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꺾정 49화] 다시 민주주의, 정치의 회복과 정당의 역할 (장선화/고려대 정치연구소) (⏳4분)
22대 국회가 개원했습니다. 유권자의 소중한 한 표, 한 표를 읍소하며 당선된 300명의 국회의원이 과연 유권자를 위해 제대로 일하는지 지켜보고 감시해야 할 때입니다. 이들이 어떤 일을 하는지, 어떤 일을 해야 하는데 안하는지에 따라 우리의 삶이 달라지니까요.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는 칼럼을 통해 유권자의 시각에서 22대 국회와 정치를 비평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정’치개혁이니까요.

다시 민주주의 시계 돌아가고 있지만…
이재명 대통령 취임 후 약 2주가 지났다. 계엄으로 멈출 위기에 있었던 민주주의 시계가 다시 가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새 정부의 별칭을 ‘국민주권정부’로서 공식화하고 바쁜 걸음을 시작했다. 바야흐로 정치의 시간이다. 12.3 계엄은 민주적 절차에 따른 주기적 선거를 통해 민주주의가 공고화될 것이라는 최소강령적 민주주의의 한계를 일깨웠다.
계엄 중지와 탄핵 결정, 정권 교체를 통해 민주주의에 대한 다수 시민의 신뢰와 지지를 확인할 수 있었지만, 정부와 국회에는 정치적 신뢰를 회복하고 사회·경제적 피해를 복구해야 하는 중요한 과제가 남았다. 지난 1년간 한국은 ‘완전한’ 민주주의에서 ‘결함있는’ 민주주의 국가(EIU 민주주의 지수 2024)로 추락했고, 경제성장은 멈추었으며, 기업 및 가계 체감 경기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위기 극복을 위해 정부와 국회, 여야 정당 간 협력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제21대 대선 결과는 현 정부뿐 아니라 여야에 통합의 과제를 남겼다. 산술적으로 보수 정당 후보들의 득표율 합은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득표율과 1% 미만의 격차에 불과하다. 여대야소 상황에서 국민들이 견제와 균형의 몫을 제1야당에게 남겨준 셈이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제1야당의 역할은 지난 정부 여당으로서 계엄과 탄핵, 대선 후보 선출 등 과정에서 혼란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당내·외 민주적 질서 회복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흑역사도 역사라고 치부하고 넘어갈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의힘은 탄핵된 대통령과 단절하지 못하고 개혁 요구를 뒤로 한 채 당권 경쟁에 빠져든 상황에 대한 우려가 크다. 제1야당이 헌재 판결에 의한 탄핵의 정당성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않는 모습은 보수 정당을 지지해 온 전통적 보수 성향의 지지자들이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과 절차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지 못하거나 견제와 균형의 역할을 기대하는 온건한 보수가 정당 정치에 회의하게 되는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정치 양극화 심화, 세 가지 원인
한국에서 정치 양극화가 심화된 데에는 세 가지 원인을 들 수 있다.
- 첫째, 구조·제도적 요인으로서 승자독식 선거제도와 대통령 중심 권력 구조, 거대 양당 독점 경쟁 체제이다.
- 둘째, 정당 차원에서 지역 및 리더 중심 파벌 정당 체제 및 정당 간 이념적 거리 증대이다.
- 셋째, 행위자 차원에서 유권자 간 정서적 차이와 이를 동원하는 포퓰리스트 정치인, 온라인 미디어 중계효과이다.
첫 번째와 세 번째는 당장 해결이 어렵다. 임기 단축 4년 대통령 중임제, 준대통령제(책임총리제), 의회제(의원내각제)등 제도적 대안과 개헌 필요성이 논의된 지 오래이지만 사실 원형적 대통령제 국가인 미국에서 대통령 행정명령 및 메모랜덤(Memorandom, 대통령 교서)을 통한 독주가 펼쳐지고 있으며, 프랑스, 영국, 독일 등 국가들에서는 과거와 달리 내각 및 의회 불안정성이 증대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지난 몇 년간 위성정당 창당을 통해 양당제가 유지된 것이나 지난 윤정부 이후 현재 한국 상황에서 정당 간의 비제도적 협력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이와 같은 대안이 한국에 기대한 바의 효과를 나타낼지 우려되는 것도 사실이다. 제도적 해법이 필요하지만, 결코 충분조건이 되지 않는다면 중요한 것은 정당정치를 통한 정치의 회복이다. 제도적·비제도적 정당 간 상호작용을 회복함과 동시에 제도적 자제와 비제도적 협의가 필요하다.

민주적 정당정치 회복, 그 네 가지 과제
다시 민주주의, 정치의 시간이다. 정당들은 사법적 판단에 의존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적 선출을 통해 위임된 대의의 책임과 정치적 대표의 역할을 다해야 할 것이다.
민주적 정당정치 회복을 위한 정당의 역할은 첫째, 국회 내 정당 간 협의 질서의 재구축이다. 상임위 구성과 운영, 본회의 의사결정 차원에서 여야 협의를 정상화할 필요가 있다.
둘째, 정당 정치 다원화의 필요성이다. 21대 대선 과정과 결과는 양극화된 지역균열을 나타냄과 동시에 보수와 진보 양 진영에서 다양성의 요구를 담고 있다. 중장기적으로 선거제도 개혁이 필요하지만, 단기적으로는 소수당 참여를 위해 교섭단체 요건을 완화하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당내 민주주의 회복과 차세대 정당정치인의 양성에 힘써야 할 것이다. 보수 정당은 선거 승리를 위해 정당 일체감, 공동체적 헌신, 도덕적 자질 등과 같은 후보 검증 절차를 뒤로하고 인기 영합적인 후보 영입을 반복해 왔다. 또한 특정 전문직, 사회적 지위, 학벌 등에 기초한 능력주의적 정치인 충원 방식에서 정치인의 가장 중요한 자질인 의견 수렴과 협의를 통해 합의를 이끌어내는 능력이 간과될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시민사회와 연계의 강화이다. 천만 당원시대, 당원 가입 요건과 진성당원 자격 조건 완화, 당내 리더십과 선출직 후보 선출과정에서 당원 비중 증대 등으로 당원의 권한과 역할은 커졌지만, 실질적인 당내 의사결정과정에서 당원의 영향력은 크지 않다.
전 세계적 민주주의 퇴행 경고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민주주의를 믿는다. 민주적 원칙에 입각한 제도의 적절한 도입과 공동체적 질서의 회복, 민주주의 교육과 참여의 확대 등 보다 정교한 ‘민주주의 설계’를 통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다. 카리스마적 리더, 정치 엘리트가 아니라 다수 시민의 민주주의에 대한 상식적 지지가 그 믿음의 근거이다. 권력을 둘러싼 쟁투에 이성과 상식이 무력화될 가능성을 확인한 가운데 정당과 시민사회에, 민주주의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상식에 근거한 정치문화가 형성되지 못한다면 우리의 민주주의는 매우 취약할 수밖에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