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코리아 칼럼] 갈림길 선 한국경제···데이터가 말해주는 번영의 길은? 전문가들 이구동성 “기득권 무너뜨려야 번영”···특권세력은 혁신 걸림돌 (주병기/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6분)

2024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대런 아세모글루, 사이먼 존슨 그리고 제임스 로빈슨, 이 세 경제학자의 답은 지극히 간단명료하다. 사회혁신과 경제(기술)혁신의 길을 정치적 강자와 경제적 강자의 특권질서가 가로막고 있을 때 국가는 실패한다.

이들의 저술에는 이 명제를 예시하는 흥미진진한 역사적 사례들이 펼쳐진다. 소수의 엘리트 집단에 정치와 경제 권력이 집중된 고대 잉카제국의 실패, 원주민과 흑인을 노예로 삼고 자원 수탈을 일삼았던 중남미 지역 스페인 식민지의 실패, 벨기에 레오폴 2세의 잔혹한 식민통치 이후 정치적 혼란과 내전을 지속한 콩고의 실패, 그리고 폐쇄적 정치와 경제로 빈곤에 허덕이는 북한의 실패.

한국사에도 동학혁명을 외세로 진압했던 조선의 종말 그리고 그 후 전개된 뼈아픈 근현대사의 경험이 있다. 동학혁명은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평등주의와 민주주의에 뿌리내린 조선의 근대 시민혁명이다.

혁명정부가 1894년 남도를 통치했다. 동학혁명이 추구했던 사회개혁에 저항했던 탐욕스러운 조선의 상류 엘리트 집단은 외세까지 끌어들여 특권 질서를 지키는 데 안간힘을 다 썼다. 신식 무기로 무장한 일본군의 개입으로 혁명은 좌절했고, 그로부터 10여 년 후 조선은 일본에 의해 외교권을 박탈당했다. 그리고 마침내 1910년 일본의 강제 병합으로 국권까지 상실했다.

혁신은 ‘창조적 파괴’의 과정이다. 성장하고 발전하려면 기존 질서에 안주하지 않고 기득권을 무너뜨리는 끊임없는 도전과 응전이 지속돼야 한다. 돈과 자본의 힘을 축적한 경제 강자가 경제 약자의 자유와 기회를 억압할 때 창조적 파괴를 통한 경제 혁신의 길이 가로막힌다. 부패한 특권 세력이 정치권력을 장악하고 대다수 정치 약자의 자유와 기회를 억압할 때 부패한 사회질서와 낡은 제도를 개혁하는 창조적 파괴의 길이 막힌다. 바로 이것이 착취 제도가 경제성장과 번영의 중대한 걸림돌이 되는 정치경제학적 메카니즘이다.

갈림길에 선 대한민국

대한민국은 대만, 일본과 함께 민주화와 경제개발에 성공하여 단기간에 선진국 수준의 경제발전을 이룩한 사례로 유명하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과거와 같은 성장을 지속하기 어려운 단계에 도달했다. 후진적인 추격형 개발국가 체제를 벗어나지 못한다면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의 추격을 따돌리기 어렵고, 다른 선진국과의 기술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는 더더욱 어렵다.

선진적인 국가체제로 탈바꿈해 인적 역량과 제도적 역량을 업그레이드해야만 경제발전과 국가 번영을 지속할 수 있는 중대한 갈림길에 있다. 30년 넘게 지속되는 일본의 장기침체, 그리고 개발도상국으로 추락했던 아르헨티나와 같은 실패를 피하려면 하루빨리 정치와 경제를 아우르는 사회 대개혁을 통해 후진적이고 비합리적인 정치경제 질서를 공정하고 합리적인 질서로 교체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직면한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다. 1987년 민주화에도 불구하고 오랜 개발독재와 불공정한 경제 그리고 부패한 관료 사회에 누적된 특권 질서가 사회 곳곳에 널려있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동학혁명의 좌절이 보여주는 것처럼, 국가 흥망성쇠의 중대 갈림길에서 정치적, 경제적 특권의 탐욕한 저항은 극대화한다.

정치는 명분을 상실한 채 맹목적으로 특권을 지키고, 특권을 파괴하는 혁신에 대해 폭력적으로 저항한다. 그 폭력은 검찰, 사법, 행정의 공권력을 이용할 뿐만 아니라 때로는 군사력까지도 동원한다. 우리는 이런 폭력을 과거에도 수없이 경험했다. 독재에 저항하고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시민, 지식인과 정치인에게 가해진 국가 폭력의 역사를 우리는 기억한다. 사회혁신을 빨갱이, 공산주의자, 간첩 등으로 악마화하고 고문하고 조작된 범죄 누명으로 사법 살인까지 저질렀던 부끄러운 역사.

바뀐다!

국가는 어떻게 번영하는가?

250년 전 애덤 스미스의 답 역시 지극히 간단명료하다. “완전한 정의, 완전한 자유 그리고 완전한 평등”을 실현하는 것이야말로 “모든 계급에 가장 높은 번영을 보장하는” 비결이라고 했다. 경제학의 고전 ‘국부론’이 제시한 바로 이 답을 경제이론과 통계적 분석을 통해 검증한 것이 2024년 세 명의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와 현대 경제학이 이룩한 성과다.

정치 강자와 경제 강자의 지배와 억압이 만연한 특권 질서가 정의, 자유와 평등의 원칙에 반하는 착취 제도를 만든다. 그래서 강자의 폭력을 견제하고 특권 질서를 방지하는 성숙한 민주주의, 법치주의 그리고 공정한 시장경제 확립이 국가 번영의 필수 조건이다.

전 세계 175개국 데이터를 분석한 아세모글루와 로빈슨의 연구에 따르면 민주화는 25년 후 1인당 GDP를 20% 이상 높이는 결과를 낳는다. 한국의 경우 그 영향은 훨씬 컸다. 민주화 25년 후 1인당 GDP(2024년 실질가치 기준)는 약 600%(6배) 상승하여, 1987년 약 5천 달러 수준에서 2012년 약 3만 달러 수준이 됐다. 비슷한 시기 민주화한 대만도 1인당 GDP가 약 500% 상승했다. 특권 질서를 해체하고 착취 제도를 혁신할 때 발생하는 경제적 이익이, 한국과 대만 같은 성공적인 나라에서 얼마나 큰가를 이 수치는 잘 보여준다.

윤석열의 위헌적 비상계엄과 내란 사태는 바로 이런 특권세력의 저항이 일으키는 국가 폭력의 정점을 보여준 것이다. 윤석열 일당이 북한군을 자극해 전쟁 위기까지 초래했다는 외환죄 혐의도 짙다. 이 사태를 단순히 몇 사람의 정치적 오판 혹은 개인적 일탈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치부하면 안 된다. 이런 명백하고도 중대한 반 헌법적 행위에도 불구하고 이 나라의 보수 정치를 대표한다는 대다수 정치인이 내란의 우두머리를 비호하고 내란 세력의 복귀를 꾀했다는 사실이 바로 이 사태의 본질을 말해준다.

윤석열 정부는 초반부터 검찰과 경찰을 동원해 비판적 의회정치와 비판적 언론에 대해 무도한 압수수색과 수사권 남용을 자행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공권력의 폭력이 지속된 것이다. 보수를 자처하는 정치인 중 절대다수가 행정부의 오만과 권력 남용을 견제하는 입법부 일원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고 대통령의 꼭두각시가 되어 민주주의의 기본 질서를 짓밟는 폭력을 두둔했다.

윤석열 정권은 언론 탄압을 일삼은 전력을 가진 사람을 언론의 공정성을 담보하는 국가기관에 임명하고, 사회적 약자와 보편적 인권의 가치에 반하는 언행을 일삼았던 사람을 인권의 가치를 지키는 국가기관에 임명하고, 독립운동의 역사를 정면으로 부인하는 사람을 독립을 기념하는 기관의 기관장으로 임명하는 등 집권 초반부터 대한민국 75년의 특권 질서, 그 뿌리 속까지 썩은 본색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12.3 비상계엄과 윤석열 내란 사태의 직접적 경제적 손실은, 이 사태 후 공개된 한국은행의 작년 말과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을 통해 추계하면 약 6조 3천억 원에 달한다. 그러나 실추된 민주주의의 가치는 이와 비교할 수 없이 크다.

스웨덴 국제정치연구소와 영국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트 유닛(EIU)은 각각 비상계엄과 그 이후 지속한 정치 불안정을 이유로 한국의 민주주의를 ‘결함 있는 민주주의’로 강등시켰다. 특히 EIU가 평가한 한국 민주주의 지수는 이 지수가 집계된 2006년 이래 최젓값을 기록했고, 순위도 전년 대비 10단계나 추락했다. 내란이 그들이 계획대로 이뤄졌다면 민주화 이후 대한민국이 이룩한 경제발전의 성과를 단기간에 모두 잃게 되는 일이 벌어졌을 수도 있다.

특권 질서 지키는 정치 청산해야 할 때

한국 자본주의는 여전히 재벌 대기업집단과 같은 경제 강자의 특권이 지배한다. 재벌가의 2세, 3세 경영의 특권 질서가 혁신적 중소벤처기업의 기회를 박탈한다. 불공정한 시장질서가 기업 간, 부문 간, 노동 간 격차를 키우고 인적, 제도적 역량을 훼손하여 국가 경제의 기초체력을 잠식한다. 한국 정치도 식민지 파시즘과 군사 독재의 기나긴 권위주의를 지내오며 쌓이고 쌓인 정치 특권이 지배한다. 언제라도 파시즘이 기승하게 할 수 있는 특권의 존재를 윤석열과 그의 지지 세력이 증명했다.

기나긴 권위주의 역사 속에서 때로는 침략자에 부역하고 때로는 독재자를 우상화하며 힘을 키워온 족벌 언론도 2대, 3대 세습을 거듭한다. 탐욕의 특권 질서는 금융, 교육, 종교, 복지와 의료 영역에까지 뻗쳐 세습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특권 질서 속에서 돈과 자본의 꿀이 흐르는 길목 길목을 지키며 특권의 창과 방패로 기생하는 검찰, 사법, 관료 조직의 수퍼 엘리트 집단이 있다.

이제는 마땅히 해체돼야 할 특권 질서를 지키려는 수구 정치의 끝없는 탐욕이 그 정점에 이르렀음을, 그래서 언제든 나라를 벼랑 끝으로 내모는 제2, 제3의 내란을 도발할 수 있음을 12.3 비상계엄과 윤석열 내란 사태는 여실히 보여주었다.

외환위기를 초래했던 특권 세력이 재집권을 위해 국지전까지 불사했던 1997년 북풍 공작(이른바 총풍사건)을 우리는 기억한다. 2000년대 중반 ‘차떼기’로 불법 정치자금을 동원하며 재벌 총수들과 수구 정치가 유착했던 사건도 있었다. 수구 정치는 이명박과 박근혜라는 중대 범죄자를 배출했고 이제는 내란 사태의 우두머리까지 배출했다. 대한민국 특권 질서의 탐욕은 친위 쿠데타는 물론 전쟁도 불사할 것이다.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이 특권 질서를 지키는 정치를 이제 청산해야 한다. 국민을 공평하게 대표하는 포용 정치가 특권을 해체하고 완전한 정의, 완전한 자유, 완전한 평등의 대한민국을 건설하는 데 매진할 때 국가 번영의 길이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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