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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간강사다: "자넨 그래도 살 만했지?"

지방시,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허범욱(HUR) 作, 르네 마그리트 – The Son of Man(1946) 패러디

11. 제가 잘못했습니다 – 연구비

2010년 여름의 일이다.

선배 R의 갑작스러운 호출 

나는 박사 수료생 선배 R에게 갑자기 호출되었다.

“오늘 좀 보자.”

나와는 나이도 학기도 꽤 차이가 있는 그가 나를 왜 찾을까 궁금했다. R의 목소리는 아주 좋지 않았다. 그날은 주말이었고, 나는 약속이 있어 서울에 있었다.

R의 말에 저녁 약속을 취소하고 터미널에서 버스를 탔다. 내려가는 몇 시간 동안 황당하고, 두렵고, 뭔가 싶은 여러 감정이 뒤섞였다. 무언가 짚이는 게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설마 싶었다. R은 나의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하더니 빈 강의실로 나를 데려갔다.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너 교수님이 연구비 안 챙겨준다고 선배에게 찾아가서 내 놓으라고 했다며? 미쳤냐?”

내가 걱정했던 일이 맞았다. 불과 3일 전 있었던 일이다.

프로젝트와 연구비 

대학원생은 조교 활동을 통해 학교에서 주는 장학금을 받을 수 있지만, 등록금의 반도 안 되는 금액이다. 나머지 등록금과 기타 생활비 등을 충족해 주는 것이 바로 ‘연구비’다.

국가나 기관에서 연구 프로젝트 공모를 하면 교수들은 연구소나 개인의 업적을 정리해 연구계획서를 제출한다. 그것이 통과되면 사업비를 받아 연구를 진행하며 박사급 석사급 연구원을 둘 수 있다. 많으면 월 120만 원 정도, 적으면 월 60만 원 정도의 연구 인건비가 책정된다.

대형 프로젝트를 여러 개 수주해 한도까지 인건비를 주며 많은 대학원생을 연구원으로 두는 교수들이 있다. 이런 대학원은 활기가 넘치고 연구성과도 꾸준히 나온다. 하지만 지도교수가 프로젝트에 관심이 없거나 혹은 인연이 없으면 대학원생들은 당장 등록금을 내는 것이 막막해진다. 나는 불행하게도 후자에 속했다.

2008년 3월 석사 1기가 된 이후, 2014년 10월 박사과정 수료 후 강의 2년 차가 되기까지 그 어느 프로젝트에도 연구원으로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내 지도교수는 훌륭한 학자였다. 하지만 내가 대학원에 입학한 이후로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거의 진행하지 않았다.

석사 새내기 시절 한 학기 선배인 L에게 조심스레 물어 알았다. 과거에는 대형프로젝트를 많이 수주해서 모든 대학원생들이 혜택을 받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런 분위기가 아니라고 했다. 언제부터인가 인문학 관련 프로젝트가 상당히 줄었고, 그나마 특정 학교에 집중되고 있는 것 같다고도 했다.

네, 할 수 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석사 3기쯤 되었을 때, 조교실장이 나를 불러 물었다. 새로운 프로젝트가 진행될 예정이라 연구원이 두 명 필요한 데 들어올 생각이 있느냐는 것이었다. 내 지도교수가 아닌 다른 교수가 진행하는 것인데, 그쪽엔 이미 인건비를 다들 받고 있어서 다른 세부전공 대학원생을 연구원으로 등록하겠다고 했다.

“네, 할 수 있어요!”

생각하고 말고 할 내용이 아니었다. 조교실장은 내게 외부에서 받고 있는 연구비가 있는지 물었다. 나는 당연히 없다고 답했다. 생각해보니 어떤 선배들은 타 대학교 교수가 진행하는 프로젝트에 이름을 올려 연구비를 받고 있기도 했다. 그나마도 인맥이 있어야 가능했다.

조교실장은 내게 곧 연락이 갈 테니 기다리라고 했다. 나는 정말 기뻐서 그날 맥주 몇 캔을 사와 치킨을 먹으며 자축했다. 다음 학기에는 학자금대출을 받지 않아도 될 것 같아서 그게 정말 기뻤다.

조교실장 연락은 끝내 오지 않았다 

하지만 한 주가 지나고, 거의 한 달이 지나도 조교실장에게서는 연락이 없었다. 그래, 연구비라는 게 그렇게 쉽게 받을 수 있는 게 아니겠지. 이름 올리고 이것저것 서류상 작업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릴 거야. 괜히 물어봐서 기분을 상하게 하지 말고 기다리자. 그렇게 생각했다.

기다리다 지쳐가던 무렵, 후배 P와 함께 맥주를 한 잔하다가 프로젝트 이야기가 우연히 나왔다. P는 지난달부터 한 달에 50만 원씩 연구비를 받게 됐다고 했다. 나는 순간 ‘어라’ 싶어서 그를 쳐다봤다. P는 ‘이런, 실수했네’ 하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애써 웃으며 괜찮으니 누구와 함께 연구비를 받게 되었는가 물었고, P 는 자신의 동기가 1년짜리 연구원으로 함께 등록되었다고 어렵게 말했다. 석사급 연구원이 월 50만 원을 받아봐야 1년에 600만 원, 등록금의 반을 간신히 웃도는 정도다. 인건비로 책정할 수 있는 최소 비용일 것이다.

3일 전 그 사건의 정체   

어떻게 끝났는지 모를 술자리가 끝나고, 다음날 나는 조교실장을 찾아갔다. 몇 년이 지났지만, 그때 조교실장과 나눈 대화 내용은 지금도 생생하다.

“어제 P에게 들었는데요. 저번에 말씀하신 프로젝트 있잖아요. P와 D가 받게 된 건가요? 그런데 제가 걔들보다 선배고… 제가 받을 순번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요. 왜 그렇게 됐는지 싶어서요.”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교수님들께서 알아서 하시는 거지. 근데 너 나한테 지금 시비 걸러 왔냐?”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조교실장과 나눈 대화는 그리 길지 않았다. 나는 그에게 사과하고, 학과사무실 문을 닫고 나왔다. 그게 3일 전에 벌어진 일 전부였다.

R의 질책, “먼저 인간이 돼야지!”

나를 호출한 선배 R은 꽤 긴 시간 동안 꽤 상기된 얼굴로 나를 나무랐다. 요약하자면 이랬다.

연구비는 선생님들께서 다 생각하고 책정하시는 건데 니가 뭐라고 거기에 왈가왈부해? 어련히 챙겨주시지 않겠어? 넌 대학원에 다니는 이유가 돈 벌기 위한 거였냐? 먼저 인간이 돼야지. 너에게 정말 실망이다.

나를 세워놓고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말의 주먹에 나는 그저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연신 고개를 조아렸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그가 나가고 혼자 남았다. 의자에 앉아 속에 응어리 진 한숨을 토해내는데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그래서 혼자 한참을 울었다.

집에 돌아가려는데 R에게 다시 전화가 왔다. 술 한잔  하자는 것이었다. 난 아무 생각 없이 “네 알겠습니다.”라고 답했다. 그는 내게 지금처럼 열심히 학과 일을 돕고 공부하면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정말 정말 잘못했습니다… ‘훈훈하게’ 끝난 해프닝   

그는 내 잔에 계속 소주를 부었다. 나는 그저 묵묵히 “네, 네, 알겠습니다.”하며 받아 마셨다. 어느덧 소주를 서너병 비워갈 무렵, 누군가가 들어왔다. 조교실장이었다. R이 부른 것이었다. 이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 이해가 되었다.

나는 왠지 모르게 눈물이 다시 나서 몇 학기 위의 조교실장에게 울며 빌었다.

“제가 정말 잘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

그렇게 ‘훈훈하게’ 해프닝은 마무리되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 프로젝트에는 학부생 연구원 자리도 있었는데, 어느 학부생 둘에게 월 40만 원씩이 지급되었다고 했다. 나는 쓰게 웃고 말았다.

그 후 나는 학자금대출을 꼬박 한도까지 받았다. 등록금 반액 정도는 조교활동비로 충당되었으니, 등록금 반액 + 생활비 대출 100만원을 더하면, 그럭저럭 당장 숨만 쉬고 살 만은 했다.

프로젝트를 진행한다거나 연구원이 몇 명 필요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가끔 들려왔지만, 그때부터는 흔들리지 않고 살았다. 그런 희망 고문에 상처받거나 괜히 연루되어 오해를 사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자네는 좀 살 만했지? 

시간이 흘러 박사 4기, 햇살이 좋았던 어느 날 점심이었다. 나는 몇 년 전 내게 연구원 자리 제안이 들어온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선생님과 함께 식사할 일이 있었다. 학과사무실에 앉아있는데, 선생님이 갑자기 들어와 말했다.

“자네, 밥이나 같이 하지? 내가 밥때를 놓쳐서 말야.”

마침 나도 밥을 먹지 못한 터라 감사한 일이었다. 교직원 식당 백반을 먹으며 그는 내게 이런저런 것들을 물었다. 조교 생활도 거의 끝나가는데 힘들지는 않았는지, 앞으로의 계획은 어찌 되는지, 논문은 몇 편이나 썼는지. 나는 답했다. 아닙니다, 힘들긴요, 논문은 열심히 쓰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선생님은 나에게 물었다.

“그래도 자네는 연구원으로 계속 등록되어 있었으니 좀 살 만했지?”

숨이 막혔다. 몇 년 전 일이 다시 떠올랐다. 나는 답했다.

“아닙니다. 선생님! 저는 연구원으로 등록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그러자 그는 “그럴 리가 있느냐?”며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밥이 잘 넘어가지 않았다.

선생님, 한마디만 해주세요 

학자금대출 이자를 갚고 어떻게든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 물류창고 아르바이트, 중학생 내신 과외, 할 수 있는 것들을 다했다. 그러면서도 학과 대소사와 잡일은 언제나 나와 대학원생들 담당이었다. 영수증 증빙을 위해 찍은 행사 사진 한편에는 어김없이 나와 내 또래 대학원생들이 귀퉁이의 어느 부분에서 후줄근한 모습을 하고 있곤 했다.

이런 내 생활을 교수들이 응원하거나 격려하고 있을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서른이 다 된 제자의 이러한 삶에 연민과 동정을, 무엇보다도 내색하지 않는 공감을 마땅히 보낼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내게 돌아온 것은 이 말이 전부였다.

“그래도 자네는 좀 살 만했지?”

그것이 나를 지탱해 온 어느 한 부분을 사정없이 무너뜨렸다. 그다지, 살 만하지 않은, 삶이었습니다. 정말로요.

 

제 욕심이지만, 선생님께서 어느 날 제 손을 잡고 따뜻한 목소리로 이렇게 한 마디 해주시면 좋겠어요.

‘그동안 많이 힘들었지? 나도 알아. 그래도 잘했어. 고맙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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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309동 1201호
초대필자. 대학강사

지방대 시간강사, 인문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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