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공유하기

[소셜코리아 칼럼] “노동존중·성장 함께”···이 대통령이 풀어야 할 묵은 과제들. 실험 성공하려면 수백일 고공농성 노동자들 숙원 풀어야. (정흥준/서울과기대 교수) (⏳4분)

21대 대통령선거가 마침내 끝났다. 계엄과 내란을 일으킨 파렴치한 전직 대통령 일당과 그를 비호하는 보수정당의 파렴치한 준동이 있었으나 고비고비마다 국민들이 앞장서 물리쳤다. 예측대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반민주주의 세력이 휘둘러온 폭정은 끝났으나 할 일이 태산같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통령 1호 업무지시로 경제 회복을 위한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주문했다. 망가진 경제와 민생을 챙기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으로 환영받을 일이다.

“모두 함께 잘 사는 나라”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선서식에서 모두 함께 잘 사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대한민국은 압축성장을 했지만 불평등과 양극화에 가로막혀 성장이 멈춰 있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성장의 과실을 고루 나누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기업의 발전과 노동 존중은 얼마든지 양립할 수 있다고도 언급했다. 옳은 인식이다. 대표적인 복지국가인 스웨덴 등 북유럽이나 독일 등 제조업 강국은 기업이 성장하면서 노동을 존중할 수 있음을 보여줬고 우리나라도 얼마든지 가능하기 때문이다.

윤석열 전 정부나 보수정당은 굳이 일하는 국민들과 대결했고, 그 결과는 국민들로부터 외면당하는 것이었다. 노동자의 정당한 요구를 힘으로 쉽게 누를 수 있다고 생각했을 수 있으나 국민과 싸워서 이긴 정부는 없음을 망각한 탓이다. 노동하는 국민이 절대 다수인 현대 국가에서 노동을 존중하지 않는 것은 국민을 배신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다만, 곳간에서 인심이 난다는 속담처럼 성장은 노동존중을 위해서도 중요한 과제이다. 그러나 성장을 위해 노동을 희생해서는 안되며 노동존중이 성장에 장애가 되어서도 곤란하기에 이재명 정부가 천명한 노동과 성장이 양립하는 새로운 실험이 성공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취임 후 이재명(대통령)의 첫인사 상대방은 국회 청소노동자.

옵티컬하이테크 노동자 500일 넘게 농성 중

새 일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묵은 잘못들은 털고 갈 필요가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당선과 동시에 여야의 협치를 강조한 이유다. 노동정책도 마찬가지다. 취약노동자를 배려하고 공정한 관계를 강조한 이재명 대통령의 공약이 본격적으로 추진되기 위해서는 해묵은 과제를 시작과 함께 풀고 가야 한다. 바로 땅 위, 하늘 아래에 머물러 있는 노동자들의 외침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금속노조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 박정혜 수석부지회장은 자신이 다니던 공장 옥상에서 고용승계를 요구하며 500일 넘게 농성중이다. 일본 니토덴코 그룹의 한국 자회사인 한국옵티칼하이테크는 물량을 또 다른 자회사인 한국니토옵티칼로 옮기기 위해 2019년부터 구조조정을 시작해 563명 중 465명을 희망퇴직으로 내보냈다.

2022년 구미 공장에 불이 나자 회사는 화재보험금 수백억 원(전자공시 기준 최대 1300억 원)을 받고 아예 문을 닫아버렸다. 이때 남아 있는 노동자들은 한국니토옵티칼로 고용승계를 요구했지만 회사는 거절했고, 이를 계기로 노동조합이 농성을 시작했다. 책임 있는 기업이라면 마땅히 고용을 승계해야 하지만 한국에 돈 벌러 온 일본 기업의 눈에 한국 노동자의 고용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던 것 같다.

서울 명동에 가면 세종호텔이 있다. 세종호텔 바로 앞 지하차도 시설물 위에는 고진수 관광레저산업노조 세종호텔지부장이 100일 넘게 농성중이다. 세종호텔은 세종대학교를 운영하는 학교법인 대양학원이 운영하는 호텔이다.

2009년 주명건 대양학원 전 이사장이 세종호텔 회장으로 취임한 후 유독 노동조합을 탄압하기 시작했다. 270명이던 정규직은 아웃소싱으로 20여 명밖에 남지 않았고 2021년 코로나 위기를 이유로 고 지부장 등 15명이 해고를 당했다. 해고노동자들은 호텔 앞 농성을 시도하고 법원에도 호소해 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세종호텔 경영진은 법적으로 문제없으니 회사도 의무가 없다는 태도다.

2022년 조선소 하청노동자 유최안은 “이대로 살 수는 없지 않습니까?”라는 팻말을 걸고 가로 세로 1미터의 철창 감옥에 스스로를 가둬 조선소 하청노동의 실태를 국민에게 알렸다. 당시 대우조선해양은 한화그룹으로 인수되었고, 이름도 한화오션으로 변경되었다. 때마침 조선업 호황이 시작되어 한화오션은 인수하자마다 흑자경영을 시작하는 행운을 누렸다.

유최안(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이 2022년 7월 19일 오후 경남 거제시 아주동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도크 화물창 바닥에 스스로 용접한 가로, 세로, 높이 각 1m 철 구조물 안에서 농성 중인 모습.

그런데 그것은 우연한 행운이 아니라 조선소 하청노동자의 땀과 헌신 덕분이었다. 김형수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장은 한화오션에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요구하며 농성을 시작했고, 벌써 80일이 넘었다. 회사가 수익을 내고 있으니 하청노동자들에게 상여금 50%를 보장하라는 요구이다. 그리 거창하지 않은 요구인데도 회사는 꿈쩍하지 않고 있다.

거듭 생각해봐도 노동자들의 요구는 소박한 편이다. 다니던 회사에 불이 나 회사가 운영하는 다른 회사로 고용을 승계해주면 계속 일하겠다는 요구나, 코로나로 인해 직장을 잃었으나 다시 회사가 정상화되었으니 고용을 해 달라는 요구 모두 상식적인 수준이다. 회사가 성과를 내고 있으니 정규직만큼은 아니더라도 생산의 70% 이상을 담당하는 하청노동자에게 50%의 상여금을 보장하라는 요구도 과하지 않다.

기업 성공은 노동자 헌신 덕에 가능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회사는 이들의 요구를 외면한다. 아마도 가진 것 없고 힘없는 자들의 요구이기에 법적인 문제만 없다면 자비를 베풀 필요가 없다는 생각일 수 있다. 더 솔직한 마음은 노조하는 사람들까지 포용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을 수 있다.

그러나 200억 원을 투자해 8천억 원의 매출을 올리는 회사가 된 한국옵티칼하이테크나 대우조선해양을 싼 값에 인수해 막대한 수익을 내고 있는 한화오션, 그리고 대학을 운영하며 사회지도층 지위를 누리고 있는 세종호텔 경영진 일가의 성공이 오로지 자신들만의 노력 때문이라고 자신할 수 있는지 되묻고 싶다. 기업의 성공은 정부의 지원, 소비자의 구매, 노동자의 헌신 등이 있었기에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들 기업이 노동자의 소박한 요구조차 뿌리칠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지난 보수 정부의 친기업 정책을 굳건히 믿었기 때문일 수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진짜 대한민국을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진짜 공정한 사회는 성장의 과실을 나누는 사회라고 했다. 진짜 대한민국을 향해 막 출발하는 이재명 정부가 묵은 과제를 해결하면 어떨까 싶다. 그리 거창한 요구가 아닌, 더 일하게 해달라는 노동자들의 요구와 성과를 조금 나눠 달라는 하청노동자의 목소리조차 외면하면서 진짜 거창한 취약노동자의 권리가 보장되는 사회를 만들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경영자도 지금의 성공이 자신의 노력만으로 이뤄졌다는 잘못된 인식을 버리고 노동자의 요구를 포용해야 한다. 땅도 아니고 하늘도 아닌 곳에 추위와 더위, 비바람과 눈보라를 온전히 홀로 견디는 이들이 하루빨리 가족과 함께하는 보통의 삶을 누릴 수 있기를 고대해 본다.

관련 글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