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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이 놓친 네덜란드 스케이팅의 성공 이유

소치 동계올림픽 스피드 스케이팅 종목에서 네덜란드는 선전하는 반면 우리 국가대표 선수의 성적은 기대에 못 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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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 중인 네덜란드 스피드 스케이팅 대표팀 (사진: nos.nl/os2014/ )

네덜란드 스케이팅에 관한 오해

이런 이유 때문인지 요 며칠 인터넷 뉴스에서 네덜란드 대표팀이 스케이팅에서 초강세인 이유를 정리한 기사와 블로그 포스트가 많은데, 여기에는 부정확한 정보를 전달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몇 국내 언론사에서는 제대로 된 자료조사 없이, 고전 ‘먼나라 이웃나라’에만 의존해 기사를 작성하는 듯한 인상도 받았다. 특히 다음 두 가지 이유를 지적한 기사가 많았다.

1. 스피드 스케이팅에 적합한 신체 조건?

네덜란드가 이번 올림픽에서 남자 5,000m 장거리 종목의 금, 은, 동메달을 석권하자 신체조건의 차이를 성공 요인으로 다룬 기사가 많았는데, 500m 단거리 종목은 장거리와는 분명히 다른 신체조건과 전략을 요구하지만 남자 500m 종목에서도 금, 은, 동메달을 모두 네덜란드에서 가져갔다.

게다가 주목할 만한 것은 남자 500m 종목에서 네덜란드가 금메달을 딴 것은 이번 대회가 처음이라는 점이다(1980년 동메달, 1988년 은메달). 500m에서의 성공은 네덜란드인에게도 뜻밖의 성취이며 즉, 네덜란드의 성공 요인을 선천적 조건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음을 방증한다.

네덜란드 스케이팅의 초강세 원인을 신체조건으로 뽑은 기사들 (출처: 구글 검색)

네덜란드 스케이팅의 초강세 원인으로 ‘신체조건’을 뽑은 기사들 (출처: 구글 검색)

2. 매 겨울 빙판으로 변하는 ‘운하의 나라’?

네덜란드의 겨우내 기온은 영상인 날이 많다. 실제 운하에서 스케이트를 탈 수 있는 날은 며칠 되지 않는다. 인터넷에서 돌고 있는 대부분의 아름다운 빙판 위 사진들은 이런 몇 안 되는 날에 찍었거나, 킨더다이크(Kinderdijk) 같은 한적한 관광지에서 찍은 것이다.

참고로, 많은 뉴스에서 거론되는 네덜란드 전통의 스케이트 마라톤 대회는 1997년 이후로 지난 17년간 열리지 않았다. 스케이트가 네덜란드의 국민스포츠인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저변과 올림픽 성적의 직접적 연관성을 주장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다.

운하의 나라이기 때문에 소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다? (출처: 구글 검색)

네덜란드는 운하의 나라이기 때문에 소치 올림픽 스케이팅 금메달 독식? (출처: 구글 검색)

‘신체조건’과 ‘운하의 나라’ 강조 불편한 이유

위의 두 이유를 중심으로 쓴 기사에 불편한 마음을 갖게 되는데, 첫째 이유로는 부실한 자료에 따른 부정확한 정보에 대한 것이고, 둘째는 이러한 잘못된 정보가 모처럼 올림픽이라는 큰 대회를 통해 얻은 스피드 스케이팅이라는 종목과 국내 선수들에 대한 관심을 또다시 잃게 만들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단순히 자연적, 신체적 조건의 우세함을 네덜란드팀 선전의 근본적 이유인 것처럼 다룬 기사들은 마치 이번 대회에서 확인한 기량의 차이를 극복할 수 없는, 그저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으로 만들어 어떻게 하면 우리 선수들이 네덜란드 이상의 경기력을 가질 수 있을까에 대한 논의 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들어버린다.

오히려, 이러한 국민적 관심과 스케이팅 저변이 구체적으로 어떤 과정을 거쳐 올림픽 성적에 영향을 주고 있는지를 살피는 것이 중요한데, 이 중간 과정을 잘 정리한 기사를 좀처럼 발견할 수 없었다. 최근 CNN 방송에 나온 1,000m 금메달리스트 스테판 흐로트하우스(Stefan Groothuis) 인터뷰를 보면, 그는 성공 요인으로 두터운 선수층을 꼽았다. 그는 이번 대회에 출전한 선수 외에도 대표팀에 선발되지는 못했지만, 매우 뛰어난 선수가 많다고 지적했다.

네덜란드 스케이팅의 힘: 스포츠 테크놀로지

일단 신체적 조건의 우월함이 절대적인 성공 요인이 아니라면, 두터운 선수층과 더불어 스케이팅 기술과 장비에 그 성공의 비밀이 있는 건 아닐까? 네덜란드인은 역사적으로 스케이팅을 개척했을 뿐 아니라, 스피드 스케이팅 경기에 사용하는 장비를 꾸준히 개선해온 것으로 유명하다. 기록 단축에 효과적인 구두와 뒷날이 분리되는 클랩 스케이트 (Clap skates)가 잘 알려진 예다.

클랩 스케이트 (Clap skate) - 이미지 출처: 흐로닝헨 (Groningen) 대학 웹사이트 http://goo.gl/bW5UxI

클랩 스케이트 (사진: 흐로닝헨 대학교)

네덜란드의 델프트 공과대학(Delft University of Technology) 웹사이트에서 “skate”로 검색했다. 참고로, 네덜란드에는 공과대학이 3개밖에 없고(델프트, 아인트호벤, 트벤테), 가장 큰 델프트 공과대학만 살펴봐도 네덜란드 공학연구기관의 상당 부분을 커버할 수 있다(네덜란드는 경상도 크기의 매우 작은 나라다). 스포츠 테크놀로지와 관련한 연구기관과 교육 프로그램, 특히 스케이트 장비에 집중된 다양한 연구 프로젝트를 뽑아보면 다음과 같다.

스케이팅 테크닉 관련 연구 이미지 예 (이미지 출처 - http://goo.gl/yb8KN2)

스케이팅 테크닉 관련 연구 이미지 사례 (출처: 델프트 공과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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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드 스케이트화 개발 연구 관련 이미지 (출처: 델프트 공과대학)

  • 스케이터를 위한 의료기구 사례: 스케이터의 근육 회복을 돕는 기구(‘아이시 솔루션’, ‘Icy Solutions’) 아래 동영상에서 제품을 사용하는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이레나 뷔스트 (Ireen Wust)와 스벤 크라머 (Sven Kramer)를 볼 수 있다.

스케이팅 위한 튼튼한 기초 연구와 다양한 응용 연구

앞서 살펴봤듯, 네덜란드에서는 공기역학과 같은 기초 연구부터 스케이트 기구, 관련 의료기기 개발까지 스피드 스케이팅을 위한 다양한 연구가 우주항공, 산업디자인공학, 기계공학 등 학제 구분 없이 왕성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스케이팅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네덜란드 내 빙상협회의 꾸준한 연구 소재 발굴, 산학협력, 연구결과로 이어져 선수들의 기록 향상에 도움이 되었음을 추정할 수 있는 대목이다.

특히 관련 자료를 조사하면서 빙상협회나 스포츠용품 업체의 직접적인 투자 외에도 좀 더 포괄적이고 기초적인 스포츠 관련 연구를 위해 정부에서도 상당히 지원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작년 한 해 NWO(네덜란드 학술 재단)에서는 스포츠 관련 연구에 145억 원을 지원했다.

연구 주제들을 살펴보면, 단순히 기록, 기량 향상을 위한 연구뿐만 아니다. ‘운동선수들이 학교에서도 뛰어난 학업 성취를 보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와 같은 연구 주제도 눈에 띈다. 우리나라의 ‘엘리트’ 체육과는 다른 ‘생활’ 체육의 방향을 지향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승훈 선수는 경기 후 인터뷰에서 네덜란드의 스케이트 저변에 관한 부러움을 내비쳤다. 네덜란드의 생활스포츠 스케이팅은 두터운 저변과 함께 스포츠 테크놀로지에 관한 기초 연구와 응용연구, 그리고 생활 체육의 철학적인 바탕 위에 서 있다. 우리나라 스케이팅 발전을 위해 반드시 참고해야 할 지점이라고 할 수 있다. 스피드 스케이팅뿐 아니라 다른 종목에도 마찬가지로 적용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경기 후 토크쇼 참여… ‘노메달 선수 똑같이 주목’

끝으로, 네덜란드 국영 방송(NOS)의 동계 올림픽 방송 사진을 몇 장 첨부한다.

경기를 마친 뒤 선수, 코치들이 함께 경기 소감을 자유롭게 이야기한다.

경기를 마친 뒤 선수, 코치들이 함께 경기 소감을 자유롭게 이야기한다.

경기를 마치면, 선수들과 코칭 스태프가 경기장 근처에 위치한 스튜디오로 자리를 옮겨 일종의 토크쇼에 참여하여 그 날의 경기 내용, 자신의 실수, 소감 등을 나눈다. 또 다른 경기 일정이 있는 선수들도 바로 다음 날 경기가 있는 것이 아니면 참여하고, ‘당연히’ 메달을 따지 못한 선수도 똑같이 조명받는다.

금메달에 목메는 우리와는 달리, 선수, 코칭 스태프 그리고 언론사는 경기 자체에 관한 정보와 이야기를 풍성하게 전달한다. 이런 노력은 분명 대중에게는 친밀함으로, 각 종목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질 것임이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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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윤정균
초대필자, 사용자경험디자인

현재 델프트 공과대학 (Delft University of Technology)에서 산업디자인공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으며, 디자인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연구 분야는 사용자경험디자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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