요소들을 함부로 언급하는 것은 무조건적으로 용인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힙니다. 그리고 이것은 또다른 형태의 폭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건 그 논지의 중요성이나 완결성과는 무관합니다. 게다가, 그런 부분을 조심하지 않는 것은 오히려 논지와 화자의 신뢰성을 불필요하게 떨어뜨릴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들어 당장 저만해도 지금 딴지를 걸고 있잖아요? 김우재님이 혹 저를 보고 ‘알지도 못하는게 중요하지도 않은 것 가지고 딴지를 걸고 있어. 안다면 저딴 소리를 지껄일 수 없지’라고 생각하는 건 쉬울 겁니다. 하지만 어쨌든 ‘그 세력’을 장기적으로 함께 갈 가치가 있는 사람들로 고려하고 있는 저로서는, 김우재님의 합리적인 비판 – 시야의 편협성 – 에는 화두를 얻겠지만 그것을 넘어서는 비약적이고 주관적인 규정 – 과학에 애정이 없고, 밥벌이에만 관심이 있다 – 에는 (설사 그게 사실일지라도 김우재님의 글에서 합리적인 근거를 찾기가 어려운 현재의 제 상황에서는) 오히려 김우재님의 편협성, 그리고 더 나아가 김우재님의 논지 자체에도 그런 비약이 또 숨어있는 것이 아닌지를 의심하게 될 겁니다. (사실, 여기에는 황우석에 대한 김우재님의 판단에 제가 전적으로 동의할 수 없다는 것도 어느정도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전 황우석과 줄기세포를 둘러싼 문제에 연구윤리 문제만이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머 모르시는 바는 아니지만 역시 쓸데없는 문제제기들이라고 생각하고 계시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추측해봅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지리한 논의를 되풀이하진 맙시다. 지금 제 문제제기에 중요한 부분도 아니구요.) 뭐 장기적으로 제가 김우재님의 칼럼을 다 읽고, 어쩌구 한 뒤에 ‘그래. 저 언급은 좀 감정적인 말이었던 것 같고 무시해도 되겠지. 화두만 얻고 가자.’라고 생각할 가능성도 있겠으나, 제가 그렇게까지 김우재님에 대한 분석을 열심히 할 이유는 없을 수도 있겠지요.
뭐 ‘너딴 놈은 필요없어. 어차피 내가 가리키는 달은 못보고 손가락만 보는 놈이니 너 같은 놈은 그냥 무식한 채로 살아.’라고 생각하시면 그건 김우재님의 선택이고 제가 존중해야 할 부분일 겁니다. 하지만 전 정말 묻고 싶습니다. 정말 그래야 할 필요가 있나요? 제가 보기에는 편협성에 대한 지적을 넘어 불순한 의도를 상정하시는 것은 결국 김우재님 개인의 어떤 수준의 해소감이나, 전술적 의도를 넘어서는 편가르기를 결과로 얻는 것 외에 어떤 유의미한 가치가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슬로우뉴스의 활동들이, 어떤 측면에서 사람들에게 간과되어지는 측면을 파고드는 무엇으로 기능하는 면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김우재님은 슬로우 뉴스의 필진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만, 그냥 한번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제가 제기한 문제도 ‘진보’라고 통칭되는 세력이 쉽게 간과하는 무엇인 건 아닌지, 한번쯤 고려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김우재는 성격이 나쁜 게 아니라 인성에 심각한 결함이 있는 듯. 지금까지도 문제였고 앞으로도 커다란 문제로 남을 것이며 실패의 원인이 될 거다.
글쎄, 전 필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도 조금 경계하고 싶습니다. (물론, 필수님에게 어떤 맥락과 역사가 있는 건지 저는 모릅니다.) ‘얘네가 웃긴 놈이네.’ 라고 매도하는 건 어떤 입장에서도 쉽습니다. 제가 김우재님께 딴지를 걸고 싶었던 부분은, 비판에 굳이 생산적이지 않은 감정적인 공격이 섞여야 할 이유를 모르겠다는 겁니다. 생산적인 논의를 결정하는 것에는 비단 입장의 완결성만 있는 것이 아닐 겁니다. 과학기술운동에 매진하는 입장에는 여러 다른 입장이 있을 거구요. 그들 중 일부에, 동의하지 못한다는 이유만으로 성급하게 적대부터 하는 것은 그리 현명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저도 이런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하지만 성찰해야하는 것은 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을 바꾼’다는 것은 좀더 온전한 대안을 찾는 것에 대한 것이기도 하지만, 다른 의미에서는 어떻게 타인과 접점을 만들 것인가에 대한 것이기도 합니다.
한편, 김우재님께 답변을 얻기 어려운 것인가 싶습니다. (혹 김우재님께서 학회 등의 이유로 며칠 바쁘신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하)글의 동영상을 보니, 트위터의 권력구조 등, 온라인의 소통구조에도 고민이 많으셨던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 언급이 거슬린다고 (과장하자면) 신상털기를 시도하셨던 것은 참 모순적이라고 생각되고, 안타깝습니다. 스스로가 대안적인 삶을 고민하는 훌륭한 면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자신의 행동에 면죄부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지 않겠습니까? 제가 ‘겸손’ 운운한 것이 결국 적확한 비판이 되게 하지 마세요. 더 나은 무엇일 수 있는 스스로의 싸움을 진흙탕 싸움으로 만들지 말란 말입니다. 그렇게 해서 고립되는 것은 김우재님 본인이며, 그 고립은 김우재님이 다른 세상을 꿈꾸는 소수에 속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김우재님의 부당하고 감정적인 행동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상대방이 어떤 경험적 문맥을 가지고 있는지 알면 더 나은 토론이 가능합니다. 스스로 공대생이라고 밝히셨고, 은근히 자신의 신상을 저에게 알리셨습니다. 같은 아이디로 모대학 대학원에 다니신다는 걸 알게되는게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었고, 그걸 원하지 않으셨으면 아예 아이디와 메일주소를 일치시킬 이유가 없었습니다. 본인의 신상이 파악되어 왜 불쾌하다는 것인지 말 모르겠습니다. 제가 님의 신상에 대해 말한 것은 글의 내용과는 크게 상관없는 부차적인 것이었고, 그것도 비하의 의도가 아닌, 추신에 가까운 인사말이었을 따름입니다. 글의 내용에 집중하지 않으시고 계속해서 제 태도를 문제삼으실 거라면 대화할 용의자체가 없습니다. 꼰대질은 랩 후배들에게나 하세요. 정체를 알 수 없는 한줄짜리 댓글처럼 전 성격이 나쁜 정도가 아니라 인성 자체에 결함이 있어서, 님의 (인신공격 수준의) 말처럼 부당하고 감정적일지도 모르니까요. 전 인간성이 훌륭한 분들과의 토론엔 익숙하질 않아서 이것으로 큐티벅님과의 대화를 끝냅니다. 태도 이야기를 하지 말라고 몇번 주지시켜드렸는데, ‘감정적’으로 그 문제가 많이 걸리셨나 봅니다. 저만 감정적인건 아닌 모양이군요. 끝.
거참, 제가 이상한 것인가요? 다른 분들께 묻고 싶을 정도군요. 일단 성격이 나쁘다거나 인성 자체에 결함이 있다는 이야기는 제가 꺼낸 이야기는 아니라는 점을 구분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혹여나, 정체를 알 수 없다고 하시면서 저를 의심하시는 거라면, 슬로우뉴스 측에게 IP 확인을 해달라고 요청하고 싶습니다.) 제가 이미 사과를 드린 ‘겸손’ 부분 말고, 제 이야기의 어떤 부분이 인신공격이라고 생각하시는지 전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몇 번 주지시켜드린대로” 제가 지적한 문제가 비단 ‘태도’의 문제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제가 만약 김우재님이 인터뷰하신 이야기와 얼추 비슷한 논지의 이야기를 꺼내면서 ‘하지만 김우재와 같은 사람은 현재 상황에서 과학기술운동을 생산적으로 이어나갈 생각이 없고, 다른 세력을 매도하기에만 급급하고 있다. 일종의 나르시시즘이고 이런 사람과 함께 하면 안된다.’ 따위의 불합리한 규정을 한다면, 그것이 저의 ‘태도’ 문제라고만 생각하실 겁니까? 이는 전선을 만드는 문제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하면, 황우석 등의 사례에서 나타났던 연구윤리 문제에 대해 어떤 평가를 하고, 연구윤리에 집중했던 세력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의 문제일 수 있다는 겁니다. 저는 이 세력에 대한 김우재님의 평가에서 어떤 합리적인 근거를 찾기 어려웠습니다. (그리고 제게 이 문제가 감정적인 문제일 이유가 없습니다. 제가 그 세력도 아닌데 말입니다.) 김우재님이 제기하신 문제가 주목해볼 문제라고 생각은 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최근 황우석 등의 사태에서 제기된 여러 연구 윤리, 생명 윤리 문제 등 여러 세력이 제기한 꼭지를 과소평가해야될 근거가 되는지 저는 모르겠다는 겁니다. 만약 주도권이 문제인 거라면, 언급하신 문제가 기존 세력을 넘어 주도권을 획득해야 하는 이유는 뭡니까? 문화가 잘 정착된 곳에서 연구 윤리가 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건 알겠습니다. 하지만 문화가 잘 정착이 되지 않은 상황에서 연구윤리의 주장이 주도권을 얻는 것이 지양되어야 할 충분조건을 김우재님의 이야기에서 저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외국에서는 안그렇다.”, “실험실에 나가지도 않는 태도로는 과학이 뭔지 제대로 사유조차 할 수 없다.”, “찰스 샌더스 퍼스는 이해 자체가 다르더라” 등은 자의적인 판단이지 제대로 된 근거가 될 수 없습니다. 이건 논리의 기본 아닙니까? 실험실의 구루여야지만 과학에 대한 비판적 사고의 꼭지를 발굴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것도 아니고 말입니다. (어찌 보면 이는 제가 민노님에게 했던 비판이 성급했던 것과 궤를 같이 하는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리고 ‘은근히 밝혔으면 니 책임’이라는 말씀에 대해서는 정말 동의하기가 어렵습니다. 비하의 의도냐 아니냐 (그렇게 생각하지도 않았구요.), 검색하기 쉬운가 어려운가가 중요한게 아닙니다. 제가 스스로 은근히 밝힐 의도가 있는지 없는지를 김우재님이 결정하실 일도 아니거니와, 검색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다고 해서 제 익명성의 정도를 김우재님이 맘대로 결정하실 수 있는 부분도 아니라고 봅니다. 상대방의 경험적 문맥을 안다면 더 나은 토론이 가능한 건 당연하겠지만, 일단 그 문맥을 상대가 공개하고자 하는 의도를 가진 것을 확인하는게 선행되어야하는 것 아닙니까?
그리고 계속해서 왜 ‘태도’만 문제삼냐고 말씀하시는데, 그렇다면 제가 언급한 2번에 대해서는 왜 답변이 없으신지요? 여전히 그냥 각자 사정에서 다르게 보이는 일로 생각하십니까? 어떤 주장을 할 때 각자 사정에 따라 근거를 취사선택할 수 있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왜 계속해서 스스로가 제기하는 논점만 합리적인 것이고, 다른 사람이 제기하는 논점은 감정적이고 태도의 문제에만 국한된 것이라고 생각하시는 것인지, 전 정말 모르겠습니다.
이와는 별개로, 혹여, 제가 “고립… 감정적이고 부당한…”이라고 언급한 부분이 인신공격으로 여겨지신 거였다면, 제가 그렇게 이야기한 것은 김우재님 본인을 공격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고 제 신상을 알아보신 것에 대한 소회였을 따름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래서 앞에서 필수님이 언급하신 내용에도 경계한다고 말씀드렸구요.) 하지만 어쨌든 주제넘게 훈수 두는 것처럼 보였을 수도 있을 것 같고, 넓게 봤을때 인신 공격으로 받아들이게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그 부분만큼은 사과드리겠습니다.
댓글을 너무 계속 달게 되는게 아닌가 싶어 슬로우뉴스 측에 죄송한데, 앞에 하나 끼워 넣고 싶습니다. 수정이 안되네요. 민노님께의 비판이 성급하다는 말 뒤에요. ‘저는 지금 시점에 연구윤리에 대한 주장은 계속 유지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똑같이 연구를 수행하는 제 입장에서도요. 그게 줄어들어야 할 이유를 제 주변에서도, 김우재님의 주장에서도 전 찾을 수 없습니다.’
아니, 그냥 그만 이야기할게요. 저도 좀 지치네요. 김우재님이 제 이야기를 어떻게 생각하시든 뭐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닌가 합니다. 어쩌면 제가 처음 말 꺼낼 때 단추를 잘못 끼운 걸 수도 있구요. 어쨌든 앞으로 의미있는 활동 계속 하시길 빌겠습니다.
번복해서 죄송한데, 정말 딱 한 마디만 더 하고 싶습니다. 김우재님은 토양을 만들지도 않은 채 아인슈타인을 바라는, 그리고 그런 프레임을 과학자들에게 씌우는 국내 사정에 대해 비판하셨습니다. 하지만 결국 김우재님도 ‘왜 우리나라 과학사회학계에는 반네사 부시같은 인물이 안나오냐고!’라며 똑같은 프레임을 과학사회학계에 씌우는 꼴이 아니냔 말입니다. ‘선정적인’ 연구 주제에 목을 매달 수밖에 없는 국내의 환경은 과학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에 마찬가지입니다. 게다가 경제적 가치를 떠나서 주체적으로 연구를 할 수 있는 토양 역시도 이공계만 필요로 하고 있는 게 아니구요. 과연 과학사회학과 과학이 서로 적대해야 하는 상황인 건지, 김우재님이 과학사회학의 행태에 핏대를 세우는 건 결국 약자들끼리의 권력 투쟁인 건 아닌지 생각해봤으면 좋겠다는 겁니다. 제가 처음부터 끝까지 얘기하고 싶은 건 결국 이거였습니다.
댓글 대화를 죽 읽었는데요 cutybug님은 댓글을 몇 개나 달고 난 다음에야 결국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뭔지 정리하시는군요. 참 피곤하게 살면서 사람 피곤하게 하는 분인 듯.
첫 댓글부터 ‘어찌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시는지…’, ‘정작 연대해야 할 대상에 대한 지식은 짧으신 것 아닌지?’, ‘주목을 받는 분야의 사람들에게서 자주 보게 되는 일이지만’ 같은 이야기를 틱틱 뱉어놓고 글쓴이의 태도나 겸손 어쩌고 운운하는 자가당착적인 행동부터, 자기가 원하는 답이 나올 때까지 빙빙도는 질문까지… 어렸을 때 제가 있던 랩의 어떤 선배가 떠오릅니다.
마치 자기는 끝까지 예의를 지키고 있다는 것처럼 신경써주는 말 (슬로우뉴스에 죄송 어쩌고… 의미있는 활동 하시길 빈다 어쩌고…)도 잊지 않으면서, 결국 끝에 가서야 간신히 자기가 할말을 짧게 정리해내는 것까지 어쩜 그리 그 사람이 떠올랐는지…
위에 적힌 말처럼 어줍잖은 꼰대질은 제발 랩 후배들에게나 하시면 좋겠네요.
읽는 구경꾼 입장에서야 재미나긴 하지만 결국 간단한 이야기를 간단하게 못하는 댓글~ 댓글~ 대.대.대.댓.댓글의 전형이 되고 마는군요.
묻고 싶기만 했던 것인지 물어 보신건지 모르지만 ‘다른 사람’으로써 답하자면 cutybug님 좀 이상하긴 해요. cutybug님이 악의적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만 의사소통방식은 서투르신 듯요. 대개 댓글 주렁주렁 다는식으로, 제 표현으로는 ‘댓글테러’ 방식으로 의견을 제시하는 분들을 보다보면 문맥상 다분히 인신공격적인 어구를 사용하면서 상대를 자극하고 논점을 스스로 흐리거나 전선을 불필요하게 확장하는 어떤 뚜렷한 경향성을 직관적으로 발견하곤 해요. 그런데 그 분들 스스로는 꽤 예의있는 비판자 또는 독자로 자신을 포지셔닝 하더라고요. 제가 여기 달린 cutybug님의 댓글 몇개만 보며 님의 “심리를 프로파일링하는 것도 참 경솔한 일이겠으나, 그저 우려를 표명하는 것이라고 받아들여 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후략) <— 제가 이런식으로 뭔가 댓글을 시작하면 결국 소모적인 논쟁을 재현할 개연성이 있지 싶네요. 다만 전 여기 다시 안들를테니 대.대.대.대.댓글이 실현되진 않겠지요.
너나좀님과 붕대님 / 네, 제가 지리하게 답글을 달았던 점 인정합니다. 또 저도 경솔하게 (자가당착적으로) 이야기한 태도는 앞에 사과드렸습니다. 많은 분들이 보시고 불편하셨다면 죄송하다는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글을 쓰다가 계속 수정을 하면서 고치는 타입인데, (별로 좋은 습관이 아니지요.) 수정이나 지우는 법을 몰라 계속 주저리주저리 했던 것 같습니다. 연이어 써놓고 저도 조금 후회했습니다. 그리고 빙빙 돌다가 결론을 말하려 한 것은 아니었고, 다만 나중에서야 약간 다른 각도로 이야기할 방법이 생각난 것 같습니다. 뭐 제가 부족한 탓입니다. 그리고, 제가 지친다고 언급했던 부분도 감정적으로 보여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불쾌함을 떠나, 제가 언급하고 싶었던 부분 – 그렇다고 현 과학사회학계을 매도할 것은 아니지 않은가 – 도 고려할만하다고 여겨주신다면 감사할 것 같습니다.
cutybug님 생각을 정리한 기고문이 게재된다면 읽어보고 싶습니다.
김우재 트위터를 보다가 결국 원점 비스무리하게 돌아왔네요.
폭스 켈러 얘기 때문에 다시 열받은 …
정확하게 말해서 돌고 돌다가 이상욱 교수 가 확 열받게 했다는..
전에 웃기네..하고 지나쳤던 그 글이 이상욱 교수가 쓴 글이었군요.
엄연히 “포스트모던 과학학”을 논하는 이들이 있는데, 소칼이 포스트 모더니즘과 과학학을 헛갈려서 그런 글 쓴 거야 라고 하는 용기는
무엇이며, 과학학을 한다는 이들이 연구 대상으로 삼은 주제에
대해서 무식하지 않다고 해대는 건 과학학 한다는 인간들의 주장 중 헛소리가 압도적인 걸 보면서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뭐 …
그 사람들이 목소리가 큰 거거나 아니면 김우재 말대로 한국이 주로 그런 거거나 간에 소칼은 그런 사람들을 표적으로 글 쓴 건데 무슨…
어차피 그 글 읽을 사람들이 대개 그 사실을 모르고 이상욱이 하는 말을 통채로 외울 사람들일 거니까 문제가 안 되는 건가.
조금 더 정밀하게 말하자면 그 인간들은 의도적으로 과학 이론을
오해하는 수준에서 말하는 사람들인 건데 .
아주 무지한 것과 의도적 오해의 차이는 배경 지식을 가지지 않은 채로 보면 의도적 오해를 일삼는 이들은 굉장히 유식하고 통찰력 있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는 점이죠.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이론을 수없이 나열해대니까 해당 분야를 잘 아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하나 따져보면 자신의 확인하고 싶은 결론에 과학 이론을 맞춰서 해석해댄다는 거.
소칼이 박살낸 것도 그런 부분들이고.
물론 문제가 이렇게 된 데에는 일부 과학자들, 코펜하겐 해석의 개척자들이 대중을 상대로 거의 무책임에 가깝게 뻥튀기 해서 전파시킨 얘기들이나, 프리고진 같은 이들이 통계역학과 인간 사회를 일대일 대응시켜 말해대는 거라거나 하는 부분도 아주 크죠.
그걸 이념에 압도된 이들이 엄청나게 뻥튀기 해대는 거고.
소칼이 진짜 핵심적인 문제는 안 건드리고 조용히 넘어갔는데, 양자역학 에 대한 잘못된 신화들…(어느 역사학도가 역사는 관점대로 봐도 된다는 걸 양자역학이 보증한다고 해대는 걸 봤는데, 보어 선생… 이거 어떻게 책임질 거에요?으…)을 제대로 지적하는 작업도 필요해 보이기도 하네요. 소칼은 양자역학 같이 물리학자들조차 헛갈리는
문제에 대해서 ‘책임’을 묻기도 그렇고 또 그거 얘기하자면 책 한 권 더 필요할 거 같아 책에서 얘기 안 했다고 했음.
이상욱은 ‘너 과학학 무식하다며?그런데 안 무식해! 그러니까 그런 걸로 따지지마! “수준의 주장을 했는데, 과학학이건 무슨 학이건 주장에는 근거와 전개 과정이 있어야 하고 그 근거와 전개과정이 뭐가 잘못 되었는지 조목조목 반박해주면, 그 반박에 대한 재반박 식으로 반대해야지, 그런 걸로 따지지 말라니 이게 무슨 ….
본 글과 크게 상관 없어 보이지만 이상욱 같은 과학학자들에게 뭔가 막 욕을 해줘야 분이 좀 풀릴 거 같아 그냥 막 써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