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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전신 몰카는 무죄? 언론보도가 놓친 진짜 문제들

최근(2015년 11월) 서울 북부지법(형사9단독 박재경 판사)은 지하철 역사 등에서 여성의 몸을 몰래 58차례 촬영한 혐의1로 기소된 한 남성(이 모 씨)에게 징역 8개월형의 집행을 2년간 유예하는 형을 선고하고, 80시간의 사회봉사와 성폭력 치료강의 수강을 명령했다.

신상정보 공개는 간신히 면한 이 씨는 하지만 직업이 미술학원 강사였다. 별다른 사정이 없는 한 성범죄자 취업제한 규정2에 의하여 앞으로 10년간은 학원에서 일할 수 없게 될 것 같다. 2025년부터는 일할 수 있는 거 아닌가 하면, 물론 가능하기는 하겠지만, 면접에서 “지난 10년간 왜 쉬었어요?”하고 물을 테고, ‘성범죄자여서 취업제한을 받았습니다!’라고 해맑게 대답할 수도 없고, 이것 참 여러모로 곤란하다.

교도소행은 면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결코 가벼운 처벌로 보이진 않는다. 그.런.데.

전신 몰카라서 무죄? 일부 무죄 = 일부 유죄  

유감스럽게도 딱히 비일상적이랄 것도 없는 위 범죄 사실에 대한 법원의 선고가 ‘특별히’ 중앙일간지에 의해 일제히 보도되면서 새삼 관심을 끌었다. 기사 제목을 ‘노출 심한 여성 전신 몰카는 무죄’로 붙여도 그럭저럭 괜찮을 정황이 있었기 때문이다.

노출 심한 여성 전신 몰카 무죄

언론사들은 법원이 공소사실인 58장의 사진 중 16장의 사진에는 음란성이 있다고 보기 어려워 처벌 대상이 아니라고 보아 피고에게 일부 무죄를 선고했다는 점에 일부러 주목했다. 하지만 일부 무죄는 일부 유죄의 또 다른 표현일 뿐이다.

형사정책의 수혜자 혹은 법조 보도를 접하는 독자로서 정작 주목해야 할 부분은 따로 있었다.

사망? 사람? 어려운 개념 ‘정의'(定義) 

성폭력범죄의 처벌등에 관한 특례법 제14조는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다른 사람의 신체”를 촬영한 경우에만 처벌할 수 있도록 하고 있으면서도,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다른 사람의 신체”가 정확하게 어떤 상태인지 명백하게 정의하고 있지 못하다. 왜 명백하게 정의하질 않느냐, 이것은 입법 공백이 아닌가 하고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법학은 ‘사망’이 무엇인지 정의하는 것도 굉장히 어려워한다.

  • 호흡이 멈추면 사망이다.
  • 그러면 인공호흡은 호흡이냐 아니냐?
  • 자가호흡을 못 하면 사망이다.
  • 아니다. 맥박이 멈춰야 사망이다.

온갖 것을 가지고 싸운다. 그뿐 아니라 ‘사람’이 무엇인지 정의하는 것도 어려워한다.

  • 태아는 사람이냐?
  • 사람이라고 치면 언제부터 사람이냐 수정란부터 사람이냐?
  • 그러면 사후피임약 먹는 건 임신중절이냐?
  • 사람이 아니라고 치면 몸이 완전히 밖으로 나와야 사람이냐?
  • 태반이 벗겨지면 사람이냐?
  • 진통이 시작되면 사람이냐?

하물며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다른 사람의 신체”를 사전에 완벽하게 정의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어쩔 수 없이 법관에게 해석의 여지를 조금 주어야 한다.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의 이익으로” 

그런데 법관이 다소 해석의 여지를 가졌다고 하여 이를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게 하면 큰일 날 것이다. 전래동화에 나오는 것처럼 원님이 아무나 잡아다가 ‘저놈이 자기 죄를 알 때까지 매우 쳐라’ 해 버리면 어떻게 하나. 대체 언제까지 맞고 있으란 말인지 알 수가 없어서 무시무시하다. 끝까지 내 죄를 모르겠으면 맞아 죽어서 억울한 귀신이 되어 구천을 떠돌다가 다음 원님이 올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형법은 법관이 유죄를 인정하기 위해서는, 피고인이 유죄임을 확신하는 데 있어서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확실한 증명력을 가진 증거에 의할 것을 요구한다. 이 증거는 검사가 제시해야 한다. 검사가 확실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해 법관이 유죄의 심증을 형성하지 못했다면, 제아무리 정황상 저놈이 그랬을 거 같더라도 피고인에게 유리하게 판단해야 한다.

그러니까 유죄를 선고하면 안 되는 것이다. 이를 “인 두비오 프로 레오(In dubio pro reo)”라고 표현하면 멋있다.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피고인에게 유리하게)”라는 뜻이다.

주관주의 vs. 객관주의

다시 서울북부지법 형사9단독으로 돌아가 보자. 법원은 피고인 이 씨가 찍은 58장의 사진 중 46장은 비교적 수월하게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가 없는 유죄 증거로 보았다. 그러나 나머지 12장은 좀 모호했다. 누가 그 사진을 주관적인 맥락 없이 그냥 딱 보여주면서 그냥 지하철 풍경을 찍은 거라고 하면 ‘아아 그렇습니까’라고 할 수도 있는 사진이었던 것이다.

‘그게 왜 애매하냐, 변태가 이러저러한 맥락에서 찍은 사진이니까 당연히 음란사진이지!’라고 주장해서는 곤란하다. 현행 형법은 객관주의와 주관주의를 절충해서 사용하고 있는데, 이런 주장은 너무나 극단적인 주관주의이다.

형법이론에서의 주관주의와 객관주의

주관주의: 불평등한 인간상을 전제로 하며, 행위자의 인격이나 범죄의사 등에서 나타나는 사회적 위험성과 같은 주관적, 인적 요소를 중시한다.

객관주의: 평등한 인간상을 전제로, 객관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범죄행위와 그 결과를 중시한다.

그렇게 극단적인 주관주의에 의하면, 그는 앞으로 앵글 안에 들어오는 모든 인간에게 일일이 동의를 구하지 않고는 평생 다시는 어떠한 사진도 찍을 수 없게 된다. 이 씨가 비록 저 지경에 처해 있다 하더라도 그가 무슨 음란 사진 생성기도 아니고(…), 그의 눈을 통해 그의 손으로 찍은 모든 사진이 자동으로 음란 사진이 되는 것도 아니다(…)

정의의 여신

극단적 주관주의에 의하면 ‘물을 떠놓고 1,000일을 빌면 사람이 죽는다’고 믿고 이를 실행한 사람에게도 살인죄를 인정해야 한다. 객관적인 범죄행위와 그 결과라고 하면 뭐 물을 떠놓고 빈 것밖에 없는 순진무구한 행위이지만, 주관적으로 ‘아주 인격이 무시무시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남을 죽이려고 했어! 범죄의사가 명백한 놈이다! 그러니까 물을 떠놓고 빌었더라도 살인범!’이라고 하는 꼴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가 변태이거나 아니거나 그에게 성적인 의도가 있었거나 없었거나 하는 문제는 잠시 별론으로 하고(사실 별론으로 할 필요가 없다. 일부 유죄로 인정된 46장의 사진을 증거로 그는 이미…), 법원은 해당 사진, 즉 범죄행위의 결과를 놓고, 해당 사진에 음란성이 있는지 없는지를 판단해야 했다.

음란한 의도로 찍은 사진은 무조건 불법? 

결국, 법원은 “여성을 무단 촬영했을 때 구체적으로 어떤 경우까지 형사처벌할 수 있을지 구별이 어려워졌다”고 솔직하게 털어놓고, “평상복을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여성의 전신까지 형법상 처벌 대상인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신체’로 해석하는 것은 비논리적인 해석”이라고 판시하기에 이르렀다.

일각에서는 “여성이 어떤 복장을 했건 간에 음란한 의도를 가지고 사진을 찍은 것이면 불법 아니냐, 처벌해야 한다”며 선고 결과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똑같은 사진을 찍은(즉 객관적인 범죄행위는 같다) 여러 사람(다만 주관적인 범죄의사가 다를 수 있다)을 불러놓고, 음란한 의도를 가지고 찍었느냐 아니냐에 따라 처벌 여부가 달라진다고 하면 검사가 가엾다.

뇌 심리학 독심술 두뇌

검사는 멀쩡한 사진을 수백 장 갖다놓고 이 사진을 찍은 사람에게 음란한 의도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를 법관이 의심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증명해야 한다. 민사소송이면 소송비용을 당사자들이 부담하니까 상관없을지 몰라도 형사소송을 하자고 하면 매우 곤란하다.

미학을 전공한 검사를 특별히 채용하든가 서울의 한 지방검찰청을 ‘해석학 및 비평이론 중점수사청’으로 지정해야 할지도 모른다. 과연 ‘촬영자의 의도가 음란했을 가능성’을 판단할 권리를 검사나 판사, 즉 국가에 위임하는 것이 올바른가의 문제는 접어두고서라도 말이다.

타인 사진을 허락 없이 찍으면 무조건 불법? 

“상대방이 남성이건 여성이건 어떤 옷을 입었건 촬영자가 어떤 의도를 가졌건, 타인의 사진을 허락 없이 찍는 것은 무조건 불법 아닌가요?”

소셜 미디어에서 이런 질문을 꽤 받았는데, 현행법에 의하면 무조건 불법은 아니다. 이 역시 일종의 입법 공백으로 여기는 관점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사진을 찍을 자유’, ‘찍히지 않을 권리’ 등의 추상적인 가치를 이야기하기에 앞서, 타인의 사진을 허락 없이 찍는 것을 모두 범죄로 규정하는 것은 과잉규제다.

앵글 안에 들어오는 식별 가능한 모든 사람에게 일일이 허가를 구하고 사진을 찍어야 한다면 우리는 관광지에 가서 기념사진 한 장 남길 수 없게 된다. 아는 사람이 TV에 나왔을 때 눈 부분을 검은 띠로 가리거나 심지어 얼굴에 모자이크해도 누구인지 알아볼 수 있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따라서 ‘식별 가능’의 개념을 정의하는 것도 상당히 어려운 과제이다.

사진 카메라


  1. 여러분은 아마 ‘웃기고 있네, 58차례만 찍었을 리가 있나?’ 하고 생각할 것이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2. 아청법 제56조(아동·청소년 관련 기관 등에의 취업제한 등)

    ①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 또는 성인대상 성범죄로 형 또는 치료감호를 선고받아 확정된 자는 그 형 또는 치료감호의 전부 또는 일부의 집행을 종료하거나 집행이 유예·면제된 날부터 10년 동안 가정을 방문하여 아동·청소년에게 직접교육서비스를 제공하는 업무에 종사할 수 없으며 다음 각 호에 따른 시설·기관 또는 사업장을 운영하거나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 등에 취업 또는 사실상 노무를 제공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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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학을 전공했지만 영 엉뚱한 직장에 들어와 버렸습니다. 하지만 대학에서 별로 열심히 공부하지 않았기 때문에 미련이 없습니다. 하루종일 신문의 사회면을 읽고 여기저기 잔소리를 합니다. → 트위터(@p_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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