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느지막이 눈을 떴다. 날이 추워지니 몸이 묵직하게 가라앉은 것이 영 일어나기 힘들어졌다. 여덟 시면 일어나 머리맡을 지키는 우리 집 강아지 덕에 더 버티지 못하고 일어나 털모자를 눌러쓰고 산책을 시키려고 밖으로 나왔다.
펑펑, 눈이 내리고 있었다. 그렇게 춥지 않아 금방 녹아 없어지겠지만 늘 그렇듯 눈은 사람을 들뜨게 하지 않던가.
독립 후 처음 맞는 ‘홀로’ 생일
독립하고 나서 처음으로 맞는 생일이었다. 나이가 들수록 무슨 생일을 챙기나 싶었지만, 한편으론 ‘혼자’ 맞는 생일인 만큼 북적거리고 신나면 좋지 않을까, 기대했으나 역시나 바빠진 친구들과 함께 생일을 보내는 건 불가능했다.
생일 당일은 전날 늦게까지 일을 한 탓에 지친 후라 늦잠을 잤고 추적추적 비까지 내려 바다구경 하려던 바램도 수포로 돌아갔으며, 밤이 되도록 가족들은 문자 한 통 보내지 않는 씁쓸한 현실에 역시 인생은 홀로 가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홀로 조리한 늦은 저녁을 먹으며 하루를 보내고 말았다.
생일선물로 차려 본 호사밥상
생일을 축하한다며 여기저기서 선물을 보내왔다.
공교롭게도 요리하는 것을 즐기는 나를 위해 -혹은 혼자 식사를 해결하는 고독한 여성쯤으로 여기며- 겨울맞이 식재료들이 선물로 도착하기 시작했다. 이런 축하가 좋은 건지 나쁜 건지 헷갈리기는 하나 겨울 눈을 맞이하여 호화롭게 생일 선물들로 차려본 겨울 밥상을 소개한다.
도착한 선물은 포항 과메기, 속초 홍게, 냉동 연어 스테이크 되시겠다.
겨울의 별미, 과메기 쌈
과메기
겨울철 별미로 청어나 꽁치를 냉동과 해동을 반복하여 바닷바람에 건조시킨 것. (국어사전, ‘과메기’)
과메기는 매년 겨울이면 포항에서 직접 주문을 해 먹을 정도로 좋아한다. 십 년 전 대구로 친구를 만나러 갔다가 처음 맛 본 과메기는 비린 것을 싫어하는 내가 처음 도전하기 불편한 요리였음에도 불구하고, 눈 감고 한 입 먹어보고 난 후 그 쫀득함에 반해 이제는 아침상에도 올려낼 수 있게 되었다.
서울 포장마차나 술집에서 안주 삼아 나오는 과메기는 가격과 비교하면 실하기가 덜하다며 겨울이면 포항 사시는 이모가 쇠미역과 함께 보내주시곤 한다. 올해는 특히 맛이 들었다며 생일 선물로 과메기를 보내주셨는데 역시나 통통한 살이 너무나 맛있어 한입 씹을 때마다 눈이 절로 감겼다.
과메기 쌈
- 과메기는 별도의 조리법 없다.
- 살이 튼실한 과메기를 구해 배춧잎에 쇠미역과 청양초, 쪽파, 초고추장을 얹은 후 한 입 먹으면 통통한 살이 쫀득하게 씹히면서 특유의 고소한 맛을 느낄 수 있다.
- 청양초나 쪽파, 생마늘의 경우 과메기 특유의 비린 맛을 줄이기 위해 함께 먹는 것 같은 데 먹다 보면 다른 재료 없이 초고추장에만 찍어 먹어도 그 고소함에 전염될 것이다.
뜨끈하게 뱃속을 데워주는 홍게 배춧국
집이 멀어진 후로 보기 어려워진 음악 하는 동생은 내가 어릴 적 5년을 강원도 삼척에서 지냈다는 이유로 ‘언니의 추억을 되살려 주려고 속초산 홍게를 보내요’라는 메시지와 함께 주말 택배를 보내왔다.
삼척과 속초는 그다지 가깝지 않은 데다가 삼척에 살면서 홍게를 먹을 일이 없었던 나는 어리둥절 했으나 요리 칼럼을 쓰는 언니에게 소재를 주기 위해 선택했다는 홍게를 감사히 받았다.
게나 새우, 바닷가재 등등 모두 맛있는 재료지만 직접 손질해 본 적은 없다. 그래서 게가 집에 도착한 밤 열한 시부터 동생에게 물어가며 손질하고 찌기 시작했다. 홍게는 일단 쪄서 보관하지 않으면 살이 빠져나가 먹을 것이 없다고 하니 꼭 참고 하기 바란다.
홍게를 물에 담가 짠기를 빼고, 입 주위에 칼집을 내고 몸 안에 남은 염분을 한 번 짜내어 쪄야 소금기가 덜하다. 좁은 집안에 바닷냄새가 가득해진 후에야 붉게 살이 오른 게를 한입 베어 물 수 있었는데 그 맛이 기가 막혔다. 다만 오늘의 식탁에는 생으로 얼려두었던 홍게를 사용해 배춧국을 끓여보았다.
홍게 배춧국
- 다시마, 멸치, 대파, 청양초를 넣어 팔팔 끓기 시작한 후 10분 더 끓여 육수를 낸다.
- 미리 집된장과 시판 된장을 1:1.5 비율로 섞고 다진 마늘 한 큰술을 넣어 육수에 잘 풀어둔다.
- 끓어오르는 육수에 된장을 풀고 홍게 다리를 넣어 한 번 더 육수를 낸다.
- 배춧잎을 대여섯 장 썰어 끓는 된장국에 넣고 숨이 죽을 때까지 끓여주면 배춧국 완성.
혀끝의 사치, 연어 스테이크
연어라면 사족을 못 쓰는 나를 위해 한 친구가 냉동연어를 통째로 주문해서 분해하고, 껍질과 뼈를 손질해서 깔끔하게 스테이크용으로 가져다 주었다. 요리를 좋아한다고 해도, 그렇게까지 해본 적은 없는 데 역시 남다른 사람도 있는 모양이다.
연어 스테이크 구이
- 오븐 토스터는 미리 예열시켜두고, 적당한 크기로 자른 연어는 껍질째 청주를 살짝 부어 전체에 발라준다.
- 허브 솔트나 집에 있는 바질이나 오레가노 등 여러 가지 허브와 후추, 소금을 위에 뿌리고 십분 정도 둔다.
- 열이 오른 오븐 토스터에 연어를 올리고 올리브유를 살짝 뿌려 아래위가 바삭거리고 색이 진해져 속이 익을 때까지 굽는다.
- 양파나 통마늘 등에 올리브유를 바르고 함께 구워 먹어도 좋다.
- 레몬즙이나 타르타르 소스와 함께 먹어도 맛있지만, 허브와 소금 덕에 적당히 간이 맞아 다른 소스 없이도 충분히 맛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