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의 표현에 영향을 가장 많이 주게 되는 심도와 흔들림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피사계 심도의 이해
지난 시간에도 배웠지만, 조리개를 조여서 더 작은 구멍으로 세상을 보면 가까이에서 멀리까지 초점이 맞게 되지요. 반대로 조리개를 열면 카메라 렌즈로 초점을 맞추려고 시도한 지점을 중심으로 더 좁은 부위에 초점이 맞게 됩니다.
이렇게 조리개를 조일수록 초점을 맞춘 거리에서 시작해서 앞뒤로 더 넓은 영역에 초점이 모두 맞게 됩니다. 이것을 피사계 심도가 깊어진다고 말합니다.
브라이언 피터슨의 이야기를 했었죠? 조리개를 여는 건 페인트통의 뚜껑이 큰 것과 같아서 페인트가 한꺼번에 쏟아져서 사방으로 튑니다. 그래서 초점을 맞춘 부분만 초점이 맞습니다. 조리개를 조이는 건 페인트통의 뚜껑이 작은 것과 같아서 페인트를 천천히 가늘게 따르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전체 면에 골고루 고르게 페인트를 물들일 수 있죠. 조리개를 조이면 초점을 맞춘 부분을 중심으로 앞뒤로 더 넓은 영역에 초점이 맞습니다.
심도가 주는 효과
특정한 부분을 주제로 부각
안경점에서 시력측정할 때 자동으로 측정해주는 기계 있죠?
우리 눈은 기계에서 풍선이 흐려지면 자동으로 초점을 맞추려고 노력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눈은 사진에서 초점이 맞는 영역에 더 집중하죠.
따라서 배경과 분리하여 어떤 영역만이 사진에 필요할 때 심도를 낮춤으로써 간단하게 사진에서 특정한 부분을 주제로 부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무조건 모든 배경을 알아볼 수 없도록 날리는 것이 좋은 건 아니에요. 집중을 요구하는 정도에 따라 적절한 심도가 있습니다.
Burt Glinn 작. / USA. 1954. Bassett Hound class (링크)
멍멍이 공부하는 시간. 사진가는 얕은 심도로 아이의 표정에 초점을 맞추고 개는 적절하게 초점에서 벗어나게 두었습니다. 멍멍이는 대충 흐려져도 멍멍이라고 알아보는 데 무리가 없고, 중요한 건 아주 뚫어져라 오늘의 관찰대상을 쳐다보는 소년의 표정이죠. 소년의 표정이 이 사진의 관심사입니다.
Alessandra Sanguinetti 작. USA. Rochester, New York. 2012.은 도시의 풍경을 담은 연작 중 하나. 아까 멍멍이 사진보다 더 얕은 심도로 촬영되었습니다. 왜? 저 뒤에 있는 사람은 없어도 이 사진이 표현하고자 하는 주제에 별 영향이 없으니까요. 오직 음료수 빨고 있는 저 아이의 묘한 눈빛이 이 사진에서 주제입니다.
코소프스키(Kosofsky)라는 18세 소녀가 매그넘 사진가들에 의해 선정되어 5,000달러 상금을 받은 사진입니다. 그녀는 LA에서 할아버지 할머니의 일상을 담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죠. 이 로맨틱한 키스의 배경은 저 위에 소개한 사진들보다는 그 심도가 그다지 얕지는 않아요. 덕분에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거리에서 대담하게 진하게 키스 나누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상황이 잘 전달되고 있네요. 심도를 너무 얕게 촬영하면 배경 정보가 모두 날아가버린다는 점은 늘 유의해야 합니다.
초점이 나가는 것을 방지
두 번째로 심도를 어느 정도로 깊게 유지하면 움직이는 피사체의 초점이 나가는 걸 방지하는 용도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조리개 f/1.4 는 가까이에서 찍으면 눈과 코의 초점도 달라질 정도로 심도가 얕은데, 이 녀석이 건들건들 자꾸 움직이면 찍을 때 곤란하지요. 이럴 때 조리개를 조이면 약간씩 앞뒤로 움직여도 초점범위 안에 들어오게 만들 수 있지요.
단, 조리개를 조이면 셔터스피드가 떨어진다는 사실을 늘 염두하세요.
일반적으로 사진가들은 f/5.6-8 의 조리개를 많이 사용합니다. 이것은 우리 눈의 일반적인 초점범위와 닮았으면서 함부로 배경초점을 지나치게 날리지 않게 되어, 사진의 맥락과 배경을 사진에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리고 거리계에 대한 감도 익혀두면 좋습니다. 광각 + 깊은 심도라면 뷰파인더를 보지 않고 대강의 초점거리를 생각하며 셔터를 눌러도 초점이 맞는 경우가 많습니다.
카메라의 렌즈에는 거리계가 표시되어 있는 것들이 있는데 자신이 자주 사용하는 카메라의 센서 위치에서 초점을 잡을 수 있는 최소 거리가 어느 정도인지 육감으로 알 수 있도록 대충 조사해보세요.
내 카메라와 내 렌즈로 가장 들이댈 수 있는 게 대충 어느 정도인지 감이 있는가? 내 카메라에서 3미터 떨어진 게 우리집 거실 벽에서 어느 정도 떨어진 지점인가? 이런 거리에 대한 감각이 생기면 조리개를 조이고 렌즈의 거리계를 보며 대강 셔터를 날릴 수 있고, 의외의 시선으로 의외의 장면을 잡는 경우도 생기게 됩니다. 재밌습니다. 해보세요. ^^
선명한 풍경 사진 만들기
풍경사진에서 F11 이상 조리개를 깊게 조이면 근경부터 원경까지 선명한 사진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보통은 풍경사진에서는 조리개를 조입니다. 사실 f/11 이상을 조여서 표현하는 심도는 우리 눈으로 사실 불가능한 초점범위입니다. 우리 눈은 아주 가까이에서 멀리까지 초점을 동시에 맞출 수 없어요. 눈 앞에 손가락을 놓고 초점을 맞춰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진은 가능하죠. 사진이 선사하는 새로운 세계입니다.
그러나 지나치게 조리개를 조이면 초점은 더욱 멀리까지 선명해질 수 있어도 화질에서 손해를 보게 될 수 있다는 점도 주의해야 합니다. 셔터를 일부러 느리게 해야 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렌즈의 극한까지 조리개를 조이는 것이 쨍한 사진이 나온다며 습관처럼 조리개를 지나치게 조이는 습관은 버리는 게 좋다.
대개의 사진가는 f/11 내외에서 풍경촬영을 많이 하고, 대부분의 렌즈가 이 조리개를 지원합니다
풍경 사진 하면 역시 앤셀 애덤스가 가장 많이 소개되는 작가라고 하겠습니다. 그는 대형필름으로 사진을 많이 찍었는데요, 특성상 조리개를 무지막지하게 f/32 까지 조이고… 막 그런 게 가능해지지요. 덕분에 바로 앞에서부터 아주 멀리 있는 산까지 기막히게 선명한 풍경사진이 가능해집니다.
그리고 풍경사진을 찍을 때 조리개를 무조건 조이지만 말고 초점을 가운데보다는 초점이 허용하는 범위에서 가급적 앞에 초점을 맞춥니다. 보통 소형 카메라에서는 아래에서 1/3 지점을 추천하기도 합니다.
사람과 동물은 눈에 초점을
사람이나 동물의 경우 눈이 초점범위에서 벗어나지 않게 조심하세요.
예를 들면 Burt Glinn의 1951년작 ‘Slow loris’는 귀엽네요.
내셔널 지오그래픽 오늘의 사진 시리즈에서. 얕은 심도에서 말의 눈이 인상적으로 다가옵니다.
움직이는 사물 찍기
규칙적으로 움직이는 사물의 경우 초점을 미리 맞춰두고 심도 안에 들어왔을 때 셔터를 누르는 것도 요령입니다.
역시 내셔널 지오그래픽에 실린 아마추어 사진.
우연히 이 사진을 찍을 수도 있지만, 또 한 가지 방법은 뱀의 진행 경로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원하는 위치에 왔을 때 셔터를 누르는 겁니다. 그렇게 찍으면 좀 더 얕은 심도로 촬영이 가능해지지요.
셔터 스피드와 사진의 흔들림
사실 셔터스피드는 대상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찍은 사진을 보는 입장에서는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1/100초나, 1/1000초나 그리 달라질 건 없어요. 찍히는 걔가 가만히만 있으면.
하지만, 먼저 렌즈의 초점거리가 길수록 사진이 흔들릴 가능성이 더 커진다는 사실에 주의하세요.
젓가락이 짧으면 물건 집을 때 힘들어요. 하지만 길수록 내가 손을 아주 조금만 까딱해도 작은 콩도 집을 수 있게 되지요. 이렇게 막대기가 길어지면 움직이는 쪽에서 살짝만 휘둘러도 당하는 입장에서는 막대기가 많이 움직이게 됩니다. 부채꼴 모양을 생각해보세요. 부채가 클수록 똑같이 흔들어도 바람이 커집니다.
렌즈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멀리 있는 것을 담을수록, 사진찍는 내가 조금만 움직여도 내가 찍는 대상은 더 많이 움직이게 됩니다. 광각일수록 내 움직임에 덜 민감하고, 망원일수록 내 움직임에 민감하게 반응해 흔들리게 된다.
그러므로 셔터스피드를 안 그래도 확보하기 힘든 상황인데 대상을 좀 더 크게 담고 싶다면, 최대 화질로 찍어서 나중에 컴퓨터에서 자르거나, 직접 발로 다가가는 게 유리합니다. 함부로 줌렌즈로 당겨서 초점거리를 늘리면 더 잘 흔들리지요.
보통 사진 교본에서는 손에 들고 흔들어서 사진을 망치지 않도록 사용하는 ‘렌즈의 1/초점거리’ 보다 느린 속도로 촬영하지 말라고 충고합니다. 50mm 렌즈는 1/50초보다 느린 속도에서 촬영하지 않도록, 200mm 렌즈는 망원이니까 1/200 초 정도는 확보하도록 가능하면 노력하세요. 이보다 느린 셔터가 필요한 경우에는 특히 주의해서 촬영하거나, 삼각대를 사용하는 것이 흔들리지 않는 사진을 찍는 비결입니다.
호흡을 멈추고 찍거나, 얼굴을 카메라에 밀착시킨다거나, 팔꿈치를 몸에 붙인다거나, 다리를 어깨넓이만큼 벌리고 안정된 자세를 취하는 것, 어딘가에 카메라를 올려놓거나, 상체를 벽에 기대고 찍는 방법 등 흔들림을 방지하는 여러가지 테크닉도 도움이 됩니다.
셔터스피드의 활용
사진에 따라 셔터스피드가 사진에 주는 효과를 잘 이용하면 오히려 인상적인 사진을 만들 수 있습니다.
셔터스피드를 빠르게 하여 순간을 잡는다
셔터가 빠를수록 짧은 순간의 장면이 카메라에 잡힙니다. 사진은 더 드라마틱해집니다. 스포츠 사진처럼 순간적인 장면을 잡아야 한다면, ISO를 높혀서 노이즈가 생기더라도 과감하게 셔터 속도를 충분히 확보하는 게 좋습니다. 또는 보조조명을 마련해야겠죠.
보조조명이 여의치 않다면 같은 공간에서도 밝을수록 셔터스피드를 확보할 수 있도록 조금이라도 밝게 만들어야 합니다. 사진가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는데도 굳이 악조건을 극복하지 않고 사진을 찍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방에 추가로 실내 조명이 있는데 전기 아낀다고 꺼둔 상태에서 사진을 찍는다거나, 빛이 은근히 들어오는 좋은 방이 있는데도 커튼 친 안방에서 사진을 찍는 경우이지요. 빛을 찾을수록 셔터를 빠르게 가져갈 수 있습니다.
아참, 형광등의 경우 1초에 120번 깜박입니다. 사람 눈으로는 잘 안 보이죠. 그래서 그보다 빨리 찍으면 사진에 줄이 생기지요. 추가 조명 없이 아파트에서 형광등 아래에서 촬영할 때에는 조리개를 변경하면서 셔터도 유심히 보아야 합니다. 셔터가 1/125초보다 빨라지지 않도록 주의하세요.
흔들려야 움직이고, 흔들려야 불안해 보인다
사진 역사 초기에는 워낙 정적인 초상사진이 인기여서, 사람들은 그림처럼 안 흔들리게 사진을 찍는 것이 아름답다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연속되는 사람이나 동물의 동작을 옛날에 그림 그릴 때는 자세히 볼 수 없었잖아요? 그래서 어떻게든 빠른 셔터로 자세하게 동작을 하나하나 꼼꼼하게 분석해보는 게 유행이었습니다. 그리고 수정을 해서라도 디테일을 확보하려고, 안 흔들린 말의 순간 동작을 찍어내려고 머이브리지는 대단한 노력을 기울였죠.
하지만 이런 걸 싫어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순간의 모습은 ‘진실이 아니다’라며 그의 노력을 폄훼했죠. 1891년 미국의 판화가였던 조셉 펜넬은 모션에 대해 이렇게 비판합니다.
“만약 운동하고 있는 물체를 사진으로 찍으면 운동의 느낌은 모두 상실된다” (조센 펜넬, 1891)
사진 과학자 애브니는 이런 고민의 연장선에서 많은 화가들이 사용하는 기법처럼 “바퀴의 중심으로부터 팔방으로 펼쳐진 양털 같은 것이 희미하게 피어오르는 덩어리인 쪽이 더 그럴듯하다”고 비판하죠.
이처럼 회화처럼 우리가 보는 진실을 표현하지 못하고 야릇한 순간포착만을 즐기는 사진은 예술이 아니라고 매도하는 분위기 속에서 태어난 사진은, 오늘날 오히려 셔터를 조정하여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진실을 포착하고 보여주는 예술로 당당히 서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제 셔터를 늦춰서 일부러 흔들리게 하면 피사체는 운동하고, 움직여야 불안해 보인다는 점을 사진가는 그대로 받아들이거나 의도적으로 이용할 수 있습니다.
Morses Saman이 2012년에 찍은 사진은 터키에서 몰래 시리아로 건너가는 밀매업자입니다. 어두운 밤이어서 흔들리기도 했지만, 불안한 상황에 잘 어울리게 되었습니다.
매그넘 사진가 폴 푸스코(Paul Fusco)가 1968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찍은 흔들리는 재니스 조플린(Janis Joplin)의 얼굴은 공연의 분위기를 잘 전달합니다.
서로 다른 속도 사이의 균형 맞추기
세 번째로 화면 안에서 속도가 다른 것들이 있습니다. 어떤 것은 빠르게, 어떤 것은 느리게 움직이지요. 이 때 셔터스피드가 너무 빠르면 움직임이 없어지고, 조금 빠르면 속도가 다른 둘 중에 하나의 속도는 따라잡지만, 하나는 흔들리게 됩니다. 아주 느리면 둘 다 흔들리게 되죠.
이렇게 빨리 움직이는 것의 속도와 느리게 움직이는 속도 사이의 균형에서 적절한 셔터스피드를 찾는 건 사진을 표현하는 데 관건이 됩니다.
우선 배경은 전혀 움직이지 않고 주제만 움직이는 경우가 있죠. 폭포 사진이 특히 그렇습니다.
여행 사진 부문 콘테스트에 제출된 이 사진에서 배경은 정지해있고 폭포는 움직입니다. 셔터를 늦추게 되면 폭포가 우유빛으로 찍히게 되죠.
그리고 배경이 움직이기는 하지만, 주제가 특히 더 많이 움직이는 경우도 있겠고.. 반대로 배경은 바쁘게 움직이는데, 주제는 움직이지 않는 경우도 있겠죠. 특히 후자의 경우, 주제를 부각하기 위해서 일부러 셔터를 느리게 하면 독특한 느낌을 줍니다.
이 사진에는 세 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산은 움직이지 않습니다. 구름은 비교적 빠르게 움직이고, 별도 움직입니다. 셔터를 너무 느리게 하면 별이 이동하면서 점이 아니라 선으로 표현되어 사진을 망칩니다. 너무 셔터를 빨리해서 찍으면 구름이 부드러운 실크처럼 안 보일 거예요. 사진가는 이 둘 사이에서 적절한 셔터를 선택해서 이 사진을 완성했을 겁니다.
역시 내셔널지오그래픽 오늘의 사진에 소개되었던 사진입니다. 정지해 있는 택시 주위로 움직이는 사람들을 느린 셔터로 잘 잡아냈습니다. 지나치게 셔터를 늦추면 사람의 형체마저 없어져서 내용 전달에 실패하게 됩니다.
사슴은 가만히 있죠. 셔터가 너무 빠르면 꽃잎이 날리는 느낌이 들지 않고, 너무 느리면 너무 지져분해지거나 사슴이 움직일 겁니다.
이집트 카이로 박물관에 전시된 투탕카멘 마스크입니다. 위에 소개되었던 택시 사진과는 다르게 셔터를 더욱 느리게 설정해서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물결을 추상화했습니다. 사람의 형체는 알아볼 수 없게 되었지만 오히려 아주 오랜 시간을 거쳐 오늘날의 박물관에 전시된 유적의 세월을 느끼게 하네요.
참고로 대낮에도 셔터를 더 이상 느리게 할 수 없을 때 ND필터를 사용하면 셔터를 더 늦출 수 있게 됩니다. ND필터는 썬글라스처럼 들어오는 빛의 양 자체를 줄여주기 때문에 더 느린 셔터로 사진을 촬영할 수 있어요.
셔터속도를 고려할 때, 움직이는 대상의 방향에 주의
똑같은 속도로 움직여도 사진에서 움직이는 거리가 다릅니다. 즉, 똑같은 속도로 달리는 열차도 옆에서 보면 획~하고 지나가지만, 앞 방향에서 보면 더 느리게 커지지요. 텔레비전에서 보면 야구장 투수의 공이 그리 빠른 것 같지 않은데, 야구장 가서 옆에서 보면 공이 엄청 빠른 걸 실감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움직이는 걸 강조하려면 옆에서 보는 게 좋고, 덜 흔들리게 하고 싶으면 앞이나 뒤에서 찍는 게 좋겠습니다. 아래에서 위로 점프하는 점프샷은 아래에서 위로 찍어야 사진에서 이동거리가 늘어납니다. 위에서 떨어지는 사물은 옆에서 지켜보는 방향이 떨어지는 속도가 느껴지고, 그 사물을 위에서 내려다보면 떨어지는 느낌은 떨어지지만 덜 흔들리게 찍을 수 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일본 철도사진 전문가 나카이 세이야의 사진을 소개해드릴게요. 2012년 10월에 공원에서 찍은 사진이라는데요. D5100의 내장 플래시를 손가락으로 절반 가리고, 나무의 윗부분만 인상적으로 빛이 닿도록 한 뒤에, 저속 셔터로 찍어서 열차는 일부러 흔들리도록 촬영했다지요. 이 사진 찍으려고 1시간 동안 여러 장 실패를 거듭했다고 하네요. 가로방향으로 달리는 열차가 적절히 흔들리면서, 그보다 덜 흔들려 보이도록 전면에 있는 나무에는 플래시를 이용한 기막힌 연출입니다.
사진기를 움직이며 촬영하는 패닛샷
움직이는 사물을 따라가면 상대적인 속도가 느려집니다. 버스를 타고 가면서 같이 따라 달리는 옆 차선의 차를 보면 그렇게 빨라 보이지 않지요?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맞은 편에서 반대 방향으로 달리는 열차를 보면 엄청 빨라 보이죠.
그래서 사진기를 움직이는 물체를 따라 움직이며 촬영하게 되면 정지되어 있는 배경이 오히려 흔들리고, 움직이는 사물이 정지된 것처럼 찍히게 되죠. 이것은 움직이는 사물 자체의 시각과 가깝습니다. 즉, 달리는 입장에서 나 자신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배경이 움직이면서 내가 운동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기 때문에, 이런 사진을 보면 우리는 움직이는 대상의 입장이 되어서 함께 달리고 있는 느낌을 받을 수 있죠. 이런 촬영을 패닝샷이라고 합니다.
제가 마드리드에서 찍은 사진이에요. 말이 달리는 기분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역시 나카이 아저씨의 사진. 위에서 아래 방향으로 찍은 패닝샷입니다. 생각보다 쉽지 않은 사진일 거예요.
하지만 역시, 패닝샷이라는 게 요령이 필요하고 연습도 필요하고 운도 필요한 사진이 되겠습니다. 아주 여러번 촬영해야 원하는 결과물을 얻을 수도 있어요.
움직임을 예상하라, 마치 예언가처럼
좋은 사진가들은 대상의 특성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상이 언제 잘 웃는지 알고 있는 것은 물론, 어떻게 움직일지도 미리 예상하는 사진가들이 있습니다. 잠깐 지나가는 순간을 보고 나서 셔터를 누르는 것은 어렵습니다. 물론 행운이 오기도 하지만.
지나가는 걸 보고 찍은 게 아니라, 꽃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을 겁니다.
저 사람은 아마도 3초 후에 이쯤에 쿵 하고 넘어지지 않을까?
어쩌다가 찍을 수도 있겠지만, 멍 때리고 있다가 뭔가 넘어가기 직전에 분위기 파악을 잘 못하면 기회를 놓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어떤 순간을 담기 위해서는 가까운 미래를 이해하고, 기다리고, 찍고자 하는 대상의 마음과 의도를 가늠하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마법사의 능력이라고 해야 하나요. 좋은 사진가들은 이런 순간을 놓치지 않으며, 이런 순간이 또 오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깝지 않다고 말하며 인내할 줄 알지요. 사진이 늘지 않는 사람들은 남이 찍은 순간의 장면을 보고 운이 좋았다고 손가락질 하고, 바보처럼 오래 기다리는 것을 시간낭비라고 합니다.
마치 영혼의 행진처럼 그림자로 구성된 이미지가 이 날의 슬픔을 상징하는 것 같죠. 이 사진을 찍은 사진가는 우연히 이 장면을 포착했다고 했지만, 이 사진을 소개한 책에서는 말했었죠.
“그 우연조차 아무에게나 오는 건 아니다.”
사진의 표현기법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까지만 다루고 나중에 또 생각나면 사진을 모아서 함께 구경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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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이 글에서 인용한 Burt Glinn를 비롯한 몇몇 작가들의 사진은 링크로 대체하거나 대체 링크가 없는 경우에는 삭제했습니다. (편집자, 2019. 11. 7. 오후 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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