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노 인터뷰] ‘지리산포럼’을 준비 중인 김누리(지리산이음). 언제든 떠날 수 있다고 여긴 곳에서 어느새 9년. (⏰12분)
여는 말: 일년마다 가는 소풍
‘변화이면’, 올해 10월 1일부터 4일까지 지리산포럼의 주제다. 사실 난 어떤 거창한 주제에 별로 관심이 없다(그런 주제가 중요하지 않다는 건 아니다). 그저 거기에 지리산이 있고, 지리산포럼이 있고, 지리산포럼을 준비하는 지리산이음 스태프들이 있고, 또 거기에 찾아오는 조금 익숙해진, 대개는 낯선 사람들이 있어서 나는 거기에 간다.
지리산포럼은 나에겐 일 년에 한 번씩 가는 소풍 같은 곳이다. 낯선 사람들과 풍경들. 조금씩 익숙하게 변했다. 낯섦과 익숙함, 불편함과 편안함이 교차하고, 그 사이에 기분 좋은 설렘이 깃든다. 물론 그 설렘은 그 첫 순간부터 조금씩 익숙함과 자리를 바꾸며 사라진다. 나는 마치 빨강머리 앤이 자라는 모습을 보며 기쁨만큼이나 슬픔을 느끼는 마릴라 같다. 놀라움이 사라진 자리에 익숙함의 대가로 쓸쓸한 따뜻함이 남는다. 그러니까 지리산포럼은, 앤이 마릴라에게 그런 것처럼, 나에게도 소중한 시공간이다.
유럽 사람들은 같은 곳으로 휴가를 떠난다고 한다. 대다수가 평생 한 곳으로만 휴가를 떠난다. 이상헌 박사에게 들은 이야기다.
유럽은 노동 바깥에서 정의되는 ‘휴가’라는 독자적인 상징체계를 구성했다. 그래서 일터의 의미를 재구성할 수 있었다. 그런데 한국은 ‘일 바깥’에 있는 상징, 의미 체계가 없다. 그래서 항상 쳇바퀴 도는 이야기만 나온다.
이상헌, ‘유럽의 휴가는 어떻게 삶의 신앙이 되었나’, 슬로우뉴스 (2024.03.01)
3박4일에 불과하고, 미디어 제휴 관계라서 휴가는 아니지만, 나에게 지리산포럼은 그런 곳이다. 올해 간다면 4년째다. 매년 9월 말에서 10월 초면 나는 지리산에 간다. 거기에 있는 나는 평소 나와 좀 다르다. 조금 더 나 자신이 낯설고, 조금 더 유년과 청년 시절의 흔적에 가깝다. 거기에 있는 나는 미래보다는 과거에 더 가까운 것 같다. 거기에 있는 나는 여기에 있는 나를 완전히 새롭게 다시 돌아보게 한다.

산내면.
2천 명쯤 사는 작은 시골 마을.
12년째 진행하는 숙박형 포럼.
호텔이나 펜션이 아니라 마을 숙소에서 머물 수도 있다.
뱀사골이 유명하고, 실상사라는 사찰이 유명하다.
지리산포럼을 준비하는 ‘누리’는 지리산포럼을 궁금해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한다고 했다. 평범한 설명이다. 특별할 거 없다. 그런데 사람도 그렇지 뭐. 다들 평범하고, 또 누구나 특별하다. 산내면 동네 카페 ‘토닥’에서 커피 뽑는 알바로 2017년부터 시작했다. 그게 계기가 됐다. 이런 우연은 지난 다음 돌아보면 그 우연의 평범함 만큼이나 신비롭다. 그 우연 혹은 신비가 지리산이음스태프로 9년째 이어지고 있다.
누리와 생각나는 대로 대화했다. 주제를 정하지 않고 그저 떠오르는 대로. 평범한 이야기, 누구나 한 번쯤 겪었을 추억, 별로 특별하지 않은 원망과 바람. 나는 그 평범함 속에 희미하게 반짝거리는 걸 생각한다. 그걸로 누구나 자신만의 단단한 보석을 만들어야 한다.

📢 인터뷰는 2026년 8월 25일(화) 진행했습니다. 질문은 소제목과 본문에 맥락화하고, 전체 인터뷰는 인터뷰이(김누리)의 일인칭 독백투 문장으로 정리했습니다. 독자들이 좀 더 편하게 읽기를 바라는 취지에서 그리고 인터뷰이에게 좀 더 집중하기 위해서입니다. 초벌 정리는 인터뷰어(민노)가, 최종 퇴고는 인터뷰이도 참여했습니다.
9년 동안의 변화
9년 동안을 통으로 보면 좀 변한 것 같아요. 제일 큰 건 성격이 좋아졌다? 넉살이 좋아졌다? 웃어넘기는 일이 많아졌달까. 어릴 때부터 항상 무표정한 아이였어요. 일하면서도 주로 사무실에 있었지, 사람들이랑 말하는 건 일을 위해 인터뷰 할 때 정도? 그러다가 지리산포럼에서 역할을 더 맡게 되면서 달라졌어요. 오신 손님들에게는 내가 ‘스태프’니까, 내가 마치 주인 같은 거랄까? 자아 비대인가? (웃음) 그런 생각을 하게 됐어요.
잘하고 싶은 마음.
내가 좀 변했네, 스스로 생각하는 게… 몇 년 전에 지리산이음이 지원사업을 위주로 활동하던 때에 한 지역 활동가의 활동이 담긴 리포트를 보고 있는데, 내가 그 사람을 잘 아는 것 같은 거 같은 느낌이 드는 거에요. 그분은 절 잘 모르는 것 같고. 보고서를 통해 그 글 속에서 활동하는 다양한 사람들을 알지만, 그분들은 사무실 콕 박혀서 일하는 나란 사람을 잘 모르겠지 하는 그런… 그런 느낌이 있던 차에, 지금은 마을에서 청년 활동도 하고, 여성주의 활동도 하고… 사람들이랑 관계 맺으면서 다양한 활동을 하니까, 확실히 좀 변했어요.

본인의 가장 좋은 모습으로
그 활동의 뿌리가 뭘까 생각해 보니까, 그런 마을 활동을 하기 전까지는 나란 사람은 산내를 언제든 떠날 수 있는 곳으로 생각하고 있었더라고요. 왜냐하면 나는 서울에서 대학을 다녔고, 공연에 관한 공부를 했었고, 산내에서는 그런 공연을 볼 수는 없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산내를 언제든 떠난다고 생각하진 않는 거죠.
산내에 찾아오는 청년들이 급 늘었던 시기가 있었어요. 아주 활동성이 높았던 친구들도 있었는데, 비거니즘(Veganism)을 실천하기도 하고, 면 단위 최초로 퀴어 축제를 열기도 하고, 마을 기성세대와 부딪치기도 했죠. 그 친구들 모습을 보면서, 잠시 여기에 머무는 친구들도 저렇게 열심히 마을 활동을 하는데, 난 전혀 내가 살고 싶은 마을을 만들기 위한 활동을 하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된 거예요. 나란 사람은 4~5년을 지내면서도 항상 언제든 떠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저 청년들은 잠시 머무는 데도 이런저런 활동을 하는 거였죠. 그래서 속으로 나도 좀 활동해야 하나 생각했어요.

산내에는 성평등한 마을 문화를 만들기 위해 활동하고 성폭력 사건이 일어났을 때 대응을 지원하는 여성 단체가 있어요. 그 단체에서 몇 차례 저에게도 같이 해보자고 한 적이 있었거든요. 그 깨달음 이후에 제안이 한 번 더 들어와서 합류하게 되었죠. 그 이후로 여러 마을 활동을 하면서 차차 태도가 변한 것 같아요. 아빠가 3년 전에 돌아가셨어요. 말기 암이었는데, 대응하기 어려운 시점에서 알게 됐어요. 그 병을 알고, 3개월 뒤에 돌아가셨어요.
불편한 부녀 사이였는데, 그렇게 되니까 미워했던 마음이 부질없더라고요. 그때부터는 좀 더 마을을 떠나기가 어색해진 거죠. 내가 해야 할 일이 있고, 내 터전이 여기에 있다는 생각이 처음 들었어요. 실은 아빠가 돌아가셨을 때, 장례식에 누구를 불러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대학 때 친구들도 거의 안 불렀어요.
나중에 생각해 보니 그게 계기가 되었던 것 같아요. 사람들이 오고 안 오고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사람들이 와도 되나? 당시에 내가 불러도 될 것 같은 사람이 없었고, 그게 좀 충격이었던 것 같아요. 계속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싶었던 거죠.
이 일이 좋은 건, 나는 여전히 산내에 계속 살고 있는데, 산내에 찾아오는 새로운 사람들을 계속 만날 수 있다는 거예요. 지리산포럼이든, 다른 프로젝트든 그분들은 ‘본인의 가장 좋은 모습’으로 여기에 오는 것 같아요. 가장 친절하고 가장 열려 있는 모습으로요.
활동가로서의 정체성
있긴 한데, 어느 범위로 이야기하느냐에 따라 다른 것 같아요. 내가 개인의 영달을 위해서만 일하는 건 아니니까. 그러면 활동가 아닌가? 속으로 생각하죠. 제 생각에 활동가의 ‘스테레오 타입’은 뭐랄까… 힘들게 산다? 나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서 힘들게 산다? 그런데 자신 있게 ‘나 활동가야’라고 말하기엔 나는 좀 무지하다, 그런 게 있는 거죠. 세상의 부조리에 대해서 내가 충분히 알고 있나? 법률에 대해 알고 있나?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어요.
잘 알아야 활동가 역할을 할 수 있냐고요? 꼭 그렇지는 않지만, 내가 하는 일은 많은 사람들을 연결하는 일, 서로 만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서 지금 하는 일이 덜 외롭게 느껴지고 더 새로운 방식을 시도할 수 있도록 자극하는 일인데, 그래서 이왕이면 아는 게 많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일의 특성상 ‘얕고 넓게라도 알아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해요.

예를 들면 포럼을 기획할 때도 알아야 하는 게 많잖아요. 예를 들면 AI에 대해서도 누가 어떤 관점에서 무슨 이야기를 해줄 수 있는지 알고 이야기하는 ‘기회’를 사람들과 연결해야 하니까. 더 깊이 있게 공부하고 싶은 갈증이 있어요. 물론 어떤 분야의 전문가만 그 분야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그런 면에서 스스로 부족함이 느껴진다는 거죠.
지리산포럼이 지금까지 사무국 위주로 기획되었는데, 거기서 오는 한계가 있다고 느꼈어요. 몇 년에 걸쳐 협력 기관을 늘리고, 올해는 새로 위원회 체제를 만들고 조력을 받으면서, 앞으로는 기존에 지리산포럼이 다루던 범위에서 좀 더 확장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관심사…’가족구성권’
내 삶에서 출발했을 때, ‘가족구성권’인 것 같아요. 나이가 30대 중반이라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또래 친구들이 요새 결혼을 많이 했어요. 그런 상황에서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그런데 나는 누구하고도 결혼을 생각하기 어려운 사람인 거예요. 법적으로 규정된 가족의 형태가 협소하고, 그렇게 구성된 가족에게 돌봄의 의무를 부여하고 있잖아요.
엄마와 동생이 있지만, 동생은 언제든 떠날 수 있고, 엄마는 나이가 드실 거고. 그러면 나는 어떤 ‘가족’을 만들고 돌봄을 주고받을 수 있지? 그런 고민에서 출발해서, 올해는 가족구성원연구소 활동하시는 분을 초대해서 강연을 열기도 했어요. 지리산이음은 사업을 나눌 때 마을, 지리산권, 전국 이런 식으로 구분하기도 하는데, 제가 맡고 있는 마을 사업은 그런 방식으로 기획되는 경우가 많아요. 내가 살고 싶은 마을, 나 같은 사람들이 잘 살 수 있는 마을을 만들고 싶은 바람이 있는 거예요.
청년들에게 마을이 어떤 존재라면 좋을지, 여성들에게는 어떤 마을이라면 좋을지. 그렇게 생각했을 때, 그 강연에 어떤 사람들이 오는지가 중요했던 것 같아요. 처음에는 이른바 ‘정상가족’을 이루고 있는 분들이 이 강연을 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대부분 ‘정상’에서 거리가 먼 분들이 오신 거죠(웃음). 여기서 ‘정상’이라는 건 국가나 사회가 제시하는 어떤 기준을 말하는 거예요. 일테면, 여성 1인 가구나, 위탁가정을 하고 계신 분들이나. 그런데 오히려 더 좋았던 것 같아요. 동질감을 느꼈어요.

청년과 여성에게 마을은 어떤 곳일까
내가 ‘산내’라는 마을을 생각했을 때 떠오르는 ‘마을’은 귀촌한 50대 후반의 남성 모습인 것 같아요.
- 귀촌 1세대
- 지금 청년 세대
- 청소년 세대
- 연고가 있는 경우, 또 없는 경우…
다 모습이 다르고 갈등이 있어요. 선주민과의 갈등도 있겠고요. ‘마을’이라고 말할 때마다 떠오르는 상이 다 달라요. 아까 말한 ‘청년에게 마을이’ ‘여성에게 마을이’라고 할 때 떠오른 모습은 제가 여기서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의 총합인 것 같아요.
평균이라는 게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산내라는 농촌 마을은 여성으로서, 청년으로서 살기에는 그렇게 나쁘지 않아요. 감수성이 떨어지는 말을 하려다가도 ‘그래도 이런 말 하면 안 되지?’ 하는 식의, 그런 건 있는 것 같아요. 그게 저에게만 적용되지는 않았으면 좋겠는 거예요.
저는 여성이고 성소수자인 반면에 이 마을에서 어릴 때부터 자라 오면서 쌓은 역사와 관계가 있고, 직장이 있고, 집과 가족이 있어요. 저와 비슷한, 그런데 마을의 커뮤니티에 속해있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산내가 ‘나쁘지 않은’ 곳이라면 좋겠어요. 그중 하나로 정보가 평등하게 전달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일례로, 이장 회보라는 게 있어요. 이장님들은 격주로 면사무소에 모여서 회의하고, 면사무소에서 만드는 자료를 받아요. 그 자료에는 지원사업부터 해서 주민들에게 알려야 하는 많은 정보들이 실려 있어요. 그런데 모든 이장님이 모든 주민에게 그 소식들을 알려주지는 않아요.
우선 이장님들의 성격과 역량에 따라 안내가 전달되기도, 전달되지 않기도 하고요. 마을 단톡방에 초대되지 않은 사람들, 일인가구나 뜨내기로 취급받는 청년들도 있지요. 그게 여전히 마을이 사람을 ‘가려서’ 대하는 모습이에요. 그렇게 알게 된 자료들이나 마을 ‘밴드’에 올라오는 행사 소식들은 다 인쇄해서 토닥에 비치하려고 해요.

산내의 젠더 감수성? 3점! ㅎㅎ
최근에 “산내의 젠더 감수성은 몇 점이냐”고 누가 물어봐서 5점 만점에 3점이라고 별 각 없이 이야기했거든요.
물론 제가 좋아하는 산내의 모습들이 있죠. 덜 소비하고 더 나누려고 하는 사람들의 ‘사랑스러움’이 있는 것 같아요. 자원순환가게 ‘나눔꽃’이라는 곳을 좋아하는데요, 도시로 치면 아름다운가게 같은 곳이죠. 내가 쓰지 않는 물건들이 다른 사람에게 가서 쓸모를 찾을 수 있도록 하는 공간이에요.
산내는 라오스나 태국에서 계절노동자들이 오시는 편인데, 그분들도 이용하시는 모양이에요. 그분들이 알아들으실 수 있는 언어로 쓰인 안내문이 생겼는데, 그게 보기 좋았어요. 제가 산내에 계속 살고 싶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여러분 당장 여기 와서 사세요!’ 그런 건 아니라는 거죠. (민노씨: 천국은 아니라는 거죠?) 천국이 어딨어요?

슬펐던 일,
토닥을 다시 오픈하면서, ‘10년 후의 산내를 그려보자’ 하고 소셜 픽션(특정한 주제 또는 공간에 대해 제약조건 없이 이상적인 미래를 그리는 프로그램)을 했는데, 야심 차게 준비했는데 사람들이 생각만큼 안 왔어요. 그래서 엄마 앞에서 엉엉 울었어요. 기대가 너무 컸나? 어떤 식으로 해야 사람들이 오는지 그때는 잘 몰랐고, 그분들이 정말 오길 원했다면 전화라도 했어야지, 지금은 그렇게 생각해요.
그리고 기뻤던… 진주 ‘다원’에서 생긴 일
가장 기뻤던 일은…없어요. (민노씨: 저는 최근에 우연히 ‘현을 위한 아다지오’라는 곡을 듣게 됐는데, 곡은 너무 슬펐지만, 아주 기뻤어요.) 아, 그런 일이라면 있어요. 요즘 들어 주말에 계속 일이 있었는데요. 최근에 비교적 시간이 자유로운 주말이 있었어요. 토요일 아침에 ‘아, 오후부터 내일까지 시간이 자유로우니 진주에 가야겠다!’ 하고 생각했죠. 운전하면 여기에서 1시간 9분 정도 걸려요. 내비에 그렇게 찍혔어요. 저렴한 숙소에서 자고 술이나 한잔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진주에서 영화 ‘오디세이’를 보고, 그 앞에 ‘다원’이라는 바에 갔죠. 입구에 손 글씨로 뭔가 감동적인 말이 써 있었어요. “다원의 문을 열고 들어오고 나갈 때마다 조금씩 자라 어른이 되어 갑니다.” 들어갔는데, 사장님 인상이 너무 좋았어요. 마실 것도 아주 많았어요. 80년대에 시작한 바라는데, 지금 대학생인 여성 손님들이 아주 진지하게 서로 고민을 이야기하고 있더라고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아주 기뻤던 것 같아요. 좋은 기분으로 나와서, 다음에 또 가야지. 그랬어요. 이 바가 사라지면 진주 사람들이 슬퍼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토닥이 사라져도 슬퍼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그런 생각도 해요.


10년 후의 산내
항상 하고 싶은 말이 확실하지는 않아요. 그럴 때는 많지 않아요. 사람들이 평소에 말하지 않는 생각들을 공유하는 것. 그걸 보고 싶은 게 커요. ‘소셜 픽션’에 왔던 사람들이 산내에서 해보고 싶다고 말한 건, 대개 아주 작은 것들이에요. 어떤 분은 음악을 같이 듣고 싶다고 했어요. 산내에서 문화 예술을 즐기는 데 좀 부족함을 느끼셨나 봐요.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 함께 듣기, 그런 공부 같은 모임을 하고 싶어 하셨죠.
그런데 몇 회 안 하고 모임 형태가 전환됐어요. 그냥 주제에 맞춰 같이 듣고 싶은 노래를 가지고 와서 그걸 함께 들었어요. 그리고 ‘민원 넣기’ 모임을 한다거나. 그건 소규모로 지금까지 하고 있어요. 면사무소 직원들은 전주에 살고, 꼼꼼하게 마을을 보지 않으니까. 우리는 그걸 자세히 봐요. 겨울에는 어느 길이 매번 땡땡 얼고, 비가 오면 어느 곳이 물웅덩이가 생기는지. 매일 살아봐야 알아요. 이러다가 애들 다치겠다, 그런 곳들이요.
버스도 증차해 달라는 이야기를 매번 하지만, 쉽지 않은가 봐요. 이번 주 금요일에는 그런 거 해요. 지방자치법이 개정되면서 주민자치회 참고 조례가 새로 생겼다고 하더라고요. 우리가 사람들이 이런 건 좀 알고 있어야 한다, 하는 마을 분들이 계셔서 같이 공부해 보자고 사람들을 모으고 있어요. 그걸 같이 하자고 독려하고, 공간을 만들어 드리고. 그런 걸 잘하면 되지 않나? 생각해요.
10년 뒤에 그렇게 주민자치회 같은 게 잘 되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죠. 물론 10년 뒤 미래가 잘 그려지지는 않아요. 하지만 이런 사람, 저런 사람들과 그때까지 함께 하면 좋겠다고 생각하죠. 요즘은 조금씩 산내를 떠나는 분들도 있거든요. 남원 시내로 떠나는 분들도 있어요. 일자리나 편의나 병원이나 이런 것들 때문에. 멀리 떠나는 것도 아닌데, 괜히 서운한 마음이 들 때도 있죠. (만약에 내가 터를 옮기려고 한다면, 가장 중요한 건 직장일 것 같기는 해요.)

지리산포럼 참석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
마지막 날 오전에 꼭 참석자들과 함께 지리산포럼을 회고해요. 피드백 분석을 해보기도 하는데요. 흥미로운 점들이 있어요. 대단한 분들이 오셔서 강연하는 것을 좋게 들었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게 나를 바꾼 경험이었다’ 하는 소감들은 꼭 큰 이야기에서 오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 숙소를 함께 썼던 사람들과의 작은 에피소드,
- 땡땡이치면서 나눈 개인적인 이야기,
- 그런 순간에서 온다는 걸… 알게 된 거죠.
그런데 처음에 제가 좀 유식해져야 한다는 강박이 있다고 했잖아요(웃음). 사람들이 서로서로 만들어주는 예상하지 못한 어떤 좋은 것들, 그런 가치가 있구나. 우리가 기획하지 않아도 그런 것들을 찾으시는구나.
저는 지난 포럼에서는 민노씨랑 자유가 함께 쓰레기 버리러 간 거, 그런 게 좋았던 것 같아요. 포럼이 생각보다 규모가 좀 크잖아요? 행사장이 마을 여기저기 흩어져 있기도 하고, 사람들이 계속 챙겨야 하는 게 있거든요. 그러다 보면 화장실이 더러워져 있는데 저희가 발견 못 하기도 하고, 그러면 단골처럼 매번 오는 분들이 저희 대신 챙겨주시기도 하고, 챙겨 놓고 심지어 우리한테 말하지 않기도 하거든요 (말하지 않을 정도로 포럼 참석자들이 스스로 주인처럼 행동한다는 의미: 편집자). (웃음)

30 대 6의 추억
야구를 좋아해요. 원래 스포츠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어요. 야구를 본 적이 없다고 하니까 마을에 사는 친구가, 기아 타이거즈를 좋아하는 친구였는데, 티켓팅을 굉장히 어렵게 해서 데려가 주셨어요, 기아가 경기를 아주 잘했던 해라서요. 그런데 하필 그 경기에서 30 대 6으로 진 거예요. 광주가 연고지이기도 하고, 짠한 맘에 그날부로 기아 팬이 됐어요.
옛날부터 운동 경기를 아예, 올림픽도 보지 않는 집이었는데요. 그렇게 알게 된 야구의 좋은 점은 현대인에게 규칙적으로 도파민을 제공한다는 거예요. 어제는 월요일이라서 (야구가 없는 날이라서) 재미가 좀 없더라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