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재 칼럼] 헌법과 반헌법의 구도를 여야 정쟁 구도로 만드는 꼼수, 지금은 타협을 이야기할 때가 아니다.
일이 꼬이고 있다.
한덕수(대통령 권한대행)가 내란특검법에 대한 거부권 행사를 시사했다. 헌법재판관 추가 임명도 하지 않을 것임을 암시했다. 민주당이 한덕수를 탄핵하겠다고 나섰지만 정말 탄핵할 의지와 능력이 있는지는 불분명하다.
이게 왜 중요한가.
- 한덕수는 갈등의 성격을 국민 vs 내란범에서 여 vs 야로 바꾸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고, 민주당은 말려들어가고 있다.
- 시민의 힘으로 간신히 내란을 막고 탄핵을 가결시켰는데,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 내란특검이 출범하지 못하면 윤석열과 김용현(전 국방부장관)을 비롯해 비선 실세라는 의혹을 받고 있는 노상원(전 정보사령관) 등 내란 혐의자들에 대한 수사가 꼬이거나 늘어지게 된다.
- 가뜩이나 공수처와 경찰, 검찰 등이 각각 수사와 기소를 나눠 맡으면서 일이 꼬이고 있는 상황이다. 윤석열은 검찰과 경찰, 헌재에서 보내는 우편물을 수취거부하며 시간을 벌고 있다. 특검이 시작돼야 수사가 진행되고 수사 결과가 헌재 탄핵 심판에도 반영된다. 그런 특검을 막겠다는 것이다.
한덕수는 탄핵 심판을 방해할 수 없다.
- 헌법재판소는 현재 재판관 9명 정원 가운데 6명만 있다. 지난 10월 이종석(자유한국당 추천)과 김기영(민주당 추천), 이영진(바른미래당 추천)이 퇴임하면서 3명이 두 달째 공석인 상태다.
- 헌법재판소법에 따르면 심리 정족수는 7명이고 의결 정족수는 6명이다. 7명 이상이 모여야 심리를 할 수 있고 6명 이상이 찬성해야 의결된다.
- 그런데 지난 10월 이진숙(방통위원장)이 낸 가처분 신청이 받아들여져 심리 정족수 조항이 정지된 상태다. 그래서 6명만 있어도 심리는 가능하다.
- 한덕수가 헌재 재판관을 임명하지 않고 버티면 어떤 결과가 나오든 엄청난 논란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 6명 체제에서는 만장 일치로 인용 결정을 할 수 있지만 기각을 결정할 수는 없다는 게 정설이다. 애초에 최소 7명 심리를 전제로 6명을 의결 정족수로 정하고 있기 때문에 6명으로 심리를 시작할 수 있다는 의미일 뿐 1명이라도 반대가 있으면 7명 이상 심리 정족수를 채워야 결론을 내릴 수 있다고 보는 게 맞다.
- 12.3 비상계엄 선포는 그 자체만으로도 너무나 명백한 반헌법적 행위이기 때문에 당연히 탄핵 요건이 된다는 것도 정설이다. 6명 중에 한두 명이 반대해서 탄핵이 기각되는 시나리오는 가능성이 낮을 뿐더러 애초에 한덕수가 건드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여야정 협의체 같은 건 가능하지 않다.
- 지금은 윤석열 내란정국 최대의 위기이다.
- 애초 민주당의 전략적 실수가 있었다. 이재명(민주당 대표)은 탄핵 가결 직후 여야정협의체를 제안했다. 국가 지도자다운 포용적 제스처를 보여주라는 누군가의 조언을 들은 모양이다. 한덕수 체제를 인정하는 잘못된 선택이었다.
- 여야정협의체는 정쟁 중인 여당과 야당을 대통령이 불러서 타협을 이끌고 적당한 중재안을 만드는 과정이다. 민주당 스스로 한덕수를 정점에 놓고 국정을 논의하자는 테이블을 제안하고 말았던 것이다.
- 한덕수가 누구인가. 한덕수-한동훈 체제를 만들어 국가를 통치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던 사람이다. 윤석열이 1차 탄핵 가결을 막아내고 2차 탄핵 가결도 불투명하게 만들기 위해 백방으로 뛰던 시기였다. 한덕수는 윤석열의 편에 섰고, 그러므로 그는 여전히 윤석열 체제의 일원이라고 봐야 한다. 민주당은 그런 사람이 권력의 정점에 걸터앉은 모습을 그대로 인정했던 것이다.
한덕수가 만든 프레임.
- 한덕수는 ‘수사받는 쪽과 수사하는 쪽이 모두 공정하다고 생각하는 틀을 짜 오라’고 했다.
- 이미 국회를 통과된 법률을 두고 ‘합의해 오라’고 받아치면서 싸움의 성격을 바꿨다. 선악의 싸움, 정의와 부정의의 싸움이 점점 더 여야의 정쟁으로 바뀌어간다.
- 이런 프레임이 조금씩 먹혀들고 있다. 내란 초기 조중동은 모두 한목소리로 윤석열을 비판했다. 그러나 이미 조선일보가 돌아섰다. 형식논리부터 물고 들어온다. ‘대통령 권한대행의 탄핵 요건은 대통령 탄핵 요건과 같다’는 헌법재판소 연구자료를 보도한다. ‘개헌으로 협치를 구현해야 한다’면서 은근히 현 국면을 협치가 되지 않는 상황으로 몰고간다. 중앙일보와 동아일보도 흔들리고 있다.
- 민주당은 프레임 전쟁에서 패배하고 있다.
헌법대로 하면 된다.
- 대통령 권한대행의 파트너는 국회의장이다. 국회를 통과한 법률은 국회에서 합의된 법률이다. 우리 헌법과 법률은 만장일치로 운영되는 국회를 예정하고 있지 않다. 어떤 사안은 다수결로, 어떤 사안은 3분의 2로 합의의 규칙을 구체적으로 정해 놓았다.
- 평시라면 모든 일은 가급적 정치적으로 푸는 게 좋다. 협의가 필요하고 정치적 타협도 필요하다. 그러나 지금은 절체절명의 순간, 헌법의 시간이다. 정치적 게임으로 가면 안 된다. 국회와 행정부와 사법부 사이의 헌법의 시간이다. 정치적으로 타협하려는 모든 행위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한덕수 Vs 우원식의 싸움.
- 우원식이 옳다.
- 지금은 우원식이 전면에 나서야 한다. 국회가 다수결로 통과시킨 법안에 대해 행정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법적 행위는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이다. 여야가 타협하라는 엉뚱한 정치행위를 하는 게 아니라는 이야기다.
- 정부 vs 국회, 반헌법 vs 헌법, 내란 옹호 vs 내란 단죄의 구도를 만들어야 한다.
- 그러려면 이 싸움은 국민들 눈에 ‘한덕수 vs 우원식의 싸움’이 되어야 한다. 이 싸움이 ‘이재명 vs 권영세의 싸움’이 되는 순간 윤석열 세력이 반쯤 이긴 게임이다.
- 한덕수도 결단을 내려야 한다. 윤석열의 내란을 지지한다면 내란특검에 거부권을 행사하고 윤석열 탄핵이 싫다면 헌법재판관을 임명 거부하겠다고 명확하게 선언해야 한다. 그러면 우원식이 국회를 다시 소집하고, 국회에서 특검안을 발의하고 또 발의해 200석이 될 때까지 의결하는 것이 정석이다.
- 시민의 힘으로 그 과정을 다시 한번 끌어낼 수밖에 없다. 100만 명을 넘어 200만 명으로, 1000만 명이 응원봉을 들고 여의도에 모여 한덕수 탄핵과 윤석열 내란특검이 통과될 때까지 외칠 수밖에 없다.
타협을 이야기할 때가 아니다.
- 지금은 다시 헌법과 시민들의 시간이다. 그리고 이 국면에서 헌법 수호자가 된 국회의 대표자, 우원식이 전면에 나서야 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 내란을 막으려 안간힘을 써온 시민들과 정치인들은, 이 과정이 힘들 수도 있고 불안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과정을 거쳐 헌법과 시민의 힘만으로 내란 지지자들을 분명하게 꺾고 나면, 내란 지지 의원들은 사회 생활조차 어려워지고, 내란 옹호 정당은 자연스럽게 해체되고 말 것이다.
- 어설픈 타협과 정치적 해법을 이야기할 때가 아니다. 법률안의 세부적 해석에 매몰되어 입씨름을 벌일 때도 아니다. 헌법의 원칙과 시민의 힘이라는 기준만으로 이 국면을 이겨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