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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x type=”note”]이 글은 2016년 11월 12일, 100만 명이 운집한 박근혜 하야 촛불집회를 접한 직후 필자의 소회를 적은 글입니다. 필자는 전직 저널리스트로, 현재는 캐나다에서 번역가와 프라이버시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100만 촛불집회에서 채 3일이 지나지 않은 현재, 적잖은 정치권의 입장 변화가 있었습니다. 이 변화는 글 말미에 따로 간략히 정리합니다. 더불어 이 글의 소재와 주제에 관한 다양한 보론과 비판 기고를 환영합니다. (편집자) [/box]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파문으로 박근혜의 하야를 촉구하는 시민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수많은 시민이 12일 오후 서울 광화문 세종대로에서 박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하는 촛불집회를 열고 있는 모습. (사진 제공: 민중의소리, ⓒ사진공동취재단) http://www.vop.co.kr/A00001087989.html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파문으로 박근혜의 하야를 촉구하는 시민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지난 12일 박근혜 하야를 촉구하는 촛불 집회에는 100만 명의 시민이 모였다. (사진 제공: 민중의소리, ⓒ사진공동취재단)

지난 12일 토요일, 서울 광화문에 1백만이 넘는 인파가 모였다고 한다. 한목소리로 박근혜 퇴진을 외쳤다고 한다. 집회에 참여하기 위해 상경하는 지역민들을 태운 전세 버스들로 고속도로는 돌연 체증까지 빚었다고 한다. 1987년 이한열 추모 집회 이후 최대 규모라고 하니 과연 비상시국임이 분명하다.

가슴 뜨거워지는 ‘사람의 물결’ 

이른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진 이후 부쩍 한국 소식에 관심을 두게 된 아내와 나는 지난 몇 주간 JTBC 뉴스를 종종 시청했다. TV로 보는 광화문 일대의 풍경은 실로 장관이었다. 사람을 물결에 비유한 ‘인파’라는 표현이 그보다 더 잘 어울리기 어려울 만큼, 광화문과 경복궁 일대는 사람, 사람의 물결로 도도하게 일렁거렸다. 시위 참가자들이 든 촛불은 마치 땅 위에 피어난 별처럼, 혹은 흐드러지게 만개한 장미꽃밭처럼 아름다웠다. 박근혜 하야, 박근혜 퇴진을 함께 외치는 목소리는 TV를 통해, 이역만리에서 그저 엿보는 우리에게도 파도처럼 몰아쳤다. 가슴이 뜨거워졌다.

그래, 민중의 힘이란 저런 것이다. 투표와 선거라는 간접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는, 저런 광야의 외침이, 직접 민주주의가 나올 수밖에 없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드러내는 부정부패와 권력 남용, 국정 농단과 전횡의 양상은 그 수준과 규모, 깊이와 파장에서 일반의 상상을 넘어선다. 현실을 넘어 비현실, 아니, 초현실의 4차원 세계를 넘나든다. 오죽하면, 황당무계한 이야기 전개와 허황한 판타지, 비틀린 윤리 의식으로 지극한 비웃음을 사면서도 사람들의 얄팍한 호기심을 자극해 연명해 온 이른바 ‘막장 드라마’들조차 꼬리를 내리겠는가.

한국 국민은 지금 화가 머리끝까지 나 있다. 1백만 인파를 자발적으로 모이게 한 12일의 광화문 시위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얼마나 많은 국민을 좌절에 빠뜨리고, 실망시키고, 분노케 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사과하라’도 아니고, ‘개각하라’도 아니다. ‘내려가라’다. 박근혜 너 이제 못 믿겠으니, 국정을 맡길 수 없으니 내려가라는 거다.

박근혜 하야 촛불집회 2016년 11월 12일 13일 새벽 촬영
2016년 11월 13일 새벽 1시경 경복궁 역(내자동) 사거리.

불안의 정체 

여기까지는 좋다. 나는 저 국민의 분노, 그로부터 결집된 에너지, 정치적 주장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나는 불안하다. 저 드높은 국민의 분노, 국민의 주장을 체계적으로 결집시켜 실질적인 변화의 동력으로 바꿔야 할 신뢰할 만한 정치 세력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그 정치 세력은 마땅히 더불어민주당(이하 ‘더민주’)나 국민의당 같은 야당이어야 온당할 터이다. 그런데 이들은 지리멸렬 갈피를 못 잡는 것 같다. 여소야대 정국이 무색할 지경이다. 박근혜 하야를 주장할 것이냐, 아니면 탄핵을 시도할 것이냐, 그리고 하야나 탄핵에 병행한 정국 대안은 무엇이냐에 대한 답, 까지는 아니더라도 큰 합의는 있어야 할 텐데, 그런 게 보이지 않는다. 야당 대표들이 만나서 진지한 논의를 벌였다는 뉴스도 들리지 않는다.

일렁이는 1백만 인파의 장관을 찍은 여러 사진 속에서, 나는 실로 심란하기 짝이 없는 사진을 만났다. 두 야당이 따로 노는 풍경이다. 한쪽은 초록색으로, 다른 쪽은 파란색 머플러들을 두르고 앉은 풍경. 힘을 합쳐도 모자랄 판에 각개전투를 벌이는 꼴이다. 도대체 이게 무슨 유치 찬란한 작태냐! (아래 사진은 한 페이스북 친구의 포스팅을 캡처한 것.)

더민주 국민의당

대의 위해 뭉치는 야당?  

80년대 중반의 가열찬 민주화 운동 이래, 지금처럼 온 국민이 거의 한마음으로 뭉친 적은 없었다고 본다. 역대 어느 정권에서도 지금처럼 한목소리로 대통령 하야를 외친 적은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지금의 야당 정치인이라는 자들은 이 엄청난 동력을, 변화의 외침을, 어떻게 수용하고 반영해야 할지 전혀 모르는 것 같다.

아니, 제대로 고민조차 하지 않는 것 같다. 갈팡질팡, “광장은 광장의 방식으로 이야기하고, 또 국회는 국회의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 가야 한다”(우상호, 2016년 11월 8일 JTBC 뉴스룸 인터뷰)는 둥 실로 새누리 2중대쯤으로 불려도 쌀 수준의 대응 아닌 대응 행태를 보인다. 이럴 때 두 야당이, 아니 정의당, 녹색당, 기타 대표성 있는 모든 야권 세력이 손잡고 연대해서 한목소리를 내면 어디가 덧나는가?

더민주 국민의당 정의당

안철수나 문재인이나, 혹은 다른 소위 ‘대권 잠룡’들이나, 참 졸렬하고 편협하다는 사실을, 이번 박-최 게이트를 거치면서 새삼 확인한다. 혹시 1백만 인파가, 혹은 박근혜에 반대하는 95%의 민심이 곧바로 당신들을 대통령으로 밀어줄 지지 세력이라고 지레 김칫국부터 마시고들 있지는 않은지?

시위 현장은 물론이고 한국에 얼굴도 비치지 않는 저 무능의 아이콘 반기문이 차기 유력한 대선주자로 꼽히는 황당하기 짝이 없는 여론조사 내용에서, 정말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는가? 김대중-김영삼의 양김 시대를 떠올려 봐도, 지금의 야권 세력, 특히 차기 대권을 꿈꾸는 이들의 행보는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설령 서로 말도 섞기 싫고, 꼴도 보기 싫은 상대라고 해도 때로는 대의를 위해 손을 잡아야 하고, 발을 맞춰야 하고, 힘을 더해야 한다. 그런데 그런 시도가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 외침 담아낼 대안 제시하라 

단언컨대, 아마 다음 주에도 1백만, 혹은 그 이상의 인파가 광화문을 메울 것이다. 박근혜가 사퇴·하야 발표를 하든 하지 않든 다음 주에도 광화문은 국민의 함성으로 가득 할 것이다. 사퇴하지 않았으면 사퇴하라고, 사퇴 성명을 낸 경우엔 승리의 감격을 나누기 위해서.

국민의 시위는, 거리로 몰려나온 외침은, 그러나 결코 언제까지나 지속 가능하지 않다. 그런 외침과 주장과 비판을 제대로 담아내어 국정에 반영할 수 있는 틀이, 구조가 절실하다. 야당들은 제발 야당 노릇 좀 제대로 하기 바란다. 국민의 성난 외침을 지속 가능한 정책과 틀로 담아낼 수 있는 체계적인 전술과 전략을, 제발 보여주기 바란다.

박근혜 하야 촛불집회 2016년 11월 12일 13일 새벽 촬영

 

사족.

무려 1백만 인파가 모였는데도 거의 아무런 폭력 사태도 불상사도 발생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놀랍다. 고 백남기 농민의 안타까운 비극을 떠올려 보면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그로부터 ‘1등 국민의 품격’이니, ‘세계가 놀라고 있다’느니 ‘남다른 국격’이라느니 따위 자찬을 끌어내는 모습은 볼썽사납다.

도대체 언제까지 ‘세계가 지켜보고 있다’는 주문을 붙들고 살 건가? 그런 식이라면, ‘1등 국민이 어떻게 박근혜 같은 자를 대통령으로 뽑았느냐?’라는 질문도 감수해야 한다. 남 눈치 보기, 남과 비교하기, 이젠 의식적으로라도 자제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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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 주요 정치인의 발언 경과 (10월 24일 이후)

  • 2016년 10월 24일: JTBC, ‘최순실 PC파일 입수. 대통령 연설 전 연설문 받았다’ 등 8개의 단독보도
  • 10월 25일: 박근혜, 1차 대국민담화 (1차 사과)
  • 10월 27일: 안철수(국민의당), “이 사건의 본질은 ‘최순실 게이트’나 ‘최순실 국기문란 사건’이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 국기문란 사건’ 또는 ‘박근혜 대통령 헌법 파괴 사건’입니다. 우선 대통령 권한을 최소화하고 여야가 합의해 새로 임명된 총리가 국정을 수습해가야 합니다.” (국민의당 제30차 의원총회 모두발언 중에서)
  • 10월 29일: 박근혜 하야 촛불집회 (1차)
  • 10월 30일: 최순실 귀국 
  • 10월 30일: 심상정(정의당), 검찰 항의 방문 “최 씨를 즉각 체포 수사할 것을 강력히 촉구하기 위해서 이 자리에 왔다.” “청와대에 대한 국정조사도 진행돼야 한다는 것이 우리 정의당 입장.”(관련 기사)
  • 11월 4일: 박근혜, 2차 대국민담화 (2차 사과)
  • 11월 5일: 박근혜 하야 촛불집회 (1차, 추산 20만 명)
  • 11월 8일: 우상호(더민주 원내대표), “광장은 광장의 방식으로 이야기하고, 또 국회는 국회의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 가야 합니다.” (JTBC 뉴스룸 인터뷰)
  • 11월 9일: 박지원(국민의당 비대위원장), “안철수 전 대표는 하야를 주장하고 있고 천정배 전 대표 같은 분은 탄핵을 외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우리 국민들의 분노와 불안을 대변하고 있기 때문에 저는 당 대표로서 불안을 해소하는 의미에서 저는 하야, 탄핵, 2선 후퇴 등을 아직 주장하고 있지 않지만, 지금처럼 대통령이 변화하지 않는다고 하면 우리는 민심의 촛불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 이렇게 말씀드립니다.” (JTBC 뉴스룸 인터뷰)
  • 11월 12일: 박근혜 하야 촛불집회 (3차, ‘민중총궐기’ 추산 100만 명)
  • 11월 14일: 박원순(서울시장), “지금 100만 명의 국민들이 모여서 했던 일치된 목소리가 즉각 사임입니다. (중략) 국민들 마음 속에선 이미 탄핵이 사실 이루어진 것입니다. (중략) 지금 사실 제1야당인 민주당이 이렇게 우왕좌왕하고 있는 것은 결국은 문재인 전 대표의 입장과 책임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당내 최대 세력인 문재인 대표가 입장을 확실히 정하지 않고 사실 그동안 입장이 계속 바뀌어왔지 않습니까? 이렇게 좌고우면하고 있으니까 머뭇거리고 있으니까 지금 민주당도 마찬가지로 저는 그런 입장을 보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 (CBS 라디오, 김현정의뉴스쇼 인터뷰)
  • 11월 14일: 추미애(더민주 대표),  일대일 영수회담 제안 → 청와대, 제안 즉각 수용 → 박지원, 심상정 등 비판 입장 발표 → 긴급 의총 → ‘박근혜 퇴진’ 당론 → 영수회담 취소. (관련 기사)
  • 11월 15일: 문재인(더민주), ‘박 대통령의 조건없는 퇴진’을 공식입장으로 기자회견. “안철수 전 대표 등 대권주자들과도 힘을 모으는 노력이 필요하다.” (관련 기사)
  • 11월 15일: 안철수(국민의당), “지금은 한 사람이라도 더 마음을 모아야 할 때”, “제대로 된 수사가 이뤄질 것인가 의구심이 든다. 박 대통령은 검찰 수사 이전 먼저 정치적 퇴진선언을 해야 한다.” (관련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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