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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나라든지 선거제도 개혁은 매우 어려운 과제이다. 정치인들이 말을 바꾸기도 하고, 정당들끼리 합의를 했다가 합의가 깨지는 경우도 있다.

[dropcap font=”arial” fontsize=”22″]캐나다[/dropcap]의 저스틴 트뤼도 총리는 2015년 캐나다 총선 당시에 “이번 선거가 소선거구제로 치르는 마지막 선거가 되게 하겠다”는 공약을 내걸고 당선됐지만, 그 공약을 번복했다. 트뤼도 총리가 속한 자유당이 ‘현행 소선거구제가 우리에게 유리하다’고 판단한 탓으로 보인다.

그러나 올해 10월 캐나다 총선 결과를 지켜봐야 하지만, 선거제도를 개혁하지 않은 덕분에 트뤼도 총리의 자유당이 선거에서 손해볼 가능성이 상당히 높은 상황이다. 현재 제1야당인 보수당이 소선거구제 덕분에 득표율보다 많은 의석을 차지할 가능성이 꽤 높기 때문이다(2011년 총선에서도 보수당은 39.62%의 득표율로 53.9%의 의석을 차지했었다).

캐나다 수상 저스틴 트뤼도 (출처: DoD News, CC BY, 2017년 9월 모습) https://flic.kr/p/YpBpEu
저스틴 트뤼도 캐나다 수상 (출처: DoD News, CC BY, 2017년 9월 모습) 공약으로 내건 선거제도 개혁을 미뤄 올해 총선에서 그 공약 미이행이 ‘부메랑’으로 되돌아 올 수도 있다.

[dropcap font=”arial” fontsize=”22″]이탈리아[/dropcap]의 4개 주요 정당은 2017년 6월 독일식과 유사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그 합의는 깨졌다. 합의에 불만을 품은 정당 내의 반대세력들이 비밀투표에서 반대했기 때문이다. 그 이후에 우여곡절을 거쳐 이탈리아는 전체 의석의 64%를 비례대표로 뽑고, 지역구에서는 36%만 선출하는 병립형 방식으로 바뀌었다.

[dropcap font=”arial” fontsize=”22″]칠레[/dropcap]처럼 어려운 과정을 거쳐서 선거제도 개혁에 성공하는 경우도 있다. 칠레는 피노체트 독재정권의 유산인 1선거구당 2명의 국회의원을 뽑는 중선거구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오랫동안 논의를 해 왔다. 그리고 2015년 비례성을 보다 높이는 권역별 비례대표제로 전환했다. 40%의 여성할당제도 포함된 개혁이었다.

[dropcap font=”arial” fontsize=”22″]대한민국[/dropcap] 경우에도 선거제도 개혁을 위해 매우 복잡하고 어려운 과정을 밟고 있다. 다른 국가와 다른 점이라면, 이번에 국회에서 점거, 감금같은 폭력사태가 일어났다는 점이다. 선거제도 개혁에 대해 반대하는 의견을 가질 수는 있지만, 그 의견을 폭력적이고 불법적인 방식으로 관철시키려 했다는 점에서, 이번 사태는 심각성을 가진다.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와 소속 의원들이 지난달인 4월 26일 국회에서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 이상민 위원장과 더불어민주당 소속 위원들이 회의장 입장을 저지하기 위해서 바닥에 누워 구호를 외치고 있는 모습. (사진 제공: 민중의소리, ⓒ정의철 기자) http://www.vop.co.kr/A00001403387.html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와 소속 의원들이 지난달인 4월 26일 국회에서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 이상민 위원장과 더불어민주당 소속 위원들이 회의장 입장을 저지하기 위해서 바닥에 누워 구호를 외치고 있는 모습. (사진 제공: 민중의소리, ⓒ정의철 기자)

그러나 그런 와중에도 패스트트랙이 성사된 것은 한국 정치사에서 대단한 의미를 가진다고 본다. 비록 패스트트랙에 올려진 방안이 온전한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아니라 ‘준연동형’이라는 한계를 가지지만, 비례성이 확대되는 방향으로 선거제도를 개혁하는 것은 87년 민주화 이후에 가장 큰 정치제도 개혁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패스트트랙은 시작일 뿐이다. 본회의에서 선거제도 개혁안이 통과되어야, 한걸음이든 반걸음이든 정치개혁이 진전되는 것이다. 그리고 본회의 통과까지는 앞으로도 험난한 과정이 예상된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이번 패스트트랙의 과정을 돌아보면서 이후를 전망해보고자 한다. 그리고 선거제도 개혁을 완성하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할지에 대해서도 제안해보고자 한다.

패스트트랙 과정 돌아보기

국회법에 정해져 있는 절차이지만,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절차)이 성사되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작년 12월 15일 여.야5당 원내대표간에 작성된 합의서에는 1월말까지 선거제도 개혁안을 합의처리하기로 되어 있었지만, 1월말까지 아무런 진전이 없었다.

그에 따라 자연스럽게 패스트트랙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는 논의가 확산되었고, 민주당과 야3당간에 패스트트랙 논의가 진행되었다. 자유한국당은 뒤늦게 비례대표를 아예 없애고 지역구를 270석으로 늘리는 방안을 내놓았지만, 이것은 5당 원내대표간의 합의에 반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결국 패스트트랙으로 문제를 풀 수밖에 없었다.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4당간에 벌어진 협상의 쟁점은 초기에는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선거제도 개혁안에서 ‘연동형’의 취지를 어느 정도 담아내느냐였고, 다른 하나는 선거제도와 연계해서 처리할 법안의 범위였다. 민주당은 정당득표율대로 의석을 배분한다는 ‘연동형’의 취지를 온전히 담아내는 방안에 대해 소극적이었고, 반면에 선거제도와 연계해서 처리할 법안의 범위는 폭넓게 제안했다.

여당과 야3당은 패스트트랙에 합의했다.
여당과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야3당은 공선법과 공수처법, 그리고 형사소송법을 패스트트랙에 올리는데 합의했다.

결국, 협상 과정에서 패스트트랙에 올릴 법안의 범위는

  1. 연동형 비례대표제
  2. 만18세 선거권을 담은 공직선거법 개정안
  3. 공수처법
  4. 검경수사권 조정법으로 좁혀졌다.

그리고 3월 17일 선거제도 개혁과 관련해서는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로 합의가 되었고, 공수처법을 놓고 온갖 우여곡절 끝에 합의점을 찾아서 4월 29일 공직선거법, 공수처법(2개안), 형사소송법이 패스트트랙에 올려졌다.

이 과정에서 자유한국당은 패스트트랙을 방해하기 위해 국회 의안과 사무실을 점거하여 법안접수를 막는가 하면, 회의장앞을 점거하고 정치개혁특위와 사법개혁특위 회의를 물리적으로 막는 일까지 저질렀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추후에 사법기관의 판단에 의해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하겠지만, 국회선진화법을 근본적으로 무너뜨린 자유한국당의 행태에 대해서는 정치적, 역사적인 책임도 따를 것이다.

4월 29일 저녁 국회 문화체육관광부 회의장에서 열린 사법개혁특별위원회에 참석하기 위해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진입을 시도하고 있는 모습. (사진 제공: 민중의소리, ⓒ정의철 기자) http://www.vop.co.kr/A00001403605.html
4월 29일 저녁 국회 문화체육관광부 회의장에서 열린 사법개혁특별위원회에 참석하기 위해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진입을 시도하고 있는 모습. (사진 제공: 민중의소리, ⓒ정의철 기자)

패스트트랙 평가 

1. 과정에 대한 평가

패스트트랙 과정에서 ‘선거제도 개혁은 합의 처리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헌법적으로나 정치적으로 타당하지 않은 주장이었다.

우선 헌법상으로는 “국회는 헌법 또는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 재적의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한다”라고 되어 있다(제49조). 그런데 선거제도라고 해서 무조건 합의처리해야 한다는 주장은, 한 정당이라도 반대하면 그 어떤 개혁도 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이는 헌법 제49조의 내용을 무력화시키는 주장이다.

정치적으로도 그렇다. 선거제도 개혁은 합의처리가 바람직하지만, 더 우선이어야 하는 것은 국민들의 의사를 제대로 반영하는 선거제도를 만드는 것이다. 지금의 선거제도가 표심을 왜곡하고 있는데 정당들이 당리당략을 따지느라 합의가 안 된다면, 개혁을 포기해야 하는가? 정당간의 합의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의 민심이고 표심이다. 합의를 위해 노력을 하되, 도저히 합의가 안 되면 공직선거법도 다른 법률들처럼 헌법과 국회법에 따라 처리를 하는 것이 정치적으로도 필요한 선택이다.

패스트트랙은 헌법적으로도 정치적으로 정당하다고 생각한다.
패스트트랙은 헌법적으로도 정치적으로 정당하고 필요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패스트트랙은 최종 표결이 아니라 안건 상정을 위한 절차에 불과하다. 따라서 안건상정후에도 협상이 가능하다. 그런데 이 제도에 따라 안건을 상정하는 것조차 가로막는다면, 그 어떤 개혁도 불가능해진다. 따라서 이번 패스트트랙은 헌법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정당하고 필요한 선택이었다.[footnote]학계에서도 이런 주장이 나왔다. 즉 “선거제도를 개혁하려면 반드시 모든 정당 합의가 의무라는 생각을 과감히 버릴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함: 국민적 공감대가 이루어지고 여러 정당이 동참한다면, 국회선진화법이 규정하고 있는 국회의원 슈퍼다수(3분의 5이상)의 합의를 바탕으로 법에 따라 다수결을 통해서 선거제도를 개정할 수도 있다는 비장한 각오가 필요”하다는 것이다(조정관, “국회의원 선거제도 개혁의 정치 : 대안의 검토와 성공을 위한 레시피”, 한국선거제도 개편의 쟁점과 과제 토론회 자료집, 국회정치개혁특별위원회.국회입법조사처.한국정치학회, 2017. 11. 24., 13쪽)[/footnote]

2. 내용에 대한 평가

우선 오랜 숙원인 만18세 선거권이 패스트트랙에 올려진 공직선거법 개정안에 담겼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18세 투표권
만18세 선거권

만18세 선거권과 함께 온전한 형태의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패스트트랙에 올려졌다면 바람직했겠지만, 패스트트랙에 올려진 방안은 ‘준연동형’으로 불리는 제도이다.

  • 전체 의석은 300석으로 하고
  • 지역구 225석
  • 비례대표 75석으로 하는 방안이다.

그리고 정당별 의석배분을 할 때에는 전국 단위 득표율을 기준으로 하되, 정당의 비례대표 명부는 권역별로 작성하는 방식이다.[footnote]각 정당이 얻은 비례대표의석은 그 정당 내부에서 권역별로 득표수를 기준으로 배분된다.[/footnote] 이는 민주당이 제안했던 것을 뼈대로 약간 수정된 것이다.

이 제도는 정당득표율대로 전체 의석을 배분한다는 ‘비례성의 원칙’을 온전하게 구현하지 못한다는 한계를 가진다. 구체적으로 각 정당이 득표율에 따라 어느 정도의 의석을 얻게 될 것인지는 지역구 당선자 숫자 등 개별 선거의 결과에 따라 약간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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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연동형 비례대표제 (사례 해설) 

Q. 가령 20%의 정당 지지를 얻는 정당이 있다고 하자.

  1. 원래 ‘온전한 연동형’ 제도였다면? 그 정당이 배분받을 의석은 300석의 20%인 60석이다.
  2. 하지만 ‘준연동형’은 그에 못미친다. 가령, 그 정당이 지역구에서 20석이 당선될 경우 1) 정당득표율에 따른 60석에서 2) 지역구 20석을 제외한 3) 40석의 50%가 비례대표의석으로 우선배분되는 방식이 ‘준연동형’이다.
  3. 따라서 그 정당이 얻는 의석은 지역구 20석 + 비례대표 20석(50% 보장) + 추가 비례대표(75석 비례대표의석 중 각 정당에게 50%를 보장하고 남은 의석을 정당득표율대로 나눈 의석)가 되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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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준연동형’ 방식도 지금보다는 비례성이 개선되는 효과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정당득표율이 중요해지므로, 정당간의 정책경쟁이 촉진되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기존 제도는
현행 제도는 정당별 득표 비율과 실제 의석 사이의 비례가 아주 낮다.

그리고 여성대표성도 일정수준까지는 개선될 것이다. 비례대표 의석이 75석으로 늘어나는 것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겠지만, 각 정당이 권역별로 작성할 명부의 홀수 번호는 여성이고, 각 정당들에게 홀수 번호까지 의석이 배분되는 경우가 많을 것이므로, 비례대표 75석 중에 절반을 훌쩍 넘는 의석이 여성들에게 배분될 가능성이 높다.

비례대표 의석이 늘어나기 때문에 각 정당이 청년유권자들의 정당지지표를 흡수하려고 청년 공천 비율을 높이려고 노력할 것이므로, 청년 국회의원들도 이전보다는 많아질 것이다.

또 한가지 긍정적인 부분은 공천 개혁에 대해 이전보다 적극적인 내용이 담겼다는 것이다. 패스트트랙에 올려진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보면, 각 정당은 “민주적 심사절차를 거쳐 전국단위 또는 권역별로 대의원.당원 등으로 구성된 선거인단의 민주적 투표절차”에 따라서만 비례대표 후보자를 결정할 수 있다. 그리고 정당은 비례대표 후보 선출절차를 당헌, 당규, 그밖의 내부규약으로 정하고, 구체적인 사항을 선거일 전 1년전까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해야 하며, 중앙선관위는 그 내용을 홈페이지에 공개하도록 되어 있다.

실제로 각 정당이 비례대표 후보자를 선출할 때에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미리 제출한 당헌 또는 당규 등에 따라 민주적 절차로 진행해야 하고, 후보자등록을 할 때에는 미리 제출한 후보자 추천절차에 따라 후보자를 선출하였음을 회의록 등을 통해 증명하여야 한다. 만약 이를 위반하면 후보자등록을 무효로 하도록 되어 있다.

이러한 절차는 시민사회가 요구하던 ‘민주적 공천의 법제화’를 받아들인 것으로 그동안 밀실공천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던 비례대표 후보 공천절차를 크게 개선할 수 있는 내용이다.

꼭두각시 조종 노예

한편 시민사회 내에서 우려가 있었던 석패율 제도부분적으로 도입되었다. 우선 권역별로 작성되는 비례대표 명부의 홀수순번은 석패율 적용 순위로 지정할 수 없도록 하여 여성할당제에 대한 영향은 없도록 하였다. 그리고 정당이 석패율 적용순위를 지정하려 할 경우에는 지역구 후보자 모두를 등재하여 권역별로 후보자 명부 중 2개순위 이내에서 지정할 수 있는 정도로 정리됐다. 즉, 정당에 따라서는 석패율 적용순위를 지정하지 않을 수도 있고, 지정할 경우에도 권역별로 2개 순위 이내에서만 지정할 수 있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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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패율 계산

해당 후보자득표수를 당선자득표수로 나눈 값을 적용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 지역구국회의원선거에서 유효투표총수의 100분의 5에 미달하거나 추천 정당의 지역구국회의원 당선인 수가 해당 권역의 국회의원지역구 총수의 100분의 30 이상이면 동시 등록한 후보자는 당선될 수 없도록 되어 있다(공직선거법 개정안 제189조 제5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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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의 시나리오

우여곡절 끝에 패스트트랙은 지정되었다. 실질적으로 패스트트랙이 갖는 효과는 일정 시간이 지나면 본회의 표결이 진행된다는 것이다. 즉 패스트트랙 지정 후에도 협상과 토론이 가능하지만, 시한이 정해져 있는 협상과 토론이 되는 효과라고 할 수 있다.

이후에 진행될 과정에 대해서는 크게 두가지 시나리오를 생각해 볼 수 있다.

[dropcap font=”arial” fontsize=”22″]시나리오 1.[/dropcap]은 자유한국당이 태도를 바꿔 선거제도 개혁 협상에 들어오고 새로운 개혁안에 합의가 이뤄지는 경우이다. 그럴 경우에는 합의된 선거제도 개혁안을 먼저 본회의 표결로 가져가면 된다.

[dropcap font=”arial” fontsize=”22″]시나리오 2.[/dropcap]는 끝내 자유한국당이 협상을 거부하거나 협상을 진행되더라도 자유한국당과의 합의가 이뤄지지 않는 경우이다. 이 경우에는 패스트트랙 절차에 따라 본회의 표결로 가게 된다.

이후 시나리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유한국당이 테이블에 오를 것인가이다.
이후 시나리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유한국당이 협상 테이블에 오를 것인가이다.

실제 본회의 표결까지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릴 지는 여러 가지 변수가 있을 수 있다. 국회법상으로는 해당 위원회에서 최대 180일, 법사위에서 최대 90일 동안 안건을 심사할 수 있게 되어 있고, 그 후 60일 이내에 본회의에 상정하게 되어 있다. 그래서 최대 330일이라고 한다.

그러나 본회의 상정 전 60일은 국회의장의 의지로 단축시킬 수도 있다. 그리고 위원회 심사단계에서 안건조정신청이 있어서 안건조정절차를 거치는 경우에는 기간을 더 단축시킬 수도 있다.[footnote]안건조정위원회는 위원회내 이견조정이 필요한 안건이 있을 때에 90일 이내를 활동기한으로 구성할 수 있다. 구성은 제1교섭단체인 여당이 3명, 야당이 3명을 차지하고, 안건조정위원회에 회부된 안건은 재적의원 3분의2 이상의 찬성으로 의결할 수 있다.[/footnote]

시나리오 2.의 경우에도 원안 그대로 본회의 표결에 붙여질 수도 있지만, 이번에 패스트트랙에 합의한 4당간에 수정합의가 이뤄지면 수정안부터 본회의 표결에 붙여질 수도 있다. 참고로 최초의 패스트트랙 사례인 ‘사회적 참사의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에 관한 특별법’의 경우에도 2017년 11월 24일 본회의 표결전에 박주민 의원 등 43인으로부터 수정안이 제안되어 수정안부터 표결에 붙여졌다.[footnote]당시 본회의 회의록을 보면, 재석 216인중 찬성 162인, 반대 46인, 기권 8인의 표결결과가 나와서, 수정안이 가결되었다. 그리고 수정안이 가결되었으므로 원안은 표결하지 않았다.[/footnote]

시나리오 1. (자한당 참여) – 쟁점은 ‘총의석 수’

선거제도 개혁을 바라는 입장에서는 위와 같은 시나리오에서 아래와 같은 목표를 설정할 필요가 있다.

시나리오1.의 경우처럼 일단 자유한국당이 협상에 나오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전제가 있어야 한다. 그것은 자유한국당이 지금 주장하고 있는 ‘비례대표 폐지-전원 지역구에서 선출-의석수 270석으로 축소’를 포기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협상이든 토론이든 할 수가 있다.

그리고 협상을 원점에서 시작하는 것은 곤란하다. 현재 패스트트랙에 올라가 있는 ‘준연동형’보다 후퇴된 방안으로 협상이 이뤄져서도 안 된다. ‘준연동형’도 시민사회나 학계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고 있는 상황인데, 그보다 비례성이 더 후퇴되는 방안으로 협상이 이뤄져서는 안 된다.

만약 자유한국당까지 포함해서 협상을 한다면, 기준점은 작년(2018년) 12월 15일에 있었던 5당 합의문이 기준점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5당간에 유일하게 합의되었던 내용이기 때문이다. 그 내용을 보면,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중심으로 검토하고, 국회의원 숫자는 10% 범위 내에서 확대하는 것을 검토하며, 지역구도 완화를 위한 제도를 적극 검토한다는 것이다.

기준은
협상의 기준은 ’18년 12월 15일에 있었던 ‘5당 합의문'(1.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중심으로 검토, 2. 국회의원 수는 10% 범위에서 확대 검토, 3. 지역구도 완화 적극 검토)이 기준이 되어야 한다.

이 합의문을 기준점으로 삼는다면, 우선 논의되어야 할 것은 국회의원 숫자문제일 것이다. 현재의 300석으로 연동형 또는 준연동형을 할 경우에, 지역구 의석의 상당한 감축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이것은 선거구획정에 있어서 상당한 무리를 감내해야 한다. 통합되는 지역구 국회의원의 반발만이 문제가 아니고, 해당 지역사회나 지역유권자들도 반발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유한국당 국회의원들 중에서도 자기 지역구가 인근 지역구와 통합되거나 조정되어야 하는 의원들이 상당수 있으므로 자유한국당까지 포함해서 협상의 공간이 열린다면, 우선 조정할 부분은 총의석수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자유한국당이나 더불어민주당은 지금까지 의석수 증원에 부정적이었으므로, 이 부분을 다시 논의하려면 강력한 국회의원 특권폐지(연봉 삭감, 개인 보좌진 규모 축소, 투명한 정보공개와 예산낭비 근절 등)를 전제로 의석수 확대 논의를 해야 할 것이다.

나머지 쟁점인 연동형 도입의 방식과 관련해서는 ‘온전한 연동형’과 현재 나와 있는 ‘준연동형’을 놓고 협상할 수는 있으되, 현재의 ‘준연동형’에서 후퇴하는 일은 있어서는 안 된다. 지금도 비례성이 충분히 보장되는 방안은 아니기 때문이다. 지역구 : 비례 비율도 3:1에서 후퇴되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작년 12월 15일 합의문에 나와 있던 ‘지역주의 완화’ 부분은 이번에 4당이 합의한 안에서 상당부분 정리되었다고 본다. 권역별 명부작성, 부분적인 석패율 도입 등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나리오1.대로 자유한국당까지 포함한 선거제도 개혁 협상이 가능해진다면, 1차적으로 정리되어야 할 부분은 총의석 수일 것이다.

  • 10% 정도 의석을 늘려서 총의석 수를 330석 정도로 하면,
  • 지역구를 247~8석,
  • 비례대표를 82-83석 정도로 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지역구 선거구 조정의 폭은 대폭 줄어들 수 있다. 물론 국민의 동의를 얻으려면, 국회의원 특권폐지법안을 공직선거법과 동시에 통과시키는 형태로 국회개혁의 의지를 보여줘야 할 것이다.

총의석 수를 330석 정도로 10% 정도 늘리려면, 우선은 국회의원의 특권을 의원 스스로 내려 놓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
총의석 수를 330석 정도로 10% 정도 늘리려면, 우선은 국회의원의 특권을 의원 스스로 내려 놓는 ‘국회 개혁 의지’를 먼저 보여줘야 할 것이다.

시나리오 2. (자한당 불참) – 두 가지 경우 

패스트트랙으로 선거제도 개혁안을 처리하는 시나리오2의 경우에도 변수는 있다.

(1) 우선 원안을 그대로 표결할 경우

이 경우에는 원안 그대로 통과시켜야 하는 숙제가 있다. 본회의 표결은 과반수 출석에 과반수 찬성이므로 현재의 국회의석분포를 볼 때에, 패스트트랙에 참여한 정당의 소속의원들만 찬성표를 던져도 통과는 가능하다. 특히 총선을 코앞에 둔 시점일 것이므로 민주당과 야3당의 입장에서도 선거제도 개혁안을 반드시 통과시키기 위해 노력할 수밖에 없다. 그래야 국민에게 개혁의 성과를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개별 국회의원들, 특히 지역구가 통합.조정되는 국회의원들의 불만이 문제가 될 수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각 정당 지도부들의 강력한 의지(선거제도 개혁에 반대표결을 하는 국회의원들은 공천배제한다든지)가 필요하고, 시민사회의 역할도 매우 중요하다.

시민사회는 본회의에서 국회의원들이 찬성표를 던지도록 모든 노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 선거제도 개혁이 무산되면 비례성을 강화하는 선거제도 도입만 무산되는 것이 아니라, 만18세 선거권도 무산되고, 공수처법 등 검찰개혁도 무산되는 것이므로 국민들의 여론도 본회의 통과를 지지할 것이다. 이렇게 여론이 만들어지면 자유한국당 소속 의원을 제외한 국회의원들은 쉽게 반대표를 던지기 어려울 것이다.

국회의원 배지

(2) 수정안을 만들어 표결에 붙이는 경우

한편 패스트트랙으로 끝까지 가더라도 패스트트랙에 합의한 4당이 추가 협상을 통해 수정안을 만들어서 수정안부터 표결에 붙일 수도 있다. 만약 수정안 논의를 한다면, 결국 쟁점은 두 가지다. 현재의 준연동형 보다 비례성(표의 등가성)을 강화하는 ‘온전한 형태의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문제와 의석수 확대 문제이다.

지역구 축소의 어려움 때문에 의석수를 늘린다면, 국민적 동의를 받기 위해서라도 비례성을 더 강화하는 내용의 수정이 되어야 한다. 표심을 공정하게 반영하는 온전한 형태의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개혁하기 위해 의석수 확대가 필요하다고 해야 설득력이 있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국회의원 특권폐지도 동시에 병행되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개헌 논의 

한편 개헌과 관련된 논의도 조심스럽게 시작할 필요가 있다. 2020년 총선전 개헌은 어차피 어려운 상황이다. 그렇다면 선거제도 개혁을 마무리짓고, 개혁된 선거제도로 2020년 총선을 치르는 과정에서 개헌에 대해 본격적인 논의를 해야 한다. 각 정당들은 개헌에 대해서도 책임있는 입장을 내놓을 필요가 있고, 총선을 계기로 광범위한 토론을 진행해야 한다. 그리고 2020년 총선직후에 다시 개헌논의를 본격화해야 한다.

작년 12월 15일 합의문에서도 선거제도 개혁안을 국회에서 처리함과 동시에 개헌논의를 시작하기로 합의했었다. 특히 개헌의 최대쟁점인 권력구조 개편에 대해서 각 정당들이 책임있는 입장을 내고 치열한 토론을 하여 2020년 총선 직후에 개헌을 본격추진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2020년 하반기에 개헌을 하고, 적용 시기는 2022년 대선을 통해 새로 당선되는 대통령부터 적용하는 것으로 하는 것이 가장 무난할 것이다.

이제 개헌도 본격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이제 개헌도 본격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끝이 아니라 시작 

이번 과정에서 정치개혁에 대한 의지와 열정을 가진 정치인들의 역할이 매우 컸다. 그리고 선거제도 개혁을 주장해 왔던 시민사회나 전문가들도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패스트트랙은 끝이 아니라 시작일 뿐이다. 앞서 언급한 시나리오1이 되든 시나리오2가 되든 끝까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정치권은 이후에 벌어질 정세의 변화에 긴밀하게 대응해가면서 비례성과 대표성을 보장하는 선거제도 개혁을 성사시키기 위해 계속 노력할 필요가 있다. 87년 민주화 이후에 최초로 열린 정치시스템 개혁의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

1987년 6월 26일 서울역 주변에서 경찰과 대치 중인 학생과 시민들. (출처: 보도사진연감)
1987년 6월 26일 서울역 주변에서 경찰과 대치 중인 학생과 시민들. (출처: 보도사진연감)

시민사회도 본회의 표결 전까지 최대한의 힘을 모으고, 역량을 결집시켜야 한다. 시민들에게 선거제도 개혁의 필요성과 내용을 알려 나가고, 다양한 영역의 시민사회조직들을 ‘선거제도 개혁’이라는 목표를 향해 모아 나가야 한다.

특히 자유한국당이 주장하는 비례대표제 폐지-의석수 축소주장에 맞서서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정당성을 알려나가는 것은 정치권과 시민사회가 공동으로 노력해야 할 몫이다.

언론의 역할도 매우 중요하다. 여전히 선거제도는 시민들에게 어려운 주제이다. 그러나 언론이 제 역할을 한다면, 선거제도 개혁에 대한 시민들의 이해도는 높일 수 있다. 언론이 정쟁중심의 보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선거제도가 더 성숙한 민주주의를 위해 필요한 것인지에 대한 논의를 활성화시키는 역할을 해 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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