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공유하기

연재를 시작하면서 인지언어학이 구조주의 언어학 및 촘스키의 변형생성문법에 비해 의미에 더 큰 관심을 두고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앞으로 몇 차례에 걸쳐 언어학에서의 의미(meaning)의 문제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오늘은 첫 번째 시간으로 언어가 의미를 만들어내는 방식에 대해 몇 가지 생각을 나누어 보려 합니다.

(영어)교사를 위한 인지언어학: 언어는 텍스트와 컨텍스트의 통합

의미(meaning)란 무엇인가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의미에 집착합니다. 서점에서 에세이나 자기계발서를 뒤적이다 보면 여전히 ‘인생의 의미’라는 키워드가 자주 발견됩니다. ‘청춘의 의미’, ‘가족의 의미’, ‘나이 듦의 의미’ 등등 ‘의미’가 들어간 표현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죠. 영어에서도 mean 혹은 meaning은 사용 빈도가 상당히 높습니다.

일례로 COCA(Corpus of Contemporary American English) 말뭉치를 기준으로 동사 mean은 124번째, 명사 meaning은 1613번째로 자주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개별 단어를 넘어서는 복수단어(multi-word) 표현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CANCODE(The Cambridge and Nottingham Corpus of Discourse in English) 말뭉치의 경우 가장 많이 사용되는 두 단어 연속 표현(2-gram)은 ‘you know’이며, 바로 다음이 ‘I mean’입니다. 상대방의 이해를 구하거나 확인하는 ‘알다시피/알지/알고 있다(you know)’와 자신이 말하려는 바를 좀 더 정확히 해주는 ‘내 말은/내가 말한 것은(I mean)’ 같은 표현이 가장 빈번히 사용된다는 통계는 의미를 정확히 주고받는 일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좋은 예입니다.

meaning

일반적으로 ‘의미’로 번역되는 영어단어 meaning은 동사 mean의 명사형입니다. mean의 기원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고대 색슨어(Old Saxon)인 menian을 만나게 되는데 이는 ‘의도하다(intend)’ 혹은 ‘알리다(make known)’정도의 뜻입니다. 고대영어인 mænan 또한 비슷한 의미가 있죠. 그러고 보면 ‘의미’라는 개념은 화자가 의도한바, 혹은 상대방에게 알리고 싶은 바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화자가 의도한 바가 청자에게 그대로 전달된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공상과학 소설에 나오듯 마음과 마음이 직접 연결되는 텔레파시를 사용하지 않는 한 언어를 통한 소통은 늘 불완전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인간의 언어체계가 놀랄 만큼 정교하면서도 허점 또한 수두룩하다는 모순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언어의 진화 과정, 언어의 다의성 등 여러 각도에서 이 문제를 생각해 볼 수 있겠지만, 오늘은 ‘인간이 언어를 통해 의미를 만드는 방식’이라는 관점에서 이 문제를 살펴보겠습니다.

단어의 의미는 어떻게 정의되는가?

참 잘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광고가 있습니다. 소위 “Dude commercial”로 불리는 한 맥주 회사의 연작 광고입니다. 이들은 “dude”라는 단어가 사용되는 다양한 맥락을 보여주는데, 각 장면의 대화가 단 하나의 단어, 즉 “dude”로만 이루어져 있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입니다.

YouTube 동영상

1편의 첫 장면에서는 한 사람이 3칸짜리 소파 끝에 앉아서 TV를 보고 있습니다. 이내 친구로 보이는 인물이 들어와서 중간에 자리를 잡는데, 문제는 먼저 와있던 친구와 거의 붙어서 앉는다는 겁니다. 구석 자리 친구는 당황스럽다는 몸짓과 어조로 중간에 앉은 친구에게 “Dude”라고 말합니다. 친구는 그제야 조금 떨어져 앉지요.

“Dude”가 사용되는 장면 몇 개가 연이어 나옵니다. 한 남자는 냉장고에서 꺼내 든 우유의 역한 냄새에 놀라 “Dude”라는 혼잣말을 내뱉습니다. 급정거하면서 “Dude!”라 소리치는 운전자, 화장실에 일을 보다가 불청객의 침입(?)을 받고 손을 좌우로 벌리며 “Dude”라고 말하는 남자도 등장합니다. 땅콩버터로 보이는 용기를 찾아내고서는 얼굴 가득 행복감을 발산하며 “Dude”라 말하는 남자, 자연스럽게 새치기를 하는 사람을 째려보며 황당하다는 듯 “Dude”를 외치는 사람의 모습도 나옵니다.

그렇다면 이 다양한 장면을 공통으로 묶어주는 단어 “dude”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과연 이 모든 상황을 포괄하는 정의를 찾는 것이 가능할까요?

언어가 의미를 만드는 방식: 텍스트와 컨텍스트의 유기적 결합

사전을 참조하는 것은 단어의 의미를 알아보기 위해 가장 널리 사용되는 방식입니다. 위에서 예로 제시한 “dude”를 사전에서 찾으니 다음과 같은 설명이 나옵니다.

[box type=”info”]dude

명사
1. (주로 미·속어) 젠체하는 사람; 멋을 내는 사람(dandy), 놈, 녀석.
2. (미·옛투) 도시에서 자란 사람, 도시인; (미국 서부·캐나다) 휴가를 목장에서 보내는 동부인[관광객].

출처: 다음 영어사전[/box]

위의 두 정의가 광고의 다양한 장면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의미를 온전히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사전적 정의가 전형적인 상황에서 자주 사용되는 의미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유용하지만, 광고가 보여주는 “dude”의 역동적인 쓰임을 포착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것이죠.

그래서 혹자는 사전을 “언어사용의 화석”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살아서 꿈틀거리는 언어의 변화무쌍함을 담아내기보다는 이미 오래전에 굳어진 말의 옛 모습을 기록한 것에 불과하다는 의견입니다.

화석

이상의 논의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맥락(context)이 단지 문장이나 발화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부가정보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맥락은 특정한 언어의 발현 조건으로 의미의 생산과 해석에 적극적으로 관여합니다.

당연히 맥락이 없는 말은 없습니다. 탈맥락화(decontextualized)된 언어란 도무지 존재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인간이 시공간 밖으로 탈출할 수 없듯이, 언어는 맥락 밖에서 존재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언어학습은 문법과 어휘 등으로 대표되는 언어코드(linguistic code)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텍스트적 요소들과 컨텍스트적 요소들이 유기적이며 역동적으로 결합하는 방식을 배우는 것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인간의 언어는 텍스트와 컨텍스트의 유기적 결합을 통해서 의미를 만들어 냅니다. 텍스트의 의미는 늘 가능성(potential)으로 존재하는데, 이것이 특정한 컨텍스트와 결합할 때 의미(meaning)가 만들어지는 것이죠. 인지언어학자들은 의미 생성에 있어서 맥락의 역할이 과소평가되어 왔다고 주장하며, 언어의 의미와 언어 사용의 맥락을 유기적으로 결합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관련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