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코리아 칼럼] 6.3대선 의제. 간병살인 횡행하는 시대···’돌봄 복지국가’ 전환 위해 새 정부가 해야 할 다섯 가지. (전용호 / 인천대 사회복지학과) (⌚8분)
“노인이 집에서 의료·돌봄서비스를 받는 지역사회 통합 돌봄체계를 구축하겠다.” – 이재명(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
“치매 안심 국가책임제를 강화하고 치매 돌봄 코디네이션을 확대하겠다.” – 김문수(국민의힘 대통령 후보)
제21대 대통령 선거 레이스가 본격화하자 대통령 후보들이 돌봄을 화두로 정책 공약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이번 대선은 대한민국의 낡은 돌봄 시스템을 혁파하고, ‘돌봄 복지국가’로 도약할 절호의 기회다. 고령화, 장애, 고립, 자살, 정신건강 위기 등 우리 사회가 직면한 복합적 문제들은 ‘돌봄’이라는 핵심 과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풀 수 없으며, 지속 가능한 미래를 담보할 수도 없다.
대한민국의 돌봄 현실은 암울하다. 주민들이 시설과 병원에 입소하지 않고 자택과 지역사회에서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체계 구축은 요원하다. 국가는 형식적인 돌봄 제도를 운영하면서 책임을 방기한 채, 여전히 개인과 가족에게 짐을 떠넘기고 있다.
존엄한 노후는커녕 돌봄 공백으로 기본적인 생존을 걱정하는 노인, 턱없이 부족한 지원에 절망하는 장애인과 가족, 사회적 고립 속에 스러져가는 청년과 중장년까지, 우리 사회는 돌봄 사각지대로 가득차 있다. 가족도 너무 고통스러워서 간병살인, 간병자살이 횡행하는 끔찍한 시대를 살고 있다.

21대 대선 후보들의 돌봄 공약
대선 후보들은 저마다 돌봄정책을 제시하고 있다. 이재명 민주당 후보는 ‘아이 키우기 좋은 나라를 위한 돌봄·교육, 일·가정 양립 지원 강화’, ‘생애주기별 외로움(고독) 대응 정책 개발·추진’을 공약으로 제시하고 있다. 특히, ‘고령사회 대응을 위한 통합적인 지원체계’를 구축하기 위해서 △치매·장애 등으로 재산 관리가 어려운 노인을 위한 공공신탁제도 도입 △ 어르신 주거 문제 해결을 위한 고령자 친화 주택·은퇴자 도시 조성 △간호·간병 통합서비스 확대 및 요양병원 간병비 건강보험 적용 △노인 등이 집에서 의료·돌봄서비스를 받는 지역사회 통합 돌봄체계 구축 등 다양한 공약을 제시하고 있다.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는 ‘장애인 생애주기별 지원 강화’와 함께 ‘어르신 돌봄과 자립의 균형 체계 강화’를 공약으로 제시하고 △사회서비스형 어르신 복지 일자리 확충 △어르신 데이케어센터 이용시간 확대 △치매 안심 국가책임제 강화, 치매 돌봄 코디네이션 확대 △어르신 건강심부름택시 운영 등의 방안을 제시했다.
권영국 민주노동당 후보는 ‘요람에서 무덤까지 전국민 돌봄 보장, 복지국가를 넘어 돌봄국가로 전환’을 목표로 제시하고, 국가와 지자체 돌봄 기능의 혁신적 강화와 초고령화 사회, 모두를 위한 노인 존중 사회를 위해서 △가까운 공공실버아파트, 개인 맞춤형 노후원룸 등 주거 지원 확대 △국공립 장기요양 확대 △요양보호사 고용안정 및 처우개선 종합대책 마련 등의 세부 정책을 제시했다.

진정성 있는 돌봄정책은 우리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제시된 후보자들의 공약은 돌봄의 철학과 비전을 뚜렷하게 찾아보기 어렵다. 여러 정책을 단편적으로 나열하는 데 그치는 것 같다. 계엄, 탄핵, 대법원 정치개입, 국민의힘의 강제 대통령 후보 교체 등의 메가톤급 정치 이슈가 연속적으로 발생하면서 돌봄정책은 사회적 논의의 중심에 있지 않다.
그러나 우리가 새로운 정부에 바라는 것은 우리 삶의 질곡(桎梏)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적극적인 돌봄정책이다. 이 순간 따뜻한 돌봄의 손길이 절실하게 필요한 우리의 이웃들이 많이 있다.
예를 들면 경기도 남양주에 사는 78세 김아무개 어르신은 심장질환과 당뇨를 앓고 있지만 자식이 모두 타지에 있어 홀로 생활하고 있었다. 집 앞 경로당도 문을 닫았고, 주 2회 방문하는 요양보호사 외에는 사람의 손길조차 느낄 수 없다. 어느날 이 어르신이 심정지로 쓰러졌는데 발견까지 20시간이 걸렸고, 병원 이송 후 끝내 숨졌다. 이처럼 돌봄은 생명과 직결되는 문제이며, 무관심은 곧 죽음으로 이어진다.

돌봄은 단순한 복지정책이 아니다. 국가의 철학과 시스템, 사회의 연대와 책임의 문제다. 이번 대선은 돌봄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전환할 수 있는 역사적인 기회다. 저열한 정치적 논쟁에 가려져서 돌봄이 외면된다면, 그 피해는 가장 약한 이들의 몫으로 고스란히 돌아갈 것이다.
돌봄 복지 재구성 위한 5가지 제안
이제 우리는 익숙한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돌봄의 주류화 패러다임’의 담대한 비전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다음 정부는 아래의 5가지 핵심 과제를 통해 돌봄의 근본적인 혁신을 이뤄낼 것을 제안한다.
1. 돌봄은 권리다: 보편적 돌봄 서비스 전국 확대
돌봄을 ‘전생애 보편적 권리’로서 누릴 수 있는 제도로 체계화해야 한다. 그간 돌봄은 아동, 노인, 장애인처럼 혼자서 일상생활이 어려운 사람을 위한 제도로 생각했다. 그러나 저성장과 외로움의 시대가 되면서 청년과 중장년도 고립과 은둔, 정신질환, 고독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전생애주기를 포괄하는 재가와 지역 기반 돌봄서비스가 필요한 이유다.
그러나 현재의 돌봄 체계는 형식적 제도가 있을 뿐이어서 구조 개혁이 시급하다. 먼저 노인 영역은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가 있어서 다른 세대에 비해 돌봄이 앞서지만, 그저 기본적인 ‘방문요양’ 중심의 서비스가 제공되고 요양보호사는 가사수발을 하고 있다. 선진국처럼 방문재활과 이동지원서비스 등을 장기요양보험의 신규 급여로 도입하고 간호서비스를 활성화해서 건강을 유지하고 개선하도록 실질적인 지원을 해야 한다.
장애인에게는 활동지원서비스가 제공되지만 장애의 종류와 질환, 특성에 맞는 보건의료와 다양한 사회참여 서비스가 미흡하다. 장애인을 위한 주치의 제도와 지역사회 중심 재활(CBR, Community-Based Rehabilitation) 서비스를 대폭 확대해야 한다.
또 정신질환인을 위한 지역기반 서비스는 정신건강복지센터가 사실상 유일한데 인력이 턱없이 부족해 중증 정신질환인을 감당하기도 벅차다. 우울증과 조현병 등 정신질환자는 급증하지만 정신건강서비스 이용률은 12.1%로 미국(43.1%), 캐나다(46.5%)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 그간 우리는 정신장애인에 대한 수많은 편견과 무지로 인해 건강한 지역기반 돌봄 체계를 구축하지 못했다. 불필요한 사회적 입원으로 정신병원에서 끔찍한 사건이 계속 발생하는 이유다. 정신건강복지센터에 대한 대대적인 확대와 지원, 내실화가 시급하다.

2. 공공 인프라 확충과 돌봄노동의 가치 재평가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공공의 돌봄 인프라를 적극 확대해야 한다. 우리나라 사회서비스는 민간 영리기관 중심의 시장화 방식으로 인프라가 확충되었다. 즉, 민간이 기본적인 조건만 갖추면 서비스 기관을 개설하도록 탈규제적인 정책을 통해 인프라를 늘렸다.
그러다 보니 인구밀도가 높고 대상자가 많은 도시지역으로 돌봄기관이 몰리는 반면 인구밀도가 낮고 이동시간이 많이 걸리는 지방과 농어촌 지역은 시설과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 서비스 접근 자체가 어려워서 ‘돌봄 공백’이 발생하고, 삶의 질 저하와 방임 학대의 위험에 처하게 된다.
사회서비스원과 같은 공공인프라는 이처럼 시장실패가 발생하는 지역을 중심으로 확충해야 한다. 과잉 공급지역에서 민간기관과 경쟁하지 말고, 돌봄 공백이 발생하고 민간에서 감당하기도 어려운 고난도 대상자(예: 중증 치매인 등)를 위해 꼭 필요하다. 이미 시장실패가 상당하기 때문에 공공의 역할이 절실하다. 더욱이 공공기관의 관료제와 소극적 업무처리, 낙하산 인사와 같은 토착세력의 발흥 등의 문제가 재연되지 않도록 관리체계를 혁신해야 한다.
이와 함께 돌봄노동의 가치를 혁명적으로 재평가해야 한다. 돌봄노동은 단순 서비스가 아닌 삶의 존엄성을 지키는 행위다. 그러나 현실은 저임금과 불안정 고용으로 돌봄노동자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 가령 요양보호사의 급여는 여전히 시간당 최저임금 수준에 그치고 호봉제도 없어서 1년차나 20년차나 비슷하다. 방문 요양보호사의 월 평균 급여는 2022년 기준 87만 원에 불과하다. 요양보호사들이 현장을 떠나는 이유다.
요양인력 부족이 심각해지자 정부는 갑자기 ‘이주 돌봄노동자(migrant care worker)’를 허용하기 시작했다. 국내 돌봄인력 정책을 방기한 무책임한 태도다. 아무리 외국 인력 도입을 시도해도 낮은 처우 수준을 근본적으로 개선하지 않으면 세계적 인력 확보 경쟁(global care chain) 구조에서 한국에 올 이유가 없다.
이제 돌봄노동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처우를 근본적으로 혁신해야 한다. 요양보호사, 방문간호사, 정신건강 전문요원 등 필수 돌봄인력의 임금을 대폭 인상하고, 안정적인 일자리를 보장해야 한다. 요양보호사에게는 최소한 노인 맞춤 돌봄서비스의 생활지원사처럼 월급(기본급 130만 원)을 안정적으로 제공해야 한다. 돌봄인력이 없으면 돌봄제도는 모두 허상이다.

3. 지방분권화: 지자체의 자율성과 책임 강화
돌봄 복지를 성공적으로 실행하기 위해서는 지방분권화가 필수적이다. 선진 복지국가들은 이미 수십 년 전에 돌봄을 포함한 사회서비스를 지자체가 책임지도록 분권화를 단행했다. 중앙집권적 방식은 지역별 돌봄 특성과 수요를 반영하지 못한다. 지자체가 돌봄정책을 자율적으로 설계하고 실행할 수 있도록 자율 예산과 권한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지자체에 기회를 준 적이 별로 없다.
지자체는 지역 주민의 요구를 가장 잘 이해하는 주체로서, 돌봄 서비스의 전달체계를 효율적으로 운영하도록 변모해야 한다. 이를 위해 중앙정부의 재정과 인력 부분에 과감한 혁신이 필요하다. 재정자립도 향상을 위해 지방세 비중을 높이고, 자치 조직권을 부여해 업무의 자율성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자체에게 권한과 책임을 부여해서 지역 돌봄을 책임짓는 기회를 제공하자.
4. 통합 돌봄 시스템: 부처 칸막이 행정 철폐
이제 공급자 중심의 관료적 시스템을 전면 개혁해 수요자의 다양한 욕구에 맞춘 통합적 돌봄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중앙부처와 지자체에 만연한 부처 간 칸막이 행정은 돌봄사업의 효율성을 떨어뜨리고 복잡한 사업과 전달체계로 혼란을 야기한다.
특히 보건복지부는 유사한 돌봄사업들을 적극 통합해야 한다. 가령 지역복지과에서 실시하는 찾아가는 보건복지서비스, 사각지대 발굴, 고독사 방지, 통합사례 관리 업무는 기초지자체에 내려오면 서로 유사한 사업이므로 통합적으로 하달·관리해야 한다. 내년에 돌봄통합지원법을 지자체 중심으로 시행하려면 지역복지과와 지자체 담당부서가 긴밀히 상호 연계해서 실시해야 한다.
AI(인공지능) 기반 정보시스템을 적극 연결해 돌봄서비스의 효율성과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 현재 돌봄 정보시스템은 여전히 파편화되어 있고, 돌봄 현장에서는 수기(手記) 기록이 이뤄지는 곳도 적지 않다. 의료, 주거, 돌봄, 사회참여 등 다양한 분야의 데이터를 통합 관리하고 활용할 수 있는 정보시스템을 구축해 이용자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고 행정낭비를 줄여야 한다. 특히 국민건강보험이 보유한 각종 데이터를 지자체 행복이음에 연결해 돌봄 대상자를 발굴하고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5. 결국은 돈: 재정 투입 통한 돌봄 경제의 활성화
지금까지 주장한 방안을 실현하려면 돌봄 분야에 적극적 재정 투자가 필수적이다. 이는 단순히 예산을 늘리는 문제를 넘어, 전 국민의 돌봄서비스 체감도를 높이고 경제 활력을 높일 수 있는 전략적 선택이다. 재정 투입을 통한 돌봄 경제(care economy) 활성화로 신규 일자리를 창출하고 사회적 약자 계층(이용자·돌봄인력 등)에 적극적 재분배 효과가 이뤄진다. 특히 돌봄의 탈가족화로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 기회를 확장한다. 한국의 우수한 여성인력이 가족 돌봄으로 제한되지 않고 자유롭게 역량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각종 사회문제가 심각한 상황에서 좋은 돌봄체계를 시급히 구축하지 않으면 앞으로 사회비용이 급증할 것이다. 돌봄서비스를 개인과 시장에 맡기는 것보다 국가가 공적재원을 조성해 사회연대의식에 기반해 운영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것은 이미 많은 사례를 통해 입증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 노인장기요양보험, 국민건강증진기금, 각종 보건·복지 제도의 일반 조세 등 관련 재정체계를 상호 연계하고 갹출하는 등의 다각적인 방안을 고민해야 할 때다. 보험료 인상과 일반 조세의 확대 사용 등 과감한 방식도 적극 추진해야 한다. 국민 입장에서도 사적인 보험에 별도로 이중 가입하는 것보다 튼튼한 국가 돌봄 복지제도를 구축하는 것이 이익이다.
향후 저성장 구조가 고착화하고 각종 사회문제가 심화하면 해결이 불가능하다. 윤석열 정부에서 재정의 ‘지속가능성’만을 강조하는 바람에 각종 돌봄정책을 사실상 방치해 사회문제가 악화한 실패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 인구 10만 명 당 자살자 수를 뜻하는 자살률이 지난해 28.3명(잠정치)으로 11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