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훤주 칼럼] 뉴스타파가 만든 다큐멘터리 영화 ‘압수수색’, 응원하러 갔다가 생각지도 못했던 커다란 응원을 받고 돌아왔다. (⏳4분)

별 기대 없이 보러 갔다
[압수수색: 내란의 시작]이 개봉된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망설임 없이 바로 보러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재미가 있을 것 같다거나 잘 만들어졌을 것이라는 기대는 없었다. 다만 민주주의를 위하여 작은 힘이라도 보태고 응원할 수 있다면 족하다는 심정이었다.
입장권을 예매하려고 살폈더니 마산에서는 두 군데 영화관에서 상영하고 있었다. 토요일만 한 차례 하는 데와 토요일과 일요일에 각각 한 차례 하는 데가 한 군데씩이었다. 그것도 오전 11시 30분 점심때와 겹쳐 가장 사람이 적은 시간대였다. 예매한 숫자는 예상대로 전체 좌석은 60개인데 고작 4명이었다. 넷이 모인 단톡방에 글을 올렸더니 한 명이 더해졌다.
뜻밖에 보는 재미가 있었다
우리는 일찌감치 뒤쪽 높직한 데 자리 잡았다. 얼마나 들어오는지 살폈으나 불이 꺼질 때까지 반전은 없었다. 스크린에서는 검은 양복 차림들이 줄지어 몰려오기 시작했고 그들이 누구인지는 이후 전개를 보고 압수수색을 위해 출동한 검사와 수사관들인 것을 알았다.
이어서 누군가 혼자서 외롭게 그들을 막는 장면이 나오고 동시다발로 여러 군데서 벌어지는 압수수색이 눈앞에 펼쳐졌다. 별스럽지 않고 생동하는 느낌도 없는 장면의 연속이었지만 나도 모르게 몸이 앞으로 수그러지면서 몰입되기 시작했다.
그 뒤로도 12월 3일 윤석열의 비상계엄 내란과 어우러지는 화면들이 펼쳐졌고 그것들은 대체로 덤덤하고 이미 익숙한 장면이었다. 어느 정도 짐작 가능한 내용이었기에 손에 땀을 쥐는 순간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한눈을 팔아도 되는 순간도 또한 없었다.
편하게 내려놓을 수 없는 긴장감은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좌석에 파묻혀 편히 기댄 채 보지 못하고 있었다. 장면이 바뀔 때마다 눈가를 닦아 내고 얼굴을 문지르며 주먹을 쥐었다. 짧게 탄식을 뱉으며 옆사람에게 방해되지 않도록 소리 없이 박수 시늉을 하기도 했다.

잘 짜여진 영화였다
독특하지 않고 색다르지 않은, 텔레비전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평범한 장면들로 만들어진 영화였지만 개별 스토리는 독립성을 잃지 않았고 전체 맥락은 일관되게 유지되고 있었다. 서로를 이어주며 전개해 나가는 연결 고리는 적당하게 촘촘하고 적당하게 헐거웠다.
영화 제작진이 사건의 대상이고 탄압을 받는 상황이고 보면 흥분하거나 감정에 휘둘리기 쉬운데 전체적으로 객관성과 침착함을 잃지 않았다. 없으면 좋겠다 싶은 군더더기도 없었고 더 있으면 좋겠다 싶은 아쉬운 구석도 없었다. 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는 짜임새였다.
인물마다 개성이 뚜렷했다
김용진 한상진 봉지욱, 주인공 세 사람은 닮은 듯 달랐고 또 다른 듯 닮아 있었다. 그런 캐릭터가 뉴스타파를 이끌어가는 힘이 아닐까 싶다. 김용진은 기세가 대단한 기개(氣槪)형이었다. 굽이마다 사태의 성격을 규정하고 방향을 제시하며 전체를 이끄는 힘이 있었다. 그의 이런 성정은 과장이나 꾸밈이 없는 표정과 몸짓을 통해 화면에서 그대로 표출되고 있었다.

봉지욱은 곧장 앞으로 나아가는 직진(直進)형으로 느껴졌다. 류희림의 청부민원 사주가 터졌을 때 그 동생을 곧장 취재하고 윤석열이 검찰총장 인사청문회에서 거짓말을 하자 바로 따라붙어 끈질기게 묻는 장면이 그랬다. 국민의힘 의원의 터무니없는 질문을 국회 증언대에서 맞받아치는 당당함도 그러했다.
한상진은 성찰(省察)형이라 하면 적당하다. 자신이 놓인 상황, 그리고 그 상황 속에서 했던 생각과 말과 행동을 끊임없이 돌아보며 나가야 할 방향을 찾는 유형이다. 검찰 조사를 받고 나오는 대목에서 그런 성향이 잘 드러났다. 본질과 무관한 꼬투리도 아닌 꼬투리를 잡아 인격을 능멸하는 검찰의 집요함에 맞서며 속으로 억누르고 삭혔을 참담함이 밖으로 나와서 하는 그의 이야기에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어지간하면 흔들리지 않은 멘탈이라고 자부했는데 그날은 손에 쥔 우산을 들 수가 없었다. 걸음도 옮길 수 없어서 비를 맞고 한참을 앉아 있었다.”
부당하고 부조리한 거대한 모순과 온몸으로 맞서다 탈진했지만 끝까지 가겠다는 다부진 다짐을 다시 스스로에게 하고 있었다.
세상에 두려움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뉴스타파 기자들도 마찬가지다. 마치 처음부터 두려움이 없었던 것처럼 직진하지만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두려움에 몸과 마음을 지배당하지 않으려는 부단한 노력과 결연한 의지가 나를 눈물겹게 만들었다. 그들은 이 영화를 통해 새삼 스스로에게 이것을 다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응원하러 갔다가 응원받고 돌아왔다
뉴스타파는 후원회원으로 운영이 된다. 그뿐만 아니라 마음으로 응원을 보태는 이들까지 더하면 그들은 응원군이 많다. 압수수색을 위해 출동한 무리에 맞서 손팻말을 들고 항의하는 시민들의 모습은 작지만 큰 울림을 주는 장치였다. 급한 연락을 받고 서둘러 나왔는지 흐트러진 머리매무새며 집에서 입는 펑퍼짐한 치마 차림인 그들에게서 자유와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평범한 시민들의 진심이 오롯이 느껴졌다.

마지막 감동은 영화가 끝이 난 후였다. 열 명만 되어도 많을 것 같다는 예상과는 달리 여기저기 일어나는 사람이 최소한 서른 명이 넘어 보였다. 좌석이 60개 남짓이었는데 내가 있던 D열만 해도 일곱이었고 나머지 다섯 열도 절반 이상 들어차 있었다.
수구의 고장 마산에서 그것도 가장 사람이 적은 시간대에 이렇게 모이다니……. 우리 일행도 놀랐고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로 놀란 티가 역력했다. 그저 고맙다는 생각이 들면서 코끝이 찡해졌다. 짧은 순간이지만 낯선 이들과 이렇게 강한 동질감을 주고받을 수 있어서 더욱 좋았다. 나는 가볍게 응원하러 갔다가 생각지도 못했던 커다란 응원을 받고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