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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선거전문가 중에서 트럼프가 대통령이 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없다고 봐도 된다. 그들이 궁금해하는 것은 트럼프가 과연 공화당의 대선후보가 될 것 인지이다. 2015년 여름만 해도 모두 불가능하다고 했지만, 연말을 지나면서 언론과 전문가들은 나중에 책임지지 못 할 예측을 하지 말자는 쪽으로 꼬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DonkeyHotey, Yokozuna Trump Towers Over His Challengers, CC BY SA https://flic.kr/p/BaVChH
DonkeyHotey, “Yokozuna Trump Towers Over His Challengers”, CC BY SA

트럼프는 공화당 후보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트럼프는 공화당 후보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지금 전국 여론조사에서 공화당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후보가 대선후보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하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좀 더 정확하게는, 1위를 달리는 후보가 어떻게 짧은 기간 안에 지지율을 잃을 수 있는지 설명해줘야 한다.

에즈라 클라인 미국 인터넷 매체인 복스(Vox)의 에즈라 클라인(Ezra Klein, 사진)이 흥미로운 설명을 들고 나왔다:

트럼프는 1위를 놓치는 순간, 단번에 몰락한다는 것이다.

이유는 이렇다. 트럼프의 지지자들이 트럼프에게서 느끼는 가장 큰 매력은 그가 가진 승자(winner)라는 이미지 때문이다. 그가 대중적인 관심을 끌기 시작한 것도, ‘어프렌티스(The Apprentice)’라는 프로그램에서 인기를 끈 것도, 모두 “트럼프는 한 번도 패배한 적 없고, 언제나 가장 유리한 딜을 얻어내며,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허구적) 이미지에 기반해 있다.

사람들은 그가 대통령이 되면 그의 주장처럼 전 세계 외교전에서 승리하고, 이민자들은 막아내며, 미국의 경제는 승승장구할 것으로 기대한다. 2차대전 직후의 미국으로 돌아가게 될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트럼프의 이미지: 승자

그리고 그 모든 것이 그의 개인적인 이미지 단 하나에 달려있다. 따라서 그가 가진 이미지에 상처가 나면 다른 후보들처럼 회복하는 데 이용할 다른 자원이 없어 단번에 무너지게 된다는 것이다.

빌 클린턴의 임기 후 인기에서 볼 수 있듯, 정책이 좋아서 지지했다면 개인적인 흠은 넘어설 수 있다. 하지만 그 인기가 순전히 개인적 매력에 기반한 것이고, 그 개인적 매력이 순전히 그가 승승장구하고 있다는 사실 하나에 기반하고 있다면 그건 사상누각이다.

승리 위너 승리자

이런 상황은 이문열의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 등장하는 엄석대를 연상시킨다. 그 학교의 모든 학생과 선생님들이 엄석대를 따르고 옹호한 건 그가 공부와 운동, 통솔력, 싸움 등 어느 하나에서도 1등을 놓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새로 부임한 담임선생님은 엄석대가 시험 성적과 달리 칠판 앞에서는 쉬운 문제도 못 푼다는 사실을 발견했고, 모든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선생님에게 맞는 엄석대의 모습에 아이들의 지지는 단번에 무너지게 된다.

마찬가지로 입만 열면 “나는 언제나 승리한다(I always win)”는 말을 주문처럼 외는 트럼프에게 매력을 느끼는 사람들은 그가 한 번만 지는 모습을 보여줘도 실망하고 떠나게 된다는 것이다.

과연 정말로 그런 일이 일어날까?

조너선 번스타인 흥미로운 이론이다. 하지만 그게 실제로 가능한 일일까? 블룸버그뷰의 조너선 번스타인(Jonathan Bernstein, 사진)은 클라인의 주장에 동의하면서 다음과 같은 보충이론(?)을 내놓았다:

첫째, 트럼프 지지자들은 처음 투표하는 유권자들이거나 경선장에 자주 나오는 사람들이 아니다. 경선장에 나와서 투표하는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이 아니다. 날씨에 굴하지 않고, 정말로 좋아하는 후보가 있든 없든 나와서 투표하는 사람들이 당을 대표할 후보를 뽑아왔다.

둘째, 여론조사에서 선두에 선 후보가 경선에서 최종 승리를 하기도 하지만 그건 (지금의 힐러리 클린턴처럼) 여러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시킨 경우에만 한정된다는 것이다.

주요 인사들의 공개지지, 모금액수, 조직까지 모두 확보한 후에 여론조사에서 승리하는 경우에 그럴 뿐,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 여론조사에서만 인기를 끄는 후보는 2004년의 하워드 딘이나 2008년의 루돌프 줄리아니처럼 경선의 시작과 함께 단번에 사그라져 버린다.

점진적 붕괴론

게다가 번스타인은 트럼프가 단번에 무너지지 않더라도 결국 질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트럼프가 전국에서 1위를 달리고 있는 건 그의 뛰어난 미디어 전략으로 언론의 관심을 독차지하고 있어서 그럴 뿐 다른 후보들이 미디어 총력전을 벌이기 시작한 주(아이오와나 뉴햄프셔)에서는 전국 평균 지지율보다 10% 떨어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현재 전국의 공화당 대선뉴스의 2/3를 차지하는 트럼프가 다른 후보들의 미디어 반격으로 미디어 커버리지가 1/2로만 줄어들어도 지지율은 25%로 떨어진다는 전망이 나온다.

심지어 그가 지금과 같은 지지율을 유지해도 승리는 어렵다. 현재 공화당에서 약 1/3의 지지를 받고 있지만, (많은 경선처럼) 마지막 두 명의 후보만 남게 되는 상황에서 승리하려면 추가의 지지자들을 더 확보해야 하는 상황인데, 트럼프 지지자이거나 아니면 트럼프 혐오자인 상황에서 과연 추가 지지자들을 끌어올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붕괴 추락 집

반대로 그와 1:1로 경쟁하는 후보로서는 잠재적으로 2/3까지도 추측할 수 있는 트럼프 혐오자들의 표를 가져올 수 있게 될 것이다. 황당한 계산처럼 보이겠지만, 트럼프가 그런 황당한 후보이고, 이번 선거가 그런 황당한 선거이기 때문에 황당하지 않은 계산이라는 주장이다. 뉴햄프셔에서 트럼프는 15%의 차이로 선두에 있지만, 루비오나 크루즈와의 1:1 대결에서는 둘 다 지는 것으로 나왔다는 최근 PPP 여론조사가 바로 그걸 의미한다. 그는 압승하지 않으면 필패하는 이상한 후보인 것이다.

본선 승리가 불가능하다는 주장

미국의 언론과 선거전문가들은 ‘공화당 대선후보 트럼프’에 대해서 의견이 극명하게 갈린다. 클라인이나 번스타인처럼 불가능론을 외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충분히 가능한 상황이므로 이제 공화당은 신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마음을 비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트럼프가 공화당 후보가 되는 사태가 일어나더라도 그가 대통령이 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여기에서 ‘사실상’이라는 말을 붙이는 이유는 천재지변과 같은 뜻하지 않은 사태나 변수는 언제나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외에는 불가능하다고 봐도 상관없다. 적어도 선거 전문가들의 의견은 그렇다.

물론 많은 여론조사에서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과 공화당의 트럼프가 붙었을 경우 트럼프가 승리한다는 결과가 나온다. 맞다. 하지만 그건 여론조사 결과일 뿐이다. 여론조사와 선거결과가 비슷하게 나오는 나라들이 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가 그런 나라다. 상대적으로 작은 나라이고, 사회의 특성상 여론조사가 복잡하지 않고, 직접투표이기 때문에 그렇다.

DonkeyHotey, Hillary Clinton-Caricature, CC BY https://flic.kr/p/A9MuTa
DonkeyHotey, “Hillary Clinton-Caricature”, CC BY

하지만 미국은 그렇지 않다. 내가 미국선거를 열심히 들여다보기 시작했을 때 가장 당황했던 것이, 여론조사 결과와 선거결과, 특히 경선의 결과가 너무나 다르다는 사실이었다.

가령 2004년 하워드 딘의 열풍이나, 2008년 마이크 허커비의 열풍 같은 것이 그랬다. 한국처럼 온 국민의 직접투표로 대통령이 결정되는 작은 나라를 기준으로 미국처럼 크고 복잡한 간접선거의 룰을 가진 나라의 경선을 바라본다는 것은, 달에서도 지구와 똑같은 중력이 작용한다고 짐작하는 것과 비슷하다. 중력은 있을 거다. 하지만 같은 크기의 중력은 아니다.

‘Art’ vs. ‘Science’ 

앨 고어가 일반표(popular vote)를 더 많이 받고도 부시에게 패할 수 있었던 간접선거의 결과를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여론조사는 선거승리를 가늠하는 하나의 요소에 불과하고, 다양한 변수들에 가중치를 부여해야만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한 것이 미국 선거다.

예를 들어, 당 중진들의 공개지지 선언이 경선의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미국선거에서 역사적으로 증명됐다. 하지만 그 영향을 어떻게 수치화할 것인가? 아니, 중진이라는 사람들은 누구이며, 어디까지 선을 그을 것인가? 그렇게 해서 조작적으로 정의된 중진들에게는 전부 동등한 가중치를 부여할 것인가?

그냥 ‘감’으로 결정할 수는 없다. 과거 데이터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 가령 10명의 상원의원이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선언을 했을 때와 10명의 주지사가 지지 선언을 했을 때 유권자에게는 어떤 파급력을 가졌는가를 여러 선거에 걸쳐서 측정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이번 선거에서 가중치를 부여해야 한다.[footnote]참고로, 네이트 실버의 경우 하원의원의 지지 선언을 1점으로 했을 때, 상원의원는 다섯배, 즉 5점을 주고, 주지사의 지지 선언은 상원의원 영향력의 두 배인 10점을 부여한다.[/footnote]

미국 대선

 

퓨리서치센터에서 여론조사를 책임지고 있는 스캇 키터의 말에 따르면 미디어, 통신환경의 변화로 여론조사를 정확하게 하기는 점점 힘들어지고 있어 “여론조사는 과학(science)라기 보다는 아트(art)”에 가까워지고 있다.

물론 여기에서 말하는 아트(art)는 예술이라기보다는 “(의술처럼) 오랜 경험과 숙련을 통해서만 습득할 수 있는 복잡한 기술”을 의미한다. 거기에 반해 과학(science)은 같은 숫자를 대입하면 같은 답을 얻을 수 있는 보편적인 현상의 발견이다.

여론조사는 대선결과 예측에 중요한 요소다. 하지만 그것은 유일한 요소는 아니다. 미국에서는 더욱 그렇고, 근래 들어 간섭 요소는 더욱 많아지고 있다. 전문가들이 트럼프의 본선승리 가능성을 거의 제로에 가깝게 보는 이유는 여론조사 결과를 무시해서가 아니라, 다른 요소들을 무시하지 않기 때문이다.

Jamelle Bouie, trump with his hands up, CC BY https://flic.kr/p/xJfKqd
Jamelle Bouie, “trump with his hands up”, CC 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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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댓글

  1. 항상 좋은 글 읽고 있습니다. 민주당 이야기, 특히 버니샌더스 이야기도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2. 그전이나 지금이나 너무 자신감있게 트럼프의 몰락을 자신하시는데요. 뭐 기자님의 예측이 맞을지 제 예측이 맞을지는 미국시간대로 2월1일 아이오와 경선 2월9일 뉴햄프셔 경선 결과가 나오면 드러나겠지요. 제 예측으로는 아이오와 경선은 사라 페일린의 지지로 트럼프가 승기를 잡았고 (CNN 1월15일-20일) 트럼프 37% 크루즈 26% (Emerson College 1월18일-20일) 트럼프 33% 크루즈 23%. 뉴햄프셔야 원래부터 트럼프 강세구요. 만약 그간 예측이 틀리신다면 사과까진 바라지 않겠지만 유감표명정도는 하시길 기대합니다…..(그간 예측 = 트럼프는 경선통과 가능성 거의 없다.)

  3. 당신의 그간 예측 및 주장=트럼프는 본선 마저도 유력한 상황이고 (여론조사 결과를 보라!) 글쓴이는 그 흔한 지표들도 제대로 보지 않고 있다 ㅡ 인 것도 잊지 마시길 ㅋㅋㅋ 이제것 달린 멍청한 댓글들은 재밌게 봤는데 치사하게 구는 건 못봐넘기지 ^^

  4. 뉴햄프셔 경선에서 트럼프가 이기고 대세론 재점화 했는데요? ㅋㅋㅋㅋㅋ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이 기자분은 항상 트럼프는 후보가 안될 가능성이 높고 루비오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논조였는데, 루비오는 5위로 완전히 박살이 난것이죠 ㅋㅋㅋㅋㅋ 자! 기분이 어떠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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