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6일, 프랑스 대선에서 사회당의 프랑수아 올랑드(François Hollande) 후보가 집권당 대중운동연합(UMP) 후보인 니콜라 사르코지를 제치고 당선되었다. 이로써 프랑스는 프랑수아 미테랑 이후 17년 만에 좌파 정권이 들어섰다. 올랑드의 당선에 대해 프랑스 언론들은 ‘당연한, 그러나 너무나 허약한 승리’라고 요약했다. 이는 경제위기를 수습하지 못한 사르코지로 인해 너무나 고통받은 프랑스 유권자들이 사르코지에 등을 돌린 결과이지 올랑드의 집권이 프랑스에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다줄 것이라는 기대에 의한 것은 아니라는 추측이다.
저성장과 실업문제로 고통받고 있는 프랑스. 올랑드는 이제 당면한 위기로부터 프랑스를 구해야만 하는 막중한 책임을 짊어지게 됐다. 그가 과연 불안에 허덕이는 프랑스 국민에게 희망을 심어줄 수 있을지 알 수 없지만, 그러나 최소한 그의 취임 이후 행보만큼은 사르코지 전 대통령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올랑드 취임 이후 긍정적 평가 얻어
사르코지가 호화로움의 대명사라면 올랑드는 간소함의 대명사로 기록될 듯하다. 사르코지가 2007년 당선 직후 샹젤리제의 최고급 레스토랑 푸켓(pouquet)에서 호화 축하연을 열고 값비싼 요트 여행을 떠나는 것으로 그의 임기를 시작했다면,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9일 만에 취임한 올랑드는 그가 원하는 검소한 ‘보통 대통령’의 모습을 실천하기라도 하듯 불과 40여 명만을 엘리제궁에 초대해 그 누구보다 간소한 취임식을 치렀다.
이후 그는 무척이나 바쁜 일정을 소화했다. 취임식 몇 시간 후에는 독일로 날아가 앙겔라 메르켈 총리를 만나 자신의 유럽 성장정책을 밝혔고, 며칠 후엔 미국을 방문해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회담하고 G8 정상회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에 연이어 참석한 후, 5월 25일 예고에 없던 아프가니스탄을 방문했다. NATO 정상회의에서 그의 공약대로 올 연말까지 아프가니스탄에 주둔 중인 프랑스군 철수계획을 천명한 이후, 이 결정에 대해 프랑스군에게 설명하고, 이에 대한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가불로 날아간 것이다.
독일에서 메르켈과의 유럽정상회담, G8과 나토 정상회의 그리고 아프가니스탄 방문까지, 올랑드의 첫 국제무대는 일단 성공적이었다고 전문가들은 평가한다. 각 회담마다 올랑드가 자신의 입장을 명확하게 유지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한편 여론조사 기관 BVA에 따르면 프랑수아 올랑드와 장 마크 에로는 아주 높은 여론의 지지를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기관에 따르면 응답자의 61%가 올랑드의 대통령 취임 이후 행보를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답변했고, 65%가 총리인 장 마크 에로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고 AFP 통신은 29일 전했다. 이러한 평가는 6월에 있을 총선에서 사회당이 압승을 거둘 것이라는 예측과도 맞물린다.
올랑드의 몇몇 공약들
올랑드의 대선 공약들은 특별히 새로울 것이 없다. 사르코지 집권 하에 벌어진 여러 문제들을 수습하고자 하는 내용이 주요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사르코지가 프랑스가 직면한 저성장과 실업 등 경제 문제를 긴축정책을 펼침으로써 서민들에게 허리띠를 졸라매게 했던 반면, 올랑드는 사르코지의 이러한 정책이 경제 실패의 책임을 서민들에게 떠넘기는 무책임한 것이라 여긴다. 그는 긴축정책 대신 성장정책을 통해 유럽재정 위기를 극복하고, ‘부자증세안’을 통한 부의 분배를 통해 경제위기를 타파하려 한다. 이로 인해 100만 유로(약 15억원) 이상 소득자에 대한 소득세는 75%까지 부과될 전망이다. 또한 대기업 법인세는 35%로, 중소기업 법인세 15%로 조정할 계획이다.
이 같은 공약에 프랑스 부유층의 불만이 고조되자 올랑드는 ‘대통령과 장관 급여 30% 삭감안’을 발표했고, 또한 전임 대통령으로서 받게 되는 각종 수혜들, 예컨대 전임대통령 예우로서 지급되는 월 6,000유로와 헌법자문위원회 자문위원으로서 지급되는 11,500유로 역시 삭제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캬나르 앙셰녜’(Canard Enchaîné) 같은 프랑스의 대표적인 풍자 주간지는 ‘그는 자신의 은퇴는 생각하지 않는 것인가?’라고 묻고 있지만, 올랑드 스스로 ‘보통 대통령’으로서 모범을 보이고자 하는 그의 의지가 느껴지는 부분이다.
또한, 사르코지 정부가 8만 명의 교육관계자들을 해고해버린 반면, 올랑드는 교사만 6만 명을 신규로 채용할 것과 빈곤층에 대한 학교 보조금을 인상하겠다고 밝혔고, 사르코지가 실시한 62세로 연장된 정년의 60세 환원 등의 공약을 내세웠다.
특히 눈길을 끄는 건 동성결혼 합법화와 아도피 법의 전면 수정이다.
뜨거운 감자, 동성결혼 합법화
5월 6일 오후, 올랑드의 대통령 당선이 확실시된 순간, 1981년 5월 첫 번째 좌파 대통령 미테랑 당선 이후 31년 만에 당선된 두 번째 사회주의자 올랑드의 당선을 축하하기 위해 오후 시간부터 수많은 군중이 바스티유 광장에 몰려들었다. 프랑스 선거관리위원회는 저녁 8시 이전에는 당선자 발표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지만, 스위스나 벨기에 등의 주변국 언론과 소셜 미디어를 통해 정보를 얻은 올랑드 지지자들이 하나둘씩 바스티유의 7월 혁명탑 주변으로 모여들기 시작한 것.
“올랑드 대통령!” “우리는 승리했다!” “바이 바이 사르코!” 등을 외치는 군중들 사이로 사회당, 녹색당과 좌파전선의 기들과 프랑스국기를 비롯한 알제리, 세네갈, 모로코 등의 다양한 각국의 국기 이외에도 동성애를 상징하는 무지개기가 휘날렸다. 이는 올랑드가 가족정책에 있어서 모든 시민에게 동등한 권리를 부여하기 위해 동성결혼 합법화를 그의 공약 중 하나로 내세웠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사르코지는 마지막까지 동성결혼 반대 입장을 조금도 굽히지 않았고, 민주기독교당 같은 보수적인 당의 당원들 또한 올랑드의 사회, 경제 정책까지는 그럭저럭 인정하더라도 동성 결혼 합법화만큼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격렬히 비판했기 때문에 올랑드의 당선은 동성애자인권운동조직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이었을 것이다.
사실 프랑스는 이미 ‘시민연대협약'(PACS)을 통해 동성 커플의 결합을 법적으로 보호하고 있다. 결혼 관계나 동거 관계의 중간쯤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는 이 제도는 1999년 동성 커플들의 법적 보호를 위해 마련됐다. 그러나 복잡한 이혼절차 없이 한 쪽이 계약파기서를 제출하면 시민연대협약 관계를 끊을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올랑드와 그의 연인 발레리 트리에르바일레르(Valérie Trierweiler)처럼 시민연대협약 제도는 이성 커플들이 더욱 애용하는 추세이다. 결혼보다 훨씬 간편한 형태의 시민연대협약은 법적 결혼관계는 아니지만 사실상 일반 기혼자에 준해 사회보장, 납세, 임대차계약, 채권채무 등의 권리와 의무를 보장 받는다. 그러나 상속, 입양 등에 있어서는 많은 한계를 갖고 있다. 이러한 부분을 개선하기 위해 올랑드는 적어도 2013년 봄까지, 동성 커플의 결혼과 입양 합법화를 추진할 계획이다. 이로 인해 동성 커플들은 정자은행 등을 이용해 아이를 갖거나, 입양을 통해 자신들의 가정을 가질 수 있게 됐다. 그러나 대리모 등 제 3자를 통한 임신은 비인간적 처사로 여겨져 여전히 인정되지 않을 전망이다.
시대착오적 삼진아웃제, 아도피 법 전면 수정
올랑드의 또 다른 공약 중 하나는 프랑스의 ‘문화적 예외 정책’(프랑스의 문화 예술 상품을 보호하는 정책)의 두 번째 장을 열기 위한 위원회를 구성하겠다는 것. 이 위원회는 새롭게 선출된 국회의원들(총선은 6월 10일과 17일, 두 번에 걸쳐 진행됨)에 의해 2012년 7월 3일과 8월 2일 사이에 설치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특히 인터넷 저작물을 불법으로 다운로드해 3회 이상 경고를 받은 인터넷 이용자를 최대 1년까지 인터넷 접속 차단시킬 수 있는 인터넷 저작권보호법(일명 ‘아도피’ Hadopi 법)에 대한 재검토가 이 위원회의 임무들 중 하나다. 전문가들은 아도피(‘아도피’는 인터넷 창작물 보호를 위한 고등기관 명칭.)는 여전히 존재할 것이지만, 그러나 아도피 법의 내용은 완전히 달라질 것으로 전망한다.
몇 가지 예측에 의하면, ‘프랑스의 삼진 아웃제’로 불리는 아도피 법의 ‘인터넷 접속 차단’ 조항은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 벌금형(최대 1,500유로) 역시 폐지될 가능성이 있고, 외부 업자들에 의한 인터넷 감시는 금지될 것으로 전망되며, 저작권자의 의무는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아도피법 폐지보다는 검토를 공약으로 내세운 게 과연 옳은 선택이었나 하는 의문이 들기는 하지만 올랑드 정권의 등장으로 저작권에 대한 새로운 접근은 피할 수 없는 선택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아직은 전반적인 방향만 있을 뿐 구체적인 내용은 정해지지 않은 상황이지만, 사회의 변화에 대해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비현실적 법이라는 비난을 받아왔던 아도피법의 수정은 머지않아 이루어질 듯하다.
“과잉의 시대”, 그의 해법은…
르몽드 주재로 마련된 프랑스의 대표적인 철학자 겸 사회학자 에드가 모랭과의 인터뷰에서 현시대를 지나친 이득과 임금, 지나친 가난과 불평등이 난무하는 과잉의 시대로 정의 내린 올랑드. 그에 의하면 정치의 역할은 이러한 과잉과 위험, 위협에 맞서 싸우는 것이며 국민에게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줄이고 희망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제 막 그 싸움을 시작한 올랑드 대통령. 그가 과연 이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을지 누구도 알 수 없다. 넘어야 할 산은 아직 너무도 많아 보인다. 그러나 적어도 현재까지 올랑드는 프랑스를 위기로부터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대통령이라는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데 일단 성공한 듯 보인다.
[box head=”프랑수와 올랑드와 발레리 트리에르바일레르”]
1954년 보수적인 부르주아 집안의 아들로 태어나 어릴 시절부터 대통령의 꿈을 키워온 올랑드는 파리경영대학과 파리정치대학, 국립행정학교(ENA) 등 정통 엘리트 코스를 거쳐 판사, 변호사, 대학교수 등으로 활동했다. 25세에 미테랑 정부 시절 경제보좌관을 맡으면서 정계에 입문한 올랑드는 1997년부터 2008년까지 11년간 사회당 제1서기를 역임했고, 각종 부패나 여성 관련 추문이 없는 깨끗하고 정직한 정치인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그는 2007년 사회당 대선후보였던 국립행정학교 시절에 만난 세골렌 호와얄과 25년간 동거했으나 2007년 대선 2차 투표시기에 헤어졌으며, 현재 그의 동반자는 ‘파리마치’(Paris Match)의 정치부 기자이자 TV 진행자인 발레리 트리에르바일레르(1965년생)이다.
올랑드의 다른 여성들과는 달리 가난한 서민 출신의 트리에르바일레르는 엘리제궁에 입궁한 이후에도 동거인 신분과 자신의 직업을 계속 유지할 계획이어서 프랑스에서는 결혼하지 않은 첫 퍼스트레이디(동거인 신분으로 인해 미국언론은 그녀에게 ‘퍼스트 걸프렌드’라는 별명을 지어주기도 했다)면서 동시에 프랑스 역사상 최초의 ‘워킹 맘’ 영부인으로 기록될 듯하다. 결혼은 부르주아적 발상이라고 생각하는 올랑드 대통령도 트리에르바일레르의 의견을 존중하는 것으로 알려졌다.[/bo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