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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를 예고한 책들: 주류정치의 실패와 거대한 역설

‘어제’는 트럼프 대통령을 진담으로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오늘’ 트럼프 대통령은 현실입니다.  미국 내 갈등과 분노, 그리고 유권자의 이해할 수 없는 선택 등 트럼프 시대를 예고한 책은 적지 않습니다.  ‘트럼프 시대’를 예고한 12권의 책을 두 번에 걸쳐 나눠 소개합니다. (편집자)

트럼프

트럼프 현상은 일종의 반란입니다. 미대륙 전체가 지리적, 경제적, 사회적으로 재편되고 있던 거시적 흐름에서 배제된 자들의 분노가 만들어낸 파국인 것입니다. 그러나 과거에는 이런 식으로 배제되었던 자들이 이익집단을 조직해서 정당과 연결되었습니다. 2차 산업혁명이 한창이던 미국에서 형성된 조직노동은 뉴딜 시기에 민주당과 동맹을 형성하여 민주당이 온전한 진보정당으로 자리 잡는 계기를 마련했습니다.

주류정치의 실패

그러나 왜 지금은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는 것일까요? 공화당 주류와 민주당 주류는 모두 다수 미국인의 선택을 받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기성 정당에서 벗어나겠다고 주장하는 샌더스와 트럼프가 돌풍을 일으켰습니다. 돌풍보다는 바다 깊숙한 곳에서 올라오는 거대한 파도가 더 어울리는 비유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이런 변화의 근저에는 세계화, 기술혁명, 뒤이은 산업구조의 변동이 자리 잡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DonkeyHotey, Bernie Sanders - Portrait, CC BY https://flic.kr/p/vVL7to

버니 샌더스 (출처: DonkeyHotey, “Bernie Sanders – Portrait”, CC BY)

하지만 그래도 미국 대통령 선거는 정치적 사건입니다. 미국 대선을 볼 때 우리는 사회에서 새로이 형성되고 있던 갈등 축을 워싱턴 벨트웨이의 주류 정치인들이 제대로 포착해내지 못한, 정치의 파행이라는 점을 빼놓을 수가 없습니다. 이런 이유로 기성 정당 주류의 실패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정치를 볼 필요가 있습니다. 다음의 두 책은 그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10. 플루토크라트 (크리스티아 프릴랜드) 

이 책은 세계화와 기술혁명이라는 두 조류가 선진사회의 중산층을 어떤 식으로 파괴했는지 말해주는, 앞서 소개한 책들의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책입니다. 그리고 그 부는 철저히 슈퍼스타 경제의 논리를 따라가면서 소수 중의 소수에게로 집중되게 됩니다.

이들 중에선 실리콘밸리의 혁신가들도 있겠지만, 다수는 정부 요직에 가까운 곳에 있는 이들로 국가가 제공해주는 기회를 포착해서 초월적인 수준의 지대추구 행위를 벌이면서 특혜를 받습니다. 이런 계층을 저자인 크리스티야 프릴랜드는 “플루토크라트”라고 칭합니다.

크리스티아 프릴랜드 ㅣ 박세연 옮김 ㅣ열린책들 | 2013

크리스티아 프릴랜드 ㅣ 박세연 옮김 ㅣ열린책들 | 2013

플루토크라트들은 개발도상국 수억 명을 빈곤층에서 중산층으로 끌어올리고 이전 시대 사람들은 결코 생각도 못 했던 기술혁신의 혜택을 제공해주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그들은 자신들이 일반 대중들과 유리되면서 발생하는 위협에 대해 무지합니다. “나의 이익이 모두의 이익”이라고 스스로 믿게 되고, 불평등을 감내하라고 이야기합니다. 2008년의 금융위기는 “분수를 모르는 골프 캐디” 때문에 일어난 것이기에 99%의 요구를 진지하게 취급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정당을 포획하여 엄청난 이익집단으로 자신들의 힘을 과시해왔습니다. 플루토크라트들과 나머지의 인식의 간극을 줄이고 평등한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새로운 뉴딜을 창출하는 것은, 뉴딜이라는 말을 처음 만들어낸 어떤 정당에 주어진 핵심적 과제가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11. 다운사이징 데모크라시 (매튜 크렌슨 , 벤저민 긴스버그) 

미국의 정당들은 대중들을 자신들의 지지기반으로 계속 포섭해오면서 확장해오다가 20세기를 거쳐 가면서 얼굴 없는 관료들이 대중의 참여를 배제하는 방향으로 진화해갔습니다. 그 과정에서 대중들은 정치에 참여하는 시민이 아니라 정부 서비스를 구매하는 고객이 되었습니다. 양대 정당들은 대중이 아닌 다양한 제도와 기관들을 지지기반으로 동원하였고, 의회에서의 표결보다는 법관들의 판결에 자신들의 정책의 명운을 걸기 시작했습니다.

동성결혼 합법화를 포함한 오바마의 숱한 진보적 정책들은 백악관에서 나오는 대통령의 행정명령과 연방대법원의 판결로 정당화되었고 민의가 (그마저도 불완전하게) 대변된다는 의회는 우회되었습니다. 이런 경향이 누적되자 소위 정치에 참여할 능력이 있는, 소송을 제기하고 로비를 하며 여유 있는 동료들을 조직할 수 있는 사람만 남겨놓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것이 이 책의 주장입니다.

매튜 크렌슨 , 벤저민 긴스버그 ㅣ서복경 옮김 ㅣ 후마니타스 | 2013

매튜 크렌슨 , 벤저민 긴스버그 ㅣ서복경 옮김 ㅣ 후마니타스 | 2013

과연 러스트 벨트의 실직자들은 과연 어떤 의견을 제기하고 어떤 소송을 할 수 있었을까요? 그들이 이토록 급진적인 “반란”을 선택한 이유는 여러 가지겠지만 결국 대중의 갈등 축과 이익을 대변해줌으로써 사회와 국가를 연결해준다는 정당의 기능을 주목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운사이징 데모크라시는 2002년에 나온 책이며, 상당히 음울한 논조로 끝을 맺습니다. 그 후 14년을 이야기해주듯 말이죠.

거대한 역설 

입에 올리기도 끔찍한 말인, “트럼프 대통령”은 경제, 정치, 사회 면에서 장기간 누적되어온 변화의 산물입니다. 그 변화상을 따라가지 못하고 배제된 자들이 일으킨 반란인 것입니다. 그들에게 힐러리는 매력적이지 않았던 선택지가 실제로 맞았습니다. 이런 면에서 힐러리 전략이 무엇 때문에 실패했는가를 분석하는 것은 매우 중요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가 트럼프 지지가 정당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각종 혐오와 편견으로 점철된 트럼프는 일반 대중의 그릇된 인식을 이용해서 자신의 이득을 편취하고자 한 이입니다. 인류의 명운이 달린 기후변화 문제에 대한 트럼프의 태도는 어떻던가요? 그가 책임성 있는 경제정책과 안보정책을 시행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을 대통령으로 올린 선택은, 분명히 말하지만, 스스로 선택한 파국과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트럼프 지지가 도덕적으로 정당화할 수 없다는 점은 분명히 해야 합니다.

트럼프 막말과 품성(?)을 패러디한 이미지 (출처: Moanaipo)

트럼프 막말과 품성(?)을 패러디한 이미지 (출처: Moanaipo)

문제는 이들이 스스로 파국을 선택하지 않았을 때 다른 어떤 선택지들이 남게 되냐는 것입니다. 저축이 바닥나고 있는데 문화적 정의를 위해 활약하는 뉴욕과 샌프란시스코의 미래 엘리트들을 보면서 언제까지 흐뭇해할 수 있을까요? 이제 미국에 다시 사회적 신뢰를 회복시켜줄 믿음과 신뢰를 줄, 그러한 비전을 힐러리가 잘 제공해주었는지 다시 물어야 합니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는 적어도 퇴행적이긴 하지만, 다른 비전을 제시해줬습니다. 이제 “불구가 된 미국”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신호를 보내준 것입니다. “함께 더 강하게”(Stronger Together)는 그런 비전을, 적어도 옳든 옳지 않든 간에 강렬한 비전을 제시해줬을까요? 글쎄, 결과가 어느 정도 말해주지 않았나 싶습니다.

어떤 면에서 이는 거대한 역설입니다. 트럼프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구호로 대통령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미셸 오바마의 연설을 기억하시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나는 매일 아침 노예들이 세운 백악관에서 일어나고, 나의 딸들, 두 아름답고, 지적인 젊은 흑인 여성이 그 백악관 잔디밭에서 개들과 노는 모습을 봅니다.” 이는 미국이 전적으로 위대한 국가, 가장 비참했던 자들조차도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진보의 국가라는 것을 선언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즉,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구호는 잘못된 구호이며, 미국은 이미 위대한 국가라는 것입니다. (아래 동영상 24초부터)

하지만 두 가지는 배치되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미국은 수많은 인종이 모여서 만들어낸 문화적 다양성과 번뜩이는 창의성으로 발전했습니다. 미국은 영국 중심의 세계화를 통해 성장했고 그 후에는 자신들이 세계화를 직접 이끌었습니다. 누구보다 혁신적인 미국인들이 만들어낸 실리콘밸리는 이 세상을 혁명적으로 바꾸어 놓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직시해야 할 것은 바로 미국을 위대하게 만든 바로 그 점들이 미국의 위대함에 빛을 바라게 한다는 점입니다. 해소되지 못한 인종적 다양성은 사회적 긴장을 끌어올렸습니다. 세계화와 기술혁명은 수많은 노동자들을 실직시켜 엄청나게 불평등한 사회를 만드는 데에도 공헌했습니다.

[다운사이징 데모크라시]를 소개하면서 시민의 소외를 이야기했지만, 사실 그것은 다른 면에서는 정실주의를 개혁하자고 소리 높여 외치던 혁신주의 운동가들이 만들어낸 행정 합리화이기도 했습니다. 실리콘밸리의 부흥은 러스트 벨트의 몰락과 함께합니다. 도시의 승리는 시골의 패배로 이어집니다. 오바마를 위대한 대통령으로 만들어준 그 힘들이 트럼프를 만들어준 힘을 낳았던 것입니다.

12. 왜 서양이 지배하는가 (이언 모리스) 

그래서 제가 마지막으로 추천해 드리고자 하는 책은 이언 모리스의 [왜 서양이 지배하는가]입니다. 모리스는 “사회발전은 사회발전을 저해하는 힘 또한 만들어낸다”라고 했습니다. 로마 제국과 한나라는 당시 문명의 역사상 유례가 없던 첨단 제국을 건설했지만, 그들이 유라시아 구석구석으로 파고들자 질병이 창궐하고 유목민이 발흥해 제국을 파괴했습니다. 트럼프의 당선, 기후변화, 브렉시트, 난민과 동아시아의 군사적 위기 등 또한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세계화, 기술혁명으로 대변되는 아찔한 사회발전의 파고는 다수 인류에게 전례 없는 풍요와 전례 없는 위기를 함께 안겨주고 있습니다. 이 위기를 어떻게 다뤄야만 할지에 대한 해답은 이 위기가 어떻게 초래되었는가를 알아야만 가능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제조업을 다시 불러오고 멕시코인들을 쫓아내는 것은 해답이 될 수 없습니다. 미국을 위대하게 만든 요소와 미국을 불구로 만든 요소는 동전의 양면이기 때문입니다.

이언 모리스 ㅣ 최파일 옮김 ㅣ 글항아리 | 2013

이언 모리스 ㅣ 최파일 옮김 ㅣ 글항아리 | 2013

따라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욱 많은 증거, 더욱 정확한 지식, 그리고 더욱 올바른 해결의 방향입니다. 그리고 그에 기반한 합의입니다. 제가 여기서 언급한 책들은 인류가 쌓아놓은 거대한 지식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합니다. 제가 저 책들을 다 이해하고 소개한 것인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열린 사회에서 행해지는 차분한 지적 교류야말로 우리에게 놓인 위기를 극복하는 사실상 유일한 열쇠 아닐까 싶습니다. 지구 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서 말입니다.

트럼프의 당선은 우리가 그동안 믿어오던 합리와 상식의 전면 부정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이렇게 당혹스러워하고 공포스러워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하버드 최고의 아시아 전문가 에즈라 보걸 교수는 중국의 덩샤오핑에 대해서 이렇게 평했습니다. 우리 시대에도 당연히 적용되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것은 살아 움직이고 변화하며, 일은 사람 하기에 달려 있습니다. 주관적 의지와 객관적 상황을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무언가를 성취하는 사람과 국가는 매우 위대하죠.”

트럼프는 어떤 의미에서 자신의 ‘위대함’을 증명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누구나 실패할 것으로 생각했던 대통령 레이스를 끝끝내 자신의 성취로 이어갔으니까요. 그러나 그 위대함이 어떤 의미인지는 결국 그 성취가 어떤 종류의 것인지에 따라 달려있을 겁니다. 개인적으로 위대하다고 생각되는 또 다른 사람 이야기를 하며 글을 마치고자 합니다.

위대함과 비극, 마이클 잭슨

마이클 잭슨은 미국의 인종적 다양성의 산물입니다. 흑인으로서 미국 음악계의 최정상에 최초로 발을 디딘 것이 바로 그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전후 미국의 소비자본주의와 매스미디어를 통해서 최정상에 올랐습니다. 일개인으로서 그가 벌을 수 있었던 엄청난 돈은, 능력 여하에 따라서는 상상을 초월하는 보상도 거리낌 없이 해주는 미국 문화의 산물입니다. 또한, 전후 소비자본주의의 최정상에 위치한 국가, 미국의 스타였기에 그는 세계의 스타가 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마이클 잭슨을 위대하게 만들어준 그 요소들이 마이클 잭슨의 인생을 비극으로 이끌었습니다. 인종 다양성이 낳은 문화적 풍요로움으로 그는 위대한 예술을 개척했습니다. 하지만 끊이지 않는 흑백갈등으로 그의 백반증은 후에 가십거리로 전락했습니다. 또한, 그를 가장 철저히 깔아뭉개버린 것은 그를 정상의 위치로 올려준 미국의 매스미디어였습니다. 그는 “팝의 제왕”이었지만, 정작 본인은 행복한 삶을 살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미국 사회를 진정으로 위대하게 만들어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인종 간 화합에 대해, 빈곤국에 대한 선진국 시민의 책임에 대해, 그리고 갈수록 파괴되어가는 지구환경에 관해 이야기했습니다. 그는 미국, 나아가서 인류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았습니다. 저 역시 트럼프의 당선으로 좌절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여러분께 외쳐보려고 합니다. 20년 전의 이 공연을 보라고. 자신의 연인이나 형제가 된다면 흑인이든 백인이든 상관없다고 외치는 수많은 미국인을 보라고. 이것이 바로 미국이, 인간이 위대한 이유이고 그렇기에 우리가 결코 희망을 놓아서는 안 된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전에 친구가 저에게 그런 적이 있습니다. “명묵 씨 글에서는 ‘애석하게도’라는 말이 많이 나오는 것 같아요.” 생각해보니 그런 것 같아서 그 친구에게 한 마디 더 해줬죠. “파행이랑 파국이라는 말도 많이 써요.” 애석하게도, 트럼프의 당선은 대변 받지 못한 이익들이 정당정치의 파행에 분노하여 만들어낸 파국입니다.

‘애석하게도’라든지, ‘파국’, ‘파행’과 같은 말들은 현재 미국 사회, 나아가서 세계를 가로지르고 있는 역설, 즉 진보와 빈곤이 함께 나타나는 역설을 설명해주기에 좋은 말일 것입니다. 미국 문제가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선진사회에서 일어난 변화상들을 극단적인 형태로 어느 정도 예고한다는 점에 있습니다. 한국도 어떤 형태로든 트럼프 위기를 겪을 개연성이 존재합니다. 그것이 미국에서 일어난 일을 우리가 진지하게 다시 고민해보아야만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애석하게도”라는 말은 저의 바람과 세계의 현실이 일정 부분 어긋나기 때문에 많이 쓰는 말일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아야, 그에 대한 더 나은 답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오늘도 저는 “애석하게도”를 외칩니다. 하지만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바라본 뒤 좌절하지 않고, 더 나은 내일을 위해 다시 힘을 내고자 한다면 “애석하게도”만으로는 부족한 것 같습니다. 우리는 조금 다른 말이 필요합니다. 이건 다른 친구의 페이스북 글에서 본 말입니다. 위에 소개한 마이클 잭슨의 공연 영상을 보고 나서 든 생각이기도 합니다. 다 같이 마음속에 되뇔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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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임명묵
초대필자

전문성이 부족한 학부생입니다. 세계를 설명하는 많은 지식들이 서로 연결되는 것을 보고 싶습니다. →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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