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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등록번호’ 혹 떼줄 테니 ‘마이핀’ 혹 붙이라는 정부

4억 건의 정보가 털렸습니다. 정부도 법령에 의하지 않은 주민등록번호(이하 ‘주민번호’) 수집을 금지하고 나섰습니다. 그런데 대체 수단으로 ‘마이핀’을 밀겠답니다. 제한적 본인 확인제 위헌 판결(2012년 8월)을 이끌어 낸 진보네트워크가 마이핀 문제를 3회에 걸쳐 다룹니다. (편집자)

“주민등록번호!! 주어서도 받아서도 안 됩니다.”
“법령 근거 없는 주민등록번호 수집 금지, 소중한 개인정보 보호의 시작입니다.”

시민단체 주장이 아니다. 정부가 나서서 이렇게 홍보에 열을 올린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정부가 나서서 주민번호 수집을 강제했는데(인터넷 실명제 등), 이제는 정부가 나서서 수집을 막는다.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둘니와 하니도 개인정보 털렸을까? (빡센 나라에 살게 해서 미안해....)

둘리와 하니도 개인정보 털렸을까? (빡센 나라에 살게 해서 미안해….)

법 조문 읽는 게 쉽지 않지만(솔직히 법과 친하지 않으면 외계어 수준이다), 그래도 우선 번호 수집 금지법의 근거 법 조문을 함께 살펴보자. 번호 수집 금지법의 근거인 개인정보보호법 제24조의2는 비교적 단순한 조문이지만, 이 한 개의 조문 때문에 이렇게 떠들썩하다.

개인정보보호법 제24조의2 (주민등록번호 처리의 제한) ①항 요약정리

  • 개인정보처리자는 업무를 목적으로 개인정보파일을 운영하는 공공기관, 법인, 단체, 개인 등을 말한다.
  • 개인정보처리자는 개인의 동의를 받더라도 원칙적으로는 주민번호 처리가 금지된다. (이게 원칙)
  • 다만 다음 세 가지 경우는 주민번호 처리를 “예외적으로” 허용한다. (이게 핵심)
  1. 법령(법률, 시행령, 시행규칙)에서 구체적으로 주민번호의 처리를 요구하거나 허용한 경우
  2. 정보주체 또는 제3자의 급박한 생명, 신체, 재산의 이익을 위하여 명백히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3. 위 두 가지 경우에 준해 주민번호 처리가 불가피한 경우로서 안전행정부령으로 정하는 경우

살펴본 것처럼 번호 수집 금지법은 주민번호 수집과 처리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일정한 조건에서만 허용하는 제도다. 하지만 이 제도는 주민번호 수집에 관한 새로운 원칙을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있던 원칙을 재확인한 것에 불과하다.

“주민을 등록하게 함으로써 주민의 거주관계 등 인구의 동태를 항상 명확하게 파악하여 주민생활의 편익을 증진시키고 행정사무를 적정하게 처리” (주민등록법의 입법목적)

즉, 주민번호는 ‘주민등록사무’와 ‘주민관리사무’를 위해 도입한 번호다. 따라서 반대 해석하면 이 두 가지 목적 외에는 함부로 주민번호를 수집하는 건 제도의 취지에 반하는 일이다. 신기하지 않은가? 그동안 너무도 많은 곳에서 아무렇지 않게 그야말로 당연하게 주민번호를 수집했는데, 원래는 ‘행정사무’를 위해 만든 번호가 주민등록번호라니 말이다.

다들 알다시피, 국민 통제에 목맸던 정부가 주민번호를 이용한 본인 인증을 부추겼고, 기업은 이를 이윤추구에 마음껏 활용했다. 그 와중에 주민번호는 1991년부터 현재까지 4억여 건이 넘게 유출됐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주민번호 사용을 최대한 제한하고 원래 목적을 되살리려는 게 개인정보보호법을 개정하는 목적이다.

주민등록번호 유출 4억 건

하지만 지금 당장 주민번호 사용을 원천적으로 금지하면 주민번호를 매개로 한 다양한 기업활동과 서비스가 그야말로 정지할 수도 있다. 그래서 개인정보보호법는 주민번호 처리를 원칙적으로는 금지하면서도, 앞서 조문으로 살펴봤던 예외 규정을 뒀다. 즉, 이 예외 규정은 그동안 주민번호가 널리 이용돼 온 현실을 고려한 불가피한 경과 규정으로 해석해야 한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주민번호 혹 떼줄 테니 ‘마이핀’ 혹 붙이라는 정부

주민번호 수집을 제한하고 주민번호와 같은 범용 식별번호를 더 이상 사용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정부는 ‘마이핀’을 주민번호의 ‘대안’으로 내놨다. 민간에는 주민번호 수집하지 말라면서 정작 정부는 마이핀으로 주민번호를 대체할 수 있다고 홍보한다. 제정신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정부가 주민번호 대체수단으로 마이핀을 적극적으로 홍보하면서 마이핀 관련주가 상승했다는 언론보도를 접한다. 2배 가까이 상승하기도 했단다. 그야말로 충격과 공포다.

심슨 충격과 공포

전설적인 자막 (이미지: ‘심슨’ 중 한 장면)

정부 홍보 내용을 보면 마이핀은 기업의 고객관리를 위한 것이 주목적이다. 기업의 고객관리는 마땅히 기업 스스로 지불해야 하는 비용 아닌가? 기업은 국민의 주민번호 수집을 통해서도 돈을 벌고, 그 개인정보가 유출되어도 ‘마이핀’ 같은 충격적인 ‘대안’으로 돈을 번다. 이보다 ‘웃픈’ 현실이 또 있을까? 하나 더. 마이핀은 공공기관에서도 사용할 수 있다.

마이핀은 주민번호를 대체하는 새로운 범용 식별번호의 도입에 지나지 않는다. 이와 같은 정부의 엇나간 정책으로 인해 국민들은 다양한 분야에서 불필요한 본인인증을 강요당할 것이고, 또다시 개인정보 유출의 위험에 놓일 수밖에 없다.

손석희 개인정보 유출

손석희도 털린 개인정보. 그 유출의 뿌리 주민등록제도와 강제적인 국가 공인인증 시스템이다. 언젠가 손석희가 ‘마이핀’이 털렸다고 방송하는 날이 오지 말라는 법 없다.

그 와중에 과실은 본인확인업체와 같은 기업들에 돌아간다. 개인정보보호를 위해서는 식별 자체를 최소화하거나 다양화하고 헌법재판소가 지적했던 익명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 최선이다. 올해 초 전 국민을 충격으로 몰아넣은 카드사 개인정보 유출 사고의 원인을 제공한 코리아크레딧뷰로(KCB)가 마이핀 발급기관으로 지정된 것은 개인정보보호를 대하는 정부의 진정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정부에게 하고 싶은 말, “너나 잘하세요”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고 했다. 옛말 틀리지 않았다. 번호 수집 금지법을 담은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은 2013년 8월 6일에 공포되었다. 무려 1년 전이다. 하지만 정부는 2014년 7월 14일이 되어서야 무려 135개 대통령령을 일괄 정비하겠다고 밝혔다. 법령을 개정하려면 미리 공고하고, 국민이 이를 충분히 검토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야 한다. 행정절차법은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40일 이상 ‘입법예고기간’을 설정하라고 규정한다. 1년 동안 정부가 무슨 일에 그토록 바빴는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국민에게 준 검토시간은 5일, 길게 잡아도 25일이다.

국민 의견을 듣지 않겠다는 소리다. 졸속으로 처리했다는 ‘소리 없는’ 방증이다. 앞서 살폈지만, 번호 수집 금지법을 도입한 이유는 법령에 근거가 있으면 자유롭게 주민번호를 수집하라는 것이 아니다. 정말 불가피한 때에만 법령을 마련해, 그 규정에 근거해서만 주민번호를 수집하라는 것이다. 민간 기업이나 개인에게 주민등록 사용(수집과 처리)를 강조하는 것도 좋지만, 정부 스스로 자신의 잘못과 졸속을 검토하는 게 먼저다.

더불어 하나 더. 주민번호 수집 금지는 정부부터 솔선수범해야 한다. 정부도 개인정보 유출로부터 결코 안전하지 않다. 2009년부터 2013년까지 관공서, 공기업 등 공공기관에서만 439만 건의 개인정보가 유출됐다. 내부부터 철저히 단속하시라.

금자씨

그러니까 “너나 잘하세요.” [친절한 금자씨](박찬욱, 2005) 중 한 장면

정부가 할 일은 딱 세 가지

길게 말했지만, 지금 당장 정부가 할 일은 딱 세 가지다.

  1. 주민번호 수집을 최소화하는 법령을 정비하는 것.
  2. 불필요한 본인식별을 최대한 억제하는 것.
  3. 새로운 범용 식별번호인 마이핀 같은 ‘뻘짓’ 정책은 그만 포기하는 것!
구글 마이핀

이러고 있다…. 행안부와 함께 동아일보도 ‘마이핀’ 알리기에 열심인 듯

보유.

며칠 전, 정부가 주민번호 변경을 가능하게 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기뻤다. 꼼꼼하게 살펴보았다. 조건이 너무 까다로워서 주민번호 변경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성명학적으로 재수가 없다는 이유만으로도 이름을 바꿀 수 있는데, 주민번호가 전 세계로 유출되어 잠재적 피해자가 상황에서도 사실상 불가능한 조건을 제시하여 주민번호 변경을 막으려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이름은 주민번호와 항상 병기되기 때문에 어느 쪽을 바꾸더라도 후속 작업이 쉽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다. 작년에만 16만여 명이 이름을 바꿨다. 우리는 아무런 일도 없이 잘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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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신훈민
초대필자, 진보넷 활동가, 변호사

의학을 조금 배우고, 역사학을 조금 배웠습니다. 법학도 조금 배웠으나, 잘하는 것은 없네요. 스트레스 받을 때는 SF소설을 읽으며 딴 세상으로 가버리는 그냥 그런 평범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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