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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문재인 대통령님께: "더 이상 외롭게 숨고 싶지 않습니다"

안녕하세요, 문재인 대통령님.

먼저, 당선을 축하드립니다. 대통령님께서 집권하신 후, 나라가 빠른 속도로 정상화되어가는 것을 보니 기쁩니다. 나라 곳곳에서 따뜻한 변화의 바람이 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5월이 되어서야 비로소 봄이 온 것 같습니다. 대통령님 덕분입니다.

봄 희망 선물 기쁨

함께 자살한 여중생

그러나 불행히도 우리 사회엔, 여전히 봄의 경계 너머에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언제나 볕 바깥으로, 사회의 그늘로 밀려납니다. ‘언젠가 저들에게도 봄이 오리라’는 막연한 희망만 품고 무한정 기다릴 순 없어서, 이렇게 편지를 쓰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몇 해 전, 인근 중학교에서 여중생 두 명이 동반자살한 일이 있었습니다. 뉴스에서는 ‘평소 성적 때문에 고민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고 했습니다. 전 학원 강사입니다. 성적 때문에 아이가 죽는 사회에 발 담그고 사는 사교육 종사자인지라, 그 일이 뼈 아팠습니다. ‘슬퍼요’ 누른 후, 스크롤을 내리는 순간 잊고 마는, 그런 간단한 슬픔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그로부터 한 두 달 지난 어느 날, 저는 그 일에 대해 알려진 것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예전에 함께 일했던 동료 강사를 만나 식사를 하는데, 그때 죽은 두 아이 중 하나가 그분 제자라는 겁니다. 동료 강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중간고사를 친 날, 애가 학원에 오지 않아서 전화했지. 어머니가 받으시더니 ‘그럴 일이 좀 있다, 2주 정도 학원에 못 보내겠다’고 하시더라고. 그랬는데 며칠 후 애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들었지.”

대화

단짝이 된 모범생과 ‘날라리’ 

동료 강사가 죽은 제자의 급우들에게서 들은 이야기는 이랬습니다. 죽은 학생은 소위 말하는 ‘모범생’이었고, 평소 공부를 잘했습니다. 이른바 ‘날라리’와 짝이 되기 전까지는요. 두 아이는 주변에서 신기해 할 정도로 빨리 친해졌고, 이내 둘이 노상 붙어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어른들은 ‘모범생’을 걱정하고, ‘날라리’ 친구를 탐탁지 않아 했어요. ‘모범생’의 성적이 떨어지기 시작했거든요. 그게 다 ‘날라리’ 때문이라고 생각했죠.

단짝 친구 여자 소녀 바다 기쁨 청춘

그런 차에 ‘모범생’은 2학기 중간고사에서 역대 최악의 성적을 받게 됩니다. 담임 선생님은 요즘 네가 무엇을 하고 다니는지 알아야겠다며 ‘모범생’의 가방을 까 뒤집었습니다. 학급 학생들이 다 보는 앞에서요. 가방에선 ‘모범생’이 ‘날라리’와 주고받은 편지들이 나왔습니다. 선생님은 아이들의 눈앞에서 그 편지들을 하나하나 다 읽은 후,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너희, 동성애 하니?”

선생님은 아이들을 크게 혼낸 것으로도 모자라, 아이들의 집에 전화를 걸어 이를 알렸고, 그렇게 ‘모범생’은 외출을 금지당했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두 아이는 아파트 25층에 올라, 함께 서기엔 좁은 창틀을 떼어낸 후, 꼭 끌어안고 투신했습니다. 그렇게 두 아이의 죽음은 ‘성적비관 동반자살’이 되었지요.

신발 자살

물론 이 이야기는 부분적으로 -어쩌면 전부- 사실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제게 이 이야기를 해 준 동료 강사도 결국은 학생들에게 들은 이야기를 전했을 뿐이고, 대통령님도 아시다시피 전해 들은 이야기엔 거의 항상 왜곡이나 과장이 보태지기 마련이니까요. 그러나 설사 만에 하나 이것이 완전한 허구였다 할지라도, 우리는 아이들 사이에서 ‘동성애, 아웃팅(outitng)1, 자살’로 이어지는 이야기가 돌았다는 것에 대해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제 학생이 정말 ‘게이’였다면… 

또 한번은, 제가 가르치던 고3 남학생이, 학교 선생님한테 뺨을 수십대 맞고 온 일이 있었습니다. 입술이 갈라져서 같은 반 여학생에게 립밤을 얻어 발랐는데, 그게 컬러 립밤이었던 게 문제였습니다.

선생님은 제 학생의 붉은 입술을 보자마자, 키 180cm 이상의 건장한 남학생이 한 대 맞고 휘청일 정도의 엄청난 세기로, 뺨을 후려치셨습니다. 서른대도 넘게 때렸다고 했습니다. 그것도 전교생이 지나다니는 복도에서 버럭버럭 고함을 지르면서요.

“니가 게이야? 니가 게이냐고!”

제 학생은 다행히(?) 게이가 아닙니다. 하지만 만약 제 학생이 게이였다면 어땠을까요? 과연 괜찮았을까요? 선생님이 “니가 게이야?”라고 소리지르며 학생을 구타하는 걸 본 다른 학생들은 어땠을까요? 그 아이들은 게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게 될까요? 혹시 그중에 게이가 있었다면 어떡하죠? 그 학생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남자는 립스틱을 바르면 안 되나. 남고생은 컬러 립밤을 발랐다는 이유로 교사에게 구타당해야 하는가. (출처: 데이즈드)

남자는 립스틱을 바르면 안 되나요. 남학생이 컬러 립밤을 발랐다는 이유로 교사에게 복도에서 구타당해도 괜찮나요. 그리고 만약 그 학생이 정말 게이였다면 그때는 맞아도 되는 건가요. (출처: 데이즈드)

저에게만 커밍아웃한 학생이 있습니다. 사실 공식적으로 커밍아웃만 안 했을 뿐, 학교에선 이미 레즈비언이라고 소문이 났습니다. 제 학생은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고 있습니다. 물리적 괴롭힘만 없을 뿐, 아무도 제 학생과 친해지려 하지 않아요. 제 학생이 준 생일선물도 받기 싫다고 도로 돌려주는걸요.

편견과 무관심 그리고 차별

제가 앞서 말씀드린 일들은, 아웃팅을 하거나 학생에게 직접 위해를 가한 개인의 탓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책임을 개인에게 돌리는 것은 가장 손쉬운 방법일진 모르나, 그것은 결국 문제에 대한 어떠한 예방도, 해결도 되어주지 못합니다. 이러한 비극은, 성소수자에 대한 사회의 편견과 무관심, 그로 인한 차별에서 기인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성애자이기 때문에 제 성 정체성에 대해 고민한 적이 없습니다. 살아오는 동안, 성 정체성 때문에 존재를 혐오 당하거나 부정당한 적도 없습니다. 그래서 사회에서, 특히 교육현장에서, 일어나는 성소수자 혐오에 무심하고 무감각했습니다. 솔직히, 제 곁에 성소수자가 존재한다는 것조차 모르고 살아온 시간이 깁니다.

반면, 성소수자들은 스스로 선택한 것도 아닌데, 타고난 성 정체성 때문에 끊임없이 존재가 지워지며 살아갑니다. 성소수자가 아닌 척, 자신을 부정하고 부인해야 남들처럼, 이성애자처럼, 살아갈 수 있습니다.

절망 슬픔 소외 청년 좌절

이런 환경에서 과연 성소수자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을까요? 이성애자 아이들이 성소수자 이웃에 대한 편견 없이,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구성원으로 성장할 수 있을까요? 동성애는 죄, 혹은 비정상이라고 교육받고 자라는 성소수자 아이들은 과연 건강한 자존감을 기를 수 있을까요? 행복한 꿈을 꿀 수는 있을까요? 국가가 그 아이들을 보호하지 않는다면, 그 아이들은 어떻게 자신을 지켜야 하나요?

“더 이상 외롭게 숨고 싶지 않습니다”

몇 주 전 부산에선 구속 중인 동성애자 A 대위의 석방을 요구하는 집회가 있었습니다. 어린 여학생이 연단에 올라 이렇게 말하더군요.

“러시아는 먼 나라라고만 생각했는데, 체첸의 게이 강제수용소 기사를 보는 순간, 이상하리만치 가깝게 느껴졌습니다. 우리나라 군에서 동성애자를 색출하기 위해 인권을 유린하는 수사를 강행하고, 성소수자 대위를 구속했다는 뉴스를 보았을 땐, 앓고 있는 우울증이 더 깊어졌습니다. 하루하루가 무섭고 불안했습니다. 성소수자 친구들을 만나 불안을 나누고 서로를 위로하고 돌아온 날, 대선후보들이 전 국민이 지켜보는 방송에서 동성애를 반대한다고 말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대한민국 공영방송이 동성애를 바라보는 시각

대한민국 국가기간방송 KBS가 동성애를 바라보는 시각

학생은 여기까지 말하고 흐느껴 울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이 “괜찮아, 괜찮아!” 합창하듯 외쳤지만, 전 대체 뭐가 괜찮다는 건지 알 수 없었습니다. 학생은 눈물을 닦고 다시, 더 큰 목소리로 말을 이었습니다.

눈물 소녀 절망 슬픔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저 수험생에 불과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계속 생각했습니다. 가만히 있지 말고 뭐라도 해야겠다 생각해서 오늘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잠시 숨을 고른 뒤, 학생은 이렇게 외쳤습니다.

“나는 오늘 이 자리에서 커밍아웃합니다. 나는 박**입니다. 나는 이 발언을 마치고 내려간 후, 혼자이고 싶지 않습니다. 더 이상 외롭게 숨고 싶지 않습니다.

그 학생은 자신의 성 정체성이 생존에 위협이 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스스로가 이 사회에서 성소수자로 살아남았으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학생은 단지 “더 이상 숨지 않기 위해”, “외로운 다른 소수자들을 위해” 그 모든 위험을 감수하며 광장에 섰고, 당당히 얼굴을 드러내고 커밍아웃을 외쳤습니다.

학생의 말이 끝났을 때 저는 울기 시작했습니다. 아마 대통령님께서도 그 자리에 계셨다면, 저처럼 눈물을 흘리셨을 거로 생각합니다. 제 상상 속 그 눈물이, 대통령님의 진심일 것이라고 믿습니다. 대통령님은 인권과 평등을 위해 평생을 투신해오신 분이시니까요.

2017년 5.18 기념식에서 광주 민주화항쟁 유족과 포옹하는 문재인 대통령.

여학생이 연단에서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셨다면, 인권을 위해 평생 투신해오신 문 대통령께서도 저처럼 눈물을 흘리셨을 거로 생각합니다.  ’17년 5.18 기념식에서 광주민주화항쟁 유족인 김소형 씨와 포옹하는 문재인 대통령. (출처: 청와대)

성소수자도 함께하는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 

#Love_wins 해시태그를 달고, 무지개 빛깔로 물든 청와대 사진을 포스팅하며, 한바탕 축제를 벌일 날이 어서 왔으면 좋겠습니다. 이성애와 동성애의 구별이 없어지고, 어린 아이들조차도 이성애건, 동성애건 그저 ‘사랑’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존경하는 문재인 대통령님께서 무지개 깃발을 번쩍 들고, 국민 모두와 함께 역사의 한 페이지를 넘기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오늘은 아이다호 데이(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이자 강남역 살인사건 1주기가 되는 날입니다. 세계적으로는 세계 보건 기구(WHO)가 정신질환 목록에서 동성애를 삭제하고 성소수자의 정체성을 인정함으로써 오랜 차별의 족쇄를 끊어낸 기쁜 날이지만, 우리 나라에선 혐오가 사람을 처참히 죽인 사건을 목도해야했던 슬픈 날입니다.

대통령님께선 취임사에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리고 지난 일주일간은 정말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 오랫동안 희망해 온 나라였습니다. 저는 이 나라가 소수자와 약자에게도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새 나라이길 바랍니다. 대통령님 뜻도 그러하시리라 믿습니다.

게이 레즈비언 동성애 친구 단짝 여자 소녀

그러니 문재인 대통령님, 부디 더 이상 누구도 타고난 정체성을 이유로 배제되거나 차별받지 않도록 차별금지법을 제정해주십시오. 단 한 명의 아이도 정체성 때문에 죽지 않고, 자기 자신에게 자긍심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 주세요. 부탁드립니다.

 

2017.05.17.

남보리 올림

참고: 문재인 대통령과 차별금지법 (편집자) 

선거기간 중 차별금지법 제정 의지를 밝힌 후보는 심상정 후보가 유일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표 시절이었던 ’17년 2월 13일 한기총 소속 목소를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밝혔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법에 ‘다른 성적 지향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베재되거나 차별돼서는 안 된다’고 (이미) 규정돼 있으므로, 추가 입법(= 차별금지법)으로 인한 불필요한 논란을 막아야 된다는 것이 더불어민주당의 공식 입장”(문재인, 참조: 한겨레)

그리고 대선 토론에서는 (군대 내 동성애 문제라는 맥락에서 질문과 답변이 있었다는 점을 고려해야겠습니다만,) 홍준표 후보가 “차별금지법이라고… 이게 사실상 ‘동성애 허용법’인데.. 동성애 반대하는 게 분명합니까”라는 한 질문에 문재인 당시 후보는 “저는 뭐… 동성애 좋아하지 않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홍 후보와 문 후보의 대화를 들은 심상정 후보는 이렇게 지적했습니다.

동성애는 찬성이나 반대를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성 정체성은 말 그대로 개인의 정체성입니다. 저는 이성애자지만, 성소수자의 인권과 자유는 존중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민주주의 국가입니다. 노무현 정부 때 추진됐던 차별금지법, 계속 공약으로 냈었는데 이제는 후퇴한 문재인 후보에게 매우 유감스럽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심상정, 참조: 허핑턴포스트)


  1. 성소수자의 성적 지향이나 성별 정체성에 대해 본인의 동의 없이 밝히는 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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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남보리
초대필자. 학원 강사

일보다 휴식이 하루 더 긴 삶을 꿈꿉니다. 책, 술, 동물을 좋아합니다. 인간을 긍정합니다. →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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