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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 여름, 첫 아르바이트를 했다.

실업계(지금은 전문계라 부르지만, 그때는 실업계 고등학교라 불렸다) 고교생 입시 전문 학원의 ‘데스크’ 일이었다. 구인 사이트에 떴던 공고 내용대로라면 그랬다. 내 면접을 본 직원은 업무를 설명하면서 내가 간혹 전화를 받거나 걸 일이 있으며 급여는 인센티브제로 나간다고 말했다.

지금이라면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겠지만, 일이라는 걸 처음 해 보는 그때는 다 그런가 보다 했다. 나오라는 말을 듣고 처음으로 출근한 날, 나는 접수 데스크가 아니라 안쪽의 작은 방으로 이끌려 들어갔다. 그 안에는 내 또래의 여자애 두 명이 눈동자를 굴리고 앉아 있었다.

실업계 학생 상대 ‘학원 영업’

그 둘과 내가 실제로 해야 했던 일은 소위 ‘아웃바운드 콜’, 그러니까 학생들에게 전화를 걸어 학원에 다니라고 설득하는 일종의 영업이었다. 선명하게 기억이 난다. 한여름 햇빛조차 뿌옇게 들어오던, 먼지 냄새가 풀풀 나는 작은 방에 책상 여섯 개가 비좁게 놓여 있던 모습이.

한쪽 구석에 놓인 조금 큰 책상은 영업 실장의 자리, 또 다른 쪽 모서리를 차지한 책상은 얼굴이 흰 남자 대리의 자리였다. 나머지 네 개의 책상은 파티션은커녕 컴퓨터 한 대조차 없이 마주 본 채 붙어 있었는데, 그중 세 개에 파일 하나와 전화기 한 대씩이 덩그러니 놓인 채였다. 그게 우리 셋의 자리였다.

사무실 오피스 다크 우울 음침

파일을 열자 한쪽에는 지역 실업계 고교 학생들의 연락처가 가득 적힌 종이 뭉치가 들어 있었고 다른 한쪽에는 ‘업무일지’라는 이름의 조잡한 표가 또 한 무더기 끼워져 있었다. 업무 설명은 자리에 놓인 것들만큼 간단했다.

  • 첫째, 연락처를 보고 전화를 걸어 학원에 다니라고 구슬려라.
  • 둘째, 일이 끝나면 업무 일지에 ‘성공 몇 콜(전화를 콜이라고 불렀다), 유력 몇 콜(조금 더 꼬시면 될 것 같다 싶은 건을 유력이라 불렀다. 성공 가능성이 몇 %인지도 적으라고 했던 것 같은데 그건 정확한 표현이 기억나지 않는다)’를 적어 두고 퇴근하면 된다.
  • 셋째, 학생들에게 ‘학원에 오면 맛있는 걸 사 주겠다’는 류의 약속을 하지 말아라. 실제로 찾아오면 낭패니까.

핑크색 책상 

설명을 듣고 자리에 앉았지만 셋 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눈만 끔벅거렸다. 잠시 비어 있던 내 옆자리는 임자가 있다는 걸 온몸으로 증명하듯 모조리 핑크색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핑크 분홍

번들거리는 가짜 진주 구슬이 달린 핑크 거울, 핑크색 필통과 쿠션, 연한 핑크색의 담요와 인형이 달린 핫핑크 볼펜… 대체 이런 자리에는 누가 앉을까 생각하던 찰나 내 또래의 여자가 하나 방으로 들어왔다.

검은색 민소매 셔츠와 검은 핫팬츠를 입은 그 여자는 표정 없는 얼굴로 우리를 힐끗 보더니 핑크색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는 곧바로 전화기를 들어(송수화기에도 핑크색 덮개가 둘려 있었다) 버튼을 빠르게 눌렀다. 그리고는,

“어~ㅇㅇ야, 오랜만이야! 우리 ㅇㅇ이 요즘 뭐해? 누나 안 보고 싶어? 학원 또 나와야지~” 

같은 말을 속사포처럼 쏟아냈다. 무심한 얼굴과는 반대로 굉장히 상냥하고 나긋한 목소리로. 그녀가 한 차례의 통화를 끝내고 수화기를 내려놓았을 때 나는 나도 모르게, 아직 인사도 나누지 않은 그녀에게 질문부터 던졌다.

“아는 학생이에요?” 

그녀는 또 무표정한 눈빛으로 나를 힐끗 보고 이내 전화기로 시선을 돌리며 짧게 답했다.

“아뇨. 원래 다 이렇게 하는 건데.” 

원래 다 그런 것들 

그 말은 일종의 예고편 같은 거였다. 그 학원에는 ‘원래 다 그런’게 너무 많았다. 학생들은 친구를 학원에 등록시키면 주는 문화상품권 3만 원을 받기 위해 끊임없이 누군가를 끌고 왔다. 그렇게 들어온 학생들은 몇 달을 채 버티지 못했지만, 상관없었다. 어차피 원래 그런 거고, 그 학생들은 나가기 전에 또 다른 친구를 데려오니까.

드나드는 학생들은 많았지만, 정작 수업시간이 되면 강의실은 텅텅 비어 있었다. 학생이 있거나 말거나 강사들은 느릿느릿한 목소리로 수업을 진행하다 시간이 다 되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왔다. 그것도 원래 다 그런 거였다. 아무도 그걸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빈 강의실 교실
드나드는 학생들은 많았지만, 정작 강의시간엔 교실이 텅 비어 있었다.

전화를 걸 때도 그 통화를 어색하고 기괴하게 생각하는 건 나 혼자였다. 정작 전화 받는 학생들은 태연했다. 수십 군데의 학원에서 걸려오는 전화를 질리게 받았기 때문일 터였다.

내가 뭐라고 말도 꺼내기 전에 ‘누나 보고 싶다’며 능글거리는 남학생들의 목소리에 놀라 그냥 전화를 끊기 여러 번. 그런 나를 보며 실장은 “학생들이 원래 다 장난이 심해 그런 건데, 그거 하나 못 받아치면 콜 따오기는 틀렸다”며 혀를 찼다.

하루는 대리가 우리 알바 셋을 앉혀 놓고 일할 때 쓸 가명을 정해보라고 했다. 전화 돌리는 일은 그렇게 하는 게 편하다며. 우리는 깔깔대고 웃으면서 싫다고 했다. 가명이라니. 그러자 그는 우리를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쳐다보며 본인도 가명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가명으로 전화하면 어떨까
하루는 대리가 일할 때 쓸 가명을 정해보라고 했다.

자세히 밝히지는 않겠지만, 당시 그의 이름은 얼굴이 유별나게 흰 그와 아주 잘 어울렸다. 그런데 믿지 못하는 우리에게 그가 신분증까지 꺼내주며 밝힌 본명은 가명과 정반대 이미지였다. 우리는 또 한 번 배를 잡고 웃었고, 귀까지 빨개진 그는 “다 이렇게 한다”는 말을 변명처럼 늘어놨다.

다람쥐도 모르는 영어 선생님 

나는 2주가 지나도록 콜을 하나도 따 오지 못했다. 물론 나만 그런 건 아니었다. 슬슬 실장의 잔소리가 늘어갔다. 그는 우리가 전화를 걸 때마다 유심히 보고 있다가 수화기를 내려놓기 무섭게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줄줄 읊어댔다.

한 번은 내가 이미 그 학원에 다닌 적이 있는 학생에게 전화를 건 일이 있었다. 물론 모르고 건 거였다. “다시 학원에 나오는 건 어떠니?” 나름 상냥한 목소리로 던진 질문에 뜻밖의 답이 돌아왔다.

“그 학원 영어 선생님이 영어로 다람쥐가 뭔지 몰라요.” 

“응?”

“영어 선생님이, 영어로 다람쥐라는 단어를 쓸 줄 모른다고요.”

더 할 말이 없었다. 내 얼굴이 다 뜨거웠다. 미안해 어쩌고 하는 말을 하면서 도망치듯 전화를 끊어버렸다. 내 꼴을 처음부터 보고 있었던 실장에게서 즉각 왜 그러냐는 물음이 날아왔다. 내가 방금의 통화 내용을 이야기하자 그는 두 번 생각도 안 하고 아주 간단하게 대꾸했다.

“어휴, 그럼 이제는 쓸 줄 안다고 했어야지!”

또, 그 빌어먹을 놈의 원래 다 그렇게 하는 거라는 얘기였다.

교수 수업 강의 선생님
다람쥐를 영어로 쓸 줄 모르는 영어 선생님도, 그 학원에서는 늘 그럴 듯, 그럴 수 있는 일이었다.

학원 사람들의 행동에 염증을 느낀다고 해서 내가 학생들과 특별히 친한 건 아니었다. 내가 그렇게 생각해서인지는 모르겠으나 학생들은 항상 학원 사람들을 어딘가 깔보는 듯한 눈으로 바라봤는데 그때는 그게 너무 불편했다. 밉거나 싫다기보다는 무서웠고, 그 안에는 실체를 알 수 없는 죄책감 같은 것이 컸다. 나도 너희를 속이고 있구나 하는.

그곳을 오래 다니지는 못했다. 애초에 전화 영업이 내 적성에 안 맞는 일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학생들을 상대로 말 같지 않은 소리를 주워섬기는 걸 버티기 힘들었다. 나와 함께 들어온 두 명이 연달아 그만둔 열흘쯤 후, 나는 한 달을 채 채우지 못하고 포기했다.

그 학원은 그 자리에 있을까 

그 후 몇 년간 내가 그 학원에서 일했던 때의 얘기는 나와 내 친구들이 술자리에서 즐겨 찾는 안줏거리였다. 직원들의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되새길 때마다 폭소가 터졌다. 우리는 그걸 일종의 시트콤처럼 소비했다. 그리고 나서는 한동안 이 기억을 잊고 살았다.

그런데 얼마 전, 직장 동료와 저녁을 먹다 오랜만에 그 얘기가 나왔다. 여전히 웃겼다. 그런데 집에 가는 길에 뒷맛이 영 좋지 않았다. 문득 누군가에게는 이게 코미디가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 탓이었다.

책상

‘실업계 고교 입시 전문 학원’이라는 모순적인 말. 세상이 실업계 학생들을 보는 시각은 딱 그쯤에 머물러 있었다. 어떤 사람은 싸구려 연민을 던지고, 또 다른 사람은 돈 몇 푼을 벌기 위해 학생들을 이용하지만, 그 둘의 밑바닥에 깔린 생각은 동일했다. 누군가는 내 글도 그렇게 내민 어설픈 동정이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렇지는 않다. 나는 그 학생들을 굳이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어 특정한 시선으로 바라봐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다만 내가 이 글을 쓰는 건, 그 학생들을 향한 편견이 그들의 사춘기를 어떻게 난도질하고 있는지 그 한 조각을 언뜻 보았기 때문이다.

나중에 들었지만, 그 핑크색으로 뒤덮인 자리에 앉았던 알바생은 그 학원 출신 학생이라고 했다. 그녀도 학교에 다닐 때는 그 말도 안 되는 전화들을 받았겠지. 그리고 졸업하고 나서는 전화기 앞으로 자리를 바꿔 또 다른 학생들에게 전화를 걸고… 그 뒤로 몇 명의 학생이 또 같은 길을 밟았을지는 모를 일이다. 그 때 학생들이 학원 직원들을 깔보는 것처럼 보였던 건 내 착각이 아니었을 것만 같다.

아직 그 학원은 그 자리에 있을까. 다음에 근처를 지날 일이 있다면 눈여겨봐야겠다. 없어졌다면, 그러면 조금은 마음이 편해질지도 모르겠다. 얄팍한 생각이라는 건 알지만, 그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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