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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x type=”note”]슬로우뉴스가 가로수길서점과 제휴하여 좋은 책과 함께 매주 독자를 찾아갑니다. 가로수길서점은 “가로수길에서의 책 한 권”를 더불어 나누고자 2012년 7월에 문을 연 온라인 공간입니다. (편집자) [/b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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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일 정오, 광화문 교보문고에 늘어선 줄” 어쩌면 책에 대한 내용보다도 이슈가 되어버린 7월 1일의 뉴스인데요. 바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입니다. 화제가 된 만큼이나 “동어반복, 허세 작가 VS 뛰어난 작가”, “하루키를 읽는가, 하루키 열풍을 읽는가”, “작가 하루키는 없고 그에 대해 말하는 우리만 있다” 등 관련된 기사가 쏟아지고 있는 요즘인데요. 오늘 가로수길서점에서는 무엇보다 하루키의 뉴스가 아닌 책의 이야기에 좀 더 독자들이 관심을 뒀으면 하는 바람에서 준비했습니다. 먼저, 이 책의 저자와 책 소개부터 시작합니다.

이 책의 저자 무라카미 하루키는 일본 교토에서 태어나 와세다 대학교에 입학, 재즈 카페를 운영하던 중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로 군조 신인 문학상을 받으며 데뷔하였습니다. 미국 문학에서 영향을 받은 간결하고 세련된 문체와 현대인이 느끼는 고독과 허무의 감성은 당시 젊은이들로부터 큰 공감을 주었으며 특히 “노르웨이의 숲”으로 세계적인 무라카미 하루키 붐을 일으켰는데요. 그동안 수많은 장편,단편소설 및 에세이, 번역서를 발표하고 세계적인 권위의 상들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이번 신작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는 철도 회사에 근무하는 한 남자 다자키 쓰쿠루가 잃어버린 과거를 찾기 위해 떠나는 순례의 여정을 그린 작품으로 개인 간의 거리, 과거와 현재의 관계, 상실과 회복의 과정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이 책을 볼까 말까. 좀 더 자세히 이 책을 살펴볼까요? ‘오늘의 책 미리 읽기’,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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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ge. 51
사라는 얇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가 입을 열었다. “그러는 건 분명히 위험한 일이야.” “위험하다고, 어떻게?” “기억을 어딘가에 잘 감추었다 해도, 깊은 곳에 잘 가라앉혔다 해도, 거기서 비롯한 역사를 지울 수는 없어.” 사라는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그것만은 기억해 두는 게 좋아. 역사는 지울 수도 다시 만들어 낼 수도 없는 거야. 그건 당신이라는 존재를 죽이는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어쩌다 이런 이야기로 흐르고 말았을까?” 쓰쿠루는 반쯤은 자신을 향해 말했다. 도리어 밝은 목소리로. “이 이야기는 지금까지 누구에게도 한 적이 없었고 할 생각도 없었는데.” 사라는 엷게 미소 지었다. “누구에겐가 이야기해 버릴 필요가 있었던 거 아닐까. 스스로 생각한 것 이상으로.”

Page. 116
“자네는 머지않아 도쿄의 대학 생활로 돌아갈 거야.” 미도리카와는 조용한 목소리로 고했다. “그리고 현실적인 삶으로 돌아갈 거야. 견실하게 그 삶을 살아야 해. 아무리 밋밋하고 평범하더라도 삶에는 살 만한 가치가 있지. 그건 내가 보장하지. 아이러니나 역설 같은 건 빼고 하는 말이야. 다만 나에게는 그 가치라는 게 좀 부담스러웠을 뿐이야. 그놈을 제대로 짊어지고 나아갈 수가 없어. 아마 나면서부터 거기에 맞지 않는 것 같아. 그래서 죽어 가는 고양이처럼 조용하고 어두운 곳에 숨어들어 그때가 오기만을 묵묵히 기다리는 거야. 그것도 나름대로 나쁘진 않아. 그러나 자네는 달라. 자네는 그놈을 짊어지고 나아갈 수 있어. 논리의 실을 활용하여 살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을 자기 몸에 잘 맞게 바느질로 붙여 가는 거야.”

Page. 363
가 버린 시간이 날카롭고 긴 꼬챙이가 되어 그의 심장을 꿰뚫었다. 소리 없는 은색 고통이 다가와 등골을 차갑고 딱딱한 얼음 기둥으로 바꾸어 놓았다. 그 아픔은 언제까지고 같은 강도로 거기 머물렀다. 그는 숨을 멈추고 눈을 꼭 감은 채 가만히 아픔을 견뎌 냈다. 알프레트 브렌델은 단정한 연주를 이어갔다. 소곡집은 제1년 스위스에서 제2년 이탈리아로 옮겨 갔다. 그때 그는 비로소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영혼의 맨 밑바닥에서 다자키 쓰쿠루는 이해했다. 사람의 마음과 사람의 마음은 조화만으로 이어진 것이 아니다. 오히려 상처와 상처로 깊이 연결된 것이다. 아픔과 아픔으로 나약함과 나약함으로 이어진다. 비통한 절규를 내포하지 않은 고요는 없으며 땅 위에 피 흘리지 않는 용서는 없고, 가슴 아픈 상실을 통과하지 않는 수용은 없다. 그것이 진정한 조화의 근저에 있는 것이다.

Page. 387
“있지, 쓰쿠루, 한 가지만 잘 기억해 둬. 넌 색채가 없는 게 아냐. 그런 건 이름에 지나지 않아. 물론 우리가 그걸로 너를 자주 놀렸지만, 그건 다 아무 의미도 없는 농담이야. 넌 정말 멋지고 색채가 넘치는 다자키 쓰쿠루야. 그리고 근사한 역을 만드는 사람이고. 지금은 건강한 서른여섯 살 시민으로 선거권이 있고 세금도 내고 나를 만나러 혼자서 비행기를 타고 핀란드까지 올 수 있어. 너에게 부족한 건 아무것도 없어. 자신감과 용기를 가져. 너에게 필요한 건 그것뿐이야. 두려움이나 쓸데없는 자존심 때문에 소중한 사람을 놓쳐선 안돼” 그는 기어를 드라이브에 놓고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그리고 열린 창으로 손을 내밀고 흔들었다. 에리도 손을 흔들었다. 그녀는 높이 든 손을 계속계속 흔들었다. (중략) 아마도 다시는 이 장소에 오지 않을 것이다. 다시 에리를 만날 일도 없을지 모른다. 두 사람은 제각기 정해진 장소에서 각자의 길을 앞으로 걸어 나갈 것이다. 아오가 말했듯이 이제 돌아갈 수 없다. 그런 생각을 하니 어딘가에서 물처럼 소리도 없이 슬픔이 밀려왔다. 그것은 형태가 없는 투명한 슬픔이었다. 자신의 슬픔이면서 손이 닿지 않는 먼곳에 있는 슬픔이었다. 가슴이 헤집은 듯 아프고 숨이 막혔다.

Page. 429
시로는 아마도 그런 상황에서 도망치고 싶었던 게 아닐까. 끊임없이 감정 조절을 요구하는 긴밀한 인간관계를 더는 버텨 낼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시로는 다섯 명 가운데서도 의심할 여지없이 가장 감수성이 풍성했다. 그리고 아마 누구보다도 빨리 삐걱대는 마찰음을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 스스로의 힘으로는 그 테두리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녀는 그 정도로 강인하지 않았다. (중략) 그렇게 생각하면 여러 가지가 잘 맞아떨어지는 듯했다. 그녀는 그때 아마도 본능이 시키는 대로 쓰쿠루를 발판으로 삼아 놓고 견고한 벽을 넘어서려 했다. 다자키 쓰쿠루라면 그런 입장에 처한다 해도 나름대로 잘 살아갈 수 있을 거라는 직관이 시로에게 있었을 것이다. 에리가 냉정하게 그런 결론에 이른 것과 마찬가지로. 냉정하면서도 언제나 쿨하게 자신의 페이스를 지키는 다자키 쓰쿠루. (중략) 아냐, 나는 냉정하지도 않고 늘 쿨하게 자신의 페이스를 지키는 인간도 아냐. 그것은 그냥 밸런스 문제에 지나지 않아. 그냥 습관적으로 자신이 끌어안은 무게를 좌우 지점으로 잘 배분할 뿐인 거야. 남의 눈에는 산뜻하게 보일지도 몰라. 그렇지만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야. 보기보다는 많은 노력이 필요해. 그리고 균형을 잘 잡는다고 해도 지지점에 걸리는 총 중량은 전혀 줄어들지 않아.

볼까말까 이책!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의 감상은 어떨까요? SNS상 독자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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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욤 님 : 보통 사람들은 스스로를 색채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도 사실 쓰쿠루에 가까울지도 모르겠지요. 하지만 나를 바라보는 내 주위의 사람들의 생각은 다를지도 모릅니다. 쓰쿠루를 사랑했지만 고백하지 못했던 구로처럼 말입니다. 쓰쿠루는 비어있는 그릇과도 같습니다. 색채가 없는 것이 아니라 그런 색채를 가진 사람들이 잘 화합할 수 있도록 채워주는 그런 조율자로써 존재했으며 쓰쿠루가 친구를 찾아 이야기를 듣는 그 순례의 과정에서 얻는 용서, 그리고 스스로의 치유는 독자들에게 깊은 기시감을 안겨 주는 것도 같습니다. 우리도 때로는 아무 이유도 없이, – 정말 내가 한 짓도 아닌데- 오해로 상처를 입고 좌절하고 분노하면서도 그것을 애써 잊고 살려 합니다. 쓰쿠루 역시 그렇게 긴 세월을 고통으로 보내왔지만 순례의 해에 회자정리를 하게 되지요. 참 쉽지 않음에도 쓰쿠루는 마침내 해내고 맙니다. 색채가 없는 스쿠루가 말이지요. 그 무섭고 적막한 십육년의 세월을 하루키는 담담한 어조로 이야기를 이끌어 냅니다.
  • Kim Eun-joo 님 : 뭔가 강력한 한방이 없네, 오래 남을 만한.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이야기입니다.
  • 대장물방울 님 : 어떤 것이 좋은 이야기이고 잘 쓰여진 이야기인지는 잘 모른다. 하지만 이 책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는 내게 있어 제법 좋은 책으로, 마음을 울린 이야기로 기억될 것이다. 이 기억조차 이 이야기가 품고 있는 진정한 색깔에 대한 것이 아니며, 머지 않아 바래서 흐려질 것이란 걸 알지만 그럼에도 간단히 내려놓을 수가 없는 거다.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게 하는 책, 의문을 갖게 하는 책은 좋은 책인 경우가 많다. 이 이야기 속에는 참으로 다양한 화두가 들어있다. 완전한 공동체, 추방, 진짜, 정말, 용서, 믿음, 질투, 슬픔, 죽음, 색깔 너무나 많아 일일이 짚어내기도 쉽지 않을 만큼 말이다. 나에게도 과거의 어느 때에 멈춰버린 시간이 존재한다. 그 시간과 함께 응어리진 아픔도 여전히 지워지지 않고 남아있다는 걸 안다. 조금씩 화해해 가고 싶다. 그렇게 해서 진짜 내 색깔을 찾고 싶다. 멀지 않은 시간에 나만의 순례에 나서고 싶다.
  • 가연 님 : 이번에 펴낸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는 상실의 시대를 뒤집은 것 같습니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비슷하지만요. 주인공의 주변에 정신적으로 문제를 안고 있었던 여자아이가 있는 것도 상실의 시대의 나오코의 변주같습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다른 부분은 다자키 쓰쿠루는 상실의 시대의 주인공과는 달리 자신의 힘으로 상대를 찾아가지요. 그래서 이 책은 광고에서도 그렇듯 ‘당신은 어느 역에 있습니까?’ 를 계속 물어옵니다. 역은 열린 장소이자 동시에 어디로 가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할 곳이기도 합니다. 전작의 와타나베가 공중전화박스에 갇혀버렸다면 이번의 쓰쿠루는 사방으로 뚫린 곳에서 스스로를 밖으로 밀어냅니다. (중략) 결국 사람은 자, 이제 나가자, 한다고 해서 그렇게 쉽게 바뀌지는 못한다, 라는 겁니다. 하지만 이 소설 속 다자키 쓰쿠루는 너무나 쉽게 해냅니다. 상대 여성을 ‘이번에 잃으면 다시는 이런 사람을 얻지 못할 것이다’ 라고 속으로 생각하면서 말이지요. 너무나 적극적으로 달려가는 그의 마지막 모습에 저는 솔직히 아연했습니다. 너무나 그대로였던 주인공이 너무나 극적으로 바뀌어버렸으니. 그의 한계는 여자주인공의 손을 잡고 ‘당신을 잃기가 싫어’ 라고 말하는 것까지일 텐데. 다가와야 할 사람은 여자주인공일 텐데. 사랑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다고 말하면 쉽겠지만, 사랑이 도대체 무엇인가요? 그리고 내가 상대를 사랑이라고 확신한다고 해서 상대방이 나를 사랑이라고 확신할까요. 여기서 여주인공은 주인공에게 순례를 떠나서 그를 버렸던 친구를 만나라, 라는 이야기밖에는 하지 않습니다. 결국 이 책에서는 다자키 쓰쿠루의 행동 변화를 제대로 설명해내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결국 주인공이 여주인공을 만나러 가는 것은 ‘개인적 판단’ 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는 그가 그저 여주인공의 손을 붙잡고 외롭다,라고만 말하기를 바랬습니다.
  • 지니 이번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를 몇 페이지 읽다가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다. 이건 나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쓰쿠루는 여름 방학이 시작되자 짐을 챙겨 신칸센을 타고 나고야의 집으로 돌아가, 자연스레 네 명의 친구들에게 전화를 한다. 하지만 그 누구하고도 연락이 되지 않는다. 며칠 뒤 통화가 된 친구는 아무런 설명 없이 쓰쿠루에게 이렇게 말한다. “미안하지만 이제 더는 누구의 집에도 전화를 걸지 말았으면 좋겠어.” 나는 이 문장을 읽으면서, 마음이 덜컹거리는 걸 느꼈다. 기차를 타고 가는 것처럼 마음이 흔들리고, 잊고 있었던 누군가가 저 멀리 기억 속에서 생각이 났다. 쓰쿠루는 알았다며 그냥 전화를 끊는다. 특별히 항의도 하지 않고, 따지고 들지도 않고. 나 역시 과거에 그런 기억과 상황을 가지고 있었다. 그 동안 시간의 무게에 묻혀서 잊고 있었다고 생각한 그것이 이 문장을 계기로 다시 생각이 나고 말았다. (중략) 쓰쿠루는 자신의 과거와 마주서기 위해서, 잃어버린 과거를 찾기 위해서 순례를 떠난다. 도쿄에서 나고야로, 또 핀란드까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을 수 있는 여행을 말이다. 역에서 근무하는 그는 매일같이 떠나고, 도착하는 사람들을 볼 것이다. 역이란 공간은 멈춰있는 것 같으면서도 움직이는 공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쓰쿠루가 색채가 없다고 느끼지만, 친구들은 그를 다르게 기억하고 있던 것처럼, 모든 의미부여는 상대적이니 말이다. 문득 나는 지금 어느 역에 서 있는지 생각해 보게 된다. 1년의 절반이 지난 지금, 나는 과연 2013년이라는 길에서 어디쯤에 와 있는 걸까? 올 초에 내가 생각했던 그 길로 올바르게 가고 있기는 한 걸까? 오늘 라자르 베르만의 음반이 도착하면 음악을 들으면서, 천천히 한번 고민해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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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생각이 단순해서 그런지, 하루키 열풍에 대해서 그리 나쁘게 생각되지 않는데요. 겉으로 보이는 현상에 휩쓸려 하루키 책을 손에 들게 되었더라도, 책을 읽고 책에 대한 흥미를 얻게 되는 독자가 한 명이라도 생긴다면 좋은 일이고, 비판하는 독자가 생긴다면 그 또한 좋은 일이 아닐까요? 보다 책을 읽는 독자들이 늘어났으면 하는 바람에서 하는 이야기였습니다.

[box type=”info”]본 게재본은 원문을 일부 수정하였습니다. 가로수길서점 블로그의 원문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b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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