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공유하기

2019년 4월 11일 오후 헌법재판소 앞에 모여 있던 여성들은 환호성을 질렸다. 2012년 형법상 낙태죄를 합헌이라 확인한 헌법재판소 결정 7년 만에 낙태죄에 대한 헌법불합치 결정 선고를 들은 직후였다.

그동안 낙태죄는 법전에 존재하되 작동하지 않았고, 작동하지 않았지만 여성의 어깨에 드리워진 무거운 짐으로 존재해왔다. 자신의 신체에 대한 결정권은 기본적인 인권이지만, 여성의 신체에 대한 자기결정권은 임신과 출산이라는 영역에서는 지워진 것이었다. 이번 낙태죄의 헌법불합치 결정은 한국사회에서 여성의 신체에 대한 자기결정권이 기본적 권리임을 확인한 결정이다.

여성 법 제도 페미니즘

이번 낙태죄에 대한 위헌소송은 2017년 2월 임부의 요청에 의해 낙태를 한 자를 처벌하는 형법 제270조 제1항 업무상 승낙낙태죄로 기소된 산부인과 의사의 헌법소원심판 청구로 시작되었다. 청구인은 업무상 승낙낙태죄와 이 조항이 전제로 하는 형법 제269조 제1항 여성의 자기낙태죄가 헌법에 위반된다고 주장하며 헌법소원심판을 제기하였다.

이로써 한국사회는 2012년 헌재결정 이후 낙태죄의 위헌성을 다시 다툴 수 있는 중요한 기회를 맞이하였으며, 헌법소원을 위해 공익변호사의 공동변호인단이 구성되고 여성단체와 진보운동단체 등이 주축이 된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이 조직되어 낙태죄 폐지를 위한 운동이 적극적으로 전개되기 시작했다.

죽은 법이 만든 살아있는 갈등

낙태죄는 1953년 형법 제정 당시 치열한 찬반논의 끝에 도입되었으나 실제 제정 당시부터 사문화된 법으로 평가받는데, 1960년대부터 적극적으로 추진되었던 출산 제한 정책의 일환으로 낙태수술이 국가 주도로 적극적으로 활용되었기 때문이다. 국가정책에 대한 법적 근거로 1973년 제정된 모자보건법은 인공임신중절 허용사유 규정을 두되 그 적용여부를 판단하는 절차를 규정하지 않는 방식으로 낙태죄를 사실상 사문화했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출산율의 감소로 정부의 출산 억제 정책이 저출산 대책과 임신중절 예방 정책으로 변화하게 되고, 2010년 이후 생명 옹호를 기치로 하는 프로라이프 의사회의 고발 활동이 전개되면서 낙태죄가 다시 주목받기 시작하였다.

모자보건법상 불명확한 판단 기준과 절차 속에서 낙태죄 처벌을 두려워하는 의사들의 시술 거부와 낙태 시술 비용의 증가로 인해 여성들이 낙태에 접근하기 어려워졌으며, 성폭력 피해로 임신한 여성에게 낙태를 위해 성폭력을 입증하라고 요구하는 사례나 높은 낙태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성매매를 하는 청소년의 사례들도 보고되었다.

심지어 낙태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성매매에 나선 여성의 사례가 보고되기도 했다.
(불법이기 때문에) 높아진 낙태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성매매에 나선 청소년의 사례들이 보고되기도 했다.

2018년에는 보건복지부가 행정처분이 가능한 의사의 비도덕적 의료행위에 낙태를 포함시키는 의료관계 행정처분 규칙 일부 개정안을 발표하면서 산부인과 의사들이 낙태 수술 전면 거부를 선언하기도 하였다.

이번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한국사회의 변화에 따른 낙태죄를 둘러싼 갈등의 정점에서 이루어졌다. 이번 결정을 통해 헌법재판소는 낙태죄에서 경합하는 권리에 대한 관점의 전환을 제시하였는데, 여기에는 임신중단을 둘러싼 사회적 논쟁이 새로운 장으로 이동해야 한다는 요청이 담겨있다.

낙태죄의 위헌성을 둘러싼 기존 법적 쟁점의 핵심에는 태아의 생명권을 보호하기 위해 여성의 신체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것이 정당한가에 대한 질문이 놓여 있었다.

2012 헌재, “태아의 생명권 보호”

임신한 여성의 몸 안에 존재하는 태아는 여성이 자기결정을 행사할 수 있는 신체가 아닌 별개의 생명이기 때문에 태아의 생명권 보호를 위해 여성의 낙태에 대한 처벌이 정당하다는 주요 법 담론을 그대로 반복한 결정이 2012년 8월 24일 헌법재판소의 결정이다:

“태아가 비록 그 생명의 유지를 위하여 모(母)에게 의존해야 하지만, 그 자체로 모와 별개의 생명체이고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인간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므로, 태아도 헌법상 생명권의 주체이고, 따라서 그 성장 상태가 보호 여부의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2010헌바402)

태아

이러한 법적 논리는 일견 생명 보호라는 중요한 사회적 원리를 옹호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법적 논리의 맹점은 여성의 모성에 대한 선택과 신체에 대한 자기결정권만 아니라 여성에게 자신의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선택의 권한을 박탈함으로써 여성의 자유와 평등을 현저히 침해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점에 있다.

이에 따르면, 임신 유지가 여성의 건강에 회복불가능한 부정적 영향을 주더라도 여성의 생명을 위태롭게 하지 않는 이상은 낙태가 불가능하다. 결국, 여성은 태아의 생명 보호를 위해 자신에게 일어날 부정적인 영향을 무조건 감수한다. 이것이 여성의 권리에 대한 상당한 침해라는 점은 태아의 생명권에 절대적인 가치를 부여하지만 동시에 절대적으로 보호받아야 하는 생명 가치에 대해 평가의 잣대를 들이대고 있는 헌법재판소의 또 다른 논리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2012년 헌법재판소는 부모에게 우생학적인 또는 유전적인 정신 장애나 신체 질환이 있는 경우를 낙태가 허용되는 사유로 규정하는 모자보건법에 대해서는 태아의 생명권이 제한될 수 있는 정당한 이유를 제시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여성이 자신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초래할 수 있는 임신을 중단할 것을 결정하는 것은 태아의 생명권을 침해하지만, 이른바 ‘비정상’적인 부모로 인해 태아에게 발생할 수 있을지 모르는 장애나 질병을 이유로 임신을 종결하는 것은 생명 보호의 원리를 해지지 않는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모성을 선택하는 여성의 결정은 부정하지만, 부모의 우생학적 또는 유전적 사유에 대한 결정은 인정하는 태아 생명 보호의 논리는 생명 가치에 대한 차별과 편견만이 아니라 여성의 결정에 대한 불신과 부정을 전제하고 있을 뿐이다.

2012 헌재는 여성의 선택권을 부정했다.
2012년 헌재는 여성의 모성과 신체에 관한 선택권을 부정했다. 이는 여성의 결정에 대한 불신과 부정을 전제로 한 것이다.

2019 헌재, 태아와 여성은 “상호 존재”

2019년 헌법재판소는 여성의 자기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4인, 단순위헌 3인, 합헌 2인 의견으로 최종적으로 헌법불합치 결정(2017헌바127)을 하였다. 이번 결정의 가장 큰 의의는 헌법불합치와 위헌 의견에서 나타난 여성의 자기결정권에 대한 인정이다.

2012년 결정과 마찬가지로 태아를 생명권의 주체로 인정하고, 국가에게 태아의 생명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고 보았으나, 이번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및 단순위헌 의견에서는 임신과 출산이 여성에게 미치는 신체적·정신적 건강에 대한 영향, 양육의 사회적·경제적 영향과 임신과 출산에 대한 여성의 결정이 기본적이면서 중요한 자기결정권의 영역이라는 점을 인정하고,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결정권 간의 최적의 조화를 추구해야 할 헌법상 원리를 강조하였다.

더욱 중요한 점은 태아와 여성을 단순히 대립하는 존재가 아니라 별개의 생명체지만, 동시에 밀접하게 결합되어 특별한 유대관계와 의존 관계를 맺는 상호 존재로 보았다는 점이다. 헌재는 “특별히 예외적인 사정이 없는 한, 임신한 여성의 안위가 곧 태아의 안위이며, 이들의 이해관계는 그 방향을 달리하지 않고 일치”한다고 말한다.

즉, 헌재는 실질적인 태아의 생명 보호를 위해서 전면적인 처벌이 아닌 임신한 여성의 신체적·사회적 보호와 여성의 결정을 위한 사회적·심리적 지원의 방향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번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여성의 임신중단에 대한 법정책적 방향을 여성의 모성과 신체에 대한 자기결정권의 보장을 통해 태아의 생명 보호라는 국가의 의무를 실현할 수 있도록 설계해야 한다는 근본적인 지침을 제공하였다.

2019년 헌재는 여성과 태아를 '상호 존재'로 바라보면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통해 태아를 보호해야 한다는 기본원칙을 정립했다.
2019년 헌재는 여성과 태아를 단순히 대립하는 존재가 아니라 ‘상호 존재’로 바라보면서, 여성의 모성과 신체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통해 태아 보호라는 국가의 의무를 실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기본 원칙을 정립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태아의 생명권 보호를 위해 여성의 자기낙태죄 처벌이 필요하다는 관점과 특정 사유에 한정하여 여성의 결정권을 인정하는 태도를 유지함으로써 여성의 자기결정권에 대한 평등한 실현을 위한 제약을 남겨놓기도 했다. 단순 위헌 의견에서 임신 14주 이내에는 여성의 자기결정이 온전히 인정될 수 있다고 보기도 하였지만, 여전히 태아 생명권 침해에 대한 형사 처벌을 전제함으로써 향후 개정 방향이 여성의 낙태죄 처벌을 면책하기 위한 특정한 사유나 특정기간의 제한을 어떻게 둘 것인가에 한정될 우려가 있다.

그러나 생명보호와 대립되지 않는 여성의 신체나 모성에 대한 자기결정권에 대한 헌법재판소 결정이 완결성을 갖추기 위해서는 법 개정 방향은 여성에 대한 처벌 면책이 아니라 여성의 임신 유지 또는 중단의 결정을 온전하게 할 수 있는 신체적, 정신적 그리고 사회적 지원과 보호에 집중되어야 할 것이다.

[divide style=”2″]

[box type=”note”]

광장에 나온 판결

  • 별칭: 낙태죄 사건
  • 사건명: 형법 제269조 제1항 등 위헌소원
  • 종국결과: 헌법불합치
  • 사건번호: 2017헌바127
  • 선고기일: 2019. 4. 11.

이 글의 필자는 장다혜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입니다.

[/box]

관련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