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가 ‘탱크주의’를, 삼성이 ‘또하나의가족’을 내세우던 때가 있었다. 그걸 보고 누군가 그랬다. 기업 이미지 마케팅이란 본래 결점을 덮기 위해 하는 거라고, 역설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요컨대 대우 제품은 내구성에 문제가 있고, 삼성은 인간미가 부족하다는 뜻이라고.
나는 두산의 ‘사람이 미래다’ 광고를 볼 때마다 저 대우와 삼성의 옛 광고가 떠오른다. 나의 첫 직장, 내 20대의 거의 마지막 2년 8개월을 보낸 곳, 두산을 나는 전혀 ‘사람이 미래’인 곳이라고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두산에 입사하자마자 들은 기업의 비전은 ‘투지 전략’이라는 거였다. 처음에는 투지(鬪志) 전략인가 했는데, 알고 보니 2G 전략이었다. “Growth of people, Growth of business.” 사람이 성장해야 기업도 성장한다는 표어였다. “우리는 사람에게, 그러니까 ‘신입사원인 너희들’에게 투자하겠다”는 거였다. 두산이 한국중공업(두산중공업)에 이어 대우종합기계(두산인프라코어)를 인수해 자신감이 넘칠 때였다. 나도 따라 자신감에 넘쳤다.
그러나 입사 후 실무를 하면서 겪은 두산은 좀 달랐다. 내가 느낀 두산은 인사보다 재무와 회계가 더 중요한 회사였다. 박용만 회장 자신이 외환은행에서 처음 직장 생활을 하고 두산으로 옮겨와 재무 관련 업무를 주로 담당했던 ‘재무통’이다. 외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국내 그룹의 대표를 맡은 제임스 비모스키 ㈜두산 대표이사 부회장도 맥킨지 그룹 출신의 재무통이다. 밥캣 등 해외 유명 기업을 인수하면서 두산 그룹이 중용했던 인물들도 주로 재무통들이었다.
물론 인사 평가 시스템을 제네럴일렉트릭(GE) 식으로 바꾸는 등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건 ‘미래’인 사람을 키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 ‘현재’의 사람을 평가하기 위한 것이라는 느낌이었다. 내가 좋아했던 어느 팀장님이 “좋은 아이디어가 있다. 100만 원만 예산을 투자해주면 괜찮은 판촉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할 때도 “그럴 돈이 없다”고 딱 자르던 회사다. 재무 눈치를 보느라 돈 100만 원에 벌벌 떠는 회사였다.
가장 먼저 줄인 건 ‘사람’ 키우는 교육비
아니나다를까 실제로 회사가 재무적으로 어려워지자 가장 먼저 줄인 것이 직원들 교육비였다. 사이버 강의 수강 가능 횟수를 줄였고, 일정 수준 이상 성적이 안 나오거나 사이버 강의 출석률이 부족하면 강의료를 토해내게 했다.
언젠가는 부서마다 웬 연명부가 돌아다니기도 했다. 한미 FTA의 조속한 국회 비준을 위한 서명운동이라는 글씨가 위에 큼지막하게 쓰여 있었다. 팀장부터 시작해 연차 순으로 앉은 책상 위로 그 종이뭉치가 전달됐다. 물론 ‘전 직원은 반드시 서명하시기 바랍니다’라는 강요도 ‘원하는 사람만 하면 됩니다’라는 안내도 없었다. 그냥 ‘위에서 시키는 건가 보다’하고 그저 서명하고 마는 분위기였다. 막내라 팀에서 맨 끝자리에 앉았던 나는 서명을 하는 척만 하고 다음 팀으로 그 뭉치를 넘겼다. 넘겨받은 사람이 “왜 너는 안 했느냐”고 할까 봐 가슴을 조금 졸였던 기억이 난다. 확신할 수는 없지만 아마 박용성 회장이 당시 대한상공회의소 소장이었던 것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짐작됐다.
인수합병(M&A)으로 성장한 기업으로 알려진 두산이 인수합병에 실패했던 기업도 있다. 대우건설을 인수하지 못했다. 입찰에서 더 높은 금액을 썼지만 떨어졌다. 박용오 회장과 박용성 회장이 두산그룹 회장직을 두고 다투다 가족끼리 회삿돈 횡령을 폭로한, 이른바 ‘두산 형제의 난’이 불거지면서 도덕성 항목에서 감점을 받았기 때문이다. (대우건설은 그래서 당시 금호그룹으로 넘어갔고, 다시 독립법인 시절을 거쳐 지금은 산업은행 자본이 인수했다.) 두산은 그때 이후 전 직원에게 기업윤리 교육을 의무화했다. 나는 좀 의아했다. 회삿돈을 자신들 가족의 경비로 쓴 것은 오너들인데 왜 애꿎은, 그 ‘미래’라는 직원들이 업무시간을 쪼개 기업윤리 교육을 받아야 할까. 연봉계약서에 “이 연봉은 모든 제반수당을 포함한 금액”이라고 쓰여 있어서 아무리 연장근무에 야근을 해도 초과근무수당따윈 주지 않는 그 회사에서.
잊을 수 없는 목소리 “나 짤렸어”
촛불집회가 끝없이 이어지던 2008년 8월 어느 날 나는 두산에서의 마지막 출근과 마지막 퇴근을 했다. 거기서 만난 좋은 동기들과 좋은 선배들, 좋은 후배들을 뒤로하고.
그리고 운 좋게 연합뉴스에 합격해 2008년 12월부터 수습기자로 일하게 됐다. ‘사쓰마와리(察回)’라고도 하고 ‘하리꼬미’라고도 하는, 100일 남짓의 사건 수습 과정을 지내느라 전 직장 동기들과는 연락도 못했다. 바로 그 2008년 12월에 내가 얼마 전까지 몸담고 있던 조직에서는 그 무섭다는 구조조정이 있었다는 사실을 나는 몇 달이나 지난 뒤에야 알게 됐다.
보통 구조조정과는 또 다른 듯했다. 일반적인 구조조정은 임원 일부와 과장급 이상 관리직 다수를 내보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내 동기들은 기껏해야 3년 차 사원이었는데, 두산이 겨눈 칼날은 그들도 비껴가지 않았다. 스물예닐곱에서 서른 정도였던 내 동기들 일부는 졸지에 직장을 잃었다. Growth of people, Growth of business를 내건 그곳에서. 사람이 미래라는 그곳에서. 오랜만에 옛 회사 앞을 찾아가 동기 하나에게 “회사 앞인데 잠깐 보고 커피 한잔 하자”고 전화했다 들은 “나 잘렸어”라는 음성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사람이 미래다’ 단 파업하는 노동자는 빼고
세월이 지나 기자로 일하던 어느 날, 박용만 회장과 트위터를 하던 누군가의 사연을 보게 됐다. 아들이 아파서 속상하다고 트위터에 올렸더니 박 회장이 아들 주라며 야구선수 김현수가 서명한 공과 굴삭기 장난감을 보내줬다는 것이다. 그는 “이분은 보여주려고 그러는 게 아니라 진짜 좋으신 분”이라며 감동했던 것 같다. 하지만 내 뇌세포 속에서 박용만 회장은 ‘진짜 좋으신 분’ 같은 어구가 아니라, ‘구조조정’이라는 낱말이나 “나 잘렸어”라는 수화기 저쪽의 목소리와 이어져 있다.
프레시안 보도에 따르면 박용성 회장을 재단 이사장으로 두고 있는 중앙대가 박 회장을 채권자로 한 파업금지 가처분 신청서를 내고 청소노동자가 파업을 하려면 1인당 100만 원씩을 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심지어 파업이 아니라 단순히 유인물을 배포하거나 벽보(아마도 대자보)나 펼침막을 걸 때도 매번 100만 원씩을 내라고 했단다. 사람이 미래라는 그곳에서 말이다. “행복한 사람만큼 곁에 두고 싶은 사람은 없”지만 파업하는 노동자만큼 곁에 두고 싶지 않은 사람은 없는 모양이다.
나는 프레시안 보도를 보고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아주 조금도.
앞으로 기업의 성장 동력은 어디에서 나올까를 생각해 보면
그리고 더욱 치열해 지는 경쟁 구도 속에서 기업들이 살아 남기 위한 성장 동력이
어디에 있을까를 생각해 보면…
파업하는 노동자들… 그들이 주장하는 이야기 속에 기업 성장의 동력이 있다고 본다.
즉 그들이 주장하는 내용들 속에 기업이 가야하는 길이 있는 것인데
그것을 보지 못하고 파업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려 하지 않는 근대적 사고방식
에서 빨리 벗어나지 못하면 그 기업은 도퇴 되라라 본다.
사람이 미래다란 정말 좋은 문구를 내세우고 있지만 정작 저 말속에 숨겨진
참 의미를 보지 못하는 근시안적 기업 마인드로는 미래가 어떻게 흘러가게 될지
미래가 어떤 모습으로 다가오게 될지를 전혀 예상 하지 못할 것이다.
이런 기업은 미래가 없다.
사라질 기업인 것이다.
저도 두산애서 일하다가 나온 사람인데 작년에 퇴사 ㅎㅎ; 공감가는부분이 많네요…ㅎ
사람이 미래다 광고가 참 아이러니하죠 앞이 한글자 더 붙어야 할것 같은데 말이죠. 내 사람이 미래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