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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인권저널리즘센터 이달의 나쁜 사설:

신문 사설은 특정 사안 또는 쟁점에 대해 독자들의 신념과 행동, 생각 등을 설득하기 위한 공적 담론이다. 언론사는 사설을 통해 자신들이 추구하는 핵심 가치나 이념을 드러낸다. 소속 언론인들은 독자들에게 언론사의 이념을 전달하기 위해 과장적 표현과 은유, 예시 등과 같은 담화적 설득 전략을 구사한다. 일종의 언론의 설득 커뮤니케이션이다. 즉, 신문 사설은 사회 구성원의 의식의 흐름과 행동 양식 등 사회의 의사소통 방식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담론 권력이라 규정할 수 있다. 노동인권저널리즘센터는 담론 권력을 감시하기 위해 ‘이달의 나쁜 사설’을 선정·발표하고 있다. 노동인권저널리즘센터와 미디어스, 슬로우뉴스에 공동 게재한다.

노동인권저널리즘센터는 2024년 ‘1월의 나쁜 사설’로 조선일보와 서울신문 사설을 선정했다. 심사위원단은 ‘인간 존중’과 ‘진실 추구’ 보도 의무를 외면한 채, 사실 왜곡과 상징조작을 통해 이태원 참사 특별법의 공적 담론을 훼손하고 진상 규명 목소리를 축소·생략하고 정치 쟁점화했다고 평가했다.

조선일보가 1월 10일 “민주당 ‘핼러윈 특조위’ 강행, 제2의 ‘세월호 특조위’ 불 보듯”이란 제목의 사설을 내보낸 다음날 서울신문은 “야(野) 핼러윈 특조위 강행, 또 ‘재난의 정쟁화’인가”이란 제목으로 거의 비슷한 내용의 사설을 나란히 내보냈다.

누가 더 정파적인가.


조선일보는 ‘민주당이 이태원참사를 선거에 이용하기 위해 특별법을 통과시켰다’고 주장했고, 서울신문도 거의 비슷한 논조였다.

논리 골격은 민주당 단독 처리 – 참사 진상 규명 완료 – 관련자 사법 처리 중 – 헌재의 행안부 장관 탄핵 소추 기각 – 국정조사 무소득 – 세월호 참사 특조위 실패이다.

요지는 민주당이 선거를 위해 이태원 참사를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진상 규명은 경찰이 ‘좁은 골목에 감당할 수 없는 인파가 몰려 넘어지면서 참사가 벌어졌다’는 수사 발표로 마무리됐고, 책임자 처벌은 법과 제도가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이미 완료됐거나 진행 중인데 야당이 정쟁에 나섰다는 주장이다.

과연 그럴까?


조선일보와 서울신문 사설은 어떤 쟁점을 배제하고 강조하고 있는 것일까?

가장 크게 ‘배제’된 목소리는 법의 취지이다. 왜 이태원참사 특별법이 제정되었는가에 대한 법리적 내용이 없다.

유족과 생존자들의 목소리도 빠졌다. 이들은 지속해서 ‘왜’ 기존에 작동했던 안전 관리 시스템이 그날, 그 시간, 그곳에서는 작동하지 않았는지 의문을 제기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가장 크게 ‘강조’하는 것은 야당의 ‘정치적 의도’이다. 야당의 법률 제정과 통과 절차를 부각하고, 정쟁으로 의미를 깎아내린다.

조선일보의 상징조작: ‘핼러윈 특조위’라는 상징 조작.


조선일보 참사 관련된 기사에는 ‘이태원’이 없고, ‘핼러윈’만 있다. 이태원 참사 특조위가 아니라 굳이 ‘핼러윈 특조위’라 명명한다. ‘이태원을 핼러윈’으로 대체하면서 사안의 본질을 흐리고 있다.

매스컴 프레임 이론은 뉴스의 이름 짓기가 갖는 의미를 설명한다. 이름 짓기는 단순한 명칭 부여를 넘어서 사건 본질을 규정하고 암시하는 역할을 한다. 특히 가해자와 피해자가 있는 뉴스의 경우, 이름 짓기는 사건의 책임 소재에 대한 해석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친다. 상황에 대한 정의와 그와 관련된 정보를 함축적으로 전달함으로써, 독자들이 그 사건을 평가하는 근거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조선일보는 의도적으로 ‘핼러윈’이란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이태원 참사가 ‘왜’ 발생했고, ‘누가’ 관여되었고, ‘누가 사건의 뒤로 숨었는가’에 대한 쟁점을 제거했다.

그리고 핼러윈이란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참사가 외국 문명을 무분별하게 받아들이는 젊은이들이 당한 우발적 사고라는 일부 장노년층의 ‘부정적’ 인식을 작동하게 했다. ‘세대 갈등’을 유도하면서 피해자의 책임을 은연중에 부각하려는 의도가 읽힌다.

또한 조선일보는 ‘이태원 특별법’이 국회에서 합의가 아니라 민주당이 단독으로 밀어붙였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민주당이 다가오는 총선에 이용하려는 정치적 의도가 있다는 점을 ‘부각’해 집권당과 윤석열 정부의 이태원 참사 해결 의무를 ‘면제’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는 것이다.

서울신문의 사설 ‘표절’: 제목부터 논리 전개까지 베꼈다.


법안이 통과되던 날 전후, 이태원 참사 특별법과 관련된 보도에서 ‘핼러윈’이란 용어를 쓰는 신문은 조선일보와 서울신문 뿐이다. 조선일보의 상징 조작과 프레임 조작을 다음 날 서울신문이 그대로 따라 하고 있다.

논리의 근거를 그대로 차용하고 있으며 전개와 구성이 거의 동일한 ‘사설 도둑질’이다. 진상 규명은 경찰 수사로 끝났고, 책임자 처벌은 진행 중이며, 세금 도둑이란 프레임까지 조선일보 사설의 주요 내용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심지어, 서울신문은 그동안 사용하지 않은 ‘핼러윈 특조위’란 용어까지 똑같이 사용하고 있다. 명백한 표절 행위다.

참담한 것은, 서울신문 내부에서 이에 대한 반성과 비판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는 점이다. 구성원들이 이 사실을 몰라서 그런 것일까? 사설은 언론사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의식 상품인데, 이렇게 언론 시장과 독자들에게 던져져도 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독립 언론의 역사를 가진 서울신문이 조선일보 아류 언론사로 전락하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자니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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