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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팅의 역사: 2. 선전의 대가들 – 버네이스와 괴벨스

지금 당장 ‘마케팅 프로세스’를 검색해보라. 정석으로 여겨지는 필립 코틀러의 방법론부터 다양하게 변형된 프로세스의 향연을 감상할 수 있다. 필립 코틀러의 R-STP-MM-I-C 프로세스 각 단계 중 코틀러의 순수 창작은 없다. 이미 존재했던 개념을 결합해 ‘마케팅 프로세스’라고 불렀을 뿐이다.

하지만 이를 수학 공식처럼 여기는 사람이 있다. 중요한 것은 본질이다. 방법론은 그저 방법론일 뿐이다. 마케팅의 역사를 알면 익숙한 여러 기법의 본질에 접근할 수 있다. 본질을 이해하면 시야가 넓어진다. 스스로 마케팅 전략을 수립할 수 있고, 어설픈 컨설턴트를 걸러낼 능력도 생긴다.

이 연재 ‘마케팅의 역사’가 형식보다는 그 본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 (필자)

  1. 괴벨스, 마왕의 마케팅 
  2. 선전의 대가들 – 버네이스와 괴벨스 
  3. 오길비, 브랜드 이미지의 탄생 
  4. 마케팅 비긴즈 – 슬론과 드러커

선전은 비즈니스 세계에서 그다지 전문적인 분야가 아니었다. 기업은 ‘무엇을 팔까?’를 중시했다. ‘어떻게 팔까?’를 고민하는 것은 실효성 없는 시간 낭비였다. 따라서 장인이나 발명가는 존중받았지만, 선전가는 천대받았다. 사람들에게 필요한 물건을 사라고 알려주는 게 선전이었다. 선전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에드워드 버네이스 

에드워드 버네이즈1919년, 선전이 잡부의 일로 치부되던 시대. 세계 최초의 PR 에이전시가 미국에 들어섰다. 에드워드 버네이스(Edward Bernays, 1891년~1995년, 사진)가 뉴욕에 사무실을 연 것이다. 버네이스는 선전이 비즈니스 세계에서 하나의 전문분야로 인정받기를 원했다. 그의 명함에는 ‘PR 고문’이라는 직함이 새겨져 있었다.

1. 베니다 헤어넷 & 뉴욕 트라이앵글 의류공장 화재사건 

1920년, 머리망 제조업체 ‘베니다 헤어넷‘(Venida Hair Net)이 버네이스에게 의뢰를 해왔다. 의뢰 내용은 자사의 머리망이 많이 팔리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만일 당신이 버네이스라면 어떤 방법으로 베니다 머리망을 선전할 것인가? 일반적이라면 예쁜 무성영화 여배우를 모델로 하는 광고 전단을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버네이스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베니다 헤어넷

베니다 헤어넷

1911년 뉴욕 트라이앵글 의류공장 화재는 911테러가 있기 전까지 미국 최악의 참사였다. 희생자는 모두 여성이었고 15분 만에 146명이 사망한 끔찍한 사고였다. 이 사고로 인해 뉴욕에 공장조사위원회가 발족했고, 1915년부터 1920년까지 60여 개의 산업 안전 관련법이 신설되었다.

버네이스는 당시 이슈였던 안전에 주목했다. 그는 풀어헤친 머리가 공장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들에게 매우 위험하다는 캠페인을 전개했다. 만약 여성의 긴 머리카락이 기계에 휘말려 들어간다면 위험한 것은 엄연한 사실이었다.

뉴욕 트라이앵글 의류공장의 직원들, 그리고 비극적인 화재 사건(1911)

뉴욕 트라이앵글 의류공장의 직원들, 그리고 비극적인 화재 사건(1911)

공장에서 일하는 여성은 자발적으로 베니다의 머리망을 구매하기 시작했다. 베니다의 머리망은 얼마 안 가 유행이 되었다. 결국, 몇몇 주 정부에서 버네이스의 캠페인을 진지하게 받아들였고 여성근로자가 공장에서 머리망을 착용해야 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베니다의 머리망은 의무가 되었다.

2. 아이보리 비누 & 비누 조각

요즘도 그러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독자라면 어린 시절 초등학교 미술 시간에 비누로 조각한 기억이 있을 것이다. 학부모나 선생님들은 단순히 교육적 차원의 미술 교과과정 중 하나로 생각했겠지만 사실 이것도 버네이스의 작품이다.

1897년에 출시된 아이보리는 ‘물에 뜨는 비누’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당시 미국의 농가에서는 개울에서 빨래하고 몸도 씻는 경우가 많았는데, 물에 뜨는 비누는 분실 우려가 적고 개울에서 사용하기도 편리했다. 아이보리는 불티나게 팔렸고 시장은 금세 포화상태에 다다랐다. 성장을 지속시키기 위해서는 뭔가 다른 행동을 취해야 했다. 1924년 P&G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버네이스를 찾는다.

물에 뜨는 비누로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던 아이보리 비누

물에 뜨는 비누로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던 아이보리 비누

버네이스는 누가 비누를 가장 싫어할지를 먼저 생각해보았다. 답은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은 종일 밖에서 뒹굴다가 흙투성이가 되어 돌아온다. 가장 비누가 필요한 게 아이들이었지만 가장 씻기를 싫어하는 것도 아이들이었다. 버네이스는 아이들이 비누에 친숙해지면 씻는 횟수도 획기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판단했다. 그렇게만 된다면 비누의 시장규모는 지금보다 좀 더 확장될 수 있었다.

버네이스는 ‘비누 조각품 경연대회’를 열었다. 첫 번째 대회의 참가자격은 예술가들에게 주어졌다. 수상작은 뉴욕을 비롯해 각지 박물관과 미술관에 순회 전시되었다. 이로써 비누 조각품은 사람들에게 예술 작품처럼 여겨지게 되었다.

이제는 친숙한 비누 조각품 (출처: 구글 이미지 검색 - '비누조각')

이제는 친숙한 비누 조각품 (출처: 구글 이미지 검색 – ‘비누조각’)

두 번째 대회부터는 초등학생까지 참가자격을 넓혔다. 예술가들만 참여하는 대회에 아이들도 참가할 수 있게 되자 부모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자녀들을 참가시켰다. 아이들도 좋아했다. 비누는 아이가 자신의 상상력을 어려움 없이 조각해 뽐낼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부드러웠다. 게다가 목욕하면서 가지고 놀 수도 있었다.

아이도 부모도 비누 조각에 열광했다. 대회는 매번 성공적으로 치러졌다. 대회에 사용된 비누는 전량 아이보리 비누였지만 대회 어디에도 상업적인 흔적은 없었다. 비누 조각품 경연대회는 미국 전역을 휩쓸며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버네이스는 이후 30여 년간 P&G의 PR을 전담하게 된다.

3. [프로파간다] (1928) – “집단 습관” 

버네이스는 자신의 저서 [프로파간다] (Propaganda, 1928)에서 기존의 보편적인 선전 방식을 옛 방식이라 말하며 자신을 ‘새로운 선전가’로 칭했다. [프로파간다]가 출간된 1928년을 기준으로 당시의 보편적인 선전은 오늘날의 보편적인 선전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온 세상에 울리는 맑고 고운 소리~ 영창 피아노~
맑은 소리~ 고운 소리~ 영창피아노~ 영~창~

버네이스의 [프로파간다]에 따르면 구시대적 선전가는 피아노를 알리는 것에 주력한다. 반면 새로운 선전가는 ‘집단 습관'(Group Custom)을 이끌어내어 피아노가 팔리는 환경을 만드는 것에 주력한다. 집단 습관이라는 용어가 생소할 수 있지만, 사실 누구나 쉽게 경험하는 현상이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 대다수 아주머니들이 파마머리를 하는 것, 중년층이 등산복을 즐겨 입는 것 등이 모두 집단 습관에 해당된다.

버네이스는 피아노에 대한 집관 습관을 이끌어내기 위해 ‘가정 음악실’을 유행시키는 방법을 제안한다. 먼저 이름난 인테리어 디자이너와 협력하여 ‘뮤직 룸 페어’ 행사를 개최하고 시대별 가정 음악실을 전시한다. 가정 음악실은 적절한 소품과 장식들로 고급스럽게 연출한다. 그다음 유명 음악가들을 섭외해 가정 음악실에서 연주회를 열고 영향력 있는 사람들을 대거 초청한다.

이것이 반복되다 보면 많은 사람의 머릿속에는 전에 없던 ‘가정 음악실’이라는 개념이 생겨난다. 최신 트렌드에 민감한 인테리어 디자이너들은 고객에게 가정 음악실을 제안하기 시작한다. 가정 음악실은 점차 집단 습관으로 자리 잡고 딱히 피아노를 선전할 필요가 없게 된다. 사람들이 가정 음악실에 놓을 피아노를 사기 위해 제 발로 찾아오기 때문이다. 이것이 버네이스가 프로파간다에서 주장하는 새로운 선전법이다.

상품 자체가 아니라 상품을 Propaganda (Edward bernays,1928)

상품 자체가 아니라 상품이 팔리는 환경, “집단 습관”을 끌어내는데 주력하라. [Propaganda] (Edward bernays,1928)

 

대중의 관행과 의견을 의식과 지성을 발휘해 조작하는 것은 민주사회의 중요한 요소다.

– 에드워드 버네이스

버네이스의 열렬한 팬, 괴벨스

나치의 선전 장관 괴벨스는 버네이스의 열렬한 팬이었다. 버네이스가 쓴 책은 모두 괴벨스가 애독하는 교과서가 됐다. 1923년에 출간된 세계 최초의 PR 전문서 [여론 정제] (Crystallizing Public Opinion)는 괴벨스가 독일 내 반유대주의 여론을 끌어올리는 것에 이론적 바탕이 되었다.

Propaganda (Edward bernays,1928)

괴벨스가 반유대주의 여론을 끌어내기 위해 이론적 바탕으로 삼은 책 [여론 정제], Crystallizing Public Opinion (Edward bernays,1923)

버네이스의 대표작 [프로파간다] 역시 괴벨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버네이스의 새로운 선전이 자발적으로 제품을 사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었다면, 괴벨스의 새로운 선전은 독일인이 자발적으로 나치가 되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 설득의 세 가지 방법 

버네이스가 주장하고 괴벨스가 따라 한 새로운 선전은 사실 말처럼 새로운 것은 아니었다. 그 개념은 2,300여 년 전, 알렉산더 대왕의 스승이자 플라톤의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가 이미 주장한 내용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저서 [수사학]에서 사람을 설득하는 방법을 세 가지로 정의했다.

아리스토텔레스

아리스토텔레스

첫 번째는 로고스(Logos)다. 로고스는 논리에 기반한 이성적인 설득을 의미한다. 아름다운 디자인 때문에 혹은 뛰어난 기능 때문에 우리 제품을 사야 한다고 설득하는 구시대적 선전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분류에 따르면 로고스에 해당한다.

두 번째는 파토스(Pathos)다. 파토스는 심리에 기반한 감정적인 설득을 의미한다. 머리망 선전에 공포 심리를, 비누 선전에 교육열과 과시욕을, 피아노 선전에 동조심리를 이용한 버네이스의 새로운 선전은 파토스 설득법과 일치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로고스가 파토스를 이길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인간은 입증된 사실보다 믿고 싶어 하는 사실에 더 이끌리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을 합리적인 존재가 아닌 합리화하는 존재로 보았다. 따라서 사람을 설득할 때는 로고스, 파토스, 에토스의 요소 모두를 사용해야 하지만 각 요소를 비교하자면 에토스가 가장 강력하고, 그다음이 파토스, 그다음 로고스가 가장 약하다고 보았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설득 이론과 버네이스의 선전술이 비슷한 이유는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버네이스와 동시대에 왕성하게 활동한 인물로 정신분석학의 대가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있었고, 프로이트의 이론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에 큰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거기에 결정적으로 프로이트는 버네이스의 삼촌이었다. 버네이스가 자신의 선전술에 심리학을 접목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세 번째는 에토스(Ethos) 1다. 선전술의 효과 측면만 본다면 괴벨스가 그의 스승인 버네이스를 훨씬 압도하는데, 그 비결이 바로 에토스에 있었다. 아래에서 설명하는 나치의 선전 주제들을 통해서 에토스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접근해보도록 하자.

히틀러의 영웅화를 통해 본 ‘에토스’ 

아래 서술할 내용에 앞서 히틀러는 절대 영웅이 아님을 확고히 밝히는 바이다. 그는 악마다. 다음 내용은 단지 괴벨스의 선전을 설명하는 것이니 오해가 없기를 바란다.

1. 영웅

이 자는 누구인가? 반신반인이다! 진실로 그리스도인가? 아니면 세례 요한인가?
이 자는 왕에게 필요한 모든 덕목을 빠짐없이 갖추었다. 타고난 호민관이며 떠오르는 독재관이다.

– 괴벨스의 일기 중에서

히틀러는 니체 기념관을 자주 방문했었다. 신은 죽었다고 선언했던 니체는 그의 책 [도덕의 계보]에서 ‘금발의 야수’가 출현할 것을 예언했었다. 니체가 예언한 금발의 야수는 자유롭게 살인, 방화, 강간을 저지르고 태연하게 돌아오는 세상의 주인이었다. 히틀러는 니체가 예언한 금발의 야수가 자기 자신이라 믿었다.

니체

니체

괴벨스는 히틀러가 독일을 구원할 그리스도라 믿었다. 그에게 니체는 히틀러를 예언한 세례 요한 같은 존재였다. 괴벨스는 독일 민족 전체가 히틀러를 따르는 금발의 야수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히틀러가 독일 민족의 영웅으로 추대될 필요가 있었다.

히틀러를 메시아로 만들기 위해 괴벨스가 한 작업은 성경을 독일 아리아인과 유대인의 투쟁사로 만드는 것이었다. 친나치 신학자들에 의해 예수는 유대인이 아닌 아리아인이 되었다. 구약 성경은 폐기되었다. 십계명은 십이계명으로 바뀌었다. 추가된 계명은 ‘총통을 경외하라’, ‘네 혈통과 명예를 순수하게 지켜라’였다. 히틀러 우상화에 반대하는 고백교회가 생겨났지만, 잔인하게 탄압당했다.

괴벨스는 독일인들이 히틀러를 예배하게 만들었다. 히틀러가 연설할 때의 분위기는 마치 부흥회를 방불케 했다. 많은 독일인이 탄식하고 함성을 지르고 기도하고 간절해 하며 히틀러의 연설을 경청했다. 괴벨스는 히틀러를 모든 위기에서 독일을 구원할 메시아로 만들었다.

히틀러

히틀러

2. 영웅의 집

영웅은 그에게 걸맞은 집을 가지고 있다. 영웅이 사냥꾼이라면 그의 집에는 온갖 동물들이 박제되어있다. 영웅이 해적이라면 그의 집에는 온갖 진귀한 보물들이 장식되어있다. 영웅이 신이라면 그의 집은 웅장한 신전이다. 히틀러의 경우는 신전에 가까웠다. 여기에 대해서는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알베르트 슈페어 알베르트 슈페어(Albert Speer, 1905년~1981년, 사진)는 베를린 나치 지부당의 리모델링 공사를 맡은 인연으로 괴벨스와 친해진다. 이후 나치의 주요 건축을 도맡게 되는데 총통 관저도 그의 작품이었다. 총통 관저는 베르사유 궁전을 많이 닮아있었지만, 규모는 더 컸다. 분위기는 전체적으로 더 무겁고 장엄해서 신이 거주하기에 합당한 건물처럼 보였다.

1939년 3월 15일 나치가 뮌헨조약을 깨고 체코슬로바키아를 포위한다. 체코슬로바키아의 대통령 하샤는 히틀러와 외교 담판을 짓기 위해 총통 관저를 방문했다. 하샤는 총통 관저의 규모와 위엄에 크게 놀랐다. 심리적으로 크게 위축된 하샤는 용기를 내어 어렵게 걸음을 떼었다. 9m가 넘는 천장의 긴 복도는 걸을 때마다 하샤에게 가슴을 짓누르는 듯한 압박감을 주었다.

신 총통관저(Neue Reichskanzlei)의 400m가 넘는 복도로 가기 전에 위치한 첫 대리석 홀의 모습 (출처: 미상, CC BY-NC-SA 2.0 KR) https://namu.wiki/w/%ED%8C%8C%EC%9D%BC:attachment/neueReichskanzlei.jpg

신 총통관저(Neue Reichskanzlei), 400m가 넘는 복도로 가기 전에 위치한 첫 대리석 홀의 모습 (출처: 미상, CC BY-NC-SA 2.0 KR)

복도를 지나 히틀러의 집무실에 들어섰을 때 하샤는 위압감을 이기지 못하고 심장발작을 일으키며 질식하고 만다. 결국, 하샤는 외교 담판은커녕 말 한마디 뱉지 못하고 항복문서에 힘없이 사인했다.

3. 퀘스트

모든 영웅은 그가 달성할 위대한 과업을 가지고 있다. 테세우스의 과업은 미노타우르스 퇴치였다. 배트맨의 과업은 고담 시티를 지키는 것이었다. 만일 당신이 이런 영웅들과 동료가 되어 함께 모험한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광개토대왕을 도와 중원을 제패하고, 이순신을 도와 일본을 정벌하는 상상은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꿈꿔보는 판타지일 것이다. 괴벨스는 그런 상상이 현실이 될 때 사람들이 느낄 희열과 흥분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히틀러는 저서 [나의 투쟁]에서 삶의 터전인 ‘레벤스라움'(Lebensraum; 생활권)을 확보해야 독일 민족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레벤스라움 확보는 히틀러의 과업이었다. 괴벨스는 히틀러가 레벤스라움을 확보하기 위해 벌일 기나긴 투쟁을 신화로, 신화를 현실로 만들고자 했다. 그리고 그 신화에 독일인들이 동참하고 있음을 느끼게 해줌으로써 독일 민족 전체가 히틀러에 열광하게 만들 계획이었다.

히틀러와 독일 국민들이 함께할 영웅 서사시에 딱 어울리는 소재는 북유럽 신화였다. 마침 북유럽 신화는 니체의 예언과도 드러 맞았다. 신들과 인간들이 무참히 죽는 라그나로크. 그 신들의 전쟁을 일으킨 로키는 니체가 말한 사자를 닮아있었다. 그리고 라그나로크 이후에 나타나 세계를 다스릴 초인은 니체가 말한 어린아이와 그럴듯하게 맞아떨어졌다. 니체가 북유럽 신화의 요소를 많이 차용했기 때문에 당연한 것이었지만, 괴벨스는 이 구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로 한다. 히틀러는 로키였고, 모든 것을 파괴할 금발의 야수였으며, 그 파괴 위에 새로운 제3제국을 건설할 초인이었다.

라그나로크를 표현한 그림

라그나로크를 표현한 그림

4. 제복

히틀러를 따라 함께 금발의 야수가 되고 싶은 사람들에게 제복은 하나의 상징이었다. 때문에 영웅의 군대가 입을 제복은 그 어떤 옷보다 멋지게 디자인될 필요가 있었다. 나치 제복은 카를 디비히(Karl Diebitsch, 1899년~1985년)가 디자인하고 휴고 보스가 생산했다.

나치 제복은 특별한 의도로 디자인된 것이 아니라 단순히 당시 군대 제복의 전통을 따랐을 뿐이라는 주장이 있는데 틀린 말이다. 그것은 마치 아르마니 정장이 아르마니가 의도를 가지고 디자인한 게 아니라 단지 정장 디자인의 전통을 따랐을 뿐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

일부 몰지각한 자들의 나치 코스프레는 나치 제복의 매력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일부 몰지각한 자들의 나치 코스프레는 나치 제복의 매력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히틀러 자신이 실패한 예술가였고 괴벨스 역시 예술을 매우 중시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나치의 것 중 어느 하나 디자인이 경시된 것이 없었다. 거대한 전차에서 작은 단검에 이르기까지 나치는 항상 의도를 가지고 디자인했다. 나치는 히틀러 유겐트(Hitler-Jugend; 나치 독일의 청소년 조직)에 가입하면 단검을 줬는데 중2병을 자극할 만큼 디자인이 뛰어났다. 1936년 유겐트 법이 정해지기 전까지는 오로지 이 단검을 얻으려고 자발적으로 히틀러 유겐트에 가입하는 소년들도 많았다.

유겐트 단검

유겐트 단검

괴벨스 주도의 선전 포스터에는 나치 제복을 입은 무명용사들이 자주 등장했다. 이는 누구나 마음만 먹는다면 멋진 제복을 입고 히틀러와 함께 금발의 야수가 될 수 있다는 메시지였다. 유겐트 단검의 사례와 마찬가지로 멋진 제복만 보고 혹해서 나치에 자원하는 청년들이 많았다.

5. 테마곡

나치의 테마곡은 논란의 여지 없이 바그너(Wilhelm Richard Wagner, 1913년~1883년)다. 왜일까? 바그너의 곡 대다수가 북유럽 신화를 배경으로 했기 때문이다. 라디오에서, 오페라에서, 각종 행사에서 바그너의 음악이 들려올 때면 독일 국민들은 북유럽 신화를 연상했다. 그리고 히틀러의 전쟁을 오버랩시켰다. 바그너의 음악은 히틀러 영웅 서사시의 테마곡이었다.

괴벨스의 바그너 선곡은 북유럽 신화와 관계가 없더라도 히틀러와는 꼭 연관이 있었다. 예를 들어 나치 전당대회 때마다 연주된 ‘리엔치'(Rienzi)는 귀족들로부터 평민을 지키는 정의로운 호민관에 대한 노래였다. 그 호민관은 당연히 히틀러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바그너의 오페라 [리엔치] 3막의 마지막 장면을 묘사한 일러스트레이션. 호민관 리엔치는 당연히 히틀러를 상징한다. (1869년)

바그너의 오페라 [리엔치] 3막의 마지막 장면을 묘사한 그림. 호민관 리엔치는 당연히 히틀러를 상징한다. (1869년)

6. 뉴미디어

괴벨스는 당시의 뉴미디어였던 라디오, 영화, TV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존재하는 모든 채널을 장악하여 원하는 메시지를 주입하려는 의도였다. 목적은 당연히 히틀러 신격화였다.

괴벨스는 기술자 오토그리싱(Otto Griessing, 1897년~1958년)에게 의뢰해 1933년 8월에 국민 라디오 ‘VE301’을 출시한다. VE301은 저렴한 가격 덕택에 6년간 700만 대가 팔리며 나치 독일의 라디오 보급률을 70%대까지 끌어올렸다. 후속 모델인 ‘DKE38’은 국가보조금으로 VE301의 반값이면 살 수 있었다.

VE301(왼쪽)과 DKE38(오른쪽)

VE301(왼쪽)과 DKE38(오른쪽)

이렇게 보급된 라디오는 음악방송의 비중이 70%였고 주로 바그너의 음악이 방송되었다. 그래서 독일인들은 라디오를 틀어놓고 자연스럽게 바그너의 음악을 들으며 일상을 보냈다. 재미있게도 영국도 당시 라디오 방송을 했었는데 70%가 선전 연설이었다. 영국인들은 꼭 들어야 하는 방송이 아니면 라디오를 껐다.

레니 리펜슈탈 영화나 TV 프로그램 역시 다분히 히틀러 우상화를 의도하고 만들어졌는데 레니 리펜슈탈(Leni Riefenstahl, 1902년~2003년, 사진)이 감독한 [의지의 승리] (Triumph des Willens, 1935)가 대표적이다. 의지의 승리는 1934년 뉘른베르크의 나치 전당대회를 내용으로 하는 다큐멘터리였다.

영화는 히틀러가 비행기를 타고 구름 사이를 해치며 착륙하는 장면부터 시작하는데 이는 히틀러가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신적 존재임을 나타내기 위한 의도적 장치였다. 히틀러 신격화는 아주 세밀한 부분까지 영화 내내 지속된다. 히틀러의 뒤쪽엔 조명을 이용해 후광효과를 주었다. 얼굴은 항상 아래 각도에서 촬영하여 히틀러를 우러러보아야 할 대상으로 인식시켰다.

다큐멘터리 [승리의 의지]는 히틀러가 탄 비행기에서 바라본 도시의 전경과 비행기에서 내리는 히틀러에게 영광하는 군중들, 그리고 카 퍼레이드 하는 히틀러와 나치 고위 관료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레니 리펜슈탈의 다큐멘터리 [승리의 의지]는 히틀러가 탄 비행기에서 바라본 도시의 전경으로 시작해 비행기에서 내리는 히틀러에게 열광하는 군중들, 그리고 카퍼레이드 하는 히틀러와 나치 고위 관료의 모습으로 이어진다.

[의지의 승리]는 작품성을 인정받아 1935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금상을 수상했다. 1937년에는 파리 박람회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한다. 파리 박람회 그랑프리 수상은 나치가 프랑스를 점령하기 전에 일어난 일이었다. [의지의 승리]에 사용된 영상 기법은 영화사에도 많은 영향을 미쳐서 스타워즈나 반지의 제왕 같은 영화에서도 주요 기법들로 활용되었다. 영화사에 영향을 미칠 만큼 괴벨스가 선전 영화에 들인 공은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선전은 예술이다” (괴벨스) 

에토스는 화자의 성격에 기반한 설득을 의미한다. 굉장히 매력적인 인물이 주장하면 그에 대한 반론이 아무리 논리적이거나 심리를 자극하는 것이라도 이길 수 없다는 것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이었다. 괴벨스는 에토스가 뭔지 알고 있었을까? 몰랐을지라도 그 개념은 확실히 알고 있었던 게 분명하다. 위에 소개된 나치의 선전 주제들은 전부는 아니지만 대부분 괴벨스가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었다. 그리고 하나같이 에토스 방식의 효과를 극대화하는 것에 집중되어 있었다.

선전은 예술이다. 그리고 선전가는 심리 예술가다.
선전가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매일 매시간 대중의 맥박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이다.
그리고 그 박자에 맞추어 조치를 취하는 것이다.

– 괴벨스

괴벨스의 선전은 모든 분야가 총동원된 종합예술이었다. 그 예술은 사람들의 맥박이 ‘영웅 히틀러’로 인하여 뛰게 하는 것이었다. 히틀러가 영웅인 것이 사실이 되면, 그 뒤에 오는 주장은 무엇이 되든 대중의 지지를 받게 되어있었다.

괴벨스

이런 기법은 오늘날에도 쉽게 발견되는데 예를 들면 단지 수지나 설현이 광고한다는 이유로 뭔가를 구매하거나, 스티브 잡스를 존경해서 애플을 애용하는 것 등이 이에 해당한다. 기업은 에토스식 설득을 위해서 광고 모델을 기용할 수도 있고, 기업 내의 인물을 영웅으로 부상시킬 수도 있다. 에토스식 설득이 성공하면 사람들은 그 제품이 다른 제품보다 불편하더라도 불편하지 않다고 자신을 합리화하며 사용하게 된다.

괴벨스의 선전은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릴 정도로 영향력이 있었고, 선전의 가치를 재고시키며 미국에서 선전으로 사업을 하던 버네이스의 입지까지 넓혀주었다. 그러나 괴벨스가 한 짓이 너무나 사악한 것이었기 때문에 ‘선전’이라는 용어 역시 사악한 것을 뜻하는 단어가 되고 만다. 괴벨스를 연구한 각국의 군대들이 ‘선전’이라는 단어 대신 ‘심리전’이란 단어를 택한 것도 그것 때문이었다.

버네이스의 전성기가 저물어갈 무렵 비즈니스 세계에서는 선전 대신 ‘광고’라는 용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전면에 선 사내는 괴벨스와 버네이스를 비웃듯이 이렇게 말했다.

광고는 예술이 아니다.
소비자는 멍청이가 아니다. 당신의 아내다.
그녀를 속이지 말고, 그녀의 지적 능력을 무시하지 마라.

– 데이비드 오길비

(다음 편에 계속) 


  1. 에토스(고대 그리스어: ethos)는 ‘성격’, ‘관습’ 등을 의미하는 고대 그리스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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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여현준
초대필자

게임 기획자로 4년, 스타트업 대표로 4년을 일했습니다. 지금은 작은 회사에서 마케팅팀장으로 일합니다. 역사를 좋아하고 독서가 취미입니다. 경영 관련 에세이를 주로 씁니다. →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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