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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룻밤 상대로도 별로라는 건 알아. 하지만 그래도 사랑이 필요해. 내 곁에 있어 줘, 사랑이 아니라는 건 나도 알지만, 그래도 넌 내가 원하는 전부야.”

참 구질구질한 사랑 노래다. 날 사랑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지만, 하룻밤이라도 같이 있어 달라니. 하지만 그 구질구질함이 많은 사람을 감동케 한 모양이다. 이 노래는 음악인 최고의 영예라는 그래미를 손에 넣었다.

“작년 내가 사랑에 빠졌던 남자에게 감사를 표하고 싶어요. 내 가슴을 아프게 만들어 줘서 고마워요, 덕분에 그래미상을 4개나 탔거든요.”

“I want to thank the man who this record is about, who I fell in love with last year. Thank you so much for breaking my heart because you got me four Grammys.”

가수는 자기 자신의 짝사랑과 실연 이야기를 담아 이 노래를 만들었다. 아마 그 사연이 이 노래를 더 호소력 있게 만들어주었을지도 모르겠다. 뭐, 이제는 저런 농담도 던질 수 있게 되었지마는. 저 문구는 실제 그래미 무대 위에서 말한 수상 소감 내용이다.

누구의 이야기일까? 리한나? 테일러 스위프트? 아마 많은 사람이 ‘평범한’ 여성 음악인을 떠올렸을 것이다. 생각나는 외모도 인종도 다르겠지만 말이다.

한 남자가 다른 남자를 짝사랑하는 노래

하지만 아니다. 이 노래의 제목은 “Stay with Me”, 영국 출신의 싱어송라이터 샘 스미스(Sam Smith)의 노래다. 이 노래는 한 남자가 다른 남자에게 부르는 찌질한 짝사랑 노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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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대하다거나 포용적이라거나 하는 말이 어울릴지는 모르겠지만, 미국 음악계는 원래 성 소수자 이슈에 대해 배타적이지 않았다. 팝의 여왕으로 불리는 마돈나는 성 소수자들이 가장 사랑하는 가수이기도 하다. 세계적으로 가장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가수 레이디 가가는 “Born This Way”라는 노래를 통해 그들에게 직설적으로 격려의 메시지를 던졌고, 이 노래로 빌보드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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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여전히 소수자는 소수자다. 샘 스미스는 이번 수상을 통해 “그래미에서 최초로 OO한 게이”라는 명찰을 여러 개나 달았다. 많은 유명인이 동성애자라는 소문은 무성하지만, 공개적으로 이를 밝히는 일은 드물다. 성 소수자를 격려하는 메시지는 많지만, 대부분 ‘그들의 사랑도 존중해줘야 한다’는 수준에서 그친다. 그런 의미에서 샘 스미스의 수상은 나름 한 역사라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동시에 또 하나의 보편적인 사랑 노래

샘 스미스는 다른 남자로부터 받은 실연의 아픔을 노래로 만들어냈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다른 사람들도 이 노래를 들을 때 두 남자의 사랑을 떠올리며 듣게 되는 건 아니다. 게이는 두 남자를, 레즈비언은 두 여자를, 이성애자는 한 여자와 한 남자를 떠올리며 듣게 될 것이다. 이건 보편적인 노래다. 성적 지향과 상관없이 누구나 동감하게 될 찌질한 짝사랑 노래다. 그래미 무대 위에서 샘 스미스와 메리 제이 블라이즈, 두 남녀가 함께 부르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았듯이 말이다.

작년 그래미 신인상을 받은 맥클모어 & 라이언 루이스(Macklemore & Ryan Lewis)는 그래미에서 그들의 대표곡 “Same Love”를 공연하며, 인종과 성적 지향을 막론한 33쌍의 커플을 무대 위에서 성혼시키는 멋진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 퍼포먼스의 주례 역할을 맡은 퀸 라티파는 이것을 “일부가 아니라 모두를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 이성애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이성애자와 동성애자, 모든 사랑의 양태를 포함한 모든 사랑을 위한 것 말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Ka9ybs5L-bY

어떤 사람들은 동성애 하면 특정 성행위를 먼저 떠올리기도 하지만, 그건 아마 그들이 ‘사랑’하면 곧 ‘성행위’를 떠올리는 ‘님포마니악’이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찌질하게 사랑하고, 질척거리며 연애한다. 상대의 카톡 한 통을 기다리며 애가 타고, 그런 자신을 질책하며 자기비하에 시달리기도 한다. 성적 지향이 달라진다고 사랑의 양태가 달라지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성적 지향 문제에서만은, ‘서로를 이해한다’는 선언조차 필요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사랑은 모두 같은 것이다. “곁에 있어 달라”(Stay with Me)고 하는 마음도 모두 같은 것이다. 사랑은 온유하고, 사랑은 오래 참고, 그리고 사랑은 참 찌질하고 구질구질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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