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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혹독했지만, 취업시장은 참으로 따뜻했던 80년대 즈음에, 소위 ‘좀 괜찮다’는 대학에 다닌 사람들은 더러 기억날 것이다.

그때에도 ‘추천제’가 있긴 했다. 기업에서 학교로 공문을 보내, 총장이나 학장 명의로 몇 명을 추천해 달라고 했다. 물론 대학별로 할당 인원이 달랐고, 짐작건대 기업이 암묵적으로 대학을 서열화했었다. 하지만 명색이 추천제였지만 헐렁했다.

관련 기업 공문을 학과 사무실 게시판에 붙여 두고, ‘혹시’ 관심 있는 사람은 학과장에게 연락하라고 했다. 내부 경쟁이 제법 있으면, 학점을 고려해서 선발하기도 했다. 더러는 할당 인원만큼 추천서를 붙여두고, 관심 있는 졸업생이 하나씩 떼어갔다. 그러고 직장을 잡았다. 모두 그랬다는 것은 아니지만, 드물지 않았던 광경이었다.

삼성의 오만한 ‘총장 추천제’

지난달 말, 삼성의 대학 총장 추천제 ‘만행’으로 시끄러웠다. ‘당신 대학에서 힘들여 잘 키운 학생을 우리 기업에 보내 달라’는 정중한 부탁이 아니었다. ‘당신 대학은 이만큼이니 이것 먹고 떨어져라’는 식의 오만함이 보였다. 한 달은 욕 먹어도 삼성은 할 말 없다. 그들은 그들대로, 이러다가 시간 지나면 또 그만일 거라는 계산도 하고 있겠다.

하지만 좀 더 생각해 보자. 완전히 딱 맞아떨어지는 비교는 아니지만, 80년대 말의 추천제와 오늘날 삼성의 추천제가 같은 ‘추천’이라는 같은 단어를 사용하면서도 이리 달라진 연유는 무엇인가?

삼성은 왜 오만해졌을까? (사진: 삼성블로그)
삼성은 왜 오만해졌을까? (사진: 삼성블로그)

왜 이리 달라졌을까?

간단하다. 그때는 취업시장 형편이 좋았다. 그리고 지금은 어렵다. 그때는 기업이 궁했고, 지금은 학생들이 궁한 처지다.

청년 고용 사정이 나아지지 않는다면, 몇십 년 동안 바뀐 갑을 관계가 이번 사건으로 변하기 어렵다. 삼성이나 다른 대기업은 점잖게, 그리고 욕을 덜 먹으면서 ‘갑’ 노릇 하는 세련됨이 늘지는 모르겠다. 게다가 이번 사건(?)으로 삼성이 얻은 것도 있다. 이번에 욕은 먹었지만,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걸 만천하에 선언했다. 그 수많은 비난도 역설적으로 그걸 확인해 주었다.

그래서 삼성의 오만함에 대한 진정한 복수는 삼성 밖에서도 젊은이들이 좋은 직장을 찾는 것이다. 그래야 그들도 추천을 정중히 부탁하는 날이 온다.

오만함을 부추긴 ‘삼성맨 프리미엄’

삼성의 오만함에는 삼성맨의 프리미엄 증가도 한몫했다. 그 옛날 추천서가 과사무실 게시판에 남루하게 날리던 때는, 한국의 임금격차가 수직으로 하락하던 시기였다 (왼쪽 그림 참조). 86학번인 내가 취업시장에 나갈 무렵에는 임금 격차 (지니계수)가 선진국 수준으로 떨어진 때였다. 어디 취직하든 간에 월급 차이가 그리 크지는 않았다는 얘기다.

그래프 출처: 성재민, 정성미, 2013, “임금불평등 추이에 대한 분석”, [월간노동 리뷰] 2013년 2월호, 한국노동연구원
하지만 IMF 위기를 겪으며 임금격차는 다시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좋은 직장과 나쁜 직장의 차이가 도드라지기 시작했다. 이런 차이를 주도한 게 상위 10%가 중간 임금층에 비해 월급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하위 10%와 중간 계층간의 변화는 그다지 크지 않았다 (오른쪽 그림).

결국, 고연봉자들만 잘 나간 셈이다. 이렇게 되면, 삼성에 ‘몰빵’할 이유가 더 커진다. 삼성맨은 곧 복권이다. 그런데 이번에 삼성은 ‘추천제’를 하면서 복권을 정해진 확률로 바꾸어 버렸다. 복권을 사기도 전에 ‘꽝’이라 공포해 버린 거다. 그러니 학생들도 대학들도 목청 높이지 않을 수 없다. 삼성은 아마도 이걸 확인했을 것이다. 자신의 오만함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고 자위했을지도 모른다.

삼성의 사다리를 걷어치우자

결국 삼성 밖에서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 내는 게 문제의 요체다. 이게 안 되면, 우리는 삼성의 주인 됨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그의 평화로운 언사로 평화롭기를 바라야 한다.

오만함은 타이름만으로 치유되지 않는다. 삼성이라는 ‘황금 제국’의 일원이 되고자 정치경제적으로 힘을 몰아주고 판돈을 키우고, 또 그곳으로 가는 좁은 사다리에 오르고자 멱살 잡고 싸운다. 그런데 그들이 굳이 변할 이유가 없다. 그들이 딛고 올라선, 우리가 만든, 그 사다리를 걷어 버려야 한다.

삼성이라는 제국으로 올라가는 사다리는 결국 우리가 만들었다. 이제 그 사다리를 걷어 치워야 한다. (사진: Horia Varlan CC BY, 원본을 번경)
삼성이라는 제국으로 올라가는 사다리는 결국 우리가 만들었다. 이제 그 사다리를 걷어치워야 한다. (사진: Horia Varlan CC BY, 원본 번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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