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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은 지난 9월 ‘아이폰8’과 ‘아이폰X’을 동시에 발표했다. 시리즈의 8과 10을 동시에 내놓은 셈이다. 이런 제품 구분을 본 적이 없다. 두 가지 라인업이 한 자리에서 공개되고, 그나마도 중간의 9는 빠졌다. 특히 제품을 다작하지 않는 애플의 특성을 생각해도 의아하다.

애플은 왜 이렇게 복잡하게 제품을 나누었을까? 아마 애플 외부의 그 누구도 확신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키노트의 내용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것은 아이폰의 지난 10년과 앞으로의 1년을 아우르는 아이폰8, 그리고 앞으로 1년부터 그 뒤 10년을 내다보는 아이폰X으로 나누어서 볼 수 있을 것 같다.

애플 홈페이지 첫화면에 (애플 스마트폰의) "미래와의 조우"라는 이름으로 올라온 '아이폰X'
애플 홈페이지 첫 화면 상단에 (애플 스마트폰의) “미래와의 조우”라는 이름으로 올라온 ‘아이폰X’

‘X’, 다음 세대를 위한 선 긋기 

아이폰X이 발표되던 날[footnote]미국 현지 시각 2017년 9월 12일, 한국 시각 기준 9월 13일 오전 2시.[/footnote] 팀 쿡 애플 CEO의 키노트는 다른 때와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그는 스티브 잡스 극장을 외부에 처음 공개했고, 동시에 스티브 잡스에 대한 이야기를 한참이나 털어놓았다. 그리고 스티브 잡스에 대한 기억은 곧 아이폰과 연결됐다.

팀 쿡 CEO가 ‘원 모어 띵(One more thing)’과 함께 아이폰X을 발표하면서 꺼낸 첫 번째 이야기는 ‘스마트폰의 미래’였다. 새로운 스마트폰이 아니라 ‘다음 10년간 기술이 갈 방향성을 정하는 제품’이라는 말이 담고 있는 무게는 꽤 묵직하다.

지난 10년 동안 아이폰과 그 운영체제인 ‘iOS’는 많은 변화를 겪었다. 하지만 10가지가 넘는 그동안의 아이폰을 한 줄로 늘어놓으면 비슷하게 흐르는 무엇인가가 있다. 그건 단순히 둥근 모서리 디자인과 비슷해 보이는 운영체제, 그리고 홈 버튼 등의 문제는 아니다. 어찌 보면 팀 쿡 CEO가 언급한 앞으로의 10년은 스마트폰 시장에 닥친 기술 정체를 반영하는 것 같다.

‘아이폰X’이 발표되던 날 팀 쿡 애플 CEO의 키노트는 다른 때와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팀 쿡 CEO가 꺼낸 첫번째 이야기는 '스마트폰의 미래‘였다.
‘아이폰X’이 발표되던 날 팀 쿡 애플 CEO의 키노트는 다른 때와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팀 쿡 CEO가 꺼낸 첫 번째 이야기는 ‘스마트폰의 미래‘였다.

스마트폰의 정체기, 어떻게 풀어낼까 

스마트폰은 다소 정체기에 접어들었다. 인터넷은 스마트폰을 이끌어냈고, 스마트폰은 그 인터넷을 급격하게 바꾸어 놓았다. 하지만 시장과 기술은 성숙기에 접어들었다. 이전처럼 급격한 발전은 당분간 기대하기 어렵다. 먼저 변화의 상징처럼 꼽히던 아이폰의 10년을 돌아보자.

본격적으로 시작된 모바일 인터넷, 고해상도 디스플레이의 방향성을 잡은 ’레티나 디스플레이’, 음성인식 서비스 ‘시리’, 지문인식 시스템인 ‘터치ID’, 그리고 아예 소프트웨어 시장을 뒤흔든 유통 플랫폼 ‘앱스토어’는 우리에게 완전히 새로운 세상을 열었다. 그 변화는 애플 혼자만이 아니라 스마트폰, PC, 음악, 자동차를 비롯해 다른 플랫폼으로 빠르게 번져나갔다. 지난 10년간 우리는 기술이 만들어낸 새로운 경험을 기꺼이 받아들였고, 그 변화에 열광했다.

아이폰

하지만 그 ‘약발’이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은 모두가 느끼고 있다. 기술 발전이 멈춘 것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지금도 스마트폰을 이루는 모바일 프로세서, 디스플레이, 메모리, 카메라 등 반도체 기술은 매년 급격하게 성장하고 있다. 신제품에 손이 가는 요소들은 여전히 남아 있다. 하지만 그 기술들이 만들어내는 변화가 이제는 크게 자극적이지 않다. 모바일 인터넷이 가져온 변화는 지난 10년 사이의 가장 큰 자극 중 하나였다. 그만한 자극을 어떻게 또 만들어낼까.

이맘때면 반복되는 ‘혁신 타령’도 결국 초기에 스마트폰을 통해 느꼈던 경험의 변화에 대한 갈증일 것이다. 애플은 더 성능 좋은 프로세서, 더 화질 좋은 카메라, 더 오래가는 배터리가 그 답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아이폰8, 8플러스와 아이폰X도 200~300달러의 가격 차이가 나지만 그 차이는 반도체에 두지 않았다.

UX의 변화

아이폰X에서 가장 주목받은 것은 홈 버튼이 사라지면서 달라지는 입력방식이다. 가장 큰 파격이자 많은 이들의 걱정과 기대를 만든 요인이다. 애플은 아이폰X에서 홈 버튼을 아래에서 위로 쓸어 올리는 제스처로 대신했다. 쓱 밀어 올리면 홈 버튼을 누른 것처럼 홈 화면으로 빠져나오고, 쓸어 올리다가 중간에서 멈추면 멀티태스킹 앱 전환 화면으로 바뀐다. 화면 캡처는 사이드 버튼과 음량 윗 버튼을 누르면 된다.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아도 말 못 하는 아이들이 아이폰을 능숙하게 다루는 것으로 아이폰과 iOS의 사용자 경험(UX)은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데, 밀어 올리는 홈 버튼 역할은 처음부터 새로 배워야 한다. 무엇보다 홈 버튼만큼 편하고 빠른 것도 흔치 않다. 하지만 이 새로운 ‘홈 메뉴 호출방법’은 향후 아이폰 10년의 중요한 출발점이 된다.

아이폰X에서 가장 주목받은 것은 홈 버튼이 사라지면서 달라지는 입력방식이다. 애플은 아이폰X에서 홈 버튼을 아래에서 위로 쓸어 올리는 제스처로 대신했다. 이 새로운 '홈 메뉴 호출방법'은 향후 아이폰 10년의 중요한 출발점이 된다.
아이폰X에서 가장 주목받은 것은 홈 버튼이 사라지면서 달라지는 입력방식이다. 애플은 아이폰X에서 홈 버튼을 아래에서 위로 쓸어 올리는 제스처로 대신했다. 이 새로운 ‘홈 메뉴 호출방법’은 향후 아이폰 10년의 중요한 출발점이 된다.

운영체제의 인터페이스를 바꾸는 것은 큰일이다. 습관을 바꿔야 하기 때문이다. 홈 버튼은 아이폰의 상징과도 같았고, 이 단순한 버튼 하나는 사람들이 하루 동안 가장 많이 누르는 스위치이기도 하다. 또한, 애플은 터치ID를 통해 보안과 편리성을 동시에 잡기도 했다. 이를 지우는 것은 일관성의 문제가 있을 뿐 아니라 낯설다.

애플은 왜 이런 급진적인 변화를 선택했을까? 사실 지금까지도 홈 버튼을 없애기 위해 새로운 인터페이스를 도입한 것인지, 새 인터페이스를 적용하기 위해 홈 버튼을 없앴는지에 대한 답을 명확하게 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전자가 조금 더 설득력이 있다. 앞으로의 10년을 바라보는 비전에 따라 그에 거슬리는 부분을 걸러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중요한 것은 비전과 방향성이다.

‘콘텐츠 우선’ 원칙 

사실 애플이 10년을 이어온 사용자 경험을 내려놓는 것은 그 인터페이스들이 낡거나 좋지 않다기보다는 새로운 방향성을 정하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앞으로 10년의 비전을 이 제품 하나로 판단할 수는 없다.

제품 앞면을 가득 채우는 디스플레이는 오랫동안 스마트폰 디자인의 꿈으로 여겨졌다. 화면 주변의 테두리가 줄어들면 기기의 크기가 그만큼 작아지기 때문이다. ‘같은 크기에 더 큰 화면’, 혹은 ‘같은 화면에 더 작은 스마트폰’은 디자인의 숙제였고, 디스플레이 설계나 충격 등의 이유로 실제 제품을 만들어내는 일은 기술적으로 쉽지 않다.

더구나 테두리 줄이기 경쟁에서 애플은 상대적으로 보수적이었다. 사실 테두리가 줄어들면 손 안쪽이 터치 센서를 건드리면서 의도하지 않은 오작동이 나오게 마련이다. 이를 소프트웨어로 풀어내고 있긴 하지만 그도 한계는 있다. 그런데 갑자기 하루아침에 테두리를 싹 걷어냈다. 심지어 이 때문에 입력 방식까지 바꾼다.

하지만 그 이유를 단순히 ‘미적 디자인’에서만 찾을 것은 아니다. 애플이 아이폰 화면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콘텐츠다. 이는 애플이 기기에 변화를 주는 이유나 방향성과도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애플이 운영체제나 앱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기준이 바로 ‘UX가 콘텐츠와 싸우지 않도록 한다’는 점이다. 당연히 UX들은 콘텐츠에 집중도를 양보한다.

그 집중도를 해치는 요소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화면 내부의 정돈은 iOS를 통해 거의 이뤄졌다고 볼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사파리’다. 이 웹 브라우저를 스크롤하면 위아래의 브라우저 사용자 인터페이스(UI)들이 크기를 줄이거나 사라지면서 더 많은 콘텐츠를 보이도록 한다.

이번 디스플레이의 변화도 마찬가지다. 콘텐츠를 더 많이 보여주기 위해 테두리를 극도로 깎아냈고, 화면 위를 가리던 통신사, 배터리, 블루투스 등의 정보는 별도 창으로 밀어냈다. 이 디자인은 호불호가 갈리지만 이 때문에 본래 화면은 더 콘텐츠만 보이게 된다. 특히 아이폰은 안드로이드처럼 소프트웨어 버튼이 차지하는 자리가 없기 때문에 특별히 가리는 부분 없이 화면은 온전히 콘텐츠에 집중되게 마련이다.

애플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콘텐츠다. 이는 애플이 기기에 변화를 주는 이유나 방향성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애플이 운영체제나 앱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기준은 'UX가 콘텐츠와 싸우지 않도록 한다'는 점이다.
애플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콘텐츠다. 이는 애플이 기기에 변화를 주는 이유나 방향성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애플이 운영체제나 앱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기준은 ‘UX가 콘텐츠와 싸우지 않도록 한다’는 점이다.

홈버튼 삭제, 과감하고 조심스러운 변화 

물론 이 디자인이 앞으로 아이폰의 10년을 결정하는 건 아니다. 버튼이 사라진 것은 디자인의 자유도가 높아지는 효과도 있다. 화면 앞 어딘가에 자리를 차지해야 하는 버튼 인터페이스를 없애면서 iOS는 어떤 형태로든 기기를 만들 수 있다. 물론 여전히 홈 버튼과 터치ID를 이용할 수도 있다. 디자인의 자유는 곧 이전과 다른 형태의 기기를 이끌어내는 기본 틀이다. 아이폰X은 그 종착점이 아니라 출발점이 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그 변화는 꽤 급진적이다. 실제 써본 아이폰X의 인터페이스는 어렵지 않았지만 낯설긴 했다. 몇 시간이면 익숙해질 수 있겠지만 어색한 것은 사실이다. 쉽고 어렵고를 떠나 시장이 이 변화를 받아들일지는 의문이다. 이는 애플이 같은 성능을 내는 아이폰8과 아이폰X을 함께 내놓은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흥미로운 것은 시장은 애플의 기대와 달리 아이폰X에 집중하는 듯하다. 값이 꽤 비싸지긴 했지만, 그 정도는 감내할 수 있다는 반응이다. 그게 호기심에서 오는 것일지라도 애플에는 긍정적인 부분이다. 이용자들이 홈 버튼을 비롯한 아이폰의 유산(Legacy)를 강하게 고집하기보다 변화에 더 무게 중심을 두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팀 쿡 CEO는 아이폰X을 ‘다음 10년 기술의 방향성을 정하는 제품’으로 의미를 두었다. 그게 당장 어떤 기술을 특정하지는 않는다. 다음 세대의 기틀을 잡는 새 디스플레이와 인터페이스로 지금 기술 수준에서 최선의 출발점을 그었다. 그리고 향후 어떤 형태로든 기기가 변화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고 보면 된다. 이는 여전히 애플이 하드웨어와 그에 맞는 소프트웨어를 함께 설계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한 번에 세상을 놀라게 할 ‘혁신’보다 스마트폰의 새로운 ‘방향성’에 대한 고민이 업계에 필요한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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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사 KISA 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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