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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수령 인터뷰 5(상): 자본에 지배당한 과학계, 황우석은 필연이다 (김우재 편)

리수령 인터뷰는 리승환 특유의 직설적인 질문과 거침 없는 파격으로 다양한 전문가/관계자와 함께 현상의 이면에 숨겨진 진실을  파헤칩니다. 최근 고교 교과서에서 진화론 설명과 관련한 시조(始祖)새 삭제가 논란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김우재는 이 논란을 일축합니다. 그 대신 사회의 모순이 그대로 이식된 한국 과학계의 구조적 문제에 주목합니다. 미국 UCSF 박사 후 연구원으로 있는 초파리 박사 김우재에게 한국 과학계의 문제점과 대안, 그리고 과학한다는 것의 의미를 들어봤습니다. (편집자)

리수령 인터뷰 5(상): 자본에 지배당한 과학계, 황우석은 필연이다
리수령 인터뷰 5(중): 진보와 과학의 만남, 박정희 프레임을 넘어야 한다
리수령 인터뷰 5(하): 초파리 박사의 네이처 논문으로 보는 과학적 검증 과정

인터뷰어/인터뷰이 소개

Q. 리승환 : 8년 차 블로거, 4년 차 직장인. 최근 멘붕으로 한 달 간 잠수를 탄 유리구슬 같은 여린 멘탈의 소유자지만, 겉으로는 마초로 위장해서 살고 있다. 디지털 한량을 지향하고, 통칭 웹에서는 ‘리승환 수령’으로 불리고 있음. 블로그 현실창조공간을 운영 중. 트위터는 @nudemodel, 페이스북은 /angryswan

A. 김우재(초파리 박사) : 키 크고 학벌 좋고 인물 좋은 3박자를 가지고 있는 남자. 하지만 포닥(박사 후 연구원) 비정규직인 관계로 여자가 있을 리 없다. 최근 세계적 학술지 네이처 뉴로사이언스에 논문을 실을 정도로 우수한 과학자이지만, 트위터에서는 찌질이 짓을 하며 안티질을 자초하는지라 실드를 치기도 힘들만큼 까이고 있다. 지금은 블로그 휴업 중이지만 사이언스타임즈에서 그의 내공을 읽을 수 있다. 트위터는 @RevoltScience

1. 초파리 박사와의 만남

리 : 반갑다
초 : 신발.

리 : ……
초 : 인터뷰를 시작하자.

리 : 아니, 그쪽 시간으로 새벽 4시일 텐데 인터뷰할 수 있겠는가?
초 : 상관없다. 어차피 비정규직인데, 뭐…

리 : (…) 우선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초 : 과학자다. UCSF에서 생물학을 연구하고 있다.

김우재와 어울리지 않게 귀여운 로고를 가진 UCSF

리 : 어쩌다가 머나먼 땅 미국 샌프란시스코까지 가게 됐나?
초 : 원래는 유럽으로 가려고 했다.

리 : 아니, 유럽은 왜?
초 : 미국이 싫어서.

리 : (…) 그런 사람이 왜 미국을 간 건가?
초 : 개인적 사정이 있었다.

리 : 여자로구나!
초 : (………) 아니다.

리 : 능력이 없었던 거로군.
초 : 너, 이딴 식으로 자꾸 왜곡하면 죽여버린다(…)

2. 자본에 지배당한 과학계, 비정규직 고급 지식노동자를 양산하다.

리 : 좋다. 어쨌든 왜 한국에 남지 않고 미국으로 떠난 건가?
초 : 과학계를 잘 몰라서 하는 이야기인데, 국내 박사 따도 포닥(박사 후 과정)은 다 외국으로 나간다. 포닥을 소화할 기관이 국내에 없다. 일본 정도면 돈도 있고 과학계가 그만큼 발전해서 포닥 수요가 있지만, 국내는 투자된 자본도 별로다 보니 아예 몸담을 곳이 없다. 국내 실험실은 대학원생들이 이끌지만, 외국은 보통 포닥이 이끈다. 아마추어 데리고 과학 하냐, 프로 데리고 과학 하냐의 엄청난 차이다.

리 : 포닥 과정을 마치면, 교수가 될 생각인가?
초 : 한국에서 교수 되는 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1990년대 이후 박사는 연 40%씩 늘어났다. 하지만 이들을 수용할 수 있는 직업은 이에 맞게 늘어나지 않았다. 1960년대에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들은 40% 넘게 대학교수가 될 수 있었다. 그런데 생태계가 꽉 차 있으면 외래종이 못 들어가듯, 박사가 엄청나게 늘어나니 지금은 박사학위의 14% 정도만 교수가 된다. 나머지 86%는 좀 암담하다.

리 : 이것이 말로만 듣던 이공계의 위기인 건가?
초 : 이건 좀 계열별로 따로 봐야 한다. 공대는 취업난은 무슨… 학교에서 배우는 게 바로 기업으로 연결되니까, 취업 잘만 된다. 문과도 경제학, 경영학 등은 시장이 좋은 편이다. 인문학은 맘 아파서 이야기하기도 그렇고… 이과는 좀 전공별로 다르다. 화학 등은 기초공학과 응용공학 간 갭이 크지 않아서 먹고 사는데 별 지장이 없다. 어쨌든 ‘이공계’라고 묶으면 안 된다. ‘이과의 위기’다.

사실은 다 위기(…) 출처 : 대학생이 느끼는 이공계의 위기 via 사이언스타임즈 http://bit.ly/M75gci

리 : 하지만 당신의 전공인 생물학이 등장하면 어떨까?
초 : 여기는 상상 이상으로 심각하다. 게놈 프로젝트가 유행하고 생물학의 시대라는 유행을 탄 덕에 박사를 엄청 뽑았는데, 특히 중국이랑 미국 새끼들이 엄청나게 돈 엄청 부어서 박사를 엄청나게 만들었다. 여기에 뒤질세라 한국도 뛰어들었다. 그리고 아무도 뒤처리를 안 했다(…) 생물학이 은근 노동집약적 산업이라 일손이 많이 필요한 건 사실이다. 그런데 상상을 초월하게 박사를 배출해서 답이 안 나온다.

리 : 이렇게 많은 고급 지식노동 잉여가 생산된 이유는 무엇인가?
초 : 박사 학위 장사 때문이다. 과학계에서는 박사 공장(The PhD Factory)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요즘 대학은 박사 학위로 장사한다. 마치 의료계가 의료 시스템을 키워 환자를 늘리는 것과 비슷하다. 정부 지원금을 엄청 받고, 등록금 받고, 외부 장학금을 끌어오며 박사 장사를 한다. 이렇게 너도 나도 박사가 되면, 공부에 뜻이 없는 이들도 불안감에 박사를 딴다. 하지만 정작 직장은 없다. 전 국민의 80%가 대학에 가는 학력 인플레가 일어났지만, 직장이 없는 그러면서도 불안감에 입학해서 등록금을 바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들 모두 개인의 의지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다.

리 : 그러면 그 고급 이과 지식노동자는 어디로 가는가?
초 : 비정규직인 포닥이 되는 수밖에. 특히나 결혼한 포닥, 박사들은 인생이 막막하다. 집이나 차를 살 돈은 없는 비정규직이다. 그렇다고 박사를 하지 않기도 애매하고… 결국 우리나라 사회의 비정규직 문제와 포닥 문제는 같은 구조적 문제를 가지고 있다.

리 : 비정규직과 포닥이 같은 구조적 문제에 있다고?
초 : 사회에서 비정규직 늘어나는 이유도, 다 정규직으로 채용하면 기업을 돌리기 어렵기 때문이지 않나? 대학도 그 많은 인력을 먹여 살릴 수가 없다. 이런 구조적 문제가 있지만, 대학은 계속 박사를 늘린다. 대학을 이용해서 박사의 수를 늘리는 건 학교와 교수에게는 이익이다. 값싼 노동력을 손쉽게 쓸 수 있기 때문이다. 20~30년 전에는 포닥을 1~2년 정도 하는 경우도 드물었는데 지금은 5년씩 한다. 그렇다고 뽀대라도 나냐? 중국에서는 1년에 박사가 수십만 명씩 나온다. 길 가다가 발로 차면 걸리는 게 박사다. 5년 지나봐야 이름만 senior researcher로 바뀌고 결국 시간 강사지, 뭐.

리 : 축하합니다. Senior researcher의 탈을 쓴 시간강사님. 
초 : (……) 인문학 시간강사 문제나, 이과의 포닥 문제나 구조적으로 우리 사회의 근본 문제와 맞닿아 있다. 쌍용차와 한진중공업 파업, 이과의 포닥, 시간강사 인문학자들, 다 남 이야기가 아니다. 고학력자라 다를 것 하나 없다. 정확하게 사회가 요구하는 대로, 1%가 원하는 대로 사회가 굴러가고 여기에 종속되어 있다. 조만간에 고학력 박사학위자들이 거리에 나와서 데모하고 자살하는 꼴을 볼지도 모른다. 얼마 전에 샌프란시스코랑 뉴욕의 오큐파이 운동에 참여했었는데, 거기 “PhD doesn’t mean a JOB”이라는 피켓을 들고 나온 여성 생물학 포닥이 있더군. 상징하는 바가 많은 것 같지 않냐?
갑자기 끼어든 capcold 왈 :  무슨 비루함 경쟁을 하자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사실 사회과학 계통이야말로 구조적 고학력 낭비의 지존이다. 이과계처럼 포닥 연구원 자리조차 제대로 정착되지 않았는데, 박사 배출은 비등하다(…) 계속 학계에 남을 경우 장기간 시간강사를 전전하는 일이 부지기수고, 임용비리의 씨앗이 될 수 있다.

암울한 사회계열(…)

리 : 대학 측에서는 넘쳐나는 고급 지식 잉여를 살리려 하는 노력이 없나?
초 : 한다는 게 조교수를 많이 만든 건데… 말이 조교수지, 결국 임시직이다. 이들은 3~4년 안에 실적이 없으면 잘린다. 우리가 그렇게 부러워하는 하버드 같은 아이비리그 대학도 30~40%의 조교수가 계약기간 끝나면 잘린다. 그래서 교수들은 연구비 끌어오고, 프로젝트 따내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기업에서 펀드매니저가 돈 못 챙기면 잘리는 꼴이다. 서남표 카이스트 총장이 하려는 것도 이런 거다.

리 : 오, 과학계는 자본에 점령됐다!
초 : 상위 1% 정규직 교수가 있고, 나머지는 비정규직인 시스템이 전 과학계에 만들어지고 있다. 부를 소수가 독점하는 건 과학계도 마찬가지다. 한 사회의 사회적 구조는 한 사회의 과학자 사회의 구조를 결정한다. 자연히 자본주의 체제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과학자 사회 안에서 그대로 일어난다. 한국이 미국 시스템을 다 따라가는데, 지금 둘 다 똑같은 부작용을 겪고 있다. 이미 과학기술 인력이 공급과잉인데, 인력 공급을 조절할 생각은 않고 정부에서 예산을 어떻게 따낼지만 고민한다. 구조적 개혁이 필요한 일인데, 땜질만 하는 식이다.

리 : 미국식 시스템을 비판하는데, 미국은 돈이 넘쳐서 좀 다르지 않나?
초 : 물론 간당간당하지만, 달러의 힘이 유지되는 한 미국 과학이 돌아가긴 할 거다. 덤으로 예산 차이가 너무 크다. NIH(미 국립 보건원) R&D 예산이 한국 정부 예산보다 많다. 그런데 지금 미국도 과학에 투자되는 예산을 깎으려고 한다. 예산이 5%만 깎여도 실업자 엄청 생기고 난리가 날 테니 과학기술인들은 서명운동하고 난리다. 부시 때 예산이 줄며 대학교수가 왕창 잘린 사례를 겪었으니까.

리 : 결국 과학자 수를 줄여야 한다는 건가?
초 : 그렇다. 세상에 과학자가 이렇게 많이 필요하지 않다. 과학자들이 현명했다면, 과학자 수를 진작 줄였을 거다. 의사나 변호사들도 적당히 수를 유지하며 잘 먹고 잘 살지 않나? 그런데 과학자는 숫자를 조절해서 과학의 질, 과학자의 사회적 지위를 유지하려 하지 않는다. 이 인간들은 무조건 과학에 돈 많이 투자하고, 과학자 많이 생기면 다 잘 된다고 생각한다. 결국, 헛똑똑이란 이야기다.

리 : 공급과잉으로 인해 교수가 되려는 경쟁도 치열하겠다.
초 : 교수가 되려는 사람이 100명이라면, 교수 자리는 5개도 안 된다. 엄청난 경쟁이다. 이런 경쟁 속에서 암울한 미래를 보면서 좌절하는 건, 과학자들 탓이 아니라 사회구조의 문제이다. 물론 어떤 새끼는 게을러서 실험 안 하고 논문도 없겠지만, 좋은 논문이 있어도 자리가 없다. 예를 들어서 선배 중 네이처에 2편의 논문이 게재한 양반이 있는데 아직도 직장이 없다. 난 교수경쟁에서 뒤처진 과학자들이 자신을 탓하며 낙담하지 않기를 바란다. 대신 시선을 돌려 사회를 바라볼 수 있는 계기로 삼아주기를 바란다.

리 : 이러한 경쟁이 과학의 발전을 이끌 수도 있지 않겠나?
초 : 돈이 되는 자리가 극단적으로 한정됐는데 발전은 무슨… 시장이 없고, 경쟁이 심해지면 발전은 개뿔이고, 부정, 부패가 횡행하기 시작한다. 과학계는 평가 기준이 명확하기 때문에, 인문계에 비해 교수 채용에서 인맥이나 부정의 개입이 힘들다. 이게 원래는 그랬는데(…) 요새는 부정이 점점 많이 생기기 시작한다. 자기 새끼들 심으려고, 얼굴에 철판 깔고 부정부패 일삼으면서 교수를 뽑는 일들이 생겨나고 있다.

리 : 자본에 장악되면서 과학계 시스템이 맛이 간 것 같다?
초 : 과학계가 정부 떡고물 쳐다보고, 정부에 아부하고, 좁은 관문을 통과해서 서로 교수 되려고 아둥바둥대는 시스템… 이 시스템 안에서는 과학이 아니라 서바이벌을 하게 된다. 그러면 연구자들이 뭘 하겠는가? 황우석처럼 뻥치고 오버해야지. 유전자 연구하면 ‘암 치료에 획기적!’이라고 외쳐야만 하는 게 과학의 현실이다.

리 : 오… 이것은 각하의 비즈니스 프렌들리!
초 : 이미 과학엔 비즈니스 용어가 꽤 침투했다. 과학자들이 자기 논문 세일즈한다는 표현을 자연스럽게 쓰고, 프리젠테이션을 어떻게 잘할 것인가 강연도 듣고, 어떻게 프로모션해서 구직 시장에 자신을 팔지 이야기한다. 과학자를 평가하고 논할 때도 생산성, 실적 등 회사에서 쓰는 전형적인 용어들을 쓴다. 언어가 이렇게 쓰인다는 건 시스템이 이미 비즈니스 패러다임에 사로잡혀 있다는 거다. 이런 체계에서 과학자는 좋은 과학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서바이버 우두머리가 되기 위해 싸운다. 이런 시스템에 제대로 된 과학이 어떻게 있냐?

리 : 뭐, 돈이 되는 연구 자체가 나쁜 건 아니잖아?
초 : 당연히 그렇다. 하지만 영화 만드는 사람들이 팔리는 상업영화만 만든다고 생각을 해봐라. 그 속에 제대로 된 영화가 얼마나 나오겠는가? 헐리우드도 인디, 예술영화에서 영감을 받잖아? 과학계는 그 균형이 깨졌다. 이미 모든 과학자는 비즈니스맨이다. 사회와 과학정책이 이렇게 되도록 몰아버렸다. 하지만 누구나 이 시스템에 문제 있는 거 알면서도 어떤 문제고,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 묻지 않는다.

3. 나의 과학은 그렇지 않아! : 위대한 과학의 전통

리 : 뭔가 “나의 과학은 그렇지 않아!”를 외치는 것 같다.
초 : 원래 과학은 지금처럼 자본에 종속된 존재가 아니었다. 인문정신 부활을 르네상스에서 찾듯, 19세기 말 과학만을 위해 달린 과학자들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들은 자기 일의 주인이었고, 사회를 리드했다. 이들의 정신과 시스템을 배워야 한다. 내가 사이언스타임즈에 과학 지식인 열전을 쓴 것도 그런 뜻이었다. 물론 단순히 적용할 수는 없으니, 절충해서 더 나은 길로 나아가야겠지만…

리 : 좋은 글이다. 이런 글 쓰는 사람이 트위터에서는 왜 찌질이 짓을 하고 사는 건가?
초 : 시끄럽고(…) 과학자들이 정말 자기 학문의 주체뿐만이 아니라, 사회에서도 당당한 지식인으로 살았던 시기가 있었다. 과학자들이 자기 학문의 주인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과학정신이란 게 있었다. 지금은 과학정신이 사라졌다. 예술가들이 자기 그림을 돈 받고 팔려고 그렇게 하고, 영화를 엄청 상업적으로만 만들고, 예술혼이 없는 거랑 같다.

리 : 무슨 소리냐? 미술은 항상 자본에 종속되어 있었다. 과학만 공부하다 보니 역사를 모르는 듯?
초 : 닥쳐라… 아닌 사람도 있고 그게 예술혼은 아니지 않은가? 여하튼 20세기 중반까지 찾아볼 수 있었던 과학정신이, 자본에 종속되기 시작하며 사라진다. 과학 하는 애들이 맨날 브릭 쳐다보는데 맘에 안 든다. 임팩트 팩터(Impact factor)라고 저널의 영향력을 따지는 게 있는데, 그 점수가 높은 저널에 나오는 논문만, 그것도 한국 사람이 쓴 논문만 소개해댄다. 그렇게 경쟁을 붙여서 뭐하나? 애들이 이거 보면서 자괴감만 느끼지 않겠나? 내 논문도 네이처 실리니까, 브릭에 소개되고 메일이 막 날아온다. 이게 참 슬프다. 논문과 내용과 퀄리티가 아니라, 단지 그 논문이 실린 저널에 따라 평가되고, 그 점수로 줄 세우고, 제일 높은 저널 내면 ‘우와~’ 해대고…

리 : 우와~ 우와~ 우와~ 우와~ 님 네이처에 실었다고 자부심 쩌는 듯. 슬프기는커녕 굉장히 자랑스러워하고, 떠들고 싶어 난리 난 것 같다. ㅋㅋㅋ
초 : (……) 이 자식이…

리 : ‘트위터 찌질이도 네이처에 논문 싣는 법’이란 책 쓰삼.
초 : 닥치고 내 얘기나 똑바로 옮겨라(…). 난 브릭 같은 사이트에 가서 유명 저널에 실린 논문에 권위를 부여하면서 살아가는 과학자들이 행복하냐고 묻고 싶다. 과학에서 느끼는 행복이 이런 데서 느껴져야 하나? 아니다. 당신 일에서 행복을 느끼면 되는 거다. 문제는 대부분이 그렇게 생각하는데, 그 일에서 행복을 느낄 수 없게 시스템이 굴러간다.

리 : 그렇다면 자본에 종속되기 전의 과학은 어떠했는가?
초 : 과학의 전통이 오래된 나라들은 과학과 정치가 다양한 맥락에서 만났다. 당장 찰스 다윈도 토리당 당원으로 과학을 하면서 정치적 활동을 하지 않았는가? 그 과정에서 과학자의 정치 진입과 사회적 역할 수행의 기회도 많았다. 20세기 초반으로만 올라가도 영국 공산당의 리더 격인 제이디 버날(J. D. Bernal)을 비롯해 제이비에스 홀덴(J. B. S. Haldane), 조셉 니담(Joseph Needham)과 같은 빨갱이, 공산주의자 과학자들이 과학을 이끌어갔다. 1, 2차 세계대전 겪은 과학자들은 유네스코와 세계과학 노동자 연맹을 만든다. 유네스코의 초대 사무총장도 과학자인 줄리앙 헉슬리였다. 이 사람들이 사회 속에서 당당한 지식인이었고, 이 사람들의 한 마디 한 마디가 진중권 사마가 하는 말보다 훨씬 가치 있게 사회를 움직였다.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이런 과학자들이 존재했다.

대학자에게 죄송하지만, 머리 기른 크리링을 닮았다(…)

리 : 그런데 왜 사라지기 시작했는가?
초 : 과학자가 못나서가 아니다. 존 지만(John Ziman)이라는 과학자이자 과학사학자는 이를 아카데믹 사이언스(academic science)에서 포스트 아카데믹 사이언스(post academic science)로의 전환이라 이야기한다. 20세기 중반까지 과학은 아카데미 안에서 이루어졌다. 하지만 산업화의 진행, 자본주의의 확장이 이루어지며 과학이 사회에서 도구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기술을 상업적으로 활용하는 대형 제약기업 등의 힘이 세지고, 대학도 상업화되며 자본에 종속되기 시작한다. 한국은 그때 겨우 과학을 시작했으니 전통 없이 그 패러다임에 바로 말려들 수밖에 없었다.

리 : 서양의 과학 전통이 일순간에 무너진 것인가?
초 : 그렇지는 않다. 서양은 아카데믹 사이언스의 시대를 거쳐서 전통이 좀 살아있다. 특히 유럽은 비즈니스 마인드의 과학과는 좀 다른 과학이 살아있다. 유럽은 애초에 박사를 많이 뽑지도 않고, 미국처럼 1:10 경쟁을 시키지도 않는다. 기초과학 분야에만 한정해서 이야기하면, 기초과학자 대우도 좋고, 다양한 안정된 일자리들이 존재한다. 능력이 뛰어나면 교수가 되지 않아도 막스 플랑크 연구원 등으로 평생 살 수도 있다.

리 : 미국은 어떤가?
초 : 미국의 과학도 결국 유럽에서 건너왔으니 영향을 받았다. 미국의 과학기술정책 수립되는 데는 반네바 부시(Vannevar Bush)가 큰 역할을 했는데 여기에서 그의 과학에 대한 생각을 읽을 수 있다. 2차대전이 끝날 무렵에 대통령 루스벨트는 과학 지원에 대한 근거를 대라고 한다. 세계대전 당시 무기 때문에 과학계를 지원했는데, 세계대전 끝난 지금도 왜 지원해야 하는지 말이다. 이에 반네바 부시는 엄청난 위기감을 느낀다. 과학을 정치에 종속되게 만들면 기초과학은 끝이다. 정치인의 마인드가 당장 경제적 이익에 도움이 되는 과학만 지원하면 기초과학은 시망이다.

타임 표지모델로 등장한 반네바 부시의 위엄. 유사품 조지 부시에 유의하세요.

리 : 반네바 부시는 어떤 행동을 한 건가?
초 : 반네바 부시는 공학자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과학에 대한 철학이 있었다. 그래서 과학, 그 끝없는 개척지(science the endless frontier)라는 글을 쓴다. 거기서 미국 과학의 피를 무기에서 의학으로 돌려버린다. 머리를 쓴 거다. 어차피 정치인들이 산업적 응용 가능성을 본다면 의료에서 해답을 찾으려 한 거다. 프레임을 무기에서부터 의료로 돌리면서 ‘기초학문이 발전해야 응용과학이 가능하다’는 선형적 프레임을 짠다. 이런 꼼수(?)를 통해 미국에서는 기초학문으로서의 과학이 계속해서 발전할 수 있었다.

리 : 오… 기초과학이 살아야 응용과학이 산다!
초 : 당연히 거짓말이었다.

4. 기초과학의 의미와 나아가야 할 길

리 : 어이;;; 시작부터 과학계의 구라를 드러내다니…
초 : 기초과학이 발전해야 응용과학이 발전하는 건 아니다. 기초과학 없이도 삼성 잘나가지 않나? 반네바 부시가 선형적 프레임을 그린 이유는, 이런 방식을 통해서라도 기초과학을 제도적으로 살리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일종의 자존심 때문이었다. 유럽에서부터 건너온 과학은 과학자들에게 전통이자 자존심, 긍지이자 명예였다. 그래서 내셔널 사이언스 파운데이션(national science foundation)을 만들고, 직접적으로 국회와 로비할 수 있게 한다. 국회 예산을 직접 과학자들이 짜고, 국회와 1:1로 수평 교류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든 것이다.

리 : 일종의 학자로서의 곤조로군. 그렇다면 한국은 어떤가?
초 : 한국은 그런 시스템이 없다. 한국도 과학기술총연합회가 있기는 한데 힘이 하나도 없다. 정치인들 눈치 보고, 이명박 눈치 본다. 과기부 그리워하는데 그때라고 뭐 했나? 과학기술계 수장인 과기부 장관도 대통령 임명이라 눈치나 살살 봐야 하는데. 과학기술인이 반대서명 해봐야 정부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다. 정부를 견제할 힘도, 시스템도 없다. 박정희 때 과학기술계가 정치에 종속되게 한 프레임이 그대로 이어져 온 결과다. 이거 이에 반해 내셔널 사이언스 파운데이션 회장은 지들끼리 투표해서 뽑는다.

리 : 그런데 돈이 안 된다면 기초과학의 의미는 어디서 찾아야 하는가?
초 : 결국 국민들의 태도 문제다. 국민들이 세금으로 서포트하는 것이기 때문에, 국민들의 지원과 동의가 없다면 지원하지 않아도 할 말은 없다. 그런데 문제는 자꾸 아인슈타인 만든다고 그런다. 일종의 콤플렉스라고 보는데, 이런 욕망이 있다면 성과와 관계없이 기초과학에 투자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서 아인슈타인 운운하는 건 모순이다. 과학의 역할이 돈 벌어 오는 일이라 생각한다면, 정말 LG나 삼성을 지원하면 된다. 하지만 각하가 좋아하는 국격의 차원에서, 우리도 아인슈타인 같은 위대한 과학자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면 발상을 좀 바꿀 수 있지 않은가? 이러한 국민의 시각을 결정하는 건 과학의 수준이 아니라 정치인들 수준에 달려 있다. 국민들이 과학을 건강하게 바라보는 사회가 되려면 정치인들이 제대로 돼야 한다. 그러니까 과학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적극적으로 정치를 감시하고 참여해야 한다.

리 : 그런데 기초과학도 잘 되면 돈이 되는 경우도 있지 않은가?
초 : 대박이 가끔 터지기는 한다. 다만 이건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기초과학이 원래 그런 거다. 생명보험도 언제 죽을지 알고 하는 게 아니라, 언젠가 죽으니까 드는 것 아닌가? 기초과학도 보험처럼 가끔 대박이 터지긴 한다. 당연히 투자하는 만큼 대박의 가능성은 높아진다. 그렇기 때문에 굉장히 장기적인 안목이 필요하다. 미국이나 선진국이 기초과학인 뇌과학에 투자하는 것도 언젠가는 보상이 있으리라는 엄청난 계산이 들어 있다.

리 : 그러고 보니 당신이 연구하는 생물학의 DNA도 대박의 사례다.
초 : 대박을 넘어 초대박이었다. 하지만 여기에도 엄청난 자본 투여가 있었음을 알아야 한다. 제임스 왓슨(James Watson)과 프랜시스 크릭(Francis Crick)은 당시 락펠러 재단(Rockefeller Foundation)의 지원을 통해 연구를 계속할 수 있었다. 여기 운영자가 가진 환원주의적 철학이 분자생물학과 잘 맞아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엄청나게 지원했다.

리 : 오… 결국은 쏟아 붓지 않으면 나오지 않는다?
초 : 미국에는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 예를 들어 영화감독 겸 항공기업가 하워드 휴즈(Howard Hughes)는 하워드 휴즈 의학 연구소(HHMI; Howard Huges Medical Institute)를 건립했다. 사실 여기 투자하면 세금을 감면해준다는 이유로 시작했는데, 급작스럽게 하워드 휴즈가 사망했다. 유족들이 유산을 넘기라고 소송 걸었지만, 연구소장은 본인이 만들 때 목적이 있었고 돌려줄 수 없다고 버틴 결과, 결국 그 소장이 이겼다. 지금 미국에만도 150여 개 HHMI 랩이 있는데, 각 랩마다 1년에 수십 억씩 지원받고 있다. 내가 속해 있는 랩도 HHMI이다.

리 : 미국이 그렇게 투자하면 한국이 기초과학 투자하는 게 의미가 있나 싶다. 게임이 안 될 것 같은데?
초 : 당연히 돈이 넘치는 천조국과는 게임이 안 된다. 그러니까 우리는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 황우석이 병X짓만 안 터뜨렸으면 줄기세포도 좋은 방법이었을 거다. 솔직히 줄기세포 밀었으면 세계에서 선도하는 몇 안 되는 과학 영역이 될 수도 있었다. 줄기세포가 불로장생 약인 것처럼 엄청 오버했지만, 당시에는 기초과학이었다. 한 분야라도 기초과학에 투자하면 과학은 다 연결되어 있기에, 전체적으로 다양성이 풍부해질 수도 있었다.

리 : 구국의 영웅 황우석! 진달래꽃을 밟아나가던 황우석!
초 : 그런데 황우석이 논문조작 터뜨려서… 그 자식이… 한국도 과학으로 제대로 뜰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이 자식이 망쳤다고… 아… 신발…

5. 과학을 망치는 한국의 과학사회학

리 : 황우석이 참 과학계에 민폐를 끼쳤다. 이 문제의 근원을 어떻게 보는가?
초 : 황우석 개새끼로 보면 문제 해결이 안 된다. 결국, 이것도 자본에 과학이 종속되면서 생긴 일이라는 큰 틀에서 봐야 한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사회가 과학을 서포트하고 집행할 수 있는 문화적 역량이 없다. 이런 상태니까 과학이 제대로 발전할 수도 없고, 사회가 활용할 수도 없다.

리 : 과학에 대한 문화적 역량이 어떻게 떨어진다는 건가?
초 : 서울대 과사철 협동과정(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이란 코스가 있다. 과학 주변의 인접 학문을 연구하는 건데, 이 사람들이 과학자들과 전혀 안 친하다. 여기 소속인 홍성욱 교수는 자연과학 소속 교수로, 기술사 전공이다. 그런데 연구비는 과학재단 같은 데서 받아가고, 과학자들에게 도움되는 얘기를 안 한다.

리 : 예를 들자면?
초 : 황우석 사태 때 이 사람들 벌떼처럼 들고일어났다. 황우석이 부정을 저질렀고 논문조작을 한 건 사실이다. 그런데 모든 과학자가 매도당했다. 과학사회학계에서는 연구윤리위원회를 전 대학에 설치하자는 주장을 했다. 이건 자기 밥벌이를 위한 것에 불과하다. 연구윤리위원회 들어갈 건 자기들이니까.

리 : 과학사회학이 당연히 과학 비판해야지, 그럼 요리라도 가르치라는 건가?
초 : 과학사회학은 본디 비판적이고, 과학비판 자체는 문제가 없다. 그래도 최소한의 애정은 필요하다. 막말로 진중권이 우리나라 비판하면서 “신발, 대한민국 망해라!” 식이면 문제가 있지 않은가? 근데 과학사회학자들이 과학 대하는 태도가 “과학 망해라!” 이런 식이다.

리 : 그렇다고 논문조작을 냅둘 수는 없지 않은가?
초 : 당연히 논문조작은 비판해야지. 그런데 문제는 이 사람들이 해결책이라고 내세우는 것이 과학이 가지고 있는 구조적 문제들에서 자기들이 접근하기 쉬운 개인적이고 윤리적 문제에만 집중한다는 거다. 사회적, 구조적인 문제가 더 중요한 거잖아? 카이스트 학생이 자살하고, 과학자들이 일자리가 없어서 방황하고, 오직 돈 되는 연구에만 몰두하는 구조적 문제에 대해 일언반구도 하지 않는다. 지금 논문도 죄다 황우석 같은 논문조작, 연구윤리 이야기나 하고 있고…
이쪽 사람들을 보면 참여연대 출신을 비롯해 진보 개혁적이라 불리는 양반들이 많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내세우는 과학에 대한 해결책은 언제나 개인으로 소급한다. 진보적이 아니라 굉장히 보수적인 스탠스다. ‘서민은 게으르니까 가난하다.’ 식의 논리다. 진보는 사회를 구조적 문제로 접근해야 하지 않는가? 그런데 자칭 진보적이라는 과학사회학자들이 과학에 대해 보이는 행태는 무모하리만큼 보수적이다. 게다가 신발… 자기가 과학에 들이대는 잣대를 자신의 학문에는 들이대지도 못한다. 예로 문대성 논문 표절로 국민대 난리 났는데, 한국 과학사회학계 대부 김환석은 국민대 소속 아닌가? 지 학교 제대로 관리 못하면서 무슨 과학계에 이래라 저래라야, 신발… 연구윤리위원회를 지가 하고 있을 텐데.

리 : 진정해라-_- …
초 : 사실 사람이 진보적이라 하고 근원적으로 학문을 사랑하고, 그것을 위해 비판한다면 그 일이 일어나게 된 구조적인 문제를 따져봐야 하지 않겠나? 과학사회학자들이 과학에 조금이라도 애정이 있으면 그래야 하지 않겠느냐고. 이공계에서 논문조작 생길 수밖에 없다. 왜? 대부분 포닥이나 대학원생이 된다. 교수는 실적이 급하니 포닥, 대학원생을 갈군다. 이런 쪼는 분위기 속에서 자연스럽게 실험 조작이 일어난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니다. 실험 안 되고 갈구고 이러면 애들은 거짓말 할 수밖에 없다. 교수는 애들이 갖고 와서 발표하는 것만 보니까 정확히 모르는 경우가 많고.
이런 케이스는 봐줄 만 한 거고. 정말 야망에 부푼 애들도 있다. 처음부터 조작질하는 놈들도 많다. 황우석이 대표적 인물로 거론되기는 했지만, 과학은 데이터를 걸러내는 자정 시스템이 있다. 그건 사람이 하는 게 아니라 과학의 시스템적 특징이다. 재현 가능성은 과학을 특징짓는 것이기에 아무리 뻥을 치고 싶어도 큰 뻥을 못 친다. 황우석처럼 큰 뻥 치면 딴 사람이 해본다. 안 되면 바로 들통 나니까.

위 이미지는 내용과 아무런 관련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리 : 들통 나면 어떻게 되냐?
초 : 별일 없다.

리 : 야… -_-…
초 : 농담이고 당연히 그에 합당한 처벌을 받는다. 그런데 좀 웃기는 게 네이처 사이언스에도 재현 안 되는 게 수십 %나 된다. 네이처 하나 내고 튀자는 생각인 거다. 일단 당장의 위기 모면하자는 거지. 모든 총체적 문제들이 경쟁, 자본주의가 과학에 도입되면서 생긴 거다. 이런 이야기들을 보통 과학 외부에 있는 사람들은 잘 모른다. 솔직히 인문학보다야 과학이 배가 부르긴 하다. 그래도 인문학의 위기는 이래저래 알려졌지만, 이과, 과학의 위기는 제대로 알려지지도 않아서 아쉽다. 이걸 과학사회학이 해야 하는데 제대로 하지 않으니 내가 짜증 내는 거다.

리 : 해외의 과학사회학은 어떤가?
초 : 예를 들어 미국 과학사회학자들은 아까 언급한 박사 공장(The PhD factory)이라는 과학 아티클, 에세이를 썼다. 미국 과학사회학자들은 논문조작, 연구부정에 천착하지 않고 과학기술계의 구조적 문제를 바라본다. 어떻게 해야 과학이 건강하고 발전적으로 움직일지, 구조에 집중하며 고민한다. 이 에세이가 이야기하는 것도 과학계가 안고 있는 문제는 구조적 문제다. 포닥을 학교에서 공장처럼 찍어내고, 비정규직 문제를 발생시켜서는 문제 해결이 안 된다는 이야기다.

리 : 그렇다면 한국은?
초 : 반면 한국의 과학사회학자들이 집착하는 문제들은 개인, 윤리적 연구부정, 논문조작… 이것만 터지면 벌떼처럼 달려든다. 실제 더 중요한 문제들, 과학자들의 삶을 결정하는 문제들을 무시한다. 석사학위 받은 사람들의 월급이 얼마인지, 어떤 처우에 있는지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석사학위 받고 연구원 하면 월 150이나 받나? 거기다 비정규직이니 불안하다. 절대 정규직 안 시켜준다. 한국 정부출연 연구소도 다 비정규직으로 운영된다. 이런 문제들이 확대재생산 되고 있다. 판을 과학자들에게 벌려주고 이런 문제가 왜 생기는지를 함께 고민하는 게 해외의 과학사회학이다. 신발…

리 : 해외 과학사회학자들은 연구윤리에는 별 관심이 없나?
초 : 당연히 많다… 하지만 거기에 천착하지 않고, 실제 과학 속으로 파고들었다는 차이가 있다. 과학사회학을 시작한 로버트 머튼(Robert Merton)도 과학자의 4가지 규범으로 CUDOS 규범(communism, universalism, disinterestedness, organized skepticism; 공유주의, 보편주의, 무사무욕, 조직화된 회의주의)을 내세우지 않았나? 그런데 이 양반은 과학자와 과학의 시스템을 인정하고 과학자의 실제 연구 환경을 연구했다. 그 결과로 이런 규범을 내세운 거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과학사회학자들이 실제 과학과 따로 놀고 있으니, 제대로 된 비판이 나오기 어렵다.

리 : 실험실과 멀리 떨어져, 앉아서 연구하는 건 과학철학도 마찬가지라고 깐 적이 있는데?
초 : 이건 한두 마디로 정리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다만 과학철학은 언젠가부터 현장의 과학에서 멀어져 혼자 막 나가고 있다는 것만 말해두겠다. 현장의 과학에 제한받지 않는 과학철학 같은 건 사기다. 과학철학은 과학을 고정되어 있는 바위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과학은 고정된 무엇이 아니다. 실험실에 나가지도 않는 태도로는 과학이 뭔지 제대로 사유조차 할 수 없다. 찰스 샌더스 퍼스(Charles Sanders Peirce)라는 과학철학자는 실험실 과학자로 20년을 살았는데, 그의 책을 보면 과학에 대한 수준과 이해 자체가 다름을 알게 될 거다. 물론 한국에서 그렇게 공부하려는 사람은 없지만.

리 : 여담인데 황우석도 자기 논문이 조작인지 몰랐을 수도 있겠다?
초 : 글쎄… 내가 황우석이 아니니 알 길이 없지. 그래도 내가 대학원, 포닥 생활을 11년 넘게 해 본 사람으로서 추측을 해본다면 언론에서 발표하기 전까지도 몰랐을 거다. 지도교수가 이렇게 속는 경우는 꽤 된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언론에서 문제 있다고 해서 대학원생과 면담을 했다면, 논문지도 한 사람으로서 뻔히 알 수 있다. 조작이 뻔한데 그다음 황우석이 이걸 발뺌한 게 문제다.

리 : 그렇다면 반대의 긍정적 사례라도?
초 : 생물학자 후쿠오카 신이치(福岡伸一)의 최근 번역된 ‘나누고 쪼개도 알 수 없는 세상’에도 미국에서 있었던 논문조작 사건이 나온다. 이걸 보면 황우석 사건의 전모를 이해할 수 있는데, 지도교수가 보여준 태도는 황우석과 완전히 다르다. 논문을 철회하고, 논문을 조작한 포닥을 징계위원회에 회부한다. 과학은 재현가능성(reproducibility)이라는 검증 시스템이 있기에, 논문조작은 쉽게 검증할 수 있다. 사실 철학도 상식(common sense)이란 게 제한을 하는데, 요즘 인기를 끄는 인문학자는 그런 걸 무시하는 듯해서 아쉽다.

리 : 최근 이화여대에서 한 대학원생이 교수가 자신의 연구 성과를 가로챘다는 글을 인터넷에 올려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초 : 공동연구에서 일어나는 저자 순위를 놓고 벌어지는 암투는 하루 이틀 된 일이 아니다. 1980년대에 쓰여진 ‘젊은 과학도에게 드리는 조언’이라는 책에도 나올 정도다. 이 책의 저자 피터 B. 메다워(Peter B. Medawar)는 논문의 저자 문제처럼 민감한 사안들은 논문 작성 전에 미리 합의를 하는 게 좋다고 조언한다. 사실 자연대에도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지만, 의대나 공대에는 아마 널렸을 거다. 연차가 낮은 대학원생들이 졸업해야 하는 대학원생들을 위해 희생하기도 하고, 교수가 예뻐하는 애들 이름을 앞에다 넣는 괴기스러운 일도 들어봤고, 심지어 교수가 미워하는 애 이름을 나중에 빼버리는 일도 있다.

리 : 그래서 누가 잘못했다는 건가(…)
초 : 남 교수라는 사람이 ‘아고라에 글을 올린 대학원생은 테크니션에 불과했다’는 말을 했다던데, 이런 권위적인 태도가 문제다. 테크니션, 즉 실험실에서 기예적인 부분을 담당하는 이들에 대한 암묵적인 위계가 과학을 망친다. 과학 선진국인 미국에서도 이 따위 문화가 없는데, 저딴 사고방식은 어디서 배워먹은 건지 모르겠다. 우리 실험실에선 테크니션일지라도 논문에 기여한 정도가 비슷하다고 생각되면 공저자로 들어간다. 테크니션은 논문에 이름을 안 넣는다고? 그런 얘기 여기 우리 실험실 와서 울 교수한테 해봐라. 맞아 뒈질 거다.

리 : 네이처의 무게감 때문에 이런 문제가 생겼다는 말도 있다.
초 : 결국 네이처가 사람을 잡는 거지. 네이처 표지논문이잖나? 이거 한편이면 레벨이 달라지니까 양심이고 뭐고 없는 거다. 과학정신이 실종됐다는 게 이런 거지. 물론 그 사람들 개개인을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다 자본주의의 피해자들이지. 그걸 모르는 게 안타까울 뿐. 통합진보당도 자기 내부단속을 제대로 안 하고 외부홍보만 하다가 무너지지 않았나? 과학계도 내부단속을 제대로 못 하면 한방에 훅~ 간다. 황우석 사태에서 도대체 배운 게 뭔지 모르겠다.

리 : 결국 당신도 과학사회학자들처럼 윤리를 강조한다?
초 : 윤리는 기본이잖아(…) 하지만 저런 일은 오히려 윤리적 각성이나 과학기술자 윤리강령 따위가 다 소용없다는 방증에 가깝다. 과학자들 좀 먹고 살만하게 해주는 게 논문조작 같은 사건 줄이는 데 더 도움이 될 거다. 뭘 좀 먹여야 안 싸우고 도둑질 안 할 거 아냐. 신발…

필자 주: ‘리수령 인터뷰 5(중): 진보와 과학의 만남, 박정희 프레임을 넘어야 한다‘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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