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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대통령 필요 없다

2014년 4월 27일 일요일 오전, 청와대 자유게시판에 글 하나가 올라왔습니다. 글은 삽시간에 인터넷의 광야를 태우는 불씨가 됐습니다. 누구의 목소리도 아닌, 내 안에서 터져 나오는 내 애끓는 목소리, 그 글을 그리 여겼던 사람이 많았던 탓으로 생각합니다.

물론 달리 생각하고, 판단하는 분들도 많았을 겁니다. 이 목소리만이 정답이라고 말할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그 목소리를 여기에 기록합니다. 세월호를 가슴에 묻은 이 모든 이들의 목소리, 그 분노와 슬픔, 이 모든, 이 모든 좌절과 울분을 희망의 재료로 남겨야 하기 때문입니다. 기록하고, 또 기억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편집자)

숱한 사회 운동을 지지했으나 솔직히, 대통령을 비판해 본 적은 거의 없다.

처음으로, 이번만큼은 분명히

그러나 처음으로, 이번만큼은 분명히, 그 잘못, 따져 묻겠다. 지금 대통령은 더는 대통령이어서는 안 된다. 분명한 이유, 있다.

대통령이란 직책, 어려운 거 안다. 아무나 대통령 하라 그러면 쉽게 못 한다. 그래서 쉬이 비판할 수 없었다. ‘대통령 물러나라’는 구호, 너무 쉽고, 공허했다. 정부가 아무리 무능해도 우리들, 시민들만 정신만 차리면 그 사회, 바꿔 나갈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안 되겠다.

대통령은 대통령으로 해야 할 아주 중요한 몇 가지를 놓쳤다.

1. 대통령 할 일이 뭔지 몰랐다

대통령이 구조 방법, 직접 고민할 필요 없다. 리더 역할은 적절한 곳에 책임을 분배하고, 사람들이 그 안에서 최대한 역량을 발휘할 수 있게 해주는 거다. 밑에서 문제가 생기면 그 책임을 지면 된다. 특히 아래 사람들끼리 서로 조율 안 되고 우왕좌왕한다면 무슨 수를 쓰든 질서를 부여해야 한다. 그게 대통령 역할이다.

안행부 책임하에서 잘못했다면 안행부가 책임지면 된다. 해수부가 잘못했으면 해수부가 책임지면 된다. 그런데 각 행정부처, 군, 경이 다 모였다. 그 상황에서 우왕좌왕했다면, 그건 리더가 제 소임을 다하지 못한 거다. 나는 군 최고 통수권자이자 모든 행정부를 통솔할 권한이 있는 사람, 우리나라에서 딱 한 명밖에 모른다. 대통령이다.

대통령이 했어야 할 일, 현장에 달려가 상처받은 생존자 위로한답시고 만나는 그런 일 아니다. 그런 건 일반인도 할 수 있는 일이다. ‘구조 왜 못하냐, 최선을 다해 구조해라.’ 그런 말 누구라도 할 수 있다. ‘잘못하면 책임자 엄벌에 처한다.’ 그런 호통 누구나 칠 수 있다. 대통령이 할 일은 그런 게 아니다.

‘중국인이 우리나라에서 왜 쇼핑을 못한답니까?’ 그런 말 하라고 있는 자리 아니다.
공인인증서 폐기하라고, 현장에 CCTV 설치하라고, 그러라고 있는 자리 아니다.

일반인이 하지 못하는 막대한 권한, 행사할 수 있었다. 그랬기 때문에 대통령에 책임이 있는 거다. 대통령? 세세한 거 할 필요 없다. 대통령은 대통령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라.

일이 안되는 핵심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점을 찾는 일, 뭐가 필요하냐 묻는 일, 그냥 해도 될 일과 최선을 다할 일을 구분하고, 최선을 다해도 안 되면 포기할 일과 안 돼도 되게 해야 할 일을 구분해주며, 최우선 의제를 설정하고 밑에 있는 사람들이 다른 데 에너지 쏟지 않을 수 있도록 자유롭게 해주는 일, 비용 걱정 하지 않도록 제반 책임을 져 주는 일.

영화 현장의 스탭들은 감독이나 피디의 분명한 요청만 있으면 아무리 어려운 일도, 안 되는 일도, 되게 한다. 단, 조건이 있다. 어려운 일을 되게 하려면 당연히 비용이 오버 된다. 이 오버된 제반 비용에 대한 책임. 그것만 누군가 책임을 져 주면, 스탭들은, 한다.

리더라면 어떤 어려운 일이 ‘안 돼도 되게 하려면’ 밑의 사람들이 비용 때문에 망설일 수 있다는 것쯤은 안다. 그것이 구조 작업이던 뭐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아야 한다면, 무조건 돈이 든다. 엄청난 돈이.

만약 사람들이 비용 때문에 망설일 수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면’ 그건 대통령이 정말로 누군가의 말단 직원인 적도 없었고, 비용 때문에 고민해 본 적도 없다는 얘기다. 웬만한 중소기업 사장도 다 아는 사실이다.

만약 리더가 ‘너 이거 죽을 각오로 해라. 해내지 못하면 엄벌에 처하겠다.’라고 협박만 하고 비용도 책임져주지도 않고, 안 될 경우에는 책임을 피한다면, 그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 누가 할 수 있겠는가?

사람을 구하는 데 돈이 문제냐 하지만, 실제 그 행동을 하는 사람이 되면, 달라진다. 유속 흐름을 늦추게 유조선을 데려온다? 하고 싶어도 일개 관리자가 그 비용을 책임질 수 있을까? 그러나 누군가 그런 문제들을 책임져주면 달라진다.

‘비용 문제는 추후에 생각한다. 만약 정 비용이 많이 발생하면 내가 책임진다.’

그건 어떤 민간인도 관리자도 국무총리도 쉬이 할 수 없는 일이다.

힘없는 시민들조차 죄책감을 느꼈다. 할 수 있었으나 하지 못한 일, 그리고 전혀 남 일인 것 같은 사람들조차 작게나마 뭘 할 수 있었을지를 고민했다.

그러나 그 많은 사람을 지휘하고 이끌 수 있었던, 문제점을 파악하고 직접 바로잡을 수 있었던, 해외 원조 요청을 하든, 인력을 모으든, 해양 관련 재벌 회장들에게 뭐든 요청하든, 일반인은 할 수 없는, 그 많은 걸 할 수 있었던 대통령, 당신은 구조를 위해 무슨 일을 고민했는가?

2. 사람 살리는 데 쓸모없는 정부 필요 없다

대통령은 분명 ‘구조에 최선을 다하라.’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왜 지휘자들은 ‘구조에 최선을 다하지 않았’을까? 그것이 한두 번의 명령으로 될까?

날씨 좋던 첫째 날 가이드라인 세 개밖에 설치를 못 했다면, ‘이러면 애들 다 죽는다.’, ‘절대 못 구한다.’ 판단하고 밤새 과감히 방법으로 바꾸는 걸 고민하는 사람이 이 리더 밑에는 왜 한 사람도 없었는가? 목숨 걸고 물속에서 작업했던 잠수사들, 직접 뛰어든 말단 해경들 외에, 이 지휘부에는 왜 구조에 그토록 적극적인 사람이 없었는가?

밑의 사람들은 평소에 리더가 가진 가치관에 영향받는다. 급한 상황에서는 평소에 리더가 원하던 성향에 따라 행동하게 돼 있다. 그것은 평소 리더가 어떨 때 칭찬했고 어떨 때 호통쳤으며, 어떨 때 심기가 불편했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만약 리더가 평소에 사람과 생명을 최우선 가치로 두었던 사람이라면 밑의 사람들은 어떤 상황에서든 말하지 않아도 그것을 최우선으로 두고 행동한다.

쌍용차 사태의 희생자들이 분향소를 차렸을 때 박근혜에게 충성하겠다 한 중구청장은 그들을 싹 쫓아냈다. 대학생들이 등록금 때문에 죽어가도 아무도 그걸, 긴급하게 여긴 적이 없다. 모두 살기보다 일부만 사는 게 효율에서 좋다는 세상이다. 자살자가 늘어나도 복지는 포퓰리즘일 뿐이다. 세 모녀의 죽음을 부른 제도를 폐지하는 데 아직도 대통령이 이끄는 당은 그토록 망설인다.

죽음을 겪은 사람들, ‘징징대는’ 정도로 취급했다.
‘죽겠다’며 ‘함께 살자’는 사람들, 거기 대고 물대포 뿌렸다.

이곳에선 한 번도 사람이, 사람의 생명이 우선이었던 적은 없었다.
아직도 이들에겐 사람이 죽는 것보다 중요한 게 많다.
사람 목숨보다 더 중요한 대의가 많다.

‘사람에게 함부로 해도 된다’는 이 시스템, 이 정부의 암묵적 의제였다. 평소 시스템의 방향이 이렇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 대통령이 ‘구조에 최선을 다하라.’라고 지시를 하면, 밑의 사람들은 대통령이 진심으로 아이들의 생명이 걱정되어서 그런 지시를 내린 건지, ‘구조에 최선을 다하라’라고 지시했다는 사실을 국민들에게 보여주라는 뜻인지, 정부의 성과를 보여주기 위해 구조를 하라는 건지, 여론이 나빠지지 않게 잘 구조를 하라는 얘긴지, 헷갈린다.

대책본부실에서 누가 장관에게 전했다.

“대통령께서 심히 염려하고 계십니다.”

그러면 이 말이 ‘아이들의 안위와 유가족들의 아픔을 염려하고 있다는’ 건지, ‘민심이 많이 나빠지고 있어 자리가 위태로워질 걸 염려한다’는 건지, 밑의 사람들은 헷갈린다.

대신 지시가 없어도 척척 움직인 건 따로 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척척 해냈다.

  • 재빨리 불리한 소식들을 유언비어라 통제할 줄 알았던 사람들
  • 구조에 최선을 다하는 것으로 보이는 데 애를 쓴 사람들
  • 선장과 기업에 모든 책임을 돌리는 방향으로 여론몰이한 사람들
  • 순식간에 부르자마자 행진 가로막고 쫙 깔린 진압 경찰들

이들에겐 이런 것들, 시키지 않아도 척척할 수 있는 매뉴얼이었다. 이들은 평소 리더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뭔지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움직였다. 그뿐이다. 하지만 거기에 에너지를 쏟느라 정작 중요한 것을 놓쳤다.

내가 선거 때 박근혜를 뽑지 않았던 이유, 분명히 있다. 그가 친일파여서도, 보수당이어서도, 독재자의 딸이어서도 아니었다. 그녀가 인혁당 사건에 관해 보여준 반응, 자기 부친 때문에 여러 명의 억울한 사람이 죽었다. 거기에 대해 일말의 죄책감도, 일말의 안타까움도, 보이지 않았다. 그랬기 때문이다.

사람의 생명에 대해 그토록 가벼이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대통령으로 뽑아선 안 된다. 그 이유 하나였다. 리더의 잘못이 여기에 있다. 밑의 사람들에게 평소 사람의 생명이 최우선이 아니라는 잘못된 의제를 설정한 책임, 리더 책임이다.

3. 책임지지 않는 대통령 필요 없다

대통령이란 자리가 그토록 어려운 이유, 책임이 무겁기 때문이다. 막대한 권한과 비싼 월급, 고급 식사와 자가 비행기, 경호원과 그 모든 극진한 대우, 공짜가 아니다. ‘책임에 대한 대가’다.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조직에선 어떤 일도 제대로 굴러가지 않는다. 리더가 책임지지 않는 곳에서 누가 어떻게 책임지는 법을 알겠는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일일이 알려줘야 하는 대통령, 필요 없다.
사람을 살리는 데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대통령, 역시 필요 없다.
결정적으로, 책임질 줄 모르는 대통령, 필요 없다.

세월호 선장들과 선원들이 갖고 있다던 종교의 특징은 이런 거다.
단 한 번의 회개로 이미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아무리 잘못해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것’.
이거, 굉장히 위험한 거다.

죄책감을 느끼지도 못하는 대통령, 이들과 결코 다르지 않다.
사람에 대해 아파할 줄도 모르는 대통령은 더더욱 필요 없다.

진심으로, 대통령의 하야를 원한다.

 

어제(2014년 4월 27일 오전 9시 51분 경) 청와대 자유게시판에 '정OO'이라는 이름으로 올라온 이 글의 원래 글쓴이는 박성미 씨다. 현재 해당 페이지는 삭제됐고, '정OO' 씨 요청으로 자진 삭제됐다고 '청와대 안내문'이 올라온 상태다. 이 페이지 화면은 글을 올린 직후 캡처한 모습이다.

어제(2014년 4월 27일 오전 9시 51분경) 청와대 자유게시판에 ‘정OO’이라는 이름으로 올라온 이 글의 원래 글쓴이는 박성미 씨다. 현재 해당 페이지는 삭제됐고, ‘정OO’ 씨 요청으로 자진 삭제됐다고 ‘청와대 안내문’이 올라온 상태다. 이 페이지 화면은 글을 올린 직후 캡처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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