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위치:   » 사회 » 워마드, 미러링 그리고 지식인의 직무유기

워마드, 미러링 그리고 지식인의 직무유기

꾸준히 워마드를 비판했던 입장이지만, 정작 워마드의 성체 훼손 사건을 보면서는 사실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뭐야 평소의 워마드잖아’하는 생각도 있었고, 이제야 사람들이 성과 이념을 떠나 워마드에 공분하는구나 하는 생각도 들어서.

가톨릭, 개신교를 포함해 기독교계의 문제가 많음을 모르는 바 아니다. 요즘 낙태죄를 둘러싸고 논쟁도 활발하다 보니 가톨릭의 고리타분한 교리가 여성학계에 곱게 보일 리도 만무하다. 그걸 풍자로 비판하겠다면, 불륜 5걸, 가톨릭의 유소년 성폭력 등 온갖 진짜 ‘깔거리’가 그득하다. 그런데 성체는 훼손해서 뭘 비판하겠다는 건지 알 수가 없다. 그 행위에 상처받을 사람은 진짜 신실한 사제들, 그냥 옆집의 순박한 신자들 아닌가. 물론 개중에 아주 많은 수는 여성일 것이고.

뭐, 사실 별거 아닐 수도 있다. 디씨엔 얼마나 많은 ‘핵폐기물’이 올라오는가? 예술가연 하는 작자들의 어떤 작품들은 또 얼마나 게으른 성희롱의 향연이었던가? 워마드의 패륜성이 그보다 더하다고 할 수 있을까? 그렇다곤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워마드의 소위 ‘패드립’은 진보, 운동, 특히 여성주의 운동으로 여겨졌다는 거다. 그냥 필부필부가 생각하는 건 아무래도 상관이 없는데, 미디어, 지식인, 공론장을 주도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포장해왔다는 거다. 어째서? 이건 남성들이 쏟아냈던 패륜에 대해 여성들의 분노가 폭발한 것이므로. 소위 ‘미러링’이란 이유로.

남녀 페미니즘 폭력 폭행 미러링

그러나 그 사람들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커뮤니티 ‘메갈리아’가 초창기부터 깨지고 급격히 쇠락한 까닭이 뭐였는지 진짜 모르나. 운영진이 “똥꼬충” 못 쓰게 한다고 유저들이 반발하면서 그리됐었다. 자칭 ‘래디컬’이란 이들이 작금에 뭐 하고 다녔는지 진짜 모르나. 여성 트랜스젠더는 생물학적 여성이 아니란 이유로 배제하고 조롱했다.

이 “생물학적 여성”이란 표현, 최근 혜화 시위에서도 나왔다. 남자 어린이들은 “한남 유충”이고, 기혼 여성들은 한남에게 복속하여 한남 유충이나 낳는 존재라고 조롱당했다. 이걸 정말 모르나? 모른다면 한심한 것이고, 안다면… 묻지 않을 수 없다.

이게 대체 무엇의 ‘미러링’이라고 생각하는 것인가.

온갖 혐오 발언과 폐기물을 쏟아내는 남초 커뮤니티에서 ‘워마드는 일베보다 해롭다’고 뒷짐 지고, 소위 ‘선비’ 노릇하는 거 진짜 역겹다. 그런데 그 전에, 알 만큼 아는 사람들은 대체 뭘 했느냔 말이다. “여성들의 분노가 터진 것이고…”, “미러링이란 운동의 새로운 양식이고…” 한가한 소리나 하고 앉았더란 말이다. 그 위대한 새 운동의 조류가 똥꼬충과 명예X지와 한남 유충을 까대는 동안 여전히 똑같은 소리만 하고 있더라는 것이다.

말 수다 입 남자 지식인

풍자는 원래 어렵다. 정말 각 잡고 제대로 해도 오해받기 십상이다. 그런데 그 알 만한 사람들이 ‘미러링’의 범위를 제한 없이 무한확장해줌으로써, 그냥 온갖 패드립과 소수자 혐오와 비하 발언에 죄다 면죄부를 발급해준 거다. 미러링의 이름으로 네 죄를 사하노라. 이래놓고 인제와서 백래시(backlash; 반발 심리나 그 행동)가 심각하네 하는 건 무엇인가? 이건 그냥 진보연하는 사람들의 지적 허영 전시 아닌가.

새롭고 놀라운 여성운동의 새 조류 ‘미러링’을 찬미하는 동안, 성소수자는 사방에서 까여 너덜너덜해졌고, 여성 트랜스젠더는 여성임을 부정당했으며, 어떤 이들은 종교적 신념이 깡그리 훼손당하고 모욕당했다. 그리고 지식인들은 말한다. “아, 그건 여성들의 참아왔던 분노가 폭발한 것입니다.” 워마드를 진짜 문젯거리로 만든 건 워마드 자체가 아니라 바로 그 사람들이 아닐까.

“아, 그건 그냥 미친 짓입니다.”

이 한마디를 못해서.

좋은 기사 공유하고 알리기
슬로우뉴스에 커피 한잔의 여유를 후원해주세요. 필자 원고료와 최소한의 경비로 이용됩니다.

필자 소개

슬로우뉴스 편집위원, ㅍㅍㅅㅅ 노조위원장

블로거. 한때는 문학소년, 관심사는 의료.

작성 기사 수 : 60개

©슬로우뉴스 | 개인정보취급방침 | 청소년보호정책 | 슬로우뉴스 안내 | 제보/기고하기 | 제휴/광고문의
등록번호: 경기아51089 | 등록일자: 2014년 2월 10일 | 발행일: 2012년 3월 26일
주소: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동판교로 153 802-902 | 발행인: 김상인 | 편집인: 강성모 | 청소년보호책임자: 강성모

Scroll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