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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선 헌법재판관 후보자에 대한 논란이 뜨겁습니다. 자유한국당과 보수 언론은 주식을 통해 불법적으로 이득을 취했다고 주장하고, 여당과 청와대는 임명에 큰 문제가 없다고 합니다.

4월 15일 조선일보는 [‘누가 후보인지… 이미선 남편, 청문위원에 “맞짱 토론하자”]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이 후보자의 남편 오충진 변호사가 주식 거래 관련 의혹을 제기한 주광덕 자유한국당 의원에게 TV토론을 제안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조선일보, ‘누가 후보인지… 이미선 남편, 청문위원에 “맞짱 토론하자”
조선일보, ‘누가 후보인지… 이미선 남편, 청문위원에 “맞짱 토론하자”

조선일보의 기사 제목만 보면 후보자 남편이 너무 나서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오충진 변호사가 올린 페이스북 글을 보면 전혀 다릅니다.

저는 4월 11일 저녁에 MBC로부터 의원님과 함께 맞장 토론을 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보려고 하는데 이에 응할 생각이 있느냐는 전화를 받고 다음날 흔쾌히 하겠다고 수락하였습니다. 그런데 의원님께서는 가타부타 연락이 없어서 방송 기회를 만들 수 없다고 합니다.

의원님께서 제기한 의혹들은 의원님의 입장에서는 ‘아니면 말고’라고 하면서 넘어갈 수 있을지 모르지만, 저와 후보자의 입장에서는 모든 명예가 달려 있는 문제로서 반드시 의혹을 명쾌하게 해소하여야 하며, 끝까지 싸울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저는 의원님만 동의하신다면 언제든지, 어떤 방식이든지, 15년간의 제 주식거래내역 중 어떤 대상에 대해서라도 토론과 검증을 하고 해명하고 싶습니다. 부디 저의 제의를 회피하지 마시고 토론에 응해 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오충진(이미선 헌법재판관 후보자의 남편)  변호사 페이스북 게시물 중에서

오충진 변호사가 자유한국당 주광덕 의원에게 토론을 제안한 것은 MBC가 먼저였습니다. 그러나 이 토론은 주 의원의 무반응으로 성사되지 못했고, 오 변호사는 토론을 통해 검증과 해명을 하고 싶다고 의사를 밝힌 겁니다.

주광덕 의원은 오 변호사의 토론 요구에 대해 “제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이 인사를 왜 했느냐고 맞짱 토론을 하자고 하면 국민이 공감하겠나”라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주식 거래 의혹 당사자가 의혹을 제기한 사람과 만나 검증하고 해명하자는 데, 굳이 피할 이유는 없어 보입니다.

조선일보 외에도 중앙일보도 4월 12일 ‘이미선 남편 묘한 주식거래···사면 폭등, 팔면 폭락했다’는 제목으로 자유한국당이 주장한 주식 거래 의혹을 보도했습니다. 그러나 이 기사에는 자유한국당의 주장을 검증하지 않고, 받아쓰기만 했습니다.

이미선 헌법재판관 후보자에 쏟아진 주식 거래 의혹을 하나씩 팩트체크해봤습니다.

[팩트체크①] 재판에 유리한 판결을 내렸다?

이미선 후보자에 대한 의혹 중의 하나가 보유한 주식을 위해 관련 재판에 유리한 판결을 내렸다는 겁니다. 그러나 이 후보자가 관여한 재판을 정확히 따져보면 주식을 보유한 회사의 재판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2018년 10월 당시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였던 이 후보자는 원고 ‘삼성화재’와 피고 ‘전국화물자동차운송사업연합회’ 관련 재판을 맡습니다.

‘삼성화재’는 이테크건설의 하도급 업체가 기중기 사고를 통해 정전 피해를 입히자 1억 6천만 원의 보험금을 지급하고, 하도급 업체의 공제보험사인 ‘전국화물차운송사업연합회’에 구상금을 받기 위해 소송을 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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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재판은 교통사고가 발생한 뒤 벌어지는 보험사 간의 재판처럼 원청인 ‘이테크 건설’과는 무관합니다. 억지로 연관성을 따지자면 삼성화재가 패소함으로 하도급 업체의 보험료가 인상되는 ‘이테크 건설’에 불리한 판결이었습니다.

보험 업체 사이에서 누가 사고 보험금을 부담하느냐는 재판이 보유한 주식과 연관성이 있다고 의혹을 주장하는 자체가 논리적으로 맞지 않습니다.

[팩트체크 ②] 주가 조작을 했다?

자유한국당은 이미선 후보자의 남편 오충진 변호사가 주가 조작을 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주식 시장을 아는 사람이라면 이 주장이 얼마나 황당한지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이테크건설’의 시가 총액은 2,685억 원이고 ‘삼광글라스’는 1,929억 원입니다. 두 종목의 시가총액을 합치면 4,600억이 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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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형주 회사의 주가를 조작하기 위해서는 최소 몇 백억 원의 자금이 투입돼야 합니다. 그런데 이 후보자와 남편 오충진 변호사가 보유한 주식은 대략 35억 원입니다. 30여 억 원의 자금으로 시가총액 4천억대 주식의 주가를 조작한다? 이런 주장은 주식 초보자에게 사기칠 때나 먹힐 수 있는 주장입니다.

[팩트체크 ③] 미공개 정보로 주식 매매를 했다?

2017년 12월 오충진 변호사는 삼광글라스 주식 7121주를 4만 1950~4만 4950원 가격대에 매입합니다. 이후 삼광글라스는 계열사인 군장에너지에 유연탄 256억 원을 공급한다는 공시가 나왔습니다.

자유한국당은 공시가 나오기 전에 미공개 정보로 주식을 매매해서 이익을 취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실제 계약이 이루어진 당일 종가는 오히려 시가보다 내린 4만 3,700원이었습니다.

오 변호사가 공정거래위원회의 과징금 부과를 미리 알고 삼광글라스 주식을 매도했다는 의혹도 있습니다. 그런데 공정위가 과징금을 부과했지만 오히려 삼광글라스의 주식은 잠깐 하락하고 곧바로 올랐습니다. 오히려 매도해서 손해를 본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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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월 삼광글라스 주식이 거래 정지가 될 것을 알고 주식을 매도했다는 의혹도 있습니다. 자신이 보유한 주식이 거래 정지된다는 엄청난 정보를 알고 있었다면 무조건 보유 주식을 다 파는 것이 정상입니다. 하지만 오 변호사는 절반도 안 되는 일부만 매도했습니다. 아예 정보를 몰랐다고 봐야 합니다.

법관의 주식 보유는 불법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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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관 윤리 강령:  

제6조 (경제적 행위의 제한) 법관은 재판의 공정성에 관한 의심을 초래하거나 직무수행에 지장을 줄 염려가 있는 경우에는, 금전대차등 경제적 거래행위를 하지 아니하며 증여 기타 경제적 이익을 받지 아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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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선 후보자와 남편이 주식을 보유한 것은 불법일까요? 현행 대한민국 법으로는 불법이 아닙니다.

‘공직자윤리법’에 따라 고법 부장판사 이상 판사들은 보유주식의 직무관련성 심사를 받지만, 현직 판사의 주식 보유 자체를 금지하는 규정은 없습니다.

다만,‘법관윤리강령’ 6조에 ‘법관은 재판의 공정성에 관한 의심을 초래하거나 직무수행에 지장을 줄 염려가 있는 경우 경제적 거래행위를 하지 아니한다’는 규정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조항도 ‘금전대차’나 ‘증여’ 등을 금지할 뿐입니다.

진성준 전 검사장처럼 대가성 뇌물로 주식을 받거나 접대를 받고 재판을 거래하는 등의 불법 외에 판사의 주식을 무조건 제한하는 것은 오히려 자유민주주의사회에서 위헌 소지가 있습니다.

자유한국당이 이미선 후보자의 주식 거래 의혹이 불법임을 증명하려면 판사와 직계 가족의 주식거래를 아예 금지시키거나 주식 보유를 제한하는 법부터 먼저 발의해야 합니다.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 의혹을 주장하는 자유한국당이나, 검증도 하지 않고 무조건 받아쓰기만 하는 언론이 뭉친다면 합법적인 투자도 순식간에 불법이 될 수 있는 사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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