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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란 무엇일까요

대안학교.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나요? 영국의 서머힐 스쿨, 독일의 발도르프 학교, 한국의 간디학교 등의 이미지가 아무래도 가장 잘 알려져 있을 겁니다. 틀에 박힌 공교육에서 벗어나 각자의 철학을 가지고 학생에게 맞는 교육을 시행하는 곳. 이런 대안학교도 물론 많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이 글에서 이런 ‘대안학교’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대안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하며 ‘학교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끊임없이 직면했던 제 경험을 나누고 싶습니다.

교실 학교

위탁형 대안학교

저는 서울시 위탁형 대안학교 한 곳에서 영어를 가르쳤습니다. ‘위탁형 대안학교’는 학업 중단 위기를 겪고 있는 청소년이 이 학교에서 출석하고 시험치면, 원래 학교 졸업장을 그대로 수여받을 수 있는 제도입니다.

예를 들어 A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이 모종의 사유로 위탁형 대안학교에 수탁되면, A 고등학교에 출석하거나 시험볼 필요 없이 위탁형 대안학교에 출석하고, 시험보면 그대로 A 고등학교 졸업장을 줍니다.

교육청 인가 대안학교이기 때문에 정규과목은 모두 있고, 교사는 모두 교원자격증 소지자입니다. 다만, 정규과목은 보통 최소한으로 운영하고 학교 재량으로 실용음악, 진로탐색, 제과제빵 등 대안교과를 편성합니다. 서울시에서 가장 먼저 시작했으며, 지금은 경기나 대구 등에도 몇 군데가 있습니다.

그 학교의 흔한 풍경 

제가 재직했던 학교 풍경은 보통 이렇습니다. 아침 9시, 1· 2학년 통합 수업에 들어갑니다. 교실은 학생 스무 명쯤 들어가면 꽉 찰 듯한, 보통 중·고등학교 교실의 반 정도 크기. 책·걸상이 멀쩡하게 놓여 있는 광경은 볼 수가 없습니다. 학생들이 책, 교과서, 심지어는 연필이라도 가져왔을 거라고는 기대할 수가 없습니다.

스무 명 정도가 있어야 하지만, 앉아 있는 건 다섯 명 남짓입니다. 교복이 없기 때문에 모두 자유복. 수업을 시작하려고 학습지를 나누어 주면 그 즉시 종이비행기가 되어 공중을 날아다닙니다. ‘brother’의 한국어 뜻을 아는 학생은 절반이 안 됩니다.

학교

수업 시작을 알려도 제대로 앉아서 칠판을 보는 학생은 보기 어렵습니다. 엎드려 자는 정도는 예사. 화장을 하거나 돌아다니거나 낙서하거나 짝과 장난치거나 담배를 피우러 나가거나 여학생을 때리는 시늉을 하거나 심하면 진짜로 주먹다짐을 하거나.

 

수업시간에 제가 들어야 했던 말들 중 기억에 남는 것들.

“쌤, 삼일한 ~삼일한~”1

“(웃통을 벗어서 상반신 전체를 뒤덮은 용 문신을 보여주며) 쌤 이게 얼마짜린지 알아요? 천만 원짜리에요.”

“쌤, 야동에서 남자가 여자 강간하면 여자가 처음엔 싫다 싫다 해도 남자 스킬이 존나 좋으면 여자도 좋다고 하던데요?”

“쌤 저랑 잘래요? 저 남자답게 잘하는데.”

제가 이 학교에 있을 때는 선생님들이 하루, 이틀, 일주일을 넘기지 못하고 그만두셨습니다. 시간당 강의료가 거의 대학 강의료에 맞먹는데도요. 선생님 한 분은 두 시간 만에 그만두겠다 하셔서 제가 설득에 나섰으나 완고하게 그만두고 돌아가셨습니다. 저희도 말릴 수가 없었습니다. 이해가 가니까요.

인생을 삭제해버리고 싶어요…  

어느 하루, 출석을 부르는 중 출결이 좋던 학생이 늦는 일이 잦아 이유를 물었습니다. 들려오는 무미건조한 대답.

“제가 요즘 XX에서 알바를 하는데요. 이게 이르면 새벽 3시 늦으면 아침 7시에 끝나서요.”

다시 물었습니다. “최근 너무 초췌해 보이는데 무리하는 거 아니니?” 하고. 학생이 다시 대답합니다.

“아버지는 원래 일 하셨는데 몸이 안 좋아져서 그만두시고 엄마는 전업주부시고, 누나가 원래 일 해서 돈 벌었는데 회사에 안 좋은 일이 생겨서 그만뒀어요. 집에 돈 벌 사람이 저밖에 없는데요. 돈 벌어 놓고 군대 갈 거예요. 졸업하고도 가족들 좀 쓰게. 아, 진짜 인생을 삭제해버리고 싶어요.”

학교 책 소용돌이

말문이 막힙니다. 이제 겨우 고등학생인데. 어쩌다가 고등학생인 남학생 한 명이 4인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게 된 걸까요? 어쩌다가 이 학생 혼자 새벽 3시, 7시까지 일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된 건가요? 왜 이 학생은 황금 같은 9시에서 3시까지의 시간을 학교란 공간에서 보내야 하는 건가요? 의미 없이 불편한 쪽잠을 자면서?

어제 아빠한테 밤새도록 처맞느라 

어느 하루, 3학년 수업. 항상 화장을 진하게 하고, 계단을 옆으로 올라가야만 하는 길이의 치마를 입고 오는 여학생. 이 친구는 수능에는 관심이 없으니 간단한 책을 보라고 하고, 다른 수능 준비하는 친구의 문제풀이를 도와줬습니다.

그런데 계속 휴대폰만 보며 소란을 일으키길래 경고를 여러 번 하고 휴대폰을 교무실에 내라고 했습니다. 그때 들은 말.

“아, 쌤! 어제 아빠한테 밤새도록 처맞느라 남친한테 카톡 못했단 말이에요. 지금 해야 된다고요!”

Lin Pernille Photography, CC BY (이 사진은 연출된 것으로 본문과는 직접 관련이 없습니다.)

Lin Pernille Photography, CC BY (이 사진은 연출된 것으로 본문과는 직접 관련이 없습니다.)

이 상황에서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 걸까요? 아빠한테 맞은 건 맞은 거고 지금은 수업시간이니 휴대폰을 내라고 해야 하나요? 그런 사정이 있었으니 수업시간이라도 휴대폰을 하게 놔둬야 하는 건가요?

우리 집은 아빠가 바람펴요~

어느 하루, 쉬는 시간. 학생들끼리 모여서 무언가 이야기를 하고 있길래 저도 살짝 끼어들어가서 맞장구를 치고 수다를 떨면서 놉니다. 거기서 들은 얘기.

“아, 쌤. 우리집은 엄마랑 아빠랑 있는데요. 아빠가 바람펴요~~”

이 말을 마치 “아, 쌤. 오늘 우리 점심메 뉴는 짬뽕이에요~~” 라고 말하는 어투로 던집니다. 주변 친구들의 반응도 “ㅋㅋㅋ”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닙니다. 저는 어떤 반응을 해야 할지 몰라 “아, 그렇니.” 하고 넘어갑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말하지 못한 채 우두커니 말을 잃습니다.

양아치? 단지 ‘공부’가 아닐 뿐 

이 학생들은 사회에서 ‘비행 청소년’, ‘양아치’, ‘날라리’, ‘부진아’ 등으로 불릴 겁니다. 그렇지만 한 꺼풀만 더 들어가 보면 다릅니다. 이 친구들이 자신의 목표를 이루는 방식이, 사회가 일반적으로 용인하는 방식과 다를 뿐입니다.

네일아트, 미용사 등등을 비롯한 뷰티 자격증을 6개나 딴 친구, 주 7일 모 뷔페에서 일하며 조리사 자격증을 딴 친구, 매일매일 실용음악 학원 다니면서 실력을 쌓아가는 친구 등등. 다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찾아서 그것에 몰두하며 목표를 이루어 나갑니다. 단지 공부가 아닐 뿐입니다.

그럼 이 학생들이 고등학생까지 자라나는 동안 정규 학교는 도대체 무엇을 했을까요? 이 학생들을 위탁형 대안학교라는 공간으로 밀어 넣는 것? 그럼 이 위탁형 대안학교는 대체 이 학생들을 잡아놓고 뭘 하는 걸까요?

학교는 뭘까요? 적어도 지식을 배우러 오는 곳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적어도 이 학교에서는 지식전달의 기능은 거의 할 수 없었으니까요. 왜 이 학생들은 흥미도 없고, 오기도 싫은 학교에 9시부터 3시까지 잡혀 있어야 하는 건가요? 이들의 꿈은 학교가 아니라 다른 곳에 있는데, 왜 시간을 낭비하며 듣기 싫은 선생들의 소리를 듣고 앉아있어야 할까요?

졸업장을 미끼로 한 ‘감금’은 아닐까  

저는 이런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 학교라는 공간 자체가 이 학생들을 9시부터 3시까지 붙잡아 두고 사회에서 다른 비행을 저지르지 못하게 감금하는 게 아닌가. 고등학교 졸업장 하나를 미끼로 삼아다가, ‘얘들아 이거 갖고 싶지? 그럼 가만히 여기 앉아 있어’ 라고 강제하는 공간.

학생들도 어렴풋이 압니다. 고등학교 졸업장 없이 한국 사회에서 인간 취급을 받기는 어렵다는 것. 그래서 최대한 저항하며 이 공간에 말 그대로 머물러만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학생들이 학교에 머무르는 시간은 단지 ‘한국 사회에서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자격’을 얻기 위함일 뿐일까요? 그럼 영어고, 수학이고, 국어가 무슨 의미일까요? 교사의 역할은 간수, 경비원인가요? 그 전에, 왜 고등학교 졸업장이 인간 증명서가 된 거죠?

감금, 감옥

의문이 끊임없이 이어집니다. 4학년 교육사회학 시간에서 배웠던 뒤르켕, 부르디외, 번스타인, 영, 프레이리… 아무도 제대로 된 답을 주지 않습니다. 선생으로 있으면서도 분노, 좌절, 애틋함, 무력감 등등의 감정이 수시로 뒤바뀌면서 절 세차게 흔들어 놓습니다. 비상식적인 언행, 행동, 욕설 및 성희롱성 발언을 들으면 그 순간은 화가 나고, 대처할 방법이 없어 좌절하고, 시간이 약간 지나면 이 학생이 왜 그랬는지 수긍이 가서 애틋하지만, 아무것도 해 줄 수가 없어서 무력해집니다.

동시에 저 자신에게 연민이 듭니다. 피해자는 나인데 왜 가해자의 입장을 생각해야 하는 건가. 이게 교사와 학생의 관계라는 건가. 교사란, 업보를 짊어지는 거구나.

학생들 행동을 찬찬히 살펴보면 

모르겠어요. 그중에서도 선생이라는 제 역할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듭니다. 이 일들이 학교 밖에서 일어났다면 저는 경찰에 가서 피해자가 될 수도 있을 겁니다. 학교 안에서 일어났고, 학생과 교사 관계에서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저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죠.

종종 수탁 해지되는 학생이 있기는 했습니다만, 그다음은? 수탁 해지된 학생은 보통 본교에도 돌아가기 힘들고, 다른 대안학교에서도 받아주려 하지 않습니다. 자퇴생 혹은 퇴학생이 되겠죠. 그다음은? 이 한국 사회에서 고등학교 자퇴생 혹은 퇴학생은 어디로 가나요? 이 학생의 탈선을 막지 못한 건 누구의 탓인가요?

왜 이 학생들이 상반신을 다 뒤덮는 용 문신을 할까요? 용 문신이 또래 집단 내에서 추앙받는 심볼이고, 이 학생은 인정과 관심을 갈구하기 때문입니다. 왜 이 학생들이 성희롱 발언을 전혀 거리낌 없이 던질까요? 성희롱을 당연히 여기는 주변 문화와 매체 속에서 자라났기 때문입니다. 왜 이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엎드려 잘까요? 밤늦게까지 치킨 배달을 하거나 새벽 늦게까지 일을 하기 때문입니다. 왜 이 학생들이 비극적 가정사를 마치 점심 메뉴 정하는 것처럼 가볍게 얘기할까요? 가정 붕괴를 일상처럼 겪고 있고 주변에 비슷한 일을 경험하는 친구가 한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학생들의 행동을 하나하나 톺아보면 그 행동을 촉발시킨 원인이 있습니다. 그게 다 눈에 보여요. 그래서 비상식적 및 성희롱성 언행, 욕설, 행동을 당해도 학생을 비난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피해자로서 부당한 행동을 당해서 솟아오르는 분노와 교사로서 이 원인을 어떻게 할 수 없는 제 무력한 지위와 학생에 대한 안쓰러움이 다 겹쳐서 제 속은 그저 문드러지고요.

학교는 무엇일까요 

저 자신을 돌아봅니다. 저 역시 청소년 시절 정규 교육과정에서 한 번 도망친 적이 있습니다. 중학교를 끝내고 고등학교에 가지 않았죠. 당시는 대안학교, 학교 밖 청소년 같은 개념이 희미했기 때문에 저는 혼자 독서실에 틀어박혀 공부했습니다. 그때 막막하고 힘들었던 경험이 저를 대안학교로 이끌었어요. 도움이 되고 싶었거든요.

나도 학교 밖 청소년 시절이 있었고, 한 걸음만 삐끗하면 사회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었던 아찔한 시기를 보냈고,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어두운 터널을 혼자 지나가 봤으니까. 그게 어떤 뜻인지 아니까. 청소년에서 성장하여 교사가 된 저는, 또 도망칩니다. 학교 일을 그만두고 회사로 도망쳤어요. 그 이후에는 대학으로 도망쳤고요.

방황 고뇌 슬픔 진로 안개 갈등 도망 인생 남자 사람

저는 ‘학교는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하고 도망 나왔습니다. 저는 탈주하고 나서도 가르침에 대한 두려움과 트라우마가 깊숙이 박혀 버려서, 그 이후에도 가르칠 기회가 있으면 재주껏 피해 다녔습니다. 박사 과정에 입학하고, ESL 강사가 되어 가르치는 일을 피할 수 없게 되자, 주변 고마운 분들께 도움을 청해서 트라우마를 극복해 가야 했습니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습니다만, 제도권 중고등학교에서 가르치라고 하면 여전히 못 하겠어요. 교원자격증도 있는 사범대 영어교육 전공자인데도… 학교란 무엇일까요? 학생분들, 교사분들은 학교에서 어떤 경험을 하셨고, 어떤 의문을 품었고, 어떻게 풀어가셨나요. 여러분의 목소리를 듣고 싶습니다. 어떤 말이든 조언을 듣고 싶습니다.

도대체 학교란 무엇일까요.


  1. 여자는 3일에 한 번씩 패야한다는 줄임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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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김미소
초대필자. 박사과정생

언어, 사회, 문화의 교차점에 관심이 많은 영어교육, 응용언어학을 전공하는 박사과정생입니다. 펜실베니아 주립대에서 공부하고 가르치고 방황하고 있습니다. →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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