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 주식시장에서 상장 주식 시가 총액 2조 달러를 넘어선 엔비디아(1위 MS, 2위 애플, 3위 엔비디아). 반도체 기업으로 AI 붐의 대표 수혜 기업이다. 그래픽카드 제조 시장 진입에서 AI 연산 장치 제조의 선두가 되기까지 놀라운 성장을 거듭해 온 엔비디아는 이제 기업 가치상으로는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를 넘보는 거대 기술기업으로 각인되고 있는 오늘이다.
엔비디아는 어떻게 이런 성공을 거둘 수 있었을까?
성공의 화려한 조명 뒤에는 위기와 실패의 역사가 반복되고 있었다. 반도체 업계의 입지적 전문가 짐 켈러는 최근 KBS 인터뷰를 통해 “엔비디아 시대는 끝난다”고 공언했을 정도로, 엔비디아의 미래가 지금도 그렇게 낙관적이진 않다는 전망도 있다. 엔비디아의 성장 역사를 통해 그래픽 하드웨어와 AI가 어떻게 서로 손을 맞잡았는지. 그리고 엔비디아는 어떻게 어려움을 극복해 왔는지 살펴보자.
실패로 빚어낸 성공신화:
GPU 제국 엔비디아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
- 실패로 시작된 그래픽 하드웨어, 엔비디아의 첫 번째 칩 NV1 (본 글)
- 작은 기술과 성과를 브랜딩하라 – GPU 의 탄생 (이하 발행 예정)
- 개인 컴퓨터 그래픽의 여명기와 FX의 망신
- 절반의 성공과 절반의 실패 – 통합칩과 모바일프로세서
- 자동차산업과 자율주행의 꿈을 품다
- 비트코인의 역습
- 딥 러닝의 파도와 인공지능 개발 선도
- 젠슨 황이 그리는 미래
실패로 시작된 그래픽 하드웨어, 엔비디아의 첫 번째 칩 NV1
1995년은 디지털 컴퓨팅 문화에 있어서 숨가쁠정도로 획기적인 한 해였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완전한 GUI OS인 Windows 95를, 썬마이크로시스템은 자바 언어를 만들었다.

인터넷 웹의 세계에서는 넷스케이프와 마이크로소프트의 본격적인 웹브라우저 싸움이 시작됐고, 영화업계와 가전제품 업체들은 VHS 비디오 테이프를 대체할 수 있는 영상 매체로서 DVD 규격을 선보였다.

그리고 엔비디아는 그들의 첫 번째 브랜드 그래픽카드 칩 NV1을 제조 생산했고 실패했다. 칩이 나오기 2년 전인 1993년 4월, 세 명의 엔지니어가 캘리포니아 산호세의 데니스 레스토랑에 모였고, 그렇게 이들은 엔비디아를 창업했다.

그들이 창업 결정을 일반 사무실이 아닌 레스토랑에서 한 이유가 재밌다. CEO 젠슨 황에게 데니스는 특별한 곳이었다. 집 근처에서 저렴하게 커피를 제공해주는 곳이기도 했지만, 그의 고된 아르바이트 경험이 묻어있는 곳이라 그 장소를 특별히 좋아했던 거다.

그렇게 조촐하게 만들어진 회사는 범용 CPU 데스크탑이 아닌 하이엔드 그래픽 컴퓨터를 개인이 사용하는 시대가 올 것을 예측해 그래픽 카드 칩 제조 사업에 뛰어들었고, NV1은 그들의 예측과 기대를 실현할 수 있던 첫 번째 작품이었다.
NV1을 만들기전까지 엔비디아는 나름 진취적으로 SGS 톰슨(지금의 ST마이크로 일렉트로닉스)에 멀티미디어 칩을 포함한 다양한 반도체 공급 사업으로 기반을 마련했고, NV1을 설계 제조하기 위해 큰 규모 투자를 진행해 그들의 미래를 올인한 상태였다.
NV1 칩셋은 창업자들의 비전이(‘NV’라는 단어부터 다음 혹은 무한대를 가리키는 N과 비전의 V를 뜻했다 한다) 반영된 획기적인 제품이기도 했는데 2D와 3D그래픽이 한 하드웨어 칩에서 모두 계산될 수 있었고, 디지털 그래픽 외에도 별도의 사운드카드가 필요없도록 음향 구현 출력(NVDAC64 라는 이름의 NV1 칩 만큼이나 거대한 사운드 칩이 따로 제조됐다)과 게임패드를 위한 연결 부분까지 이뤄져있어 그래픽카드 한장으로 PC 이용자들이 누릴 수 있게되는 부분들을 늘려놓았다.


이러한 칩 설계는 당시 3D그래픽 전용 칩셋을 선보이던 업계의 동향과는 반대 방향의 설계였다. 참고로 1995년 1월 COMDEX 행사에서 3Dfx 라는 회사는 3D 그래픽 연산용 Voodoo 칩셋을 발표했고 1년 뒤 PC 게임 그래픽 분야를 제패한다.

획기적인 하드웨어만큼 소프트웨어 기술도 남달랐다. NV1이 나온지 얼마 안돼서 아직 DOS를 완전히 대체하지 못한 Windows 95가 도스 모드가 아닌 윈도우 창에서도 2D/3D 그래픽을 연산 표현할 수 있도록 엔비디아만의 독자적인 그래픽 소프트웨어 API(Application Programming Interface)를 만든 것이었다.
세 사람의 창업자 중 프리엠 커티스는 썬 마이크로시스템즈에서 그래픽하드웨어칩을 개발한 전력이 있었고, 크리스 말라초포스키는 같은 회사의 그래픽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였다.

두 사람은 하드웨어 그래픽 표준을 만들고 유지할 능력이 있었고 젠슨 황은 두 사람보다 나이도 경력도 적은 편이었지만, 게임기 하드웨어와 CPU 업계를 두루 거치며 키워낸 시각과 통솔력으로 첫 사업부터 거대한 야망을 실현해볼 수 있었다.
SGS톰슨과 엔비디아는 그들처럼 다방면에서 확실한 영역을 만들고 싶어하던 그래픽카드 업체 다이아몬드 컴퓨터 시스템즈(후일 다이아몬드 멀티미디어)와 손잡고 ‘다이아몬드 엣지 3D’를 내놓는다.

다이아몬드는 PC 데스크탑이 대세가 되기 전 8비트 개인컴퓨터의 대명사였던 애플2를 PC 카드 슬롯에 꽂을 수 있는 한 장의 에뮬레이션 카드를 선보였던 전력이 있었다.

그만큼 NV1 칩셋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엣지 3D’ 그래픽카드에 구현했고 그 결과 엣지 3D는 3D 그래픽 가속 연산 외에도 비디오 영상 하드웨어 가속, 웨이브 사운드 입출력이 가능한 신디사이저, GUI OS 그래픽 가속, 게임기 포트 연결까지 마치 가정용 콘솔 게임기를 카드 1장으로 보유하게 되는 효과를 낳았다. 이 카드는 당시 닌텐도와 더불어 세계 콘솔 게임기 분야를 나누고 있던 게임 제작회사 세가에게도 호감을 가져다주었다.

게임기 포트 연결이 세가의 하드웨어와 호환됐기 때문이고, 그래픽카드의 멀티미디어 구성이 세가가 게임기용으로 만들었던 게임 타이틀을 PC용으로 바꿔서 내놓기도 좋았기 때문이다.

이렇듯 NV1과 엣지3D의 앞길에는 장밋빛 미래만이 펼쳐진 것 처럼 보였다. 그러나 개인용 데스크탑의 게임 그래픽을 선도하고 싶은 열망이 너무 많은 바람과 기획을 낳았던 탓이었을까? 다양한 기능은 그 다양성만큼 각각의 취약성이 생기기 마련이다. NV1은 할 수 있는 게 많아 보였던 만큼 한 칩으로 그 모든걸 처리하기에는 어려운 메모리와 연산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PC의 CPU가 하지 않는 모든 것을 한 장의 그래픽카드가 감당하는 만큼 근본적으로 성능은 부족한 아이러니가 있었던 것, 그러나 진정한 재앙은 다른 곳에 있었다. 당시 그래픽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업계는 3차원 그래픽을 구현할 때 여러 다각형을 붙여서 더 큰 입방체를 만드는 ‘폴리곤 메시’(다각형 조합) 방식을 썼고, 그 폴리곤(다각형)이 어떤 다각형인지에 대한 표준은 엄격하게 정해지지 않은 상황이었다.

엔비디아 창업자들은 NV1 실시간 3D그래픽의 원시 다각형을 사각형으로 정했기때문에 3D엣지의 모든 그래픽 렌더링도 사각형 요소를 기반으로 연산이 구성되어야 했다. 그러나 시대는 삼각형 폴리곤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었고, NV1에 맞춰 그래픽 소프트웨어를 만들어야 하는 개발자들은 업계 추세와 근본적으로 맞지 않는 개발 환경을 어려워할 수밖에 없었다.

한편, Windows 95 로 PC OS를 완전한 GUI의 세계로 이끌게 된 마이크로소프트는 처음에는 OS에 포함시키지 못했던 2D/3D 그래픽 표준 API를 뒤늦게 내놓는데 이 API 역시 NV1과 엣지3D의 발목을 잡는다.
마이크로소프트 역시 게임그래픽과 기반 하드웨어를 염두에 두고 내놓은 API ‘다이렉트 엑스’는 엣지3D와 당연히 호환이 되지 않았고, 다이렉트 엑스에 맞춰 만든 드라이버는 3D 기능이 포함되지않았다. 다이렉트엑스는 윈도우95에서 하드웨어 전용 그래픽과 게임 성능을 구성하는 API의 모음이었다. 그러나 그 중 실시간3D 그래픽용 API는 개발이 늦어져 첫 배포판에서 아예 빠져있었던 것.

그렇게 더 늦게 발표된 다이렉트 엑스의 3D 그래픽 구현 역시 사각형이 아닌 삼각형을 기본으로 하고 있었던 것은 NV1의 부실할 수밖에 없는 다이렉트엑스 성능에 치명타를 더했다.

큰 투자와 기획으로 만든 첫 칩과 첫 카드가 실패한 엔비디아는 세가의 지원을 받아 NV1을 고쳐서 NV2를 만들었고 아예 해당 칩을 게임기 하드웨어 전용으로 설계 구현하며 생존하려 애썼지만, 세가의 차세대 게임기용 칩 선택에서 중도 탈락했다. 두 번째 제품은 아예 세상에 선보일 기회조차 잃어버리고 말았다.

데니스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하던 시절 수많은 사람이 갑자기 몰리고 주방에서는 동시에 실수와 사고가 일어나는 아수라장을 자주 경험했던 젠슨 황은 그럴 때의 자신이 평소보다 더 침착한 태도로 문제 상황을 해결하는 유형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레스토랑에서 정신 아득한 위기를 맞던 알바처럼 자신이 창업한 회사도 같은, 아니 더 힘든 상황에 놓인 처지였지만, 데니스에서의 경험은 젠슨 황에게 냉정하게 사태를 회복하겠다는 의지를 다지게 했다.

젠슨 황은 절반 이상의 회사 구성원을 해고하고, 나머지 절반에게 앞으로 30일 뒤에 회사가 폐업할 거라고 알렸다. 그리고 남은 30일동안 회사를 살리게 될지 모를 세번째 칩 NV3를 빠르게 설계 제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