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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정상 자극: 포르노 남자와 로맨스 여자의 미래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은 위험 아니면 기회 요소를 평가하기 위해 자극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늑대에게 피 냄새는 사냥감이 있음을 알려주는 자극이고, 근처에 찍힌 곰 발자국은 이 곳에서는 조심히 다니라는 것을 알려주는 신호인 것이다.

그런데 이 자극이 본질적으로 위험이나 기회 그 자체가 아니라 일종의 ‘신호’라는 것을 아는 게 중요하다. 신호를 보고 재빨리 위험이나 기회를 인지하는 건 중요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신호는 우리를 얼마든지 속일 수 있다. 예컨대 실제 피를 흘리며 도망치는 사냥감은 없을지라도 단순히 피 냄새만 뿌린다면 얼마든지 늑대나 상어를 그 자리에서 어슬렁거리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피 냄새('자극')는 상어에게 그 자체로 기회는 아니지만 먹잇감이 있다는 '일종의 신호'다.

피 냄새(‘자극’)는 상어에게 그 자체로 기회는 아니지만 먹잇감이 있다는 ‘일종의 신호’다.

초정상 자극

그렇다면 그 신호를 엄청나게 크게 만들어 막대한 자극을 주면 어떻게 될까? 대개 원래 목표로 했던 본질보다 과장된 신호 그 자체에 몰두한다. 뻐꾸기가 낳는 알은 무늬 면에서 원래 둥지 주인의 알보다 훨씬 선명한 것이 좋은 예다. 바로 이 강한 자극에 홀려 원래 둥지의 어미는 뻐꾸기알을 돌보는 일에 훨씬 집중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자극이 강할 경우 자극 본연의 역할, 즉 목표물을 알려주는 수단으로서의 역할은 온데 간데 없게 되고, 그 대신 자극 그 자체에 탐닉하게 되는 현상이 나타나는데, 이를 ‘초정상 자극’이라고 한다. 계속 강조하지만, 신호가 보상해주는 호르몬 분비를 비롯한 여타 자극은 생존과 번식 ‘그 자체에’ 도움을 주지 않기에, 자연계에서 초정상 자극은 그리 흔하지 않다. 만약 성 선택을 위해 공작의 꼬리와 같이 화려한 자극 신호에 지나치게 집중할 경우, 그 자극 원천을 유지하기 위해 들어가는 자원이 한계에 부딪혀 자연스레 조절될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왜 위험한 자극에 끌리는가] 디어드리 배릿 저/김한영 역 | 이순 | 2011년 / 원제: 초정상 자극: 어떻게 원초적 욕구는 그들의 진화적 목적을 넘어섰는가 (Supernormal Stimuli: How Primal Urges Overran Their Evolutionary Purpose) ㅣ W W 노튼 출판사(2010)

[인간은 왜 위험한 자극에 끌리는가] 디어드리 배릿 저/김한영 역 | 이순 (2011, 왼쪽) / 원제: 초정상 자극: 어떻게 원시적 욕구는 그 진화적 목적을 넘어섰는가 (Supernormal Stimuli: How Primal Urges Overran Their Evolutionary Purpose) ㅣ W W 노튼 출판사(2010, 오른쪽)

하지만 생물학적 제약 조건을 문화로 보완해온 인간 사회로 들어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기본적으로 문화는 문화 시스템 그 자체의 생존과 재생산을 위해서라면 개인 따위는 얼마든지 버릴 수 있다. 혹은 개인도 문화를 이용해 생존을 보장받으면서 생존에 필수적이지 않은, 부차적인 일에 몰두할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그 결과 종교라는 초정상 자극에 몰두해 자신의 생명도 버리고, 몇몇 예술 작품이 개인의 인생마저도 파괴해버리는 등 인간만의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이 나타났다.

심지어 산업사회는 의도치 않게 각종 초정상 자극을 자연에 풀어놓아 생태계를 교란시키는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신호와 자극 그 자체를 강렬하게 생산해내는 문화의 힘은 산업사회에 들어서 급격히 발전했다. 인터넷이 보급되자 거기에는 변곡점이 하나 더 추가되었다. 그 결과 우리 사회 주변에는 초정상 자극이 범람하여 진짜 목적따위는 아무렇지도 않게 된 것이다.

포르노와 남성 

가장 대표적인 건 누가 뭐라해도 포르노라고 하겠다. 포르노의 주요 수요층은 남성이니 남성 중심적으로 말해보겠다. 사실 전통 사회까지만 하더라도 여성에 대한 성적 자극만을 얻을 기회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미디어 자체가 너무나 희소한 자원이었다. 문자가 발명되고 보급되기 전까지는 실질적으로 구비문학만이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미디어 자원이었고, 문자를 아는 사람들에게도 책이란 매우 비싼 물건이었기 때문이다.

금속활자와 인쇄의 확장, 대중문화의 팽창 등이 맞물려 이 같은 상황이 타파되었다. 춘화집, 성인소설 등이 18세기부터 동서양 양편에서 엄청난 양적, 질적 팽창을 더하면서 도시 식자층 사이에서 퍼지기 시작했다. 아마 인간 마음 속에 들어있던 각종 자극의 원천이 세상 밖으로 본격적으로 풀려나기 시작한 최총 순간이었을 것이다. 19세기, 20세기를 거치며 포르노는 한 단계 더 앞으로 나아갔다. 사진, 영상이 등장하고 포르노는 훨씬 더 자극적인 형태, 즉 인간 남성이 좋아하는 시각 자극을 직접적으로 자극하는 형태로 진화했다.

20세기 말 인터넷의 등장은 최종적으로 만인에게 포르노를 쥐어준 결정적인 사건이었다. 접근 가능한 수요층이 수십억으로 확장되면서 엄청난 종류의 포르노가 생산되고, 그 증가세는 지금도 꺾일 기미가 보이질 않게 되었다.

오늘날 인터넷(월드 와이드 웹) 혁명을 이끈 '웹의 아버지' 팀 버너스-리 (2014년 모습, 출처: Paul Clarke, CC SA) https://commons.wikimedia.org/wiki/User:Paulrclarke

오늘날 인터넷(월드 와이드 웹) 혁명을 이끈 ‘웹의 아버지’ 팀 버너스-리 (2014년 모습, 출처: Paul Clarke, CC SA) 웹은 팀 버너스-리가 만들었지만, 인터넷 인프라(특히 다운로드 ‘속도’와 관련한)와 컴퓨팅 역량의 진화는 게임과 포르노가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 과정에서 자극은 점점 더 강해져 초정상 자극으로 향하고 있었다. 인쇄술 초창기의 춘화집에서 20세기의 최초의 플레이보이를 넘어 21세기 포른허브의 각종 영상으로 가면서 시각적 자극은 더 직접적이고, 노골적이 되었다. 특히 세계 각지에서 섹시함에 있어서 최정상을 달리는 배우들이 수백, 수천명씩 망막에 맺히게 되었는데, 포르노 소비층이 일상생활에서 접하기도 힘든 자극이 매일같이 쏟아지면서 그야말로 초정상 자극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영상은 아니지만, 역시 인터넷의 등장으로 기하급수적으로 팽창한 일본 성인만화는 초정상 자극의 궁극적 형태라 할만하다. 일반적인 영상 포르노그래피가 인간이 갖는 생물학적 한계에 그나마 갇혀있는 편이라면, 일본의 성인만화는 그런 제약도 벗어버리고 말 그대로 있을 수 없는 초자극에만 집중한다. 설명 없이 몇 개 보면 알 것이다.

포르노 vs. 로맨스 

흥미로운 것은 포르노라는 초정상 자극은 주로 남성을 대상으로 생산, 유통된다는 것이다. 여성들을 위한 포르노가 당연히 없지는 않으나, 그 규모에 있어서 남성들이 탐닉하는 성적 신호와는 감히 비교가 안 되는 수준이다. 그렇다면 여성은 그런 ‘무의미한 신호’ 따위에 홀리지 않는, 더 잘 절제하고, 더 합리적인 존재라는 것일까? 당연히 그럴 일은 없다. 여성도 인간이기 때문에, 성적 신호의 종류가 다를뿐 본질적으로 자극을 추구하는 본능은 공유한다. 다만 선호하는 자극의 형태가 다르기에 남성의 포르노를 그들이 찾지 않는 것에 불과하다.

포르노 대신 여성이 찾는 자극은 로맨스다. 로맨스 소설, 만화, 영화, 드라마는 모두 거대한 산업으로서 해당 매체에서 모두 상당한 지분을 점하고 있다. 당장 아무 웹툰이나 웹소설 사이트만 들어가봐도 상위권은 로맨스 장르 작품들이 꼭 들어가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장르는 거기에 압도적으로 여성 중심적인데, 남성이 로맨스를 안 보는 것은 아니나 마치 여성을 위한 포르노와 마찬가지로 비율상 그저 소수에 머무르고 있을 따름이다.

[포르노 보는 남자, 로맨스 읽는 여자] 오기 오가스, 사이 가담 공저 / 왕수민 역 | 웅진지식하우스 | 2011년 (왼쪽) | 원제: A Billion Wicked Thoughts: What the Internet Tells Us About Sexual Relationships (2011, 오른쪽)

[포르노 보는 남자, 로맨스 읽는 여자] 오기 오가스, 사이 가담 공저 / 왕수민 역 | 웅진지식하우스 (2011, 왼쪽) | 원제: A Billion Wicked Thoughts: What the Internet Tells Us About Sexual Relationships (2011, 오른쪽)

로맨스도 포르노와 궤를 같이 하면서 엄청난 속도로 성장해나갔다. 미디어에 대한 접근권은 여성에게는 비교적 남성보다 늦게 주어졌기에 시차가 있기는 하지만, 어쨌든 교육 받은 중산층 여성이 탄생하고 통속소설이 널리 퍼지기 시작한 19세기 중엽부터는 로맨스 장르가 대중적으로 확산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후 20세기를 거치면서 로맨스는 영화와 드라마 등 영상매체로 확산되면서 포르노가 걸은 길을 그대로 걸었다.

로맨스와 여성 

로맨스 역시 20세기 후반 인터넷이 변곡점이 된 것도 같았다. 그동안 각지에 산개되어 있던 로맨스 팬덤이 몇몇 사이트를 중심으로 집중되면서 로맨스 장르에서 몇 가지 혁신이 나타난 것이다. 특히 팬픽션은 로맨스 장르의 저변을 엄청나게 확대했다. 팬픽션은 작품을 만들 기초적인 재료, 즉 상당한 수준의 배경설정과 캐릭터리티가 이미 주어져있기에 특정 작품에 대한 열렬한 팬심만 있으면 누구나 만들고 즐길 수 있어 장르에 대한 진입장벽을 놀랍도록 낮추었다.

여성은 여기서 한 발 더 나가 남성 동성애를 소재로 만든 BL(Boy’s love, 일본어: ボーイズラブ; 남성의 동성애를 소재로 한 여성향 만화, 소설, 게임 등의 장르) 혹은 슬래시 장르를 탄생시켰는데, 이 또한 인터넷 커뮤니티의 등장과 발맞추어 불길처럼 번져나가 상당한 입지를 점하게 되었다. 게이가 BL을 딱히 열렬히 소비하지 않기에 이는 남녀 성적신호 체계의 차이를 보여주는 주요 증거기도 하다.

BL, 대략 이런 느낌...

BL, 대략 이런 느낌…

물론 포르노와 로맨스를 같은 반열에 놓는 것에 몇몇 사람들은 불쾌감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주어지는 자극의 구체적인 형태를 배제하자면 둘이 남녀에게 주는 자극은 정확히 동일하다. 남성은 그들이 선호하는 시각적 자극을 포르노를 통해 공급 받는다. 여성은 그들이 선호하는 로맨스의 이야기, 분위기, 캐릭터를 종합적으로 공급받는다. 이 둘은 모두 남녀가 각각 ‘좋은 배우자’라고 여기는 주요 신호만을 정제해서 공급해주는 매체라고 할 수 있다.

포르노를 아무리 열심히 본다고 해서 그것이 실제 여성과의 관계와 별 관련이 없는 것처럼 로맨스도 아무리 열심히 본다고 해도 그것은 결국 실제 남성과의 연애의 과장된 모사품에 불과한 것이다. 즉 두 장르는 모두 본래 목적 대신 과장된 초정상 자극을 추구하도록 만들어인 일종의 대리만족 수단이다.

진화 혹은 주객전도 

흥미로운 것은 이 대리만족 기제가 만들어내는 주객전도 현상이다. 요컨대 미디어는 인간이 만드는 산물이지만, 역으로 미디어가 인간의 행동에 강한 영향을 미치면서 긍정적 피드백 고리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포르노에 관해서는 이 점이 많이 연구되었다. 먼저 갈수록 기존 자극에 익숙해지고 더 강한 자극을 추구하게 되는 뇌의 특성상 남성들은 더 노골적이고 자극적인 포르노에 끌리게 되었다.

이는 18세기 포르노 소설과 삽화로 시작되었던 이 산업이 이 정도까지 팽창한 것을 상당히 설명해준다. 과거에는 일본 만화책의 선정적인 한 컷에도 설레었다면 이제는 인터넷 성인 사이트의 각종 자료들을 봐도 미동도 안 할 정도로 남성들은 초정상 자극에 무뎌졌다.

또한 이 초정상 자극은 남성들로 하여금 진화상 원래 목표를 추구할 동기도 앗아갔다. 극단적인 예로 일본 성인만화에서 그려지는 과장된 여성 캐릭터에 반응하고 현실 세계의 여성에는 반응을 보이지 않는 오타쿠 그룹이 있다. 모니터를 키고 마우스를 클릭하면 간단하게 그런 시각적 자극을 소비할 수 있는데 무엇 때문에 구태여 ‘무딘 자극’에 매달리기 위해 그 노력을 기울이겠는가.

블랙 미러 시즌 4 여섯 번째 에피소드 '블랙 뮤지엄'. 자극은 어떻게 진화하는가. 그리고 그 자극은 어떻게 그 자극의 주체인 인간을 객체화하고 노예화하는가.

[블랙 미러] 네 번째 시즌의 여섯 번째 에피소드 ‘블랙 뮤지엄’은 자극의 노예가 된 인간을 보여준다. 자극은 어떻게 진화하는가. 자극은 어떻게 그 자극의 주체인 인간을 객체화하고 노예화하는가.

물론 이는 극단적인 사례고, 보다 많은 사람들은 포르노를 보면서도 현실의 여성들을 찾아나서지만(안 보는 사람들은 극소수다) 그럼에도 초정상 자극이 영향을 끼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많은 연구는 포르노가 주는 자극이 점점 더 강해지면서 포르노에서 묘사하는 과장된 성행위가 현실 세계의 성생활에 침투하고 영향을 주고 있음을, 그리하여 보다 폭력적인 양상으로 변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그런데 남성의 포르노가 초정상 자극으로서 이런 역할을 한다면, 여성의 로맨스는 어떨까? 그 왜곡 정도와 파급효과가 남성들의 그것만큼 심할지 아닐지는 별개의 문제로 하고, 분명 영향이 있으리라고 보는 게 합리적일 것이다. 매체 불문하고 로맨스 장르는 20세기 후반부터 21세기 초반까지 엄청나게 팽창했고, 각종 웹미디어 플랫폼에서 끝없는 성장세를 보여주고 있다. 로맨스 뿐만 아니라 여성들이 좋아하는 초정상 자극을 제공해줄 수 있는 모든 것이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이는 일종의 유사연애, 내러티브, 캐릭터리티를 제공해주는 아이돌 산업의 세계적 팽창부터, 다소 음지에 걸쳐있는 중저음 남성의 ‘유사연애 ASMR’까지를 망라한다. 특히 여성의 경제활동이 늘어나고 구매력이 향상되면서, 컨텐츠 시장은 이미 여성중심으로 재편되고 있기에 이는 앞으로 그저 상식으로 자리잡을 것이다.

초정상 자극으로서의 로맨스 

그렇다면 이처럼 광범위하게 제공되는 초정상 자극으로서 로맨스는 어떤 파급효과를 가져올 것인가? 앞서 언급한 것처럼 포르노에 빗대보는 것이 유추에 도움이 될 것이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이:

  1. 약한 자극에 무뎌지고 더 강한 자극을 추구
  2. ‘밋밋한’ 현실의 목표 대신 쉽게 접근 가능한 초정상 자극에 몰두
  3. 초정상 자극으로 학습한 문법을 현실에 투영

1번 현상은 포르노에서 보여지는 수준은 확실히 아니지만, 부분적으로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점점 더 현실과 거리가 멀어지는 남주인공의 모습(영앤리치스윗핸섬가이), 소위 ‘심쿵’으로 대변되는 낭만적 장면의 빈도수 증가, 현실의 연애에서는 볼 수 없는 엄청나게 복잡한 관계망과 스토리라인, 현실의 동성애와는 전혀 연관성 없는 순전한 초정상 자극으로서 BL 장르의 확산 등이 대표적 예시다. 2019년의 작품들은 1990년의 작품과 비교해보았을 때 이미 상당히 먼 길을 건너왔다. 포르노가 그러했듯이.

어벤저스 엔드게임 (2019). 어벤저스 남자 멤버들의 장점을 모두 합치면? (포스터에는 없지만, 스파이더맨의 '젊음'까지)

어벤저스 엔드게임 (2019). 어벤저스 남자 멤버의 장점을 모두 합치면?  ‘영앤리치스윗핸섬가이’가 되지 않을까? (포스터에는 없지만, 스파이더맨의 ‘젊음’까지)

2번 현상도 마찬가지로 볼 수 있다. 로맨스나 유사 로맨스인 아이돌 팬덤 활동으로 대변되는 소위 ‘덕질’은 몰입했을 때 그 자체로 상당한 자원을 투입하게 된다. 이는 그에 비례해서 현실의 활동에 투입되는 자원을 기회비용으로 삼게 된다. 모니터를 켜고 마우스를 몇 번 클릭하면 튀어나오는 ‘설레는 장면’으로 만족하면 되지 구태여 얼굴도 별로고 눈치도 ‘남주’만큼 빠르지 않은… ‘영앤리치스윗핸섬가이’가 아닌 사람들에게 몰두할 필요가 없어지는 셈이다.

3번 은 내가 알 수 없는 세계라서 길게 말하진 않겠지만, 종종 국민적으로 유행하는 로맨스 장르가 등장했을 때 남성들이 긴장하게 된다는 유머만 봐도 어느정도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먼저 알아야할 점은 우리 뇌는 이야기로 접하는 가상의 현실을 실제 현실과 구분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물론 의식 상에서 이것은 가상의 이야기라고 분명히 인식하고는 있지만, 남의 마음을 읽는 데 전력을 투자하도록 진화한 우리의 마음이론 체계는 그 분리를 의도적으로 모호하게 한다.

로맨스든 포르노든, 이를 장기적으로 접했을 때 사람들이 ‘그건 가짜니까’라고 구분하는 건 인간의 마음 읽기와 동조화 능력을 너무 과소평가하는 것이다. 계속해서 그 같은 자극이 주어질 경우 당연히 뇌는 준거점을 그 자극에 설정하게 된다. 공기와 같이 퍼져있는 초정상 자극인 로맨스가 뇌에 심은 일종의 판타지를 실제 연애 시에 보고 싶어한다는 추정이 큰 무리는 아닐 것이다.

‘유미의 세포들’ 유바비의 경우

 

 

 

이하 [유미의 세포들]에 관한 약한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편집자)

 

 

 

사실 이 글을 쓰게 된 계기는 오늘 [유미의 세포들] 이야기를 심심찮게 접해서였다. [유미의 세포들]은 초창기에는 일상적인 드라마로 시작해 주인공 김유미와 주변인의 내면을 각종 세포로 기발하게 표현하여 인기를 끌던 만화였다.

[유미의 세포들] 이동건, 2015년 4월 1일~ , 네이버 만화

[유미의 세포들] 이동건, 2015년 4월 1일~ , 네이버 만화

그런데 처음 남자친구로 등장했던 구웅이 차이고, 새로운 남자친구 캐릭터 유바비가 부상하면서 뭔가 작품의 양상이 급격하게 전환되기 시작했다. 예컨대 잘생기고 배려심 넘치는 유바비가 한 번씩은 꼭 ‘심쿵’ 장면을 연출하여 댓글창을 폭발시키는 전개가 남용되게 되며 이 만화는 양질의 초정상 자극을 제공해주는 로맨스 판타지 만화로 급격히 전환하게 되었다.

나는 당연히 그런 데 관심 없으니 그 즈음부터 그 만화를 보지 않기 시작했다. 가끔 생각날 때마다 들어가서 최근 몇화씩 보고는 했는데, 날이 가면 갈수록 정말 노골적이다 싶을 정도로 이야기는 사라지고 자극만이 남게 된 만화로 변신했다(작품에 대한 판단은 개개인마다 다를 수밖에 없으므로 이에 대해 다른 해석과 견해를 가졌다고 하더라도 이는 해석과 견해의 다양성으로 인정해주시기 바란다).

독자들을 '심쿵'하게 하는 유바비

독자들을 ‘심쿵’하게 하는 유바비

오해할까봐 확실히 해두면, 나는 지금 그런 독자들을 ‘어리석은 판타지에 휘둘리는 어리석은 독자들’이라는 식으로 비판하려는 건 아니다. 그들이 왜 어리석겠는가? 나 또한 그러한 판타지를 보면서 대리만족하는 사람이니 누구를 어떤 컨텐츠를 본다는 이유로 비판할 자격은 전혀 없다고 하겠다.

게다가 남성이 보는 만화나 유사 포르노(유사 로맨스에 대응되는)는 더 어처구니 없는 작품들이 많다. 특히 일본 성인만화의 영역으로 가면 정말 기괴하기까지 싶은, 초정상 자극을 넘어 비정상 자극이 아닐까 싶은 것까지 나오는 것을 내가 모르는 게 아니다. 다만 이런 점이 보다 일찍 조명된 포르노와 달리 로맨스에 있어서는 그다지 조명 안 되었기에 보다 상세히 설명했을 따름이다(참고로 나는 [유미의 세포들]은 항마력 딸려서 못 볼 뿐이지 네이버 웹툰에서 지금 보고 있는 범로맨스 웹툰만 11개다. 열나 많네.)

유바비라는 ‘초정상 자극’ 

물론 유바비 같은 남성상이 엄청난 인기를 끌어모으는 것이 그 자체로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마초적이기보단 부드러운 유바비의 특성은 현대 사회에서 갈수록 늘어날 여성의 입지, 그에 비례해 줄어들 수밖에 없는 남성 지배력의 해체를 반영하는 것도 분명 맞을 것이다. 그것을 놀랍도록 기민하고 섬세하게 반영해 작품의 분위기를 180도 전환해버린 이동건 작가의 능력도 엄청나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의 뒤에 있는 유바비의 본질은 그런 완벽한 사람은 현실에 있을 수 없다는 데 있다. 즉 정상 자극이 아닌 초정상 자극이라는 것이다. 너가 빻은 걸 가지고 유바비가 현실에 없을 거라고 단정하는 클라스 보소 라고 생각하실 사람이 많을테다. 하지만 연예인 제외하고 직업세계에서 성공해 부를 갖춘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조직을 이끌기에 적합한 정도의 권위적 성격, 공감능력 차단 능력, 공격성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연애 세계에서야 ‘영앤리치스윗핸섬’이 가능하지만 적어도 경쟁이 몰아치는 직업 세계에서 인간은 어느정도 거칠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는 남녀를 가리지 않는 대규모 조직의 보편적 문법이라 할 수 있으며, 따라서 여성이 남성에게서 기대하는 것은 섬세한 공감능력과 직업세계에서의 성공의 줄타기(공감차단과 공격성)라고 정리할 수 있다. 나는 유바비라는 캐릭터는 이런 줄타기의 문제로 전혀 고민하지 않는 점에서 판타지 캐릭터라고 보는 것이다.

포르노 남자와 로맨스 여자의 미래

그러면 이제 포르노 보는 남자와 로맨스 읽는 여자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포르노와 로맨스의 확산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판타지, 즉 초정상 자극을 공급하는 것이 그 목적이다. 쉽게 얻을 수 있는 초정상 자극은 현실에서 어렵게 얻을 수 있는 밋밋한 자극에 비해 강력한 경쟁력을 가진다. 적어도 자극과 신호의 면에 있어서는 말이다(인간과 인간이 만들어나가는 깊은 관계에서 오는 의미 이런 거는 잠깐 뒤로 치워놓으면).

따라서 성적 경쟁력이 떨어지는 남녀가 더 초정상 자극에 몰두하게 되고 그에 비례해서 현실에서 관계를 만들어나가려는 노력은 줄어들 것이라 보는 것이 타당하고, 이는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번탈남, 번탈녀’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것이 아니다. 3D 볼 바에 2D나 보겠다는 말도 같은 맥락이다. 이는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남녀 공히 작용하면서 긍정적 피드백 고리를 만들어낸다. 연애 경쟁력이 떨어지는 남성들이 2D를 보면서 욕구를 해소하면 딱히 현실 관계에 신경 쓸 필요가 없어진다.

포르노를 보는 데는 자신이 얼마나 매력적이어야 할지는 아무 중요성이 없다. 그렇기에 현실에서는 점점 매력 없는 사람으로 변하거나 향상의 욕구를 느끼지 못한다. 연애 경쟁력이 떨어지는 여성들은 그런 남성들을 보고 당연히 매력을 느낄 리가 없으니 로맨스물 소비에 천착한다. ‘빻남’들 보고 스트레스 받느니 내가 유미가 돼서 유바비랑 유사연애 하는 걸 택하겠다는 것이다. [유미의 세포들] 보는 데 매력자본이 필요하지는 않고, 선결제본을 볼 200원만 있으면 된다. 여기서도 자연스레 향상욕구가 생겨날 리가 없다. 경쟁력이 떨어지는 남성들은 역시 이를 보고 가상 세계에 더 이끌리게 되고 상황은 반복된다.

물론 경쟁력이 있는 남녀들은 이런 거 상관 없이 서로가 잘 만나고 알아서 살겠지만… 이들은 애초에 분석 초점이 아니었다!

문제는 여기서 초정상 자극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더 큰 초정상 자극을 찾는다는 데 있다. 유바비마저도 원패턴을 계속 보면 질리는 건 당연하고, 같은 야동을 평생 보는 것도 무리인 것이다. 사람들은 더 새롭고 자극적인 것을 찾으러 다니게 된다. 그 결과가 지금 최첨단을 달리는 각종 포르노와 로맨스인 것이다.

의사 도슨은 '초정상 자극'이 주는 쾌락에 빠져 스스로 자신을 자해하기에 이른다. (출처: 블랙 미러 (시즌 4-6) '블랙 뮤지엄', 넷플릭스)

의사 도슨은 ‘자극’이 주는 쾌락에 빠지고, 자신을 제어하지 못하게 된다. (출처: 블랙 미러 (시즌 4-6) ‘블랙 뮤지엄’, 넷플릭스)

연애 시장에서 매력이 없는 이들이 이미 인구집단의 광범위한 수준으로 퍼져있고 컨텐츠 시장에서 구매력을 발휘하기 시작했기에 결국 이들을 위한 더 강한 초정상 자극이 계속해서 나타나리라고 추론하는 것은 아주 합리적이다. 예컨대 각종 유사연애, 성인 ASMR의 등장은 단순히 시각적 효과나 내러티브를 넘어서 청각마저도 충족하고 싶다는 인간의 욕망이 반영된 결과물이다.

이건 시작에 불과할 것이다. 이제 현실을 구태여 갈망하지 않게 된 남녀들은 청각을 넘어, 모니터를 넘어 더 사실적이고 강한 자극에 더 많은 돈을 지불할 용의를 보이게 될 것이다. VR 기술이 발전하고 기기가 저가에 공급되며 양질의 컨텐츠가 많아질 때가 아마 새로운 변곡점이 되지 않을까 싶다. 비록 원룸에 혼자 살지라도 주말 아침에 VR 기어를 착용하면 달콤한 말을 건내주는 선남선녀가 등장한다. 이 정도까지 기술이 발전하면 구태여 부담가게 누구를 만나러 나갈 필요성을 느끼게 되지 못할 인구가 훨씬 팽창해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자극이 일정 임계를 넘게 되면 정말로 매력적인 소수를 제외하고는 ‘컨텐츠와의 경쟁’에서 패하게 되는 순간이 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는 과연 불확실하고 불만족스러운 현실의 관계에서 해방되어 누리게 될 자유일까, 아니면 기술 시스템에 의해 가장 원초적인 활동마저도 결정권을 상실하게 된 새로운 종류의 예속일까?

그리고 오늘(2019. 6. 20.) [유미의 세포들]이 VR 콘텐츠로 재탄생된다는 따끈따끈한 소식이 뉴스에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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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임명묵
초대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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