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광장에 나온 판결’] 한국 법원, 다시 한 번 일본의 ‘국가면제’를 배제하다
일본의 국가면제 논리 배제한 한국 법원
2016년,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에 손해배상을 청구했습니다. 소송의 핵심은 ‘한국 법원이 일본을 피고로 한 소송에 대해 재판권을 가지는지’였는데요. 일본은 ‘주권국가는 다른 국가의 사법권에 복종하지 않는다’는 “국가면제”를 내세우며 법정에도 나오지 않았고, 소장조차 받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지난 11월, 2심 재판부는 ’위안부’ 동원을 위한 일본의 기망, 납치, 유괴 등이 “법정지국 영토 내에서 법정지국 국민에게 자행된 불법행위”라며 국가면제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곤 일본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했죠.
물론 윤석열 정부는 공식 입장도 없이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를 존중”한다는 메시지만 내며 사실상 법원 판단을 부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이번 판결은 인권의 관점에서 피해자 법적 권리를 인정한 기념비적 판결입니다. 30여년간 ‘정의’를 외쳐온 피해자들의 간절한 호소가 만들어 낸 판결, 김창록 교수(경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가 비평했습니다.
2023년 11월 23일, 서울고등법원 제33민사부(구회근, 황성미, 허익수 판사)는 일본의 국가면제를 배제하고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의 청구를 전면적으로 받아들이는 판결(이하 ‘구회근 판결’)을 선고했다. 2021년 1월 8일에 서울중앙지방법원 제34민사부(김정곤, 김경선, 전경세 판사)가 같은 취지의 판결(이하 김정곤 판결)을 선고한 데 이어 두 번째이다.
- 구회근 판결: 서울고등법원 2023.11.23. 선고 2021나2017165 판결.
- 김정곤 판결: 서울중앙지방법원 2021.1.8. 선고 2016가합505092 판결.
두 판결의 쟁점은 일본의 ‘국가면제’ 인정 여부
후자는 한국인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12명이 2013년 8월에 일본을 상대로 1인당 1억 원의 배상을 요구하며 신청한 조정이, 일본 정부의 거부로 진행되지 않아, 2016년 12월 30일 조정불성립이 결정되고, 2016년 1월 28일 본안에 회부된 1차 소송에 대한 판결이다. 이 판결은 일본이 항소하지 않아 2021년 1월 23일 0시에 확정되었다.
전자는 2016년 12월 28일에 한국인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11명과 사망한 피해자 5명의 유족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1인당 2억 원의 배상을 요구하며 제기한 2차 소송에 대한 항소심 판결이다. 이 판결도 일본이 상고하지 않아 2023년 12월 9일 0시에 확정되었다.
이들 소송에서 다루어진 쟁점은 다양하지만, 그 핵심은 한국 법원이 일본을 피고로 한 소송에 대해 재판권을 가지는가의 여부, 즉 일본의 ‘국가면제’ 인정 여부였다.
서울고등법원 판결은 1심 원고들이 제기한 소를 각하한 2021년 4월 21일 서울중앙지방법원 제15민사부(민성철, 이미경, 홍사빈 판사)의 판결을 취소했다. 후자의 판결은, 폐쇄적인 법이해, 2015년 12월 28일 한일 외교장관이 공동기자회견을 통해 밝힌 일본군‘위안부’에 관한 입장에 대한 잘못된 이해와 이용, 법보다 힘을 앞세우는 사고방식, 무책임한 ‘사법소극주의’ 등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는 판결이다. 이 판결은 이 글 전체의 논지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으므로 이 글에서는 상세히 다루지 않기로 한다. 상세한 분석은 김창록, 「한국 법원의 일본군‘위안부’ 판결들」, 『일본비평』 25, 2021 참조.
‘국가면제’의 규칙
‘국가면제’ 혹은 ‘주권면제’는 주권국가는 다른 국가의 사법권에 복종하지 않는다는 국제법상의 규칙이다. 주권국가는 모두 대등하다는 원칙에서부터 도출된 규칙이다.
‘국가면제’는 처음 등장한 19세기에는 국가의 모든 행위에 대해 적용하는 절대면제주의로 출발했으나, 20세기에는 사법(私法)행위의 경우 적용하지 않는 예외를 인정하는 제한면제주의로 변모했으며, 21세기에 들어와서는 중대한 인권 침해나 불법행위의 경우 예외를 인정하는 방향으로 이행해왔다.
‘국가면제’와 관련하여 국제사회가 특별히 주목한 최근의 사례는 2012년 2월 3일의 국제사법재판소(International Court of Justice: ICJ) 판결이다. 2차 세계대전 때 독일에 의해 강제동원되었던 이탈리아인 피해자가 독일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소송에서 이탈리아 대법원은 ‘국가면제’를 배제하고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이에 독일 정부가 ‘국가면제’ 위반이라며 소송을 제기했는데, ICJ의 다수의견은 독일의 주장을 받아들여 이탈리아의 패소를 선언했다. 다만 ICJ는 “재판소는 현재의 관습국제법 아래에서 국가는 국제인권법이나 국제인도법에 대한 심각한 위반의 혐의를 제기받는다는 사실 때문에 면제를 박탈당하지 않는다”라고 하여 장래에 변화가 있을 수 있다는 여지를 남겼다.
그 후 이탈리아 국회는 위의 ICJ 판결을 받아들여 판사에게 의무적으로 국가면제를 적용하게 하는 법률을 제정했다. 하지만 이탈리아 헌법재판소는 2014년에 그러한 법률은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하기 때문에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한국 법원의 두 판결은 이와 같이 국제사회에서 ‘국가면제’를 둘러싸고 길항 내지는 변화의 소용돌이가 이는 가운데 한국의 입장을 요구받은 데 대한 답변에 다름 아니다.
한국 법원 판결들의 의의
한국 법원의 판결들은 ‘국가면제에 관한 국제관습법은 항구적・고정적인 것이 아니다.’, ‘국제관습법은 그 변화 방향과 흐름까지 고려하여 동태적으로 파악해야 한다’라는 전제에서 출발하여,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의 피해와 관련해서는 일본의 ‘국가면제’를 인정할 수 없다고 선언했다.
다만 그 구체적인 이유는 다소 다르다. ‘김정곤 판결’은 “피고가 된 국가가 국제공동체의 보편적인 가치를 파괴하고 반인권적 행위로 인하여 피해자들에게 극심한 피해를 가하였을 경우”에는 국가면제의 예외를 인정해야 한다고 판단한 데 대해, 이번 ‘구회근 판결’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법정지국 영토 내에서 법정지국 국민에게 자행된 불법행위의 경우에는 그 행위가 주권적 행위로 평가되는지 여부를 묻지 않고 국가면제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 현재의 유효한 국제 관습법”이다라고 선언했다.
이러한 한국 법원의 판결들은 국가 중심의 세계관에서 인권 중심의 세계관으로 나아가고 있는 국제사회의 흐름을 반영하여 인권 예외를 포섭하는 국가면제의 진화 과정에 적극 동참한 판결, 한 걸음 더 나아가 국가의 불법행위 전반에 대해 국가면제를 배제해야 한다는 국가면제의 변화 방향을 선도적으로 제시한 판결이라고 자리매김할 수 있다.
2021년 8월 23일 브라질 연방 대법원은 1943년에 브라질 영해 내에서 독일 잠수함의 공격을 받아 침몰한 어선의 피해 유족들이 독일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사건에서, 강행규범 위반(또는 법정지국 영역 내에서 인권을 침해한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국가면제를 제한해야 한다고 선고하면서 ‘김정곤 판결’을 그 논거의 하나로 제시했다. 그리고 그 브라질 연방 대법원 판결은 ‘구회근 판결’의 논거 중 하나로 제시되었다. 이 변화의 연쇄가 국제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는 크게 주목하여 마땅할 것이다.
동시에 한국 법원의 판결들은 일본군‘위안부’에 대한 국제사회의 법적 판단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일본군‘위안부’ 문제가 1980년대 말에 한국의 여성단체들에 의해 처음 제기된 이래로, 1991년 8월 14일에 김학순이 스스로 나서서 피해사실을 밝히고 구제를 호소한 이래로, 피해자들과 전 세계 시민들은 범죄사실 인정, 사죄, 배상, 진상규명, 역사교육, 추모, 책임자 처벌을 요구해 왔다.
그리고 유엔 인권소위원회 등 수많은 국제기구의 보고서들, ‘2000년 일본군성노예 전범 여성국제법정’의 판결, 미국 하원의 결의 등 수많은 국가의 의회와 지방의회의 결의들을 통해 국제법 위반과 일본국의 법적 책임이 거듭 확인되어 왔다. 한국 법원의 판결들은 그러한 피해자 및 시민들의 요구와 그것을 수용한 국제사회의 법적 상식을 반영한 판결에 다름 아니다.
일본 정부의 자가당착
1차 소송 때도 그랬던 것처럼, 2차 소송 때도 일본 정부는 국가면제를 내세우며 소송에 일절 응하지 않았다. 법정에 나오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소장의 송달조차 거부했다. 2012년 ICJ 판결의 대상이 된 이탈리아 법원의 판결 사건에서 독일 정부가 재판정에 나와 국가면제를 주장하며 다툰 것과도 대비되는 태도다. 일본 정부는 대한민국의 사법권 자체를 부정하려 하고 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역시 1차 소송 때와 마찬가지로 일본 정부는 ‘구회근 판결’이 선고된 당일에 「외무대신 담화」를 발표하여 판결이 “국제법상의 주권면제의 원칙”을 위반한 것이고, 1965년의 「한일 청구권협정」과 2015년의 한일 외교장관 일본군 ‘위안부’ 관련 기자회견 발표(이른바 ‘2015 합의’)에 “명백히 반하는 것”이어서 “극히 유감이며 결단코 받아들일 수 없”다면서, “한국에 대해 국가로서 스스로의 책임으로 즉각 국제법 위반의 상태를 시정하기 위해 적절한 조치를 강구할 것을 다시 한 번 강력하게 요구”한다고 밝혔다.
일본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의 존재를 처음 인정한 것은 1992년의 일이므로 그것이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에 의해 해결되었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성립 불가능한 주장이며, ‘2015 합의’는 일본의 법적 책임을 부인하기 위한 수단이었으므로 그 법적 책임을 다룬 한국 법원의 판결에 대한 공격의 논거가 될 수 없다.
무엇보다 일본 정부의 ‘국제법 위반’이라는 주장은 자가당착이다. 일본은 2009년에 「외국 등에 대한 우리나라(일본)의 민사재판권에 관한 법률」(2009년 법률 제24호)을 제정했다. 이 법률은, 일본 외무성의 설명에 따르면 일본이 “국제 룰의 확립을 촉진”하기 위해 “솔선하여” 2009년에 비준한, 「국가 및 그 재산의 사법권 면제에 관한 유엔 협정」의 내용을 거의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이다.
그리고 위의 「유엔 협정」의 전문에는 “국가 및 그 재산에 대한 사법권 면제에 관한 국가실행의 발전을 고려하여” 체결한다고 되어 있다. 다시 말해 관습국제법화된 내용을 담는다고 선언하고 있다. 결국 일본은 국가면제에 관한 관습국제법을 국내 법률로 확인한 국가인 것이다. 실제로 ‘구회근 판결’에서는 해당 관습국제법의 존재를 인정하는 근거로 위의 일본 법률과 「유엔 협정」이 제시되었다.
그런데 위 일본 법률 제10조에는 “외국 등은 사람의 사망 혹은 상해 또는 유체물의 멸실 혹은 훼손이 당해 외국 등이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라고 주장되는 행위에 의해 발생한 경우, 당해 행위의 전부 또는 일부가 일본국 안에서 이루어지고, 당해 행위를 한 자가 당해 행위 당시에 일본국 안에 소재하고 있었을 때는, 그것에 의해 발생한 손해 또는 손실의 금전에 의한 전보에 관한 재판절차에 대해 재판권으로부터 면제되지 않는다”라고 규정되어 있다.
이 규정을 한국 법원의 사건들에 적용하면, 일본군‘위안부’를 강요한 일본의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국가면제가 배제된다는 결론이 자연스럽게 도출된다. 다시 말해 한국 법원의 판결들은 일본의 법률에 체화된 관습국제법에 따른, 그것에 부합하는 판결인 것이다.
그럼에도 일본은 한국 법원의 판결들을 ‘국제법 위반’이라고 공격한다. 명백한 자가당착이다. 오히려 ‘국제법 위반’이라는 비판은 스스로 인정한 국제법과 명백하게 반대되는 주장을 하고 있는 일본에게 돌려져야 마땅하다.
일본 정부는 한국 법원의 판결들을 전면 부정하므로, 그에 따른 손해배상금 지급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승소한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은 강제집행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또한 관습국제법을 체화한 위의 일본 법률에 따르면 가능한 것이다. 위의 법률 제18조에는 “외국 등은 당해 외국 등에 의해 정부의 비상업적 목적 이외에만 사용되거나 또는 사용될 것이 예정되어 있는 당해 외국 등이 가지는 재산에 대한 민사집행 절차에 대해 재판권으로부터 면제되지 않는다”라고 규정되어 있다.
일본의 법률가들도 인정하듯이, 이 조항을 원용하면, 한국 법원에서 승소한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은, 한국 국내에 있는, 일반인에 대한 임대용으로 소유하고 있는 부동산, 상업적 용도의 자금관리를 위해 개설한 예금계좌와 관련된 예금채권, 유휴지, 한국 항구에 정박 중인 일본 정부 소유의 상선 등에 대해 강제집행을 할 수 있다(西脇英司・米山朋宏, 「国等に対する我が国の民事裁判権に関する法律(対外国民事裁判権法)の概要」, 『NBL』 908, 2009, 47면 ; 村上正子, 「外国等に対する我が国の民事裁判権に関する法律(対外国民事裁判権法)」, 『ジュリスト』 1385, 2009, 75면 참조.).
물론 강제집행이 이루어질 경우 일본 정부는 또 다시 ‘국제법 위반’이라고 비난할 것이 예상되지만 그것이 또 하나의 자가당착임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윤석열 정부의 ‘퇴행’
‘김정곤 판결’이 선고된 2021년 1월 8일에 문재인 정부 외교부는. 비록 두 번째 항목에서 “정부는 2015년 12월 한일 정부간 위안부 합의가 양국 정부의 공식 합의라는 점을 상기함”이라고 덧붙이기는 했지만, 그 첫 번째 항목에서 “정부는 법원의 판단을 존중하며,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와 존엄을 회복하기 위하여 우리 정부가 할 수 있는 노력을 다 해 나갈 것임”이라고 밝힌 대변인 논평을 발표했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 외교부는 ‘구회근 판결’에 대해 그 홈페이지 등을 통해 어떠한 공식 입장도 제시하지 않았다. 몇몇 언론이 “외교부 당국자”가 “2015년 (한일 간) 위안부 합의를 양국 간 공식 합의로서 존중한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고 보도했고, 11월 26일의 한일 외교장관 회담에서도 박진 외교부 장관이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를 양국 간 공식 합의로서 존중한다”라는 입장을 밝혔다고 보도했을 뿐이다.
또한 2021년 1월 23일에 ‘김정곤 판결’이 확정되었을 때도, 일본 정부가 또 다시 비난하는 취지의 「외무대신 담화」를 발표한 데 대해, 문재인 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제기 손해배상 소송 판결 관련 일본 측 담화에 대한 우리 정부 입장」을 발표했다. 거기에서 문재인 정부는, ‘2015 합의’가 “한일 양국 정부 간의 공식 합의임을 인정”한다면서도, “동시에 피해 당사자들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은 정부 간의 합의만으로 진정한 문제 해결이 될 수 없다”고 밝혔다.
또 ‘2015 합의’에 따라 “우리 정부는 일본에 대해 정부 차원에서는 어떤 추가적인 청구도 하지 않을 방침”이라면서도, “피해 당사자들의 문제 제기를 막을 권리나 권한을 가지고 있지 않음”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일본 측 또한 스스로 표명했던 책임 통감과 사죄・반성의 정신에 입각하여 피해자들의 명예・존엄 회복과 마음의 상처 치유를 위한 진정한 노력을 보여야 할 것”이며, “일본 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가 세계에서 유례없는 전시 여성의 인권 유린이자 보편적 인권 침해의 문제로서, 국제인권규범을 비롯한 국제법을 위반한 것임을 직시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물론 위와 같은 문재인 정부의 「입장」은, “일본에 대해 정부 차원에서는 어떤 추가적인 청구도 하지 않”겠다고 밝힌 점에서 명백히 한계가 있는 것이었다. 그것은 ‘2015 합의’는 “공식적인 약속”이기는 하지만 “법적 효력 내지는 구속력이 없는” 정치적 합의에 불과하므로, 그것을 통해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의 권리가 처분되었다거나 대한민국 정부의 외교적 보호권한이 소멸하였다고 볼 수 없”다고 선언한 헌법재판소의 결정(헌법재판소 2019.12.27. 선고 2016 헌마253 결정)에 반한다.
‘2015 합의’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정부는 외교적 보호권을 행사하여 일본군‘위안부’들이 승소한 판결을 이행하라고 일본 정부에게 요구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가 ‘국제법 위반’이라고 공격한 데 대해, 문재인 정부는 일본이야말로 “국제법을 위반한” 것이라고 대응했다는 점은 주목하지 않으면 안 된다.
반면에 윤석열 정부는 ‘구회근 판결’이 확정된 2023년 12월 9일에도 어떠한 공식 입장도 내놓지 않은 채, 기자들의 질문에 대해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를 국가간의 합의로서 존중”한다는 문자만 보냈다. ‘법원의 판단을 존중’한다고 밝히지 않은 채 ‘2015 합의’만 거듭 언급하고 있는 윤석열 정부의 입장은,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의 배상청구를 받아들임으로써 사실상 ‘2015 합의’에 의한 해결을 부정한 법원의 판단을 거스르려는 것이라고 보아 틀림이 없다. 강제동원 문제에 대한 법원의 판단을 부정한 데 이어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대한 법원의 판단까지 부정하려는 도를 넘은 ‘퇴행’은 실로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새로운 출발점으로서의 한국 법원 판결들
국가의 비주권적 행위(사법행위)에 대해서는 국가면제를 적용하지 않는다는 관습국제법은 이미 확립되어 있지만, 주권적 행위에 대한 국가면제 적용에 관한 관습국제법은 형성 중에 있다.
한국 법원의 판결들은 국가의 주권적 행위라도 심각한 인권침해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나아가 불법행위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국가면제가 적용되지 않는다고 명확하게 선언함으로써, 관습국제법의 확립에 선도적으로 기여하고 있는 획기적인 판결들이다. ‘김정곤 판결’은 이미 전 세계의 법률가와 법학자들의 주목을 받고 있고, ‘구회근 판결’ 또한 그렇게 될 것임에 틀림없다.
이 획기적인 성과는 1990년대부터 30여년간 ‘정의’를 외쳐온 피해자들의 간절한 호소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들의 호소에 공감한 전 세계 시민들의 지난한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일본과 미국의 법원은 내쳤지만 대한민국의 법원이 마침내 응답한 것이다.
역사는 단순하지 않다. 하지만 그것은 도도하게 흐른다. 지난 30여년간 일본군‘위안부’ 문제와 관련하여 절망과 희망이 교차하는 수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그 속에서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 지금 여기에 이르렀다.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과 시민들의 호소에 응답한 대한민국 법원의 역사적인 판결들을 또 하나의 새로운 디딤돌로 삼아 또다시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광장에 나온 판결: 249번 째 이야기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일본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2심
– 2심(확정) : 서울고등법원 제33민사부 구회근(재판장), 황성미, 허익수 판사 2023.11.23. 선고 2021나2017165 [판결문 보기]
– 1심 : 서울중앙지방법원 제15민사부 민성철(재판장), 이미경, 홍사빈 판사 2021.4.21. 선고 2016가합580239 [판결문 보기]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최근 판결 중 사회 변화의 흐름을 반영하지 못하거나 국민의 법 감정과 괴리된 판결, 기본권과 인권보호에 기여하지 못한 판결, 또는 그 와 반대로 인권수호기관으로서 위상을 정립하는데 기여한 판결을 소재로 [판결비평-광장에 나온 판결]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주로 법률가 층에만 국한되는 판결비평을 시민사회 공론의 장으로 끌어내어 다양한 의견을 나눔으로써 법원의 판결이 더욱더 발전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