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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신당 의원 이준석은 6·3 대선에서 8.34%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3석 신생 정당이란 걸 감안하면 선전했다는 평가도 있지만, 후보 자신과 당 지지자들이 기대한 두 자리 수 득표율에는 미치지 못했다.

이준석은 2030세대, 특히 20대 남자(지상파 출구조사 득표율 37.2%)로부터 높은 지지를 얻은 것으로 보인다. 달리 말하면 특정 세대·성별 지지에 갇혀 확장력에 뚜렷한 한계를 드러냈다. 시사평론가 김준일 표현을 빌리면 “60대 이상은 이준석한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던 것”이다.

개혁신당이 23일 오후 국회에서 대선 평가 세미나를 열었다. 김준일이 발제를 맡았고, 조갑제·진중권 등 유명 논객이 토론자로 참석해 이목이 집중됐다.

개혁신당이 23일 오후 국회에서 대선 평가 세미나를 열었다. 왼쪽부터 개혁신당 사무총장 김철근, 의원 이주영, 이준석, 전 개혁신당 상임고문 김종인. 사진=김도연 기자.

이준석 비판하는 자리, 이준석은 인사만 하고 사라졌다.

  • 이준석 옆자리에 앉은 정치 원로 김종인(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기념사를 통해 “8%가 넘는 득표는 상당한 성공”이라면서도 “앞으로 개혁신당이 보다 더 많은 국민 지지를 받으려면 이준석 후보에 대한 비호감도를 어떻게 낮출 것인지 생각해야 한다”고 직격했다. 면전에서 던진 쓴소리다.
  • 김종인은 민주당 핵심 지지층인 4050세대를 외면해서는 국정 운영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40~50대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중추 역할을 하는 세대다. 이 사람들에게 배척 받고서 과연 국정 운영이 가능할까. 나는 불가능하다고 본다.”
  • 이준석은 “김종인 위원장이 좋은 말씀을 하셨다. 우리 정당이 앞으로 더 뻗어나가기 위해 필요한 점을 잘 설명해 주셨다”며 “이번 대선에서 좋았던 경험은 살리고 좋지 않았던 경험은 최대한 억제하여 내년 지방선거에서 좋은 성과를 내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답했다.
  • 기념사가 끝나고 세미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직전, 이준석은 ‘지역구 일정’을 이유로 자리를 떴다. 대선 후보 이준석의 성적표를 평가하는 자리인데, 정작 주인공이 자리를 비워 ‘앙꼬 없는 찐빵’이 돼 버렸다. ‘이준석 평가’에 대해 본인 생각과 성찰을 들을 수 없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 매우 아쉬웠다. 국회 토론회에 잠깐 인사만 하고 떠나는 기성 정치인 모습과 다르지 않다는 비판은 가혹한 것일까.

‘미래·젊음·과학’은 사라지고 ‘네거티브’만 남았다.

  • 발제자 김준일은 이준석 이미지 가운데 ‘미래 지향’, ‘젊음’, ‘과학 전문성’ 등 긍정 이미지보다 ‘갈라치기’, ‘네거티브’ 같은 부정 이미지가 부각된 선거였다고 평가했다.
  • 대선 TV 토론회에서 이재명 아들로 추정되는 인터넷 유저의 성적 욕설·비하 댓글을 인용해 이재명을 공격하려 했던 ‘여성 성기 젓가락’ 발언이 대표적이다. 이준석과 당은 대선의 남은 기간 젓가락 발언을 해명하는 데 진땀을 뺐다.
  • 김준일은 특정 세대와 성별에 쏠린 지지층을 지적하며 “이들은 열광적으로 지지하기 때문에 지지율이 더 빠지지는 않겠지만, 외연 확장에 굉장히 악영향을 주고 있다”고 꼬집었다.
  • 대선 직전 실시된 한국일보·한국리서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이준석에 대한 여성들의 비호감은 연령을 가리지 않고 70%대를 넘었다. 확장성에 악영향을 주는 비호감을 어떻게 완화할지가 숙제로 남았다.
  • 토론자로 참석한 한국일보 기자 김지은은 △여성 비례대표 할당제 부정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 심각성 축소 △대선 토론회 발언을 사례로 들며 “개혁신당은 반여성 정당이라는 이미지를 유권자에게 심어주기 충분하다”고 주장했다. 여성에 대한 구조적 차별을 해소하기 위한 제도를 깎아내리는 방식으로 정치적 입지를 확보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지난 23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개혁신당 대선 평가 세미나에서 토론자인 조갑제(왼쪽)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전선만 긋지 말고, 동맹을 맺어라.”

  • 민주당 청년대변인 출신 하헌기(새로운소통연구소 소장) 역시 확장성의 한계를 도마 위에 올렸다. 6·3 대선 유권자는 총 4439만 명. 이 가운데 4050세대는 36.8%, 6070세대는 33.1%에 달한다. 2030세대(20대 이하 포함)는 30%에 그친다.
  • 하헌기는 “2030 남성 유권자 표를 다 가져와도 670만 명 정도다. 이것만으로 전국 선거에서 절대 이길 수 없다”면서 “다른 세대·계층과 동맹을 맺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준석이 국민의힘 당대표 선거 때는 “보수 정당 구조상 노년층만으로 절대 이길 수 없으니 젊은층과 손을 잡아야 한다”는 취지로 세대 동맹 메시지를 쏟아냈는데 그 이후엔 전선(戰線)만 긋는 행보를 보였다는 것이다.
  • 이준석은 자신이 대선 후보 비호감 1위인 데 대해 “제3당 후보의 숙명”이라며 구도 탓을 한 적 있다. 하헌기는 “2021년 대선 때를 보면, 호감도가 제일 높았던 후보는 안철수였다. 윤석열, 이재명보다 안철수의 호감도가 더 높았다”며 “호감도는 후보가 어떤 행보를 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비호감도를 어떻게 하면 낮출 수 있을지 고민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가짜 보수를 격침시키는 보수의 어뢰가 돼야.”

  • 쓴소리만 나온 것은 아니다. ‘보수 논객’ 조갑제(조갑제닷컴 대표)는 이준석을 12·3 비상 계엄 후 무너진 보수를 재건할 재원으로 본다. 이준석과 개혁신당이 “보수의 구명정 역할을 넘어 가짜 보수를 격침시키는 어뢰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계엄령 편에 섰기 때문에 보수 후보는 아니었다. 보수의 구명정으로써 이준석이 유일한 보수 후보였다.”
  • 그런 조갑제도 ‘계엄 비판-탄핵 찬성 보수’의 19%만 이준석을 뽑았다는 대선 직후 여론조사(‘계엄 비판-탄핵 찬성 보수’ 41%는 김문수에 투표했다고 응답, 38%는 이재명에 투표했다고 응답)의 함의를 비판적으로 분석했다.
  • 조갑제는 “이번 선거는 누가 진짜 보수냐를 가리는 대결이었다”며 “이준석은 김문수를 비판해서 그의 지지자를 끌어왔어야 했다. 김문수와 이준석이 합세해 이재명을 공격하는 전략이었는데, 타깃을 잘못 설정한 게 아닌가 싶다”고 평했다. ‘부정 선거 음모론’을 두둔하는 김문수와 제대로 ‘보수 대결’을 해야 했다는 의미다.

확장성 없는 포퓰리즘, “소수자들을 공격하고 있다.”

  • 이준석은 ‘갈라치기’와 ‘소수자 혐오’를 정치적 도구로 이용한다고 비판받는다.
  • 진중권도 “‘갈라치기 정치’는 혐오와 증오를 기반으로 한다. 이런 강렬한 감정을 이용한 정치는 특정 집단 유권자를 일정 부분 결속하는 효과가 있다”면서 “이준석은 남성과 여성 젠더 갈라치기를 하고 있고, 노인 무임승차 이야기를 하며 노인 세대를 갈라치고 장애인 갈라치기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우리 사회 소수자들을 공격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 진중권 주장은 이렇다. 2030 세대 욕망을 제대로 대변해야 하는데, 이준석은 그들의 불만과 분노만 자극하는 언행과 정책으로 손쉽게 표만 얻을 궁리를 한다는 것이다.
  • 일견 타당한 면도 있지만 상대를 ‘혐오주의자’로 규정하고, 이준석 정책 전반을 ‘갈라치기 정치’로 폄하하다 보니 생산적 토론을 더 이어가기 어렵다.
  • 그래서 기자가 진중권에게 질문을 던졌다.
  • “‘노인 무임승차’ 등은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이슈다. 이준석 비판자들이 ‘노인과 젊은 세대를 갈라치기 한다’고 과도하게 감정적으로 비난하게 되면 논의 자체가 막힌다.”, “이준석을 관성적으로 비난하면 우리가 다뤄야 할 갈등 문제가 제대로 다뤄지지 않고, 정치권은 표가 되지 않는 이런 문제를 다시 눙친다.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채 이렇게 쌓이면 세대와 성별 갈등이 격화하고 심화할 공산이 크다. 좀 더 섬세하게, 쟁점적으로 이준석을 비판해야 하지 않나.”
“좀 더 섬세하게, 쟁점적으로 이준석을 비판해야 한다” (김도연 슬로우뉴스 기자)

문제 개선 아닌 감정을 건드리는 선동적 구호

  • 진중권은 동의하지 않았다. 진중권은 “제대로 숙고한 정책이면 받아들일 것”이라면서도 “정책안은 보통 선거 때 슬로건으로 나온다. 이준석이 내놓는 선거 슬로건은 해괴하다”고 비난했다.
  • 이를 테면, 이준석은 “도시철도는 수도권과 광역시에 집중돼 있기 때문에 중소도시 및 농어촌 지역 노인에게 상대적 불평등이 발생한다”면서 ‘65세 이상 인구의 지하철 무임승차’ 폐지를 거론했다. 이 논리대로라면 수도권에 집중돼 있는 고궁, 박물관, 미술관에서 제공하는 각종 노인 할인 혜택도 모두 없애야 한다는 게 진중권의 반문이다.
  • “이준석 정책은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대안이 아니라 표를 위해 ‘애들’의 감정을 건드리는 선동적 구호이기 때문에 비판”한다는 게 진중권의 주장이다.
  • 세미나를 주최한 개혁신당 당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 천하람은 “노인 무임승차 이야기를 했는데, 우리 의도가 정책 대안을 이야기하는 데 있더라도 국민 입장에서는 ‘특정 세대를 공격한다’고 받아들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조심스럽다”면서 몸을 낮췄다. “상대적으로 젊은 정당이다 보니 조금은 도전적으로, 남들이 잘 다루지 않아 성역화한 부분도 공론화하려고 했다. 그런 차원에서 우리가 잘못한 부분도, 억울함을 느끼는 부분도 있다고 생각한다.”

수도권·고학력·남성만…정말 2030 대변한다면.

  • 1981년 노인복지법 제정 후 한 번도 바뀌지 않은 노인 연령 ‘65세’를 상향해야 한다는 논의가 계속되고 있고, 노인 인구 증가로 인한 무임승차 누적 손실금이 지난 10년간 3조 원을 돌파했다. 공짜로 타는 인구가 늘면, 재정이 고갈된다는 건 산수의 문제다. 정부는 적자 보전 책임을 서울교통공사에 떠넘기고 있을 뿐이다.
  • 올해 초 한국리서치 여론조사를 보면, 무임승차 혜택을 받고 있는 만 65세 이상 노인 10명 가운데 8명도 무임승차 제도 개시 연령을 상향 조정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국민 다수는 노인 무임승차제 필요성에 공감했지만 운용 방식엔 회의적이었다. 정치권은 애써 눈을 감고 있지만 여론은 제도 개선 논의를 기다리고 있다. 누군가는 이야기해야 했다.
  • 개혁신당에도 물었다. “이준석의 지지 분포를 보면, 수도권, 대학 캠퍼스, 대기업, 고학력자, 남성 중심이다. 청년을 제대로 대변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지방대를 나온 후 산업단지 블루칼라 노동자로 사는 남성 청년도 있을 것이다. 좋은 정규직 일자리를 찾지 못해 지방을 떠나는 여성 청년도 있다. 지방에서는 청년이 가정을 이루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이런 문제에 개혁신당과 이준석이 얼마나 고민하고 있는지 문제의식이 있다.”
  • 천하람은 “개혁신당이 2030 세대에서 상대적으로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교만하게 2030 전체를 대변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여성은 물론이거니와 남성에게도 100% 지지를 받는 게 아니다”라며 “다만, 우리가 선거 전 안정적 지지를 받고 있는 상황이었다면 좀 더 확장에 기반을 둔 선거 운동을 했을 것이다. 4050, 6070세대뿐 아니라 2030 세대 안에서도 더 넓게 확장하는 모습을 보일 것”이라고 했다.
조갑제가 쓴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왼쪽), 진중권이 쓴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 표지.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 vs.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

  • 과거 보수와 진보를 대표하는 논객 조갑제와 진중권이 나란히 앉아 있는 모습이 흥미로웠다.
  • 조갑제는 1997년 조선일보에 박정희 전기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를 연재했다. 진중권은 이듬해 이를 패러디한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를 출간했다. ‘논객’ 진중권을 세상에 알린 책이다.
  •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는 본인 소개부터 극우 풍자로 가득하다. “1963년 세포분열로 태어난 빨간 바이러스….교회 주일학교에 침투해 유아들 사이에서 적색 소조 활동을 펴는 등 일생을 세계 적화의 한 길을 걸어왔다. 왜 꼬와?”
  • 진중권은 조갑제가 “박정희 망령을 불러냈다”며 맹렬하게 공격했고, 조갑제는 ‘극우 보수주의자’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었다. 훗날 진중권은 박정희의 산업화를 높게 평가했는데 “(‘네 무덤…’ 당시) 화가 난 건 박정희를 향한 게 아니었다. 옛날 사람, 지나간 사람을 리바이벌한 것 때문이었다”고 밝혔다.
  • 진중권은 2019년 ‘조국 사태’를 계기로 진보 진영과 절연했다. 조갑제는 지난해 12·3 비상계엄 사태 후 윤석열과 친윤 세력을 ‘보수의 적’으로 규정하며 비판을 이어가고 있다.
  • 두 사람 모두 한동훈(전 국민의힘 대표)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두 사람 간극을 메울 만큼 세월이 많이 흘렀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23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개혁신당 대선 평가 세미나에서 토론자인 조갑제(왼쪽)와 진중권이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1990년대 말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 조갑제에 진중권은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로 응수했다. 사진=김도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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