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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1년 한진중공업이 경영상 이유를 들며 노동자 170명을 해고하겠다고 밝히자, 정리 해고를 반대하는 시민들의 집회가 이른바 ‘희망버스’ 사건으로 이어졌다. 이에 대해 경찰은 피해 경찰관 14명을 내세워 송경동 시인 등 6명을 상대로 “시위 진압 과정에서 경찰이 다치고 장비도 파손됐다”며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하였는데, 대법원은 최근 이 사건을 종결하였다.

  • 대법원 2019. 1. 17. 선고 2018다269622 판결(손해배상)
  • 재판장 이기택 대법관, 주심 김선수 대법관

최종적으로, 희망버스 집회를 기획·주도한 송경동 시인은 원심인 항소심 판결에 따라, 피해를 입었다는 경찰관 4명에게 총 488만 원 및 지연손해금을 지급해야 한다.

2011년 6월 12일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로 진입한 희망버스 (출처: 전국금속노조 부양지부)
2011년 6월 12일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로 진입한 희망버스 (출처: 전국금속노조 부양지부)

왜 이런 소송을 했을까?

2014년 1심 재판부(판사 심창섭)가 원고의 주장을 대부분 받아들여 국가와 경찰관들에게 총 1천5백28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1심)한 것과 비교하면, 항소심(재판장 김행순)에서는 우선 국가의 장비 손망실 부분에 대한 청구가 모두 기각되었고, 부상 경찰관들의 청구도 대부분 기각되었으며, 단지 그 중 4명에 대하여만 약간의 치료비와 위자료(2심)가 일부 인정된 것이니, 피고 측이 더 많이 승소한 것이므로 다행이 아니냐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사건 판결들은 법리적으로나 정책적으로나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당초 경찰은 이 사건에서 피해자라면서 경찰관 14명을 원고로 내세웠지만, 결국 4명만 피해가 인정되었는데, 예컨대 그 중 A는 치료비 1만 9천 원과 위자료 60만 원, B는 치료비 3만 1천 원과 위자료 30만 원, C는 치료비 3만 4천880원과 위자료 30만 원을 인정받았을 뿐이다. 가장 많은 판결을 받은 D는 치료비 없이 위자료만 3백60만 원 인정받았다. 당시 집회가 상당히 큰 규모였음에 비추어볼 때(경찰추산 참가자 7천명), 법적으로 인정된 피해가 이와 같이 초라하다면, 이러한 소송을 왜 했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이 사건은 전형적인 ‘전략적 봉쇄소송’이다. 즉, 승소하여 손해배상을 받아내는 것이 주된 목적이 아니라, 시위를 주도하고 참여한 국민들의 입을 막기 위한 소송이다. 권력이나 자본이 시민, 노동자, 소비자들의 사회참여와 비판활동을 위축시키기 위해 전략적으로 민사소송을 제기하는 것을 미국에서는 ‘전략적 봉쇄소송’(SLAPP, Strategic Lawsuit Against Public Participation)이라고 하여, 소권의 남용이라고 평가한다.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로 이미 남용되고 있다.[footnote]김선휴, [판결비평] 집회의 자유와 민주주의 위축시키는 전략적 봉쇄소송은 이제 그만[/footnote]

온라인 플랫폼에 대한 규제는 필연적으로 사용자에 대한 (사기업에 의한 형식적으로는 자율적인 형태를 띤) 검열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시위에 참여하는 시민들의 입을 막기 위한 ‘전략적 봉쇄소송’

경찰관 치료비는 누가 내야 할까? 

그런데 1심부터 대법원에 이르기까지 이 사건 제소가 소권의 남용이라는 피고측의 항변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 점이 이 사건 판결들에 대한 가장 큰 비판점이다.

시위(示威)란 말 그대로 ‘위세를 보여 주는 것’이다. 시위를 막는 과정에는 흔히 몸싸움이 있을 수밖에 없는데, 그 과정에 장비가 망가지기도 하며, 집회참여자나 경찰관이 다치기도 한다. 이와 같은 피해가 발생하는 것이 시위이지만, 우리 헌법은 집회와 시위를 할 권리를 중요한 기본권의 하나로 인정한다.

그렇다면, 시위를 막거나 진압하는 공부수행 과정에 망실된 장비나 부상을 당한 경찰관에 대한 치료비는 누가 부담하여야 할까?

당연히 국가가 예산으로 지원하여야 한다. 그 시위가 학생들의 시위이든, 노동자의 시위이든, 또는 태극기 부대의 시위이든, 모두 마찬가지이다. 정상적인 국가라면, 공무수행중 부상당한 경찰관들이 집회주최자에게 청구하여 치료비를 받아내야 할 필요가 없다. 미국에서는 이 법리를 ‘자치 비용 회수 규칙’(municipal cost recovery rule) 또는 ‘소방관의 규칙’(fireman’s rule)이라고 한다.

강도를 잡다가 부상당한 경찰관이 강도를 상대로, 소방작업 중 부상당한 소방관이 방화범을 상대로, 개인적으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필요가 없으며, 국가로부터 보상받는 것 이외에 개인적으로 손해배상을 청구해서도 안 된다는 원칙이다.[footnote]김제완, “집회 및 시위로 인한 경찰의 손실에 대한 불법행위법 적용의 문제점: 영미법상 municipal cost recovery rule 및 fireman’s rule의 시사점”, 민주법학 제62호. 2016. 11.[/footnote]
경찰

대법원 판결 기다리는 ‘전략적 봉쇄소송’ 

이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이다. 악의적인 가해자를 잡아내어 형사처벌하는 것은 별론으로 하더라도, 국가가 민사소송을 이용해 집회 주최자 및 참가자들을 괴롭혀 그 입을 막아서는 안된다.[footnote]서선영. “집회 및 시위에 대한 국가 손해배상 청구 사례 및 문제점”. 연세 공공거버넌스와 법 제8권 제1호. 2017. 2.[/footnote]

특히 마땅히 예산으로 보호받아야 할 피해경찰관을 부추겨 국민들을 상대로 소송하도록 하여, 결과적으로 국민과 공무원 사이를 이간질하여서도 안된다. 국가가 피해 경찰관에게 보상하는 것이 원칙이고, 꼭 필요한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국가가 악의적인 가해자에게 구상권을 행사하는 것이다.

대법원에는 아직 계속 중인 전략적 봉쇄소송이 여러 건 있다. 대표적으로 쌍용차 손해배상 사건을 들 수 있다.[footnote]김제완, [판결비평칼럼] 쌍용차 정리해고 노동자들의 아픔, 이제는 ‘손잡고’ 가자[/footnote]

"사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투쟁하며 사는 지가 중요한 것이다" (평택에 있는 쌍용차 노조사무실, 사진: 민노씨)
“사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투쟁하며 사는 지가 중요한 것이다” (평택에 있는 쌍용차 노조사무실, 사진: 민노씨)

전략적 봉쇄소송을 주로 제기하여 온 기관은 경찰인데, 경찰개혁위에서 이와 같은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전면 재검토하라는 권고를 하였다. 그러나 이미 재판이 많이 진행된 마당에 경찰 스스로 소를 취하하여 문제를 해결하기를 기대하기는 결코 쉽지 않아 보인다.

한편, 최근 법무부는 전략적 봉쇄소송을 제한하는 법률안 발의를 추진하면서, 이를 위하여 한국민사소송법학회와 연구용역 계약을 체결하였다고 한다. 머지않아 우리나라도 선진국처럼 국가가 국민의 입을 막기 위해 전략적 봉쇄소송을 제기하지 않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문제는 현재 제기되어 있는 사건들이다. 제도개선 전이라도 대법원은 전략적 봉쇄소송이 소권의 남용이라는 것은 분명히 하여, 민사소송이 국민의 헌법상 기본권을 제한하는 데 악용되지 않도록 준엄한 선언을 해 줄 것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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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의 기획 연재 ‘광장에 나온 판결’ 중 하나로, 필자는 김제완(사법감시센터 실행위원,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입니다. [/b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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