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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이 직접 스마트폰을 내놓았다. 이름은 ‘픽셀’이다. 여러 가지 해석이 나오고 있지만 분명한 것은 구글이 자신의 이름을 단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고,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시장에 직접 뛰어들었다는 점이다. 구글은 이로써 스마트폰 시장에 또 다른 이정표를 제시했다.

구글 픽셀폰
구글 픽셀폰

구글은 왜 스마트폰을 직접 내놓았을까? 그동안 모토로라를 인수하거나, 넥서스를 내놓는 과정에서 구글이 직접 생태계에 뛰어드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고, 그때마다 구글은 ‘생태계가 최우선’이라며 스마트폰 시장 진입을 강하게 부정해 왔다. 파트너십이 중요하기 때문에 직접 하드웨어 시장에 뛰어들 생각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구글이 갑자기 그 입장을 바꿨다. 왤까? 먼저 구글이 그동안 스마트폰 시장에 접근해 온 흐름을 돌아보자.

구글의 모바일 출발점, ‘구글링의 확장’

구글의 스마트폰 시장 진입은 조금 묘하다. 애초 구글이 스마트폰 시장에 뛰어든 것은 애플의 아이폰이었다. 2007년 1월, 스티브 잡스가 세상에 처음 아이폰을 공개할 때 이 새로운 기기를 설명하는 소개말은 ‘전화, 아이팟, 그리고 인터넷 커뮤니케이터’였다. 그리고 그 인터넷 커뮤니케이터에 가장 큰 향을 끼친 게 바로 구글이었다.

YouTube 동영상

조금 세게 이야기하자면 초기 아이폰은 전화와 아이팟, 그리고 ‘구글링’을 위한 기기였다. 아직 앱 스토어는 없었고, 아이폰 기본 운영체제의 핵심은 구글 지도와 유튜브였다. 아이폰의 주요 시장이었던 미국에서 웹 브라우징은 곧 ‘구글’이었다.

구글은 곧 애플 아이폰의 가장 든든한 백그라운드였고 아이폰이 특별해질 수 있는 핵심 서비스를 만드는 기업이었다. 애플도 구글을 단단히 믿었던 것 같다.

도그파이트

당시를 회상하는 프레드 보겔스타인(Fred Vogelstein)의 책 [도그파이트][footnote]원제는 “Dogfight: How Apple and Google Went to War and Started a Revolution”[/footnote]를 보면 아이폰을 개발할 때 애플은 하드웨어와 운영체제를 만들고, 구글은 서비스를 맡는 것으로 역할이 명확히 구분됐다. 두 회사는 끈끈한 파트너여야 했고, 실제로도 그랬다.

하지만 비즈니스에 영원한 적도, 아군도 없다고 했다. 구글은 모바일 시장을 스스로 풀어낼 수 있다고 판단하기 시작했다. 애초 구글이 애플과 손을 잡았던 것은 구글링, 그러니까 구글 검색과 몇 가지 서비스를 데스크톱 PC 외에 모바일로 넓힐 가능성으로 봤던 것 같다.

하지만 아이폰의 파괴력이 생각보다 더 컸고, 서비스로는 애플을 비롯해 누구도 구글을 대신하기 어려웠다. 구글 입장에서는 운영체제만 잘 만들면 아이폰 못지않은 플랫폼 환경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할 만도 하다. 아이폰이라는 하나의 이불을 덮고 있었지만, 구글과 애플은 서로 다른 생각을 품게 된 것이다.

그리고 둘 사이의 불편한 동거가 시작된다. 구글이 안드로이드를 인수하면서 자체적인 운영체제 사업을 시작한 것이다. [도그파이트]에서는 이를 두고 스티브 잡스가 크게 화를 냈다고 설명한다. 그만큼 애플은 구글을 믿었던 것 같다. 하지만 구글 입장에서는 모바일에 대한 가능성을 계산에 넣지 않을 수 없었고, 아이폰이 스마트폰 시장을 집어삼키면서 거대한 서비스 플랫폼 형태를 갖추게 된 것에 대한 경계, 그리고 불안감을 느끼는 것도 당연했다.

결과적으로 안드로이드는 아이폰의 가장 위협적인 적이 됐다. 더 나아가 애플이 직접 지도 서비스를 비롯해 직접 클라우드 서비스까지 시작한 데에는 중요한 사업에 구글을 비롯한 외부 업체와 손잡을 수 있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하게 한 영향이 있다. 그리고 그 전쟁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생태계, 최우선에 두던 구글

구글이 모바일 시장에 뛰어드는 과정은 아주 날카로웠다. 일단 세상은 아이폰이 휘어잡고 있었다. 아이폰 아니면 블랙베리였던 시절이다. 구글은 딱 운영체제의 재료만 풀어 놓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운영체제를 이용한 하드웨어를 누구나 만들 수 있도록 풀었다. 무료로 배포했다는 이야기다. 아이폰에 시장을 빼앗기기 시작한 기존 휴대전화 제조사들이 아이폰의 대안으로 구글을 선택하기 시작했다.

구글은 통신사도 끌어들였다. 애플이 아이폰을 각 지역의 2위 통신사를 통해서만 유통하는 전략을 세우면서 1위 업체, 그리고 그 아래 업체들은 불만이 쌓여 갔다. 구글은 이들도 끌어안았다. 구글이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로는 반 애플 연합을 만든 셈이다. 모든 수익은 다 스마트폰 제조사와 통신사에게 나눠줬다. 구글은 아무 욕심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실제로도 구글의 목적은 어떤 플랫폼에서든 ‘구글의 서비스’를 쓰게 하는 것이었다.

안드로이드

그리고 안드로이드는 세상을 집어삼켰다. 안드로이드는 이제 단순히 스마트폰 운영체제가 아니라 자동차, TV를 비롯해 디지털카메라, 센서 등 임베디드 시장까지 쓸어 담았다. 기업들이 안드로이드 소스를 다루는 기술을 발전시키면서 구글에 의지하는 대신 안드로이드를 기반으로 자체적인 서비스 플랫폼을 만들기 시작했다. 중국 시장은 아예 구글 없는 안드로이드의 천국이 됐다.

이 모든 과정이 일어나는 데 걸린 시간은 채 10년도 되지 않는다. 강산도 변하는 기간인데 구글이 안드로이드를 바라보는 시선이 그대로 머물러 있을 리가 없다. 세상의 안드로이드는 이제 구글이 원하는 방향만으로 이끌어 갈 수 없게 됐다.

그동안 구글은 모토로라를 인수하면서까지도 ‘하드웨어를 만들지 않겠다’고 못을 박아왔다. 넥서스를 시장에 내놓으면서도 ‘우리 제품이 아니다’라는 분위기를 내비쳤다. 파트너십, 그러니까 반 애플 연합체는 곧 구글의 힘이었기 때문이다.

심경의 변화? 시장의 변화!

픽셀은 구글이 안드로이드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는 적극적인 표현이다. 구글은 심경의 변화를 숨기지도 않았다. ‘메이드 바이 구글’이라는 메시지가 앞에 단적으로 흘러나왔다. 기존 넥서스와 딱히 다르지도 않았다. 생산은 스마트폰 제조사가 맡고 소프트웨어와 유통은 구글이 맡는 모델 그 자체다.

가장 큰 차이는 구글이 기기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는 점이다. 넥서스가 타겟으로 잡은 시장은 일반 소비자가 아니라 모든 안드로이드 제조사들이었고, 앱 개발자였다. ‘구글이 생각하는 안드로이드’, 그리고. ‘안드로이드에 넣은 새 기술’을 시장에 소개하는 하나의 미디어였다.

픽셀은 구글이 만든 첫 스마트폰이다. 구글 어시스턴트는 픽셀의 차별점이기도 하다.
픽셀은 구글이 만든 첫 스마트폰이다. 구글 어시스턴트는 픽셀의 차별점이기도 하다.

반면 픽셀은 ‘구글이 시장에 풀고 싶은 안드로이드’에 가깝다. 여전히 구글은 스마트폰 하드웨어 시장을 집어삼킬 의지를 내비치진 않는다. 구글이 원하는 것은 모바일 기기 안에서 검색과 서비스, 앱, 콘텐츠 등 모든 서비스 요소를 구글의 것으로 채우는 것이다. 하지만 점차 안드로이드 생태계는 반대 방향으로 흐른다.

사실상 스마트폰 시장이 성숙 단계에 접어들면서 이제 이용자들이 운영체제 플랫폼을 바꾸는 경우는 부쩍 줄어들고 있다. 그러면서 구글이 생각하는 안드로이드의 가장 큰 적은 애플과 iOS가 아니라 AOSP[footnote]Android Open Source Project; 안드로이드 오픈소스 프로젝트[/footnote]가 되고 있다. AOSP의 경우 구글이 소스를 열어놓으면 누구나 이를 기반으로 스마트폰이나 임베디드 기기를 만들 수 있는, 그야말로 오픈소스 프로젝트다. 이를 통한 기기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고, 특히 구글이 시장에 진입하지 못하고 있는 중국의 경우 안드로이드 천국이지만 정작 구글 서비스는 단 하나도 서비스되지 않는다.

또한, 구글의 인증을 받은 안드로이드라고 해도 그 플레이어들, 그러니까 삼성전자나 소니 같은 스마트폰 제조사들의 방향성은 결국 스마트폰 하드웨어 그 자체가 아니라 이를 통한 플랫폼 사업으로 흐르고 있다. 구글과 스마트폰 제조사 간에 불화설이 끊이지 않는 이유도 서비스와 플랫폼 비즈니스에서 충돌이 일어나는 데에 원인이 있다. 또한, 세계 여러 정부들이 구글을 규제하면서 안드로이드에서 구글 색을 빼도록 요구하는 현상도 일어나고 있다. 구글 자체가 규제 대상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안드로이드 스택

구글도 기업이고, 안드로이드처럼 막대한 개발 비용이 들어가는 프로젝트를 무료로 푸는 것은 결국 구글 기반의 모바일 생태계를 채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게 정부 차원에서, 그리고 기업 차원에서 엉뚱한 곳으로 흐르면서 구글은 또 다른 기준을 세울 필요가 생겼다. 이전의 넥서스가 생태계에 표준을 제시했다면 픽셀은 구글 자신의 표준이다. 구글로서는 안드로이드를 통한 사업을 정리할 필요가 분명 생긴 셈이다.

그러니까 이제 스마트폰용 안드로이드는 운영체제 그 자체인 AOSP와 구글이 인증한 안드로이드, 그리고 구글만의 픽셀용 안드로이드로 나뉘게 됐다.

결국, 구글은 결국 시장에 나와 있는 안드로이드 스마트폰과 싸울 수밖에 없게 됐다. 민감하게 경쟁하고, 시장을 집어 삼키려는 것은 아니지만, 구글로서는 자체 기기에 대한 무기가 필요하다. 그 무기는 바로 구글 어시스턴트다. 머신러닝과 이용자 분석은 이제 스마트폰과 컴퓨팅 시장에서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다. 스마트폰은 그 어떤 기기보다 개인적인 기기다. 구글은 그 머신러닝의 핵심 기술은 안드로이드에 풀지 않고 대신 픽셀에, 그러니까 구글 기기의 킬러 콘텐츠로 만들었다.

반대로 픽셀을 조금 더 적극적인 형태의 넥서스로 바라볼 수도 있다. 구글은 언젠가 이 구글 어시스트를 안드로이드의 기본으로 삼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구글 자신도 이 기술을 시험할 기기가 필요하고, 데이터를 쌓으면서 가다듬을 필요도 있다. 그 기기를 조금 더 자유롭게 운영할 수 있으려면 자신의 기기가 필요하다.

구글이 직접 손대서 만들지만, 넥서스와 픽셀은 목표가 다르다.
구글이 직접 손대서 만들지만, 넥서스와 픽셀은 목표가 다르다.

여전히 픽셀은 오묘한 경계를 타는 제품이다. 사실상 넥서스와 픽셀의 차이라면 구글의 로고가 박혀 있다는 것뿐이다. 제품은 HTC에 맡겨서 생산하고, 소프트웨어는 구글이 챙긴다. 화웨이처럼 HTC 외의 기업들에도 픽셀 생산을 제안하기도 한다. 그래서 구글의 속내를 정확하게 알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구글이 스스로 생각하는 안드로이드가 필요한 시기가 왔다는 점이다. 생태계를 집어삼킬 의도도, 삼성을 비롯한 기존 스마트폰 제조사와 경쟁할 생각도 지금으로써는 내다보기 어렵다. 영원히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지금으로써는 좀 지나친 해석이다. 구글이 바라는 것은 세상의 간섭 없는 ‘내가 원하는 안드로이드’를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메이드 바이 구글’이라는 말 자체가 구글의 의지다. 내 손으로 만드는 안드로이드가 필요한 상황에서 나온 자연스러운 결과물이다. 누구에게나 기회가 열려 있는 것처럼 구글도 안드로이드를 해석할 기회가 있기 때문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Rykmwn0SMW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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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SA 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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