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중립은 힘이 세다’ 제안한 김성해 대구대 교수, “분단의 모순 구조를 흔들자”
영원한 동맹도 영원한 적도 없다. 진부하지만 냉혹한 진실. 미국에 대한 한국인의 ‘감정’은 더 역동적이다.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다. 최신 조사. 20여 년 만에 처음으로 미국에 대한 비호감이 절반을 넘었다. 미선이 효순이 사건 직후(2003년)보다 높다. 무려 55%.
퓨리서치 ‘2026 세계 태도 조사’(3월 3일~4월 4일, 한국 성인 1045명) 결과다. 한국인 57%만 미국을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로 평가했다. 조 바이든 정부 땐 83%였다. 미국이 세계 평화나 안정에 ‘크게’ 혹은 ‘상당히’ 기여한다는 응답은 47%로 낮아졌다. 2023년엔 74%였다. 트럼프의 관세 정책에는 85%가 부정적으로 답했다. 이란에 대한 미국 대응도 마찬가지. 부정 답변이 73%다.
그럼에도 한·미 동맹의 중요성에 관한 인식은 확고한 편이다. (트럼프 하는 짓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감정과 (냉혹한 현실에서 미국과 함께해야 한국에 유리하다는 현실에 관한) 인식은 다르다. 한국인 84%가 미국을 가장 중요한 동맹으로 인식했다. 지난해엔 89%였다. 약간 낮아졌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매우 높다.
서설이 길었다. 김성해의 책 ‘중립은 힘이 세다’(2026, 개마고원)는 ‘DMZ 회랑’이라는 한반도 중립지대 구상을 담은 책이다. ‘DMZ 회랑’은 가능할까. 중국과 저 태평양 너머 미국 그리고 러시아와 일본, 그 한가운데 한국이 있다. 미국은 한국 전쟁 이후 냉전 시간에는 러시아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한 번, 그리고 90년대 이후 경제 대국 일본을 견제하기 위해 두 번, 그리고 지금 다시 AI 헤게모니 쟁탈에서 중국과 싸워내기 위해 한국을 전략적 파트너로 삼았다.
한국 자체의 역량은 별론으로, 미국이 ‘전략적으로 키워야 할 파트너’로서의 그 지정학적 좌표, 그 정치적 좌표는 성장을 위한 축복이었다. 그리고 그 축복이 치러야 할 대가는 분단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잊힌 분단이라는 조건은 여전히 많은 곳에서 뒤틀린 채 파열음을 내고 있다.
각설하고, 한국의 ‘중립 외교’는 가능할까. 더 나아가 ‘중립지대 구상'(DMZ 회랑)이라는 좀 더 능동적인 정치 외교 노선은 그 씨앗을 뿌리고 피어날 수 있을까. 김성해는 가능하다고 말한다.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나는 ‘레드팀’ 역할을 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김성해의 아직은 꿈에 가까운 그 ‘구상’을 독자들이 현실적으로 고민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 인터뷰는 2026년 8월25일 진행했다. 질문은 소제목 등으로 맥락화하고, 인터뷰이(김성해)의 일인칭으로 인터뷰를 다시 정리했다. 독자의 가독성을 위해서다. 초벌 정리는 인터뷰어가 담당했고, 최종 퇴고에는 인터뷰이도 참여했다.
‘중립지대’ 구상, 초등학생에게 설명하듯
“박쥐 알지?
박쥐는 날짐승 들짐승을 피해 동굴에서 살아.
들짐승에게도 날짐승에게도 미움받았지.
그런데 생각해 봐.
날짐승도 들짐승도 먹이가 필요하잖아.
두 세계 모두를 아는 박쥐는 날짐승과 들짐승 모두에게 요긴할 수 있어.
누군가를 죽이는 일에 힘을 보태지는 못해도 그 둘을 연결해 줄 수도 있잖아.
전쟁이 끝날 때까지 중간에서 싸움을 말리는 역할도 할 수 있어.
만약 그랬다면 전쟁이 끝난 뒤 날짐승과 들짐승 모두에게 인정받았을 거야.
그랬다면 모두에게 버림받아 어두운 동굴로 쫓겨 갈 필요는 없었겠지.
아저씨는 그 박쥐가 한국이랑 비슷하다고 생각해.”

‘중립지대’ 구상의 출발점
미국 유학 시절이었다. 외환 위기가 왜 일어났는지 궁금했다. 오랫동안 파고들어 공부했다. 결론은 한국 경제의 체질 문제보다는 ‘달러 시스템’ 문제라는 것. 그리고 달러 시스템은 하나의 질서라는 걸 깨달았다. 금융 질서이자 안보 질서이고, 담론 질서라는 것. 그 고민과 문제의식을 ‘지식 패권'(2019)이라는 책에 담았다. 한국 사회는 어디로 가야 하나. 어떻게 해야 좀 더 안전할까. 어떻게 해야 사람들이 일한 만큼 보상받을 수 있을까. 계속 고민했다.

언론을 공부하면서 부딪힌 인식. 한반도는 뜨거운 감자구나. 미국과의 관계. 국제 질서에서의 한국. 그렇게 쓴 두 번째 책이 ‘벌거벗은 한미동맹'(2023)이다. 그리고 지난해엔 ‘제국 없는 제국주의 시대'(2025)란 책도 냈다. 이번에 낸 ‘중립은 힘이 세다’는 ‘지식-한미동맹-제국-중립’으로 이어지는 4부작의 종착점에 해당한다. 한국은 일제 식민지에서 벗어났지만, 미국에 의해 또 다른 예속 상태에 있다. 그 문제를 파고들다 보니까 미국 이후를 준비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자연스럽게 고민이 닿았다.

중립, 중립국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중립지대 한반도’가 필요하다는 생각은 그렇게 태어났다. 중립지대 이야기를 불쑥 이야기하면 좀 뜬금없다. 그래서 현재의 질서와 과거를 돌아봐야 한다. 지금도 답은 중립밖에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적지 않다. 하지만 중립에 관해 제대로 이야기하는 사람은 드물다. 그래서 이 책을 썼다.
AI 시대의 ‘DMZ 회랑’
중국과 한국은 디커플링 할 수 있나? 미국과 한국이 그런 것처럼 불가능하다. 물론 한때 공산주의를 강제적으로 디커플링 할 수 있는 시대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미국도 중국도 러시아도 온전한 의미에서 디커플링 하는 건 불가능한 시대다. AI 시대, 지식을 매개로 하는 미디어, 전 세계를 움직이는 에너지에도 모두 적용된다. 디커플링은 불가능하다. 모든 것은 이미 연결됐다.
기본적으로 미국이 원하는 게임의 규칙은 한국을 자신의 구도에 편입하는 것이다. 한국 기업의 딜레마도 거기에 있다. 디커플링이 가능했던 시대에는 미국과 유럽만 상대해도 충분했다. 하지만 이제 한국 기업들의 ‘사이즈’도 미국과 유럽 시장만 상대하기엔 덩치가 커졌다. 세계를 상대해야 하고, 그래야만 생존하고 발전할 수 있다.
IMF 이후 한국이 왜 쪼그라들었나. 미국이 한국을 자신의 1차 밴더 역할로 한정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크게 성장할 수 있는 기업들이 있었지만, 삼성과 SK 그리고 현대 같은 대기업 몇 개를 빼곤 쪼그라들었다. 한국이 미국에 받은 수혜는 경제 성장 초기에 한정된다고 본다. 초기 경쟁력을 갖추기 전에는 미국 원조가 큰 도움을 줬다.

하지만 어느 순간 한국의 덩치가 커지면서 미국과 유럽 시장만을 상대하기에는 이익보다 손해가 커지는 규모가 되었다. 현재의 구도에만 만족한다면, 한국은 미국의 하청 기업에 머물게 된다. 러시아와 중국에 진출할 수 있어야 하고. 물론 미국과 중국 중 반드시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팔다리를 자르는 아픔과 손해에도 미국을 선택해야 하지만, 그런 상황을 피할 수 있다는 게 내 ‘중립지대 구상’의 핵심이다.
기존의 진영에 갇혀 스스로 위축되는 쪽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스스로 규모를 키우고 그 규모에 맞는 게임을 능동적으로 만들 것인가. 그래서 연착륙이 가능하다면, 한국 기업은 ‘중립지대 노선’을 반대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한국은 글로벌 공급체인에서도 핵심을 차지하는 분야, 독점적 경쟁력을 가진 분야가 많다.
기본적으로 미국과 중국의 AI 패권 경쟁의 구도는 한국에 가장 유리한 게 사실이지만, 거대 양국이 초래한 긴장 관계의 유익만 챙기는 구조이기도 하다. 현상 유지하자는 현실론도 일리는 있지만, 이런 긴장 관계 당사국인 미국과 중국이 이런 구도 속에서 수혜만 받아 먹는 한국을 가만히 두고 볼 리 없다. 지금과 같은 현상 유지가 가능하면 이대로도 좋지만, 미래를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준비할 필요가 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중립지대 구상, 중립지대 노선이다.
누가 ‘첫 목소리’ 낼 것인가
정부가 하면 좋겠지만 각종 조약에 묶여 있다. 당장 미국 눈치를 봐야 하고 여론도 살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중립지대 구상을 선도할 순 없다. 강원도가 2022년 춘천과 홍천에 한중문화타운을 만들려고 했다가 구상 단계에서 철회한 적도 있다. 엄청난 혐중 정서를 이겨낼 방도가 없었다. 기업도 대놓고 하기엔 운신의 폭이 좁다. 실재로, 중국에 엄청난 투자를 했다가 멈춰버린 기업들이 많다.
미국이라는 우산 속에서 1등이 아닌 2등에 머무는 선택에 머물 것인가, 아니면 기회를 적극적으로 이용해야 할까. 오히려 기업은 중국과 러시아에 기회가 있다는 것을 안다.

이런 교착 상태에서는 ‘시민 외교’가 해법이다. 시민사회에서 첫 단추를 잘 끼우면, 이해관계를 맺은 분야, 정치권, 학계, 언론계, 경제를 포괄한 많은 분야에서 그 중립지대 화두가 확산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그러나 미디어의 관점에서 보면, 내가 미디어 학자라서 더 민감하게 느끼는데, 기존 레거시 미디어는 중립지대 구상과 같이 기존 질서에 충격을 줄 화두를 담아내기 어렵다.
하지만 이제는 시대가 바뀌었고, 레거시 미디어의 매체력에 목을 맬 필요 없이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 방식으로 실천할 수 있는 시대다. 그래서 나는 그렇게 하고 있다. 지인들에게 PDF 파일을 만들어서 전하고 있다. 얼마든지 다른 방식으로 기득권의 벽을 뚫고 갈 수 있다. 몇몇 거대 레거시 미디어가 의제를 독점하는 시대는 지났다.
중립지대 구상의 지렛대: 가령 러시아
글로벌 경제 시스템에서 벗어난 나라는 없다. AI 밸류체인의 주요 병목을 한국이 쥐고 있고(특히 메모리), 특히 한국은 제조업, 원자력, 지식과 문화 산업 등에서 미국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크게 빨리 성장했다. 미국과 유럽의 시장을 작아지고 있는데 브릭스와 글로벌 사우스는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앞으로는 더 커질 거다. 미국이 지금은 막고 있는 국가 중에서 한국을 기다리는 곳이 정말 많다. 한국이 채워줄 수 있는 분야가 많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곳이 러시아와 이란 등이다. 전쟁을 하고 있으면서도 한국에 대해 적대적인 정책을 취하지 않는 이유다.
‘중립지대’ 구상? 그 이전 단계의 중립 외교도 아마 미국은 반대할 거다. 그렇지만 한국이 노르웨이나 싱가포르처럼 노선을 가져간다면, 한국을 동맹 그룹에서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려울 걸로 본다. 미국을 제외한 일본, 중국, 러시아는 오히려 ‘중립지대’ 노선을 찬성할 것으로 본다. 핀란드나 스웨덴에서 보듯 중국과 러시아가 표면적으로 반대하는 이유는 ‘중립지대’가 트로이의 목마가 될 수도 있어서다. 러시아가 봤을 때 핀란드와 스웨덴은 실제 말만 중립국이고, 그 실질은 나토의 동맹이었다. 그런 의혹을 제거해 줄 수만 있다면 중국과 러시아는 ‘중립지대’ 구상에서 아주 큰 아군이 될 수 있다.

현재 우리 시야는 한미동맹, 안보라는 높은 봉우리 때문에 다른 건 못 보는 상태다. 그 봉우리를 굳이 깎으려고 하면 저항이 너무 심할 거다. 대안이 없을까? 있다. 역발상으로 생각하면 된다. 다른 봉우리를 쌓으면 된다. 그렇게 되면 다른 언덕에서 볼 수 있는 새로운 풍경을 만나게 된다. 한미동맹이라는 좁은 시선에 갇혀서 ‘중립지대’와 같은 구상에 감정적으로까지 반감을 품는 분들께는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다.
한미동맹이 든든한 보험이라는 건 안다. 그렇지만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다자주의라는 건 위협의 종류도 많아지고 누가 적이고 친구인지 구분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공산주의나 권위주의라는 암에 특화된 보험이 아니고 무슨 병에 걸려도 대응할 수 있는 유연하고 열려있는 보험이 더 필요한 때다. 기존에 있던 보험을 완전히 없애자는 것도 아니고 그 비용을 일부 줄여서 새로운 보험을 들자는 얘기다. 만약 이걸 못 하게 하면 제 몫이 줄어드는 것이 싫어서 고객의 건강을 신경도 안 쓰겠다는 고약한 심보다.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가는 건 상상력이었고, 좀 더 긴 호흡으로 좀 더 먼 시선을 던져 보자는 거다.
한미동맹이라는 ‘기본값’을 넘어
한미동맹이 항상 기본 전제일 필요는 없다. 한미동맹 역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여러 선택지 중 하나로 놓고, 좀 더 능동적으로 국제 질서에 대응해야 한다. 그동안은 항상 한미동맹을 중심에 뒀다. 그래서 중립 외교가 아닌 실용 외교에 머물 수밖에 없던 구조적 한계가 있었다. 그게 그거 아니냐고 말할지 모르지만 분명한 차이가 있다. 실용이나 균형 외교는 ‘한미동맹’이라는 테두리 안에서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중립 외교는 ‘동맹’을 떠나 다른 목적지로 가자는 항로다.
그런데 왜 그동안 하지 않았냐고? 이런 방향성은 도움은 안 된다! 내 몸에 맞지 않은 옷이라서 안 한 거 아닌가? 작은 나라들이나 하는 거 아닌가? 우리는 이렇게 성장했는데 할 필요 있어? 그리고 한미동맹이 있는데 무슨 중립지대야? 이런 목소리들이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보이지 않는 족쇄가 있었다. 북한이 중립노선을 걸었기 때문에 중립 말만 꺼내도 ‘친북’ 또는 ‘빨갱이’ 또는 ‘북한을 이롭게 한다’는 낙인을 받아야 했다. 그렇게 되면 어김없이 국가보안법이라는 채찍이 날아든다.
특히 문제가 되는 건 제7조다. “국가의 존립ㆍ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정을 알면서 반국가단체나 그 구성원 또는 그 지령을 받은 자의 활동을 찬양ㆍ고무ㆍ선전 또는 이에 동조”만 해도 처벌을 받는다. 자기 혼자만 다치는 게 아니라 주변 사람들 모두가 다친다. 그것 때문에 목숨을 잃은 사람도 많고 억울한 옥살이를 한 사람도 많다. 민주화 이후에 좋아지긴 했어도 여전히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으로 처벌할 수 있다.
하지만 이제는 한국은 북한과는 완전히 갈라져 있는 나라다. 서로 간섭할 일도 없다. 어디까지나 국가와 국가 간 거래가 있을 뿐이다. 중립지대에서 ‘우리 민족끼리’가 끼어들 틈은 없다. 각자 이익이 되니까 ‘중립지대’를 만들어서 공존하자는 얘기다. 통일이라는 말도 필요 없다. 각자의 체제를 존중하면서 한반도 전체를 ‘중립지대’로 하자는 말이다. 그래서 ‘중립지대 한반도’의 형태는 ‘코리아 연합’으로 남북은 각자의 체제를 유지하면서 서로 간섭하지 않는다.

우선 트럼프 대통령이라는 현실을 어떻게 봐야 할까. 트럼프가 가능했던 미국적 환경이 있다. 트럼프의 ‘관세’는 한 가정의 아버지가 가족들에게 폭력을 쓰면 벌어지는 일을 떠올린다. 과거, 미국은 잘 살았다. 공짜로 한국을 지켜줄 수 있었고 무역적자를 감수하면서 한국이 수출에서 흑자를 거둘 수 있도록 하는 여유가 있었다.
2026년 트럼프의 미국은 다르다. 이란 전쟁에서 보듯 자신에게 미군 기지를 주고 천문학적으로 무기를 사주던 동맹국(즉 GCC; 걸프 협력 회의, Gulf Cooperation Council)도 못 지켜준다. 제 한 몸 못 지키는 데 막대한 군사비와 빚을 감당할 수도 없다. 결국 만만한 동맹국에 손을 내밀 수밖에 없다. 자신을 못 지켜주니까 이제 군사기지도 안 주고 무기도 안 사겠다고 하니까 주먹부터 내민다.
그래서 청나라 비유를 가져온 거다. 한때 청나라는 미국 못지않은 초강대국이었다. 그러다 유럽 열강이 몰려오면서 구차한 신세가 됐다. 전쟁에 거듭 패하면서 세금을 거둬서 전쟁 배상금조차 제대로 못 갚는 처지가 됐다. 그러니까 조선의 먹거리까지 탐을 냈다. 그게 임오군란 이후에 벌어진 일이다.
당시 청나라는 임오군란이 일어나자 조선에 군대를 파견했다. 임오군란 전엔 조선을 관리 가능한 나라로 파악했지만, 그 기대를 포기하고 군대를 파견했던 거다. 그래서 위안스카이라고 하면 우리는 지금도 ‘떼놈’, ‘청나라’를 떠올리고, 그 이미지는 매우 부정적이다.
정부 차원에서 중립지대 논의가 공식화하면 분명히 미국 정부는 우려와 함께 반대 입장을 밝힐 것으로 본다. 하지만 국민이 목소리를 낸다면 반대할 수는 없다. 싱가포르나 노르웨이 모델을 언급한 이유가 거기에 있다. 주한미군 등 안보나 경제적인 측면에서 모두 수단을 동원해서 압박하겠지만 국민의 입까지 막을 수는 없을 거다.
민주주의에서 선택은 국민이 한다. 국민이 원하는 데 그걸 막겠다고 하면 청나라 꼴이 난다. 독립문까지 세우면서 ‘그간 당한 게 너무도 분하다’고 했던 국민 정서가 다시 반복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 결론은? 국민이 원하면 미국도 어쩔 수 없을 거라는 얘기다.
돌파구
중립화의 열기는 죽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사라지지 않았다. 구조적 모순 속에서 보는 ‘생존 논리’라고 본다면, ‘반미’라는 걸 무서워해서 안 하는데, 효순이와 미선이 사건을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미국과의 관계 재정립에 대한 시대적 요구는 여전하다.
그 촉발제가 뭐가 될지는 모른다. 다만, 정부나 언론이나 지식인이 진실을 있는 그대로 알려주면 변화는 일어날 수밖에 없다. 한미동맹이 내포하고 있는 온갖 불합리, 불평등, 동맹으로 인한 기회비용 등을 제대로 알려주지 않아 국민이 못 느끼고 모를 뿐이다. 그러나 ‘한 두 사람을 영원히 속이고 많은 사람을 잠깐 속일 수는 있어도 많은 사람을 영원히 속일 수는 없는 법’ 그래서 곧 그때가 올 것이라고 본다.
이런 목소리가 정치권으로까지 확장할 수 있다면 이상적이다. 하지만 양당, 그러니까 민주당이나 국민의힘은 못 한다. 조국당이 ‘검찰 개혁’ 이후에 이슈파이팅할 수 있는 것은 평화와 실리다. 정치적 의제로서 ‘중립지대’ 구상을 검토할 만한 세력으로 판단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한반도 중립지대’라는 구상에 대해 머뭇거렸던 사람들에게 내 책이 기폭제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다른 건 바라지도 않는다. 그냥 한번 읽어봐 주세요. 책을 읽기 싫으면 내가 만들 PDF 파일이라도 한번 보면 된다.

물론 이 책의 일차적인 목적 독자는 오피니언 리더다. 그들이 이 책에 담긴 메시지에 공감하고 동의한다면, 그 메시지를 자신의 주변에 전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이 작업을 10년 동안 했다. 중립만 툭 하고 던진 게 아니다.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김성해란 사람이 그래도 깊게 길게 생각했구나’ 인정해 줄 것으로 본다.
또 중요한 게 뭐냐면, 우리 사회의 시대정신이다. 윤석열의 내란을 막아낸 것은 국민이다. 일부 극우에 대한 염려가 있지만, 국민 대다수는 멀쩡하다. 민주주의의 훈련과 경험을 수십 년 넘게 거듭해 왔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중립지대는 국우의 불쏘시개가 되기보다는 오히려 새로운 가능성을 찾는 이들의 목마름을 풀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미국에도 오랫동안 유학했고, 지금은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친다. 그런 사회적 좌표가 책을 오해(?)할 가능성은 줄일 수 있다고 본다. 출신이 경상도다. TK. 누가 봐도 ‘빨갱이’는 아니다. (웃음). 덧붙이자면 내가 만약 TK 출신에 서울에서 공부하고 미국 유학을 갖다오고 대학 교수가 아니라면 감히 이런 책을 내지도 못했을 거다. 벌써 국가보안법의 처벌 대상이 되었거나, 그게 아니래도 아무도 내 책을 거들떠보지 않았을 거다. ‘네가 뭔데. 미국도 모르는 게. 그 잘난 엘리트들도 모두 가만있는데 네가 이런 말 할 자격이나 있어.’라고 말하면서 아예 입도 못 열게 했을 거다.
북한 핵이라는 걸림돌?
‘중립지대’ 구상은 현재의 남북 상황을 유지하는 것이라서 헌법을 건드릴 필요는 없다. 북핵에 관해서도 컵이 밖에 없는가, 반이나 채워져 있는가. 보는 사람의 맥락, 관점에 따라서 달리 보인다고 생각하고, 나는 북핵은 생존용이라고 본다. 그걸 전제로 본다면, 북한은 뭘 원하겠나. 상황은 아주 우호적이라고 생각한다.
남북의 현실적 공존 모델로 있다면, 북한 입장에서 현재 가장 두려운 건 체제 붕괴라서, 그걸 마다할 리가 없다. 체제 붕괴를 원천적으로 막을 수 있는 안전판으로 ‘중립지대’ 구상에 우호적일 가능성이 크다. 그러면 막혀버린 대북 관계를 뚫을 만한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다.
북한이 상종도 안 하겠다고 하는데 그게 가능하겠어? 물론 지금은 그렇다. 그동안 우리가 한 행동을 통해 북한은 신뢰를 아예 잃었다. 말로는 평화와 공존을 말하면서 우리는 계속 ‘한미 훈련’을 한다. 우리는 방어용이라고 하지만 군사훈련에 방어용과 공격용이 어디 있나? 모든 싸움의 기본은 기습 공격이고 불의의 일격을 당하면 승패는 끝난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은 훈련 때마다 항상 긴장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미국이 알려주지 않으면 우리는 무슨 무기가 얼마나 어떻게 전개되는지 전혀 모른다. 탄핵 이후에 등장한 문재인이나 이재명 정부도 북한이 보기에 별로 다를 게 없다. 미국에 대해 절대 ‘No’라고 말을 못 하는데 북한이 어떻게 믿을까?
그런데 중립지대 구상은 다르다. 중립캠페인을 해서 여론을 좀 바꾸고, 그다음에 정부가 중립 외교를 통해 북한, 중국, 러시아와 국제사회의 신뢰를 얻는다. 그다음 단계는 DMZ 중립회랑이다. 비무장지대(DMZ)의 일부를 파나마운하처럼 중립지대로 만들어서 서로 신뢰를 쌓자는 얘기다.
남과 북이 ‘DMZ 회랑’에 동일한 조건으로 들어와서 상호 이익에 바탕한 ‘매몰 비용’을 축적한다면, 그렇게 되돌리기 어려운 상태로 만들면 정말 되돌리기 힘든 역사가 될 수 있다. 여기서 신뢰를 쌓은 다음에 ‘한미동맹’을 대체할 ‘다자간 안보협의체’를 만들자는 구상이다.
한미동맹을 그렇게 바꿀 수 있냐고? 물론이다. 1953년 체결된 한미상호방위조약에 “태평양 지역에 있어서 더욱 포괄적이고 효과적인 지역적 안전보장 조직이 발달될 때까지”라는 문구가 분명히 들어가 있다. DMZ 중립 회랑 이후 단계에 들어설 일명 ‘한반도 안보 조약’은 이를 대체하는 거다.
긴 호흡으로
10년이라면 의미 있는 변화가 오지 않을까. 전조가 있었다.
- 남북 관계에 대한 목마름.
- 한미 관계를 바꾸자는 목마름.
나침반이 없어서 움직이지 못했다. 그래서 우리끼리 싸웠다. 남남 갈등도 이걸로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3년 후 대선 정국에서 이슈화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정치권에서도 어느 정도 입장을 정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정권이 바뀌면 중립지대 논의가 ‘리셋’되지 않겠느냐고 염려하는 건 맞는 말이긴 하다.
쉽게 말해 정권이 다시 국민의힘으로 넘어간다는 이야기는 이재명의 실용 외교가 실패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래서 중립지대 구상이 어느 정도 진행됐다고 가정하더라도 다시 한미동맹으로 가자는 목소리가 커질 게 분명하다. 나는 오히려 그래서 더 중립지대 논의가 필요하다고 본다. 방향타를 기존 세계로 회귀하기보다는 평화와 다자주의 쪽으로 틀어야 현재 진보 정부의 가능성도 더 커진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어야 적어도 ‘내란 옹호 세력’의 재집권 가능성이 사라진다고 본다.
국민 60%쯤은 상식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들 중에서도 민주당이냐 국힘이냐고 선택할 수는 있겠지만, 그리고 ‘중립지대’ 구상에 대해서도 서로 다른 판단이 가능하겠지만, 국민의힘이 제대로 된 정당으로 살아남으려면, ‘중립지대’ 구상과 같은 새로운 시대적 정신에 열려 있어야 한다. 그래서 국민의힘이 단정적으로 ‘중립지대’ 구상을 거부할 것이라만 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더 하고 싶은 이야기
정경언 복합체 혹은 반공 복합체의 조직적 반발 가능성이 더 힘든 난관일 수 있다. 그들이 조직적으로 저항한다. 언론 하는 우리 입장에서는 일상적인 심리전에 노출됐다고 본다. 기득권 레거시 미디어는 한미동맹’에 기반해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들의 배후에서 기득권을 누리는 분단과 전쟁 구조 수혜 세력이 있다. 전쟁 트라우마를 확대 재생산하고, 공포의 트라우마를 가속한다.
북한과 조금이라도 잘 지내려고 하면 바로 소리를 지른다. ‘늑대가 나타났다’고 말한다. 여기서 늑대는 공산당이다. 1950년 북한이 남침했으니까 틀린 것 아닐 수 있다. 그렇지만 그때도 북한이라는 늑대는 아무런 이유 없이 남침하지 않았다. 누가 먼저 쳐들어왔냐는 질문 대신에 왜 싸웠고 우리끼리 싸움이 왜 미국과 중국까지 끼어드는 더 큰 전쟁이 되었는지를 물어봐야 한다.
게다가, 지금 우리는 늑대가 와도 별걱정을 안 해도 되는 국방력을 갖고 있다. 북한보다 몇십 배의 국방 예산을 쓴다. 핵으로 공격하면 어떻게 하냐고 하겠지만 이스라엘도 미국도 이란을 상대로 핵을 못 사용했다. 북한의 핵도 어찌 되었든 방어용이다. 그걸 책에서 자세히 설명했다. 그런데 누군가 ‘늑대가 나타났다’라고 북을 치면 꼭 누군가 장구를 따라친다. 국내에는 이걸 통해 수십 년간 돈과 명예와 권력을 누린 집단이 있다. 그게 바로 반공 복합체다. 교회, 미국에 있는 이민사회, 또 미국의 군산복합체가 여기에 힘을 보탠다.
여전히 분단 모순은 가장 강력한 모순의 구조다. 그 구조를 흔들지 못하면 ‘중립지대’ 구상 역시 뿌리 내리지 못한다. 내외 정책이 정권 부침에 따라 뒤바뀌면 ‘기본값’인 미국에 올인할 수밖에 없고, 결국 미국의 구도 속에서 미국 좋은 일만 시킬 수밖에 없다. 그 뿌리에 그 지정학적 모순, 분단의 모순이 작동한다. 그 이야기를 해야 한다.

끝으로 청년들에게
아들이 31살이다. 미국을 좋아하고, 중국을 아주 싫어한다. 설득하려고 노력하는데, 왜 아들이 그런가 하고 생각해보면, 중국을 한국의 경쟁자로 생각한다. 한국 젊은이들에게는 자신의 경쟁자다. 자신의 직업, 자본의 경쟁자를 중국, 중국인이라고 생각한다. 학교에 중국 유학생들이 많다. 정말 가까이 있다. 그래서 더 피해의식이 있다. 성적도 잘 받아 고. 한국 여자들도 꼬시고…(웃음) 그런 걸 누군가가 이용하고 있다고 본다. 그런 2030 남성의 불만을 이용한다.
우리 사회의 극우가 어디에서 시작했나. 2010년부터 미국에서 생산한 혐중 담론이 수입되기 시작했다(특히 사드 사태). 중립지대를 통해서 미국 중국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게 아니라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다면, 2030세대도 동의할 여지가 있다고 기대한다. 우리 국민의 다수가 합리적인 사고를 할 수 있다고 믿는다. 청년들도 마찬가지다.
일부 청년이 극우에 경도되는 현상은 일종의 사춘기로 본다. 상승하지 못하는 좌절감. 나는 AI도 잘하고, 영어도 잘하는데, 기득권 꼰대가 다 차지하고 내주지 않고 움켜쥐기만 하는 것에 대한 불만. 그런 ‘꼰대’ 중에는 진보적인 사람이 많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 또래도 쉬운 건만은 아니다. 힘들다. 우리 세대가 무조건 퇴장하는 게 답인가.
막힌 사회라서 더 그런 것 같다. 대화의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 ‘중립지대’ 구상도 그중 하나다. 이런 논의가 많아지면, 많은 모순을 극복하고 더 열린 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스스로 바라볼 수 있는 재귀적이고 메타적인 지식이 필요한 시대다. 그런 게 다소 부족해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