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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가천대학교를 방문할 일이 있었다.

가천대학교, 숨겨진 교보문고 

꼭 사서 읽어봐야 할 책이었는데, 인터넷 서점에서는 출고가 7일이나 걸리는 통에 하는 수 없이 오프라인 서점엘 가야 했다. 가천대학교에 갔던 것은 재고가 교보문고 가천대점에만 있었던 탓이었다. 8월 중순이어서 꽤 더운 날이었다. 다소 짜증이 난 채로 가천대에 도착하여 교보문고를 찾던 중 나는 보기 드문 것을 발견하곤 짜증도 잊은 채 천천히 가천대 건물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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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보문고가 자리한 위치는 지그재그로 내려가야만 볼 수 있는 너른 공간의 안쪽 구석이었다. 교보문고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사진에서 볼 수 있듯 아래의 너른 공간 주변으로 입점한 커피점이나 도넛 가게 등이 모두 그러했다. 난간의 어느 쪽에서도 아래에 있는 모든 것을 한눈에 볼 수는 없었다. 어느 쪽에서 보는지에 따라 어떤 쪽은 보이기도 하고 어떤 쪽은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다. 게다가 내려가는 길도 마찬가지로 반대편에서 봐야만 어떻게 되는지 한눈에 들어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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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무슨 의도로 이렇게 건물을 지었는지는 알 수 없다. 어느 회사에서 만들었다는 사실만 알 수 있었을 뿐, 건물 디자인을 이렇게 (어떻게 보면) 불편하게 해뒀는지 찾아보기는 어려웠으나, 나는 이것이 한편으로는 시각성에 관한 재미있는 은유라고 생각했다.

거시와 미시 

우리가 어떤 이슈, 특히 매우 큰 사회적 이슈를 살펴볼 때, 해당 사회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이념적 정향과 같이 거시적인 관점에서 살핀다고 가정해 보자. 거시적 논의는 이슈의 전체적인 맥락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유용한 관점임에 틀림없지만, 상대적으로 이슈에 관계한 작거나 개인적인 사건들을 세세히 살필 수 없다는 약점도 있다. 그것이 어떤 관점을 취하든 거시적 논의는 그러한 약점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여기서 미시적 관점의 필요성이 대두한다. 이슈가 일어난 사회 내에 산재하는 각 집단과 개인의 문제도 살피는 일이 필요한 것이다.

1. 탈식민주의 논의 

대표적인 것이 지금까지 오랜 시간 풍부하게 이뤄져 왔던 탈식민주의 논의이다. 비록 우리나라에서는 그것이 풍부하다고 말할 수 없으나, 세계의 제국주의 역사에 대한 연구는 국가의 정책적 차원에서부터 문화사(문화예술뿐만 아니라 생활양식 제반을 포함한 문화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이루어져 왔다. 게다가 지배와 피지배 관계의 내적 통치구조, 지배 국가들 간의 경쟁구도, 그리고 지배 국가들 내부의 내적 사회구조와 생활사에 이르는 등 그 논의 범위는 거시사와 미시사를 아우른다.

이것은 제국주의 기조의 역사가 단순히 국가간 폭력으로 눙치고 넘어갈 수 있는 사안이 아님을 보여준다. 한 국가가 다른 국가를 힘으로 억압하고 통제하는 국가적 폭력이 어떤 식으로 국가 내 각양각색의 그룹과 개인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 그리고 그것을 어떤 식으로 재생산해 피지배사회뿐만 아니라 심지어 지배사회 내에도 자리하게 했는지를 모두 살펴야 한다. 미시적 사안들에 관한 연구 필요성은 연구 대상이 그만큼 복잡하고 거대해졌음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2. 일베

오늘 우리의 사회도 마찬가지다. 몇 해 전부터 ‘일간베스트’라는 커뮤니티의 규모와 영향력이 급격하게 증대했다. [일베의 사상]이라는 책도 출간될 정도로 이 커뮤니티 사이트에 관한 사회적 관심은 지대하다. 일베 사용자 수가 수만에 이르는 만큼 그들의 이념적 스펙트럼이 다양할 것임은 자명하다. 무엇보다도 나 스스로 십여 년에 걸쳐 극우(나는 한때 플라톤적 국가를 이상 국가로 생각했을 정도로 폭력적 극우였다)에서 국가 자체에 회의적일 정도의 오늘에 이르렀기에, 일베의 이념적 스펙트럼이 얼마나 복잡다단한지는 능히 짐작할 수 있다. 기왕 그들에 대해 분석할 요량이면 가능한 그러한 스펙트럼에 대한 성찰도 필요하리라 여긴다.

드러난 건물과 숨겨진 공간: 공간 체험이 주는 체험과 감각

d0013480_480bc63eb4c3d주은우는 [시각과 현대성]에서 시지각 경험이 개인의 주체를 형성하고 그것이 사회를 운영하는 이념적 정향을 어떤 식으로 재생산하는지에 대하여 논한 바 있다. 시각이 주체를 형성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것은 확실하지만, 나로서는 그것이 주체의 이념적 정향에 어느 정도까지 개입하는지를 분명히 말할 수 없다. 서술이 불가능할 정도로 복잡하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가 일상생활 속에서 경험하는 여러 건축적 장치들이 단순히 시각적 경험이 아니라 몸의 움직임까지 결정한다는 것을 상기한다면, 건축물의 시각성은 그저 시지각 경험으로만 좁혀 다룰 일이 아님은 분명할 것이다. 더불어 건축물이 현대인에게 미치는 영향력 또한 쉽게 기각할 수 있는 사안은 아니랄 수 있다.

가천대학교 건물을 돌아다니며 구경했던 것은 그래서 무척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굉장히 더운 날이었기에 가천대 역에서 내렸을 땐 좀 짜증스러웠지만, 그런 것쯤은 이내 마음에서 털어버릴 수 있었다. 이런 식으로 지어진 건물을 만나는 것은 매우 쉬운 일처럼 보이나, 실제로 잘 살펴보면 전체가 이런 형태를 띤 건물이 그리 많지는 않다. 우리 사회의 도시건축은 마치 파사드 프로젝트라도 하듯 대개는 보지 않을 수 없도록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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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사드(Façade): 건물의 출입구로 이용되는 정면 외벽 부분을 가리키는 말. 한글화하여 순화하려면 ‘정면'(正面)이 무난할 것으로 여겨진다. 건축의 관점에서 파사드는 종종 그 건물에서 가장 중요한 디자인적 요소가 된다. 그리하여 파사드가 그 건물의 나머지 부분의 색채, 톤을 잡아준다. (위키백과, ‘파사드’ 중에서 발췌)  [/b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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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사드 프로젝트 (남한산성 한남루 설치 과정 및 Tandem Sequence, 2011 사진 작품) ⓒ 한성필 Han Sungpil / 공사중인 건물의 가림막을 통해 실재와 가상의 한계를 탐구한 사진작가 한성필은 자신의 작업을 ‘파사드 프로젝트’로 명명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표면만을 보고도 거기에 무엇이 있는지 모두 알 수 있다. 그냥 보기만 해도 다 볼 수 있는 건물로 가득한 도시에서 걸어 들어가야만 볼 수 있는 건물은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던져줄까? 논리적으로든 시간적으로든 즉답은 쉽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증명 자체가 불가능한 사안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며 무언가를 시각적으로든 관념적으로든 바라보는 시점을 은유할 수 있는 대상은 멀지 않은 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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