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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2월은 거의 통째로 러시아에 있다시피 하였다. 2월 9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출발하여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따라 10여 개 도시를 방문했고, 마침내 3월 4일 모스크바에서 기나긴 여정이 막을 내렸다.

러시아 여행은 내게 여러 의미에서 뜻깊었다. 개인적으로 한국에서 ’20대의 해외여행’이 과도하게 의미 부여되는 것을 아주 싫어하고, 그냥 솔직하게 ‘응 돈 좀 낭비하러 놀러 갔어~’라고 털어놓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지라, 넓은 세상을 배웠느니 진정한 나 자신을 발견했느니 그런 소리를 하려는 건 아니다. 다만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불안해하던 고등학생 때 피안으로 다가온 러시아라는 공간을 8여 년 만에 직접 마주하고 그 매력을 다시 느꼈다는 건 하여간 여러모로 인상 깊은 경험으로 남을 것 같다.

제목이 러시아 노래의 장르인데 왜 이런 얘기를 하느냐고 반문할 수 있겠다. 슬슬 본론으로 들어간다. 일단, 이 여행 끝날 즈음에 러시아 노래를 사람들에게 더 많이 소개하고 그걸로 러시아어 공부까지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세상에 대한 관심이 넓어지고 시야가 트이면서 2015년부터 러시아를 향한 나의 맹목적 애정(?)은 많이 꺾이긴 했지만, 어쨌든 러시아 노래는 내가 제일 많이 찾아 듣는 음악이었고, 러시아에서 그 노래들을 직접 듣거나 그 흔적을 찾아내는 건 쏠쏠한 재미가 있는 일이었다. 러시아 형님들과 보드카 마시면서 다 같이 음정 박자 다 틀리는 노래 불러제끼는 로망은 아쉽게도 실현하지 못했지만, 그건 언젠가 또 나름의 기회가 있을 것으로 믿는다.

하여튼, 8년 전 그때 러시아라는 나라는 나에게 음악을 통해 다가왔다는 걸 다시금 실감했다. 물론 음악이라고 다 같은 것은 아니었다. 나는 교양이 좀 없는 편이라 차이콥스키나 보로딘이나 쇼스타코비치 같은 하이컬쳐는 전혀 모른다. 나는 사람들이 일상에서 불렀던 그런 노래들을 통해 러시아를 접했다.

시계 방향 순으로 블라디미르 비소츠키, 자라, 옥시미론 그리고 빅토르 최(키노)
시계 방향 순으로 블라디미르 비소츠키, 자라, 옥시미론 그리고 빅토르 최(키노)

자꾸 사설이 길어지는데, 하여튼 그 과정에서 내가 뻔질나게 러시아 노래를 틀어 재끼고 불러대니까 동행인 친구도 혀를 내둘렀다. “OO이는 네가 차가운 사람인 것처럼 생각하던데 이런 감성적 면모가 있었던 건 나도 몰랐다.”라고도 했다. 내가 분위기를 타면 또 아주 센치해지는 사람이기도 하다(…)

어쨌든 실제로 러시아에서 그 친구에게 러시아 노래를 좀 입문시켜주려고 ‘아싸’ 특유의 무리한 떠먹이기를 좀 시전한 건 사실이다. 그때 이 생소한 외국 노래를 남들에게 권하는 게 만만치 않은 일이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노래가 가사의 의미로 환원할 수 없는 그만의 감성으로 사람들을 공명시키며, 그것이 음악의 본질이다는 데는 나도 깊게 동의하는 바다. 하지만 역시 러시아 글자도 떠듬떠듬 읽는 사람에게 그 ‘쏘울’만 가지고 “크아 에따 라씨야!!”를 외치게 하는 건 좀 무리가 맞지 싶다. 그래서 러시아 노래에 좀 더 쉽게 입문할 수 있도록 유명한 곡과 가수들을 차근차근 꾸준히 소개하고 싶다.

그런 이유로 이 글의 주제가 장르가 된 것이다. 당연히 내 지식이 빈약하기에 모든 장르를 소개할 수는 없고, 아는 장르만 먼저 소개해보기로 한다. 예컨대 정교회 성가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러시아 음악 장르지만, 내가 아는 바가 없으니 제외했다. 사설이 장황하여 실제 장르 설명이 이것보다 길 것 같긴 하다만, 나중에는 개별 곡들 혹은 유명 가수들을 소개해보는 글도 따로 써보도록 하겠다.

1. 민요

길게 설명할 게 없다. 딱히 작곡가, 작사가도 없고 언젠지 알 수 없는 무렵에 민초들이 고된 삶의 짐을 덜기 위해 만들어 부른 그런 노래들이다. 음악적인 면을 내가 잘 모르기 때문에 음악적 특성을 쓸 순 없겠고, 러시아라는 나라가 워낙 방대한 영토에 걸쳐 있다보니 일반적인 서유럽 민요와는 다른 매력을 갖춘 것 같다. 뭐 내 느낌이 그렇다는 얘기다.

19세기 민족주의의 발흥과 노동계급의 문화를 강조한 소련의 영향인지 민요가 상당히 넓은 입지를 갖고 있다. 안 그런 나라는 물론 없지만 가곡을 비롯한 각종 음악에 ‘민속풍’을 많이 넣는 것 같달까. 하여간 여러모로 러시아 노래의 원형적 특징이 많이 보인다. 역시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지역마다 특이한 색깔이 있는데, 러시아는 지리적 범위가 워낙 크다보니 그런 에스닉한 면으로 분류하는 것도 쓸모 있다. 우크라이나와 남러시아의 코사크 민요, 집시 민요, 캅카스 민요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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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일 유명한 러시아 민요 중 하나인 “칼린카” 

https://youtu.be/lOfvkmJ7AR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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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사크 민요, “저기 두 형제가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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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루지야 민요 “술리코”

원래 그루지야어인데 러시아어로 바뀌어서 불리었다. 스탈린이 좋아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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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로망스

가요처럼 대중적이진 않고, 적당히 무게 잡는 것이 가곡 정도로 생각하면 될 듯 싶다. 러시아어는 특유의 강세 시스템을 활용한 정형시가 아주 인상적인 언어다. 물론 이 분야 최강은 중국의 한시라지만, 러시아어도 각각의 행과 구절에 딱 맞는 강세를 가진 시어를 집어넣어야 하고, 이 공식을 지키면서 시상을 표현해야 시 대접을 받을 수 있다(자세한 것은 이 글 참조)

그리고 음악성을 갖춘 시에 진짜 음을 입혀 노래로 부르고 싶어하는 것이 인지상정 아니겠는가? 무명의 시민에 의해서든 유명한 작곡가에 의해서든 이런 시에 곡조를 붙여 부르는 것은 러시아에서 ‘로망스’라고 불리우며 지식인, 민중 할 것 없이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특히 19세기에 흥한 장르인데, 푸시킨을 필두로 한 문학인들이 배출되어 러시아 문어가 틀을 잡고 문학의 황금기가 시작된 시대였기 때문 아닐까 싶다.

또한, 집시 음악과 민속 음악, 오페라 음악 등의 영향을 받으며 꾸준히 발전해나갔다. 다만 로망스는 혁명 이후 당에 의해 사적인 감정만 토로하는 부르주아 도련님들의 한가한 취향 취급 받았기 때문에 20세기에는 발전에 제약이 있었다. 음울한 피아노 반주에 무게 잡는 감상적인 보컬이 애절한 사랑 노래를 외는 게 거의 공식인지라 사실 개인적으로 볼셰비키의 평에 어느 정도 공감하는 바는 있다.

• 안나 게르만의 “빛나라, 빛나라, 나의 별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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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시풍 로망스 “머나먼 길을”

미국에 건너가 매리 홉킨이 부른 “Those were the days”가 훨씬 더 유명한데, 러시아곡이 원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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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에스트라다

혁명 이후 스탈린의 5개년 계획이 가동되고 소련은 본격적으로 도시화된 사회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라디오와 텔레비전 등의 새로운 미디어들이 보급되면서 소련도 본격적인 대중문화의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민요와 로망스 등으로 다소 계급에 따른 이중적인 면모를 갖췄던 이전 시대와 달리 스탈린은 전 인민이 공유하는 단일한 대중문화를 창출하고자 했고, 에스트라다는 그런 의도 하에 보급된 대중 음악의 장르다.

원래 ‘소규모 무대’를 뜻하던 말이었던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 인터넷에 자료가 많지 않아 정확하지는 않다. 혁명 전야에 소규모 무대에서 인기 가수들의 공연 무대를 에스트라다라고 했는데 소련 이후 당이 공식적으로 허가한 대중음악 장르 전반을 일컫는 말로 의미가 변했다.

TV, 라디오, 이후에는 영화와 드라마의 OST 등으로 소련 인민들에게 가장 직접 다가간 인기곡들은 대부분 에스트라다였다. 귀에 딱딱 꽂히는 멜로디와 ‘스타’ 가수들의 목소리 등이 아우러지면서, 러시아 특유의 감성을 전달하며 현대 러시아인들의 공통 기억을 형성한 주역이라고나 할까.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하는 장르이기도 하고, 한국으로 치면 약간 싫지만은 않은 구닥다리 냄새와 ‘뽕삘’이 나는 게 딱 7080 대중가요 감성이라고 보면 될 듯싶기도 하다.

• 블라디미르 트로신이 부른 “모스크바 근교의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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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만송이 장미”의 원곡 

사실 리투아니아인가 발트 지방에서 먼저 나온 노래라서 온전히 러시아 노래라고 할 수는 없지만, 에스트라다의 여왕으로 통했던 알라 푸가쵸바의 목소리와 함께 소련 전역, 나아가 한국까지 도달하게 된 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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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Fc5n6qs3tp0

 

4. 바르드

스탈린이 죽고 소련은 점차 혁명의 열정과 숙청의 공포에서 멀어지며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게 된다. 흐루쇼프의 탈스탈린화와 해빙, 브레즈네프의 침체기,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까지 이어지는 후기 소련은 점차 복잡해지는 인민의 요구와 당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기 시작한 지식인들에 대응해야만 했다. 특히 지식인들이 문제였는데, 여느 서구의 복지국가와 외관상 큰 차이가 없어져버린 소련에서 과거와 같이 혁명적 열정으로 지식인들을 태워버리는 일을 감히 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당 자체도 거대한 기득권 집단이 되어버려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 싶어하지도 않았다. 대신 당은 그들이 체제에 과하게 도전하지만 않으면 어느 정도의 자유를 용인해주는 당근과 채찍 전술을 채택했다. 소련에서 바르드라는 음악 장르는 이런 사회적 맥락에서 태동하게 된다.

바르드는 안정을 제공해주는 체제에 어느 정도 만족하고 있고, 과거의 혼란을 다시는 겪고 싶어하지도 않지만, 자유롭지도 못하고 불합리한 일이 계속 반복되는 소련에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했던 사람들의 음악이었다. 바르드 가수들은 기타 하나만 들고 자기가 직접 작사 작곡한 음악을 친구들 앞에서 즉석으로 공연했다. 그 노래에 감동한 지인들은 녹음기를 가져와 레코드 판으로 노래를 복제했고 하나 둘씩 소련 전역으로 복제되면서 몇몇 가수들은 전국적 명성을 획득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소련 음악인 협회에 소속되지도 않았고, 저작권도 딱히 없고, 공식적 검열을 통과한 작품도 아니었기에, 바르드 가수들은 대부분 평범한 삶을 그저 살아갔다. 오히려 그랬기 때문에 일상의 감정, 전쟁의 기억, 사회에 대한 회의와 약간의 희망을 노래한 그들의 작품이 더 인민에게 진실되게 다가올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또 소련에서 터부시 되던 자신의 감정을 토해내는 음악이라는 점에서 과거 로망스를 어느 정도 이은 것 같기도 하고.

• 소련 바르드의 양대 산맥, 블라디미르 비소츠키의 “다루기 힘든 말들”

미하일 바리시니코프가 주연한 영화 [백야] (White Nights)를 통해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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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머지 한 명, 불라트 오쿠자바의 대표곡 “아르바트 거리에 관한 노래”

비소츠키와 오쿠자바. 배경, 나이, 민족성, 목소리와 음악 스타일 등이 너무나 다른 두 사람이지만 또 너무나 잘 통했던 사람들이다. 언젠가 이들에 대한 이야기도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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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락

락은 당연하게도 소련에서 서방의 퇴폐적 문화 취급 받으며 강력한 규제를 받았지만, 60년대 이래로 세계를 뒤흔든 로큰롤의 열풍이 소련이라고 비껴갈 수는 없었다. 서방과 무역 및 밀수가 이루어지는 서쪽의 항구를 통해, 그리고 해적 라디오 청취를 통해서 60년대부터 락은 차츰차츰 소련의 젊은이들 사이에 퍼져나갔다.

당국은 이에 대응하여 VIA(보컬-인스트루먼트 앙상블)라는 장르의 밴드를 인가하고 공식적 활동을 허락헀는데, 내 생각에 이 장르는 굳이 따지자면 락보다는 기존의 에스트라다와 훨씬 흡사하다. 좀 특별한 에스트라다 밴드 음악이라고 생각하면 나름의 맛이 있겠지만, 60년대에 태어난 소련 젊은이들은 거기서 ‘기성세대’와 ‘공식적 삶’을 연상했을 것이고, 훨씬 더 세련되어 보이는 서방의 정통 락을 쫓아갔다.

80년대가 되자 언제나 서쪽을 향한 창구였던 레닌그라드를 중심으로 독자적인 언더그라운드 락 씬이 생겨나 번성하기 시작했다. 숨막히는 체제에 반항하고 일탈을 꿈꾸는 젊은이들이 락 문화에 빠져들었다. 당국은 철퇴로 대응했지만, 빅토르 최의 ‘키노’ 같은 국민적 밴드의 인기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들은 물론 서방의 락 씬에서 반은 고립된 채로 발전했기 때문에 사운드의 강렬함이 약할 수는 있겠으나, 소련 특유의 정서를 포착한 곡과 무엇보다 상기한 바르드 전통을 이었다고 할 수 있는 가사의 묵직한 울림은 대체 불가능한 종류의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특히 빅토르 최의 곡들은 어두운 소련 체제의 현실, 경제난, 아프가니스탄 전쟁, 체제의 억압 등을 포착한 명곡들로 꼽혀 아직까지도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다.

• 키노의 “혈액형” (1988)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고통을 노래한, 80년대 소련을 대표하는 명곡인 키노의 “혈액형”이다. 윤도현 밴드가 번안한 바가 있고, 아래 영상은 빅토르 최가 주연한 영화 ‘이글라(바늘)’의 삽입 장면이기도 하다. 영화 자체는 잘 만든 건 아니라지만, 80년대 길 잃은 소련 젊은이들의 모습을 이미지로 확실하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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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IA 밴드의 대표 주자 ‘노래하는 기타들’의 “파란 서리”

들어보면 알겠지만, 이럽션의 “One Way Ticket”의 러시아 번안곡이다. VIA가 어떤 느낌인지를 대충 보여주려고 선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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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시아 랩의 대표주자 옥시미론의 “도시는 내 발 아래” (2015) 

푸틴 시대가 장기화되고 경제난이 가중되며 소련 말기에 보였던 그 모습들이 종종 데자뷰처럼 보일 때가 있다. 다만 이제 락이 저항을 상징하는 시대는 한참 전에 끝났기에. 요즘 젊은 세대는 다소 메인스트림화되기는 하였어도 랩을 통해서 과거 바르드 내지는 락의 전통을 어느 정도 이어가는 것 아닐까 싶기도 한다. 너무 무리한 해석일 수도 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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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군악

세계적으로 유명한 러시아 음악의 장르라면 역시 군악일 것이다. 다른 어떤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그 웅장한 목소리는 ‘붉은 군대 합창단’이라는 브랜드와 함께 세계로 뻗어나갔다. 과거 제국 시절의 군가, 민요의 선율, 코사크의 노래, 동방의 악기 등을 절묘하게 결합한 붉은 군대 합창단의 군악들은 피와 눈물로 얼룩진 러시아 현대사를 그 자체로 노래한다. 때로는 장엄하고 때로는 슬프고 때로는 신나는 수많은 종류의 군가들은 혁명과 내전기, 전간기와 대조국전쟁(독소전), 전후 냉전기로 크게 구분할 수 있겠다.

군가와 군악대는 1928년 붉은 군대 합창단(현 알렉산드로프 앙상블)이 창설되면서 소련 공식 문화 곳곳으로 뻗어나갔고, 이후 소련의 전국적 라디오, TV 통신망, 수천만의 참전용사와 병사들을 통해 국민적 문화로까지 정착해나갔다.

그 밖에도 ‘전쟁의 기억’을 노래한 노래들이 수없이 많은데, 군악과 큰 관련은 없어도 앞으로 러시아 노래를 소개할 때 이 같은 노래들도 때로는 군악에 넣을 수도 있다. 어차피 군가는 병사들이 노래할 때 가장 큰 의미가 있는 것이니 말이다.

• 아르메니아 쿠르드계 가수인 ‘자라’가 부른 “슬라브 여인의 작별”

가사의 버전이 굉장히 많은데 소련 시절 애국주의를 강조하기 위한 가사, 적백내전 당시 차르와 하나님을 위해 일어서라는 가사도 있지만 이 버전은 전쟁터에 끌려가야 하는 병사와 병사의 연인을 다룬 애절한 가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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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차가 들판에서 포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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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곡을 따라 언덕을 따라”

적백내전 당시 백군이 점령하던 극동을 해방시킨 붉은 군대의 위업을 칭송하는 노래인데, 가사가 아주 서사적이다. 실제 블라디보스토크와 하바롭스크에서는 혁명 조각상에 이 노래의 가사를 새기기도 했다. 물론 현대 러시아인들하고는 상관 없는 잊혀진 유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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