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x type=”note” ] 널리 알려진 사람과 사건, 그 유명세에 가려 우리가 놓쳤던 그림자, 그 속에 담긴 의미를 이상헌 박사의 ‘제네바에서 온 편지’에 담아 봅니다. [/box]
프랑스의 젊은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Thomas Picketty)의 [21세기의 자본]이라는 책이 돌풍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돌풍을 일으키는 [21세기의 자본]
소득 분배를 경제 분석의 중심에 돌려놓고, 마르크스를 연상케 할 만한 방식으로 자본주의의 구조적 경향을 밝히고 있습니다. 자본수익률이 경제성장률보다 높은 역사적 경향이 있는데, 이 때문에 자본주의적 소득 불평등은 증가하는 구조적 추세는 불가피하다고 봅니다. 누진 소득세만으로는 이런 추세를 막기가 힘들기 때문에, 전 세계적인 자산세를 부과하는 방법을 대안으로 제시합니다.
경제학, 특히 경제학사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에게는 사실 어려운 책입니다. 아마 경제학을 전공하시는 분들에게도 그리 만만한 책은 아닙니다. 이 때문에 저자가 꼼꼼하게 설명하려고 애쓴 흔적이 뚜렷합니다. 그러다 보니 본문만 600페이지에 달하는 대작이 됐습니다. 영미권 책에 익숙한 분들에게는 프랑스식 문체도 낯설 듯합니다. 혹 읽게 되더라도 몇몇 다소 ‘선동적인’ 문장만 기억에 남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빠른 시일 안에 주류 경제학적 논의에 익숙한 사람들을 위해 기술적 교과서가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일반 독자를 위해서는 좀 더 대중적인 책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물론 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고, 이미 하고 있을 지로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읽어보길 권합니다. 한글 번역본은 가을에 나온다고 하니, 천고마비의 독서 계절에 한 번 시도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어렵지만 읽는 재미, 또한 적지 않습니다. 일반 경제학 저서와의 큰 차이를 느끼실 겁니다.
‘사회적 차별은 오직 공공선에 기초해야 한다’
피케티의 책은 프랑스의 인권선언 제1조를 인용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나 살며 동등한 권리를 누린다”가 첫 문장이지요. 이건 널리 알려졌지요. 그런데 제1조에는 이 문장 뒤에 따라오는 문장이 하나 더 있습니다.
“사회적 차별은 오직 공공선(l’utilité commune)에 기초할 때만 있을 수 있다”.
피케티는 바로 이 문장을 인용합니다. 이게 그의 화두입니다.
오늘날 소득분배에서 발견되는 격차 내지는 “사회적 차별”이 과연 공공선이라는 차원에서 용인될 만한 수준인지를 묻습니다. 그가 분석한 것처럼, 자본주의에서는 소득불평등을 확대하는, 일종의 내재적 경향이 있다고 한다면, 그는 사실상 소득 분배의 문제를 현대 프랑스가 기반하고 있는 인권 문제로 격상시키고 있는 셈입니다.
동전 하나의 경제학, 세속적인 너무나 세속적인
피케티 책의 마지막 문장도 그런 면에서는 흥미롭습니다.
“사회과학자, 언론인, 논평가, 노조활동가, 다양한 정파의 정치인 그리고 모든 시민은 돈 문제, 그와 관련한 측정 및 사실관계, 그리고 돈의 역사에 대해 심각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미 돈을 많이 가진 사람들은 그들의 이해를 지키는 데 결코 실패하지 않는다. 돈과 관련한 숫자들을 다루는 걸 거부한다고 해서 가난한 자들의 이해가 증진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거창한 인권선언에서 시작했는데, 결론은 너무나 ‘세속적’인 셈이지요. 하지만 그게 정확히 피케티가 얘기하고 싶은 점입니다. 불평등이 사회적 위협 요인이 될 정도라고 한다면, 동전 하나도 차분히 따져야 한다는 얘기지요. 개인적으로 보면 만 원은 별 것 아닌 돈일 수 있으니, 사나이 대장부가 웃고 넘길 일일 수 있겠지요. 하지만 그런 사람이 백만 명이 되면, 총액이 100억 원입니다.
이 돈이 소수에게 이전된다고 한다면 웃을 일은 아니지요. 그렇게 이전된 100억 원의 돈이 다시 백만 명을 위협한다면, 그 위협으로 부가 소수에게 더 집중된다면, 사정은 간단치 않습니다. 목소리 높이기 전에, 동전 하나라도 꼼꼼하게 챙기는 게 우선입니다.
요즘 여기저기서 피케티에 대해 많이 읽고 있습니다.
한국판이 언제 나오는지 궁금하기도 했고요.
독서의 계절 가을이 더 깊어질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