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위치:   » 사람들 » 인터뷰: 오픈웹 김기창, 한국 정치와 FTA 논쟁을 말하다

인터뷰: 오픈웹 김기창, 한국 정치와 FTA 논쟁을 말하다

불과 3년 전이다.

크롬을 알리기 위한 구글의 길거리 캠페인

구글은 크롬(Chrome, 구글에서 만든 브라우저)을 알리기 위해 뉴욕 한복판에서 거리 인터뷰를 진행한다. 질문은 단순했다. “브라우저가 뭔지 아세요?” 뉴욕 시민들의 대답이 걸작이다. 제대로 브라우저(=웹 브라우저)를 설명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거 야후인가요?”
“검색엔진이죠.”
“음…”
“아, 구글인가?”

같은 질문을 서울 종로에서, 강남 한복판에서 서울 시민들에게 던졌다면 어땠을까? “그거 네이번가요?” “아, 검색엔진!” “아, 다음 같은 건가?” 이런 대답들이 쏟아져나오지 않았을까? 하지만 크롬 등장 이후 브라우저 삼국시대가 열리고, 전세계 웹브라우저 시장은 이제 마이크로소프트의 인터넷 익스플로러(IE)와 모질라재단의 파이어폭스(FF), 그리고 구글의 크롬이 삼분하는 삼국시대를 당분간 지속할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인터넷 강국이라는 한국 네티즌들이 압도적으로 많이 사용하는 브라우저는 여전히 ‘인터넷 익스플로러’다. 크롬과 파이어폭스는 여전히 ‘소수 네티즌’의 전유물에 가깝다. 3년 전이나 지금이나 대한민국은 IE가 지배한다.

브라우저

웹 브라우저는 인터넷이라는 정보의 바다를 항해하기 위한 나침반이자, 항해선이다. 사전적으론, “웹 서버에서 쌍방향 통신하는 HTML 문서나 파일과 연동하고 출력하는 응용 소프트웨어.”

웹표준

웹표준은 웹개발자와 웹브라우저 제작자 간의 “약속”입니다. 따라서 양쪽이 다 지켜야 모두가 happy 하게 됩니다. 한쪽(웹 페이지를 작성하는 웹개발자)만 웹표준을 지키고 다른 쪽(웹브라우저 제작자)은 그 약속을 어기면, 모두가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김기창, 오픈웹은 MS IE 8.0 출시를 환영합니다!

이상한 인터넷 나라의 엘리스, 김기창

이상한 인터넷 강국의 돈키호테, 김기창

이런 역설적인 인터넷 강국, 웹의 화려한(?) 불모지 대한민국에서 김기창의 존재는 그래서 더 소중하다. 김기창은 지난 2006년 오픈웹 모임을 설립해 전자정부와 인터넷뱅킹 서비스에 IE를 쓰지 않는 브라우저 유저들의 권리를 주장했고, 금융결제원이라는 거대한 풍차를 향해 용감하게 돌진했다. 그는 웹표준과 브라우저 다양성 정신을 수호하는 한국 웹의 돈키호테였던 것이다.

김기창은 “‘윈도, 우분투 6.06 이상, 맥 오에스 텐 이상의 환경에서 파이어폭스 1.5 이상’에서의 인터넷뱅킹을 사용할 수 있도록 요구”한 이 소송에서 2009년 10월 9일 최종 패소하지만, 이 패배마저 없었다면 한국 인터넷의 역사가 증거하는 개방과 평등의 정신은 좀 더 빈곤한 상태에 머물렀으리라.

그랬던 김기창과 오픈웹이 변신을 꾀하고 있다. 선관위 디도스 사태에 적극 개입하는가 하면, 나꼼수 김용민에 대해 논하고, 또 정치 담론형성에 아주 적극적이다. 그 변화의 동인이 무엇이었을까? 웹표준 이후 김기창이 구상하는 오픈웹의 새로운 과제와 적극적인 변신을 밀착 인터뷰했다. 김기창의 생생한 육성을 살리기 위해 인터뷰 답변은 가급적 어투를 수정하지 않고, 최대한 그 어감을 살렸다.

이제 웹표준은 더 이상 오픈웹의 과제가 아니다.

“오픈웹이 (웹표준 이후) 다음 과제로 삼아야 할 게 뭐냐 고민하고 있었어요. 웹표준이나 웹 브라우저의 다양성에 대해선 오픈웹이 기여할 부분이 이젠 없어졌어요. 왜냐하면, 아직 IE 위주이긴 하지만, 이젠 적어도 개발자들 사이에선  ‘웹표준’이 중요하다. 그 방향이 옳다. 이런 공감대는 이미 많이 확산되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그가 오픈웹의 다음 과제로 삼은 건 보안 문제다. 김기창이 판단하기에 보안문제는 “일부 마피아들이 가로막고, 말아먹고, 또 그 결과로 모든 국민에게 불편과 위험을 주는” 것이었다. 그래서 보안기술과 보안담론은 “여전히 살아 있는” 오픈웹의 현재 진행형 과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뭔가 아쉬움이 남았나보다.

“오픈웹의 범위를 좀 확대해서 꼭 보안이나 기술, 이것 만이 아니라, 전반적으로 인터넷이 좀 더 열린 시스템이 되는데 도움이 되는 그런 주제”, “꼭 인터넷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 자체를, 그 멘탈리티 자체를 여는 그런 노력을 함께 해보는 그런 공간”으로 오프웹이 자리하길 바란다고 김기창은 마치 청년처럼 진지한 열정의 어감으로 이야기했다. 왜 오픈웹이 선관위나 정치 문제를 다루느냐에 의견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한다.

“그 이유는 ‘오픈니스'(openness)을 좀 더 넓게 규정하고자 하기 때문이에요. 이런 설명을 오픈웹에 적기도 했죠.”

“쪽팔리지만 말 좀 해야겠다”

최근의 오픈웹에 정치 담론이 많아진다고 지적하자, 천하의 김기창이 내뱉은 말은 ‘쪽팔리다’였다. 왜, 무엇이 김기창을 쪽팔리게 했을까?

“쪽팔리지만 인터넷 이슈에만 관심을 쏟았지, 이른바 정치담론에 대해선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어요. 그런데 이번에 그 쪽을 들여다보니 계속 그런 소리를 하고 있는 거예요. ‘우리가 도덕의 화신이야!’ 나로선 그게 너무 웃기는 거고요.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80년대 민주 대 반민주 투쟁 구도에서는 당연히 민주세력이 주장하는 도덕 대 비도덕, 이 구도가 맞아요. 하지만 지금은 그런 반독재투쟁이 유효한 시기도 아니고…  새누리당은 보수세력도 아니잖아요? 그저 공공재를 사유화하려는 세력이고요. 그래서 착각이 있긴 있겠는데요.”

그가 말을 이었다.

“진보 담론을 주도한다는 분들이 아직까지도 예전의 민주 대 반민주 그 구도를 계속 붙잡고 자신들이 마치 도덕성의 독점자인 것처럼 하고 있으니까. 마치 ‘진보진영의 생명은 도덕성이다’ 이 담론을 많은 사람들이 그대로 받아들이는 거예요. 이건 거꾸로 생각하면 도덕성에 반하는 거예요. 도덕성이란 게 ‘내가 도덕적이다’ 이렇게 자기 자랑하는게 도덕성인가요?  그래도 약간 세련되었다고 보는 분들은 ‘진보진영의 도덕성’이라는 걸 자신들이 개인적으로 깨끗하다는 뜻이 아니고, 추구하는 정책이 도덕적인 정책이다, 그런 방향에서 이야기하는 분들도 있더라고요.”

오픈웹(openweb.or.kr)을 이끄는 김기창 고대 법대 교수

“메아 쿨바, 메아 쿨바”: 도덕성 타령 그만 좀 하자

“중세 종교 행렬 있잖아요. 거기에 단골로 등장하는 게 뭐냐면 자기 채찍질하는 거예요. 그것을 공개적으로 ‘나는 이렇게 참회하는 사람이다’ ‘메아 쿨바, 메아 쿨바'(mea culpa. 라틴어로 ‘내 탓이오’라는 뜻) 하면서 자신에 대한 채찍 때문에 심지어 피를 흘리기도 하고요. 그게 중세 종교행렬의 단골 메뉴예요.

그게 뭐냐면 나는 이토록 나 자신을 돌아보고, 내 스스로를 진지하게 성찰하고, 나는 이렇게 훌륭한 사람이다. 자신이 자기 자랑하는 것조차도 느끼지 못하는 그 지경까지 간거야. (얼굴이 상기되는 김기창) 자기의 도덕성을 공개적으로 과시를 하면서 ‘나는 이렇게 잘났다’ 자기를 막 찌르면서 나는 이렇게 ‘나를 반성할 능력까지 있는 사람이다’ 이걸 과시하는 거죠. 그 짓을 하면서 그게 마치 진보진영의 도덕성을 재확인하는 것처럼…”

– 소위 진보 매체라고 할 수 있는 한겨레, 경향 등을 가릴 것 없이 ‘도덕성은 진보의 무기’라는 표현은 마치 관용어구처럼 쓰이고 있는데요.

“그러니까! 그러니까! (목소리가 높아진다) 말이 안 되는 짓이에요. 진보의 가치가 뭐냐? 결국은 재화 배분을 어떤 우선순위에 따라 할 것인가. 이것인데요. 그러면 이른바 보수적인 가치에 충실한 재화 배분이 비도덕적인가요? 경쟁을 추구하고, 비교적 효율성을 추구하는 것이 비도덕적인가요? 물론 이 여기에는 소외되는 사람 생깁니다. 그렇지만 그게 어쩔 수 없다는 게 보수의 가칩니다. 어쩔 수 없다는 것이 그러면 과연 비도덕적인가요? 이 문제를 생각해봐야죠.”

– 그렇다면 ‘진보의 무기는 도덕성’이라는 표현이 담고 있는 구체적인 내용은 무엇이라고 해석하시나요?

“첫 번째, 제가 보기로는 ‘교만함’ 이상도 이하도 아니고요. 두 번째, 정치 담론의 역사적인 전개에 대한 철저한 무시, 이 두 가지가 섞여서 생겨난 아주 허약한 수사라고 봅니다. 전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정치담론의 핵심 기조조차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진보와 보수의 대치는 도덕성과는 무관한 논쟁이거든요.”

– [정의란 무엇인가]로 유명한 마이클 샌델은 [왜 도덕인가?]에서 미국정치에서 도덕적인 이슈가 갖는 중요성에 대해 다양한 범주에서 살펴보고 있는데요. 어떻게 보시나요?

“(샌델의 분석은 맥락과 구체성을 갖는데 비해 우리는) 현재 우리는 도덕성에 대한 이해 자체가 너무 부족하다고 봐요. 흔히 진보진영 논객들이 곽노현 이슈가 되었건, 김용민 이슈가 되었건, 도덕적 결함에 대한 신랄한 비난이 자신의 도덕성에 대한 징표다, 이렇게 생각하잖아요? 그거는요, 제가 보기에는 황당할 정도의 독선이에요.

– 도덕성은 진보의 우선순위가 아니라는 말씀이신데요. 그렇다면 진보의 우선순위는 무엇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도덕성 이슈는요. 진보와 보수 자체를 가누는 징표 자체가 아닙니다. 왜냐? 보수든 진보든 당연히 준수해야 하는 게 도덕이고요. 진정한 보수가 되었건, 진정한 진보가 되었건 어느 쪽이든 다 도덕적인 결함은 있는 거예요. 그것이 현실 정치고요. 우리가 무슨 성자를 기대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죠.

(거의 한숨을 쉴 것 같은 표정으로 계속 이어서 말하는 김기창) 애초부터 ‘도덕성’이라는 건 진보 보수 논쟁에서 아예 테이블 위에 올라가서도 안되요. 왜? 등치라는 거 있잖아요? 이 쪽에도 있고, 저 쪽에도 있고, 그러면 삭제되는 거야. 소거되어야 하는거지, 마치 진보가 자기들만 도덕성 있고, 저 쪽은 없는 것처럼.. 그래선 안되는거죠.

그렇다면 진보-보수 담론의 가장 중요한 논의 대상은 뭐냐. 그것은 ‘재화 배분의 우선순위를 어디에 둘거냐’라는 것이죠. 그리고 재화 배분 우선순위를 이른바 소외된 계층, 사회적 약자에 두는 게 도덕적이냐. 이 문제는 좀 더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다. 왜냐? 그것이 ‘도덕적이다’ 단정해버리는 건 너무나 순진한 생각이예요.

왜 그런가 하면 진정한 보수가 진보의 우선순위를 거부하는 이유가 부도덕하기 때문이 아니라는 걸 이해해야 해요. 왜 그 사람들이 진보의 우선순위를 거부하고 경쟁과 효율성을 주장하느냐에 대한 아주 분명한 이유가 있어요. 그 사람들이 나빠서, 비도덕적이라서 그런게 아니고요.”

– 그 이유가 뭔가요?

“약자에게 재화를 우선 분배하는 것이 ‘시장’이라는 매커니즘과는 다른 매커니즘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거예요. 그 다른 매커니즘은 뭐냐. 관료적인(인터뷰에선 “bureaucratic”이라고 표현) 매커니즘이예요. 그 관료적인 매커니즘에 내재한 위험요소가 있어요. 그게 바로 모럴 해저드(moral hazard. 도덕적 해이)고, 사회주의 국가들에서 고질적인 문제였던 관료의 부패였잖아요.

재화를 인위적으로 분배하는 결정을 하는 놈들을 통제할 아무런 수단이 없다는 거잖아. 그 부작용을 고려해서 고육지책으로 결국은 시장에 의존하는 게 모두를 위해서 더 낫다는 판단이죠. 그걸 단순하게 쟤들은 나쁜 놈이기 때문에? 마치 부자들은 전부 악하다? 가난한 사람은 전부 선하다? 얼토당토 않은 도덕적 이분론이고요.

자기들이 마치 도덕의 화신이야. 이거는요. 우리 담론수준이 너무 저질인거야. 그런 이분법에선 FTA 논의도 사실은요. 왜 거기에 도덕성을 끌어와요? 정책의 선택 중에 우선 선호도(인터뷰에선 “preference”라고 표현)에 관한 문제지.

유권자들이 나의 선호도는 이거다, 너의 선호도는 이거다. 이렇게 이야기하는데요. 결국 그 선호도를 결정을 할 때 사람들이 좀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으면 각 개인들이 선호도를 선택할 때 그래도 더 합리적인 선택을 할 것이다라는 측면에서 정보를 더 제공할 노력을 해야죠.

자기는 도덕적이고, 반대편은 비도덕적이다? 이걸 꺼내서 무슨 합리적인 논의가 되요?

열변을 토하는 김기창 교수

– 좀 거칠게 말하면 (FTA 등 사회적 의제를) 선악의 이분법으로 가져가선 안된다?

“그렇지. 또 하나는 진보가 주구장창 자기네들이 도덕적이라고 이야기해오니까 엄청 사소한 흠만 발견되도 그 자리에서 즉사하는 거야. 그런데 저 쪽은 한번도 자기네들이 도덕적이라고 주장한 적이 없어(편집자 주: 물론 이명박 정부는 도덕적으로 완벽하다고 하긴 했다. 김기창이 보기엔 이건 너무 지나친 유머라서 제외한 듯 하다.) 그러니까 성추행도 괜찮고, 뭐도 괜찮고… 맷집을 엄청나게 튼튼하게 해주는 거고요.

진보는 계속 자기 목을 조르고 있는거예요. 우리는 도덕적이야, 우리는 도덕적이야… 그런데 인간이 어떻게 완벽하게 도덕적일 수 있어요? 미쳤나? 그래서 조금이라도 꼬투리가 나오면 그 자리에서 즉사인거야.  그러니까 제가 보기에 지금까지 진보논객들이 해온 게 뭐냐면, 자기 머리 위에 밧줄 하나 올려놓고 계속 목죄고 있는거예요. 그러다가 조그만한 것 하나라도 나오면… 보수는 진보가 탁자 위에 서서 자기 목을 걸고 있는 걸 보고 있다가 조그마한 꼬투리라도 나오면 그 탁자를 탁 쳐버리면 되는거야.”

– 그런데 김 교수님의 지적은 일부 진보논객의 차원이 아니라 관객의 차원에선 대다수 국민들에게 내면화된 관극틀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그렇죠. 그런데 그 짓을 누가 했냐 이거예요. XX같은 짓을. 사람들이 조선일보 프레임에 진보가 끌려 들어갔다, 이런 말하면 싫어해요. 나는 그 말이 틀렸다고 생각해요. 조선일보가 깐 프레임이 아니야! 진보 쪽에서 스스로 깔아놓은 프레임을 조선일보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용만 하는거야.

왜냐? 진보의 생명이 도덕성이란 말을 조선일보가 먼저 했나? 진보 논객이라는 진짜 무식한 놈들이 지가 먼저 해서, 지 자화자찬을 이때까지 해오면서 엄청 좋아하는 거야. 조선일보는 가끔 가다가 ‘니가 이런 말 했잖아?’ 이용만 해먹으면 되는거죠.”

– 일리 있는 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한편으론 박정희 통치의 이중성, 즉, 실제로는 대단히 비도덕적이고, 잔인하게 권력을 남용했지만 (유신헌법, 긴급조치 등의 인권유린), 대외적으론 청교도적이기까지 한 근면 성실한 가난한 집의 가장 이미지를 계속해서 국민들에게 주입했잖아요. 그런 통치권력의 이중성, 박정희 18년의 관성이 시대의 흐름으로, 경로의존적 관성으로 작용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저는 그렇게는 전혀 안봐요. 왜냐하면 모든 정치인은 그런 이중성이 있어요. 그게 진보진영 정치인이든, 보수진영 정치인이든. 어차피 대중을 위한 메시지는 그런 설득력 있는 메시지(이미지)를 전달할 수 밖에 없고요.

그 다음에 실제로는 모든 인간이 한계가 있잖아요. ‘깨끗한 놈이 어딨어?’ 정치인 뒤를 캐면 언제나 이런 저런 흠이 있는거예요. 박정희만 그런게 아니고. 제가 보기엔 그게 박정희 때 시작된 게 아니고요. 인류 역사 이래 계속 그래왔어요. 모든 정치인들이 그래왔고요.

말씀하신 차원으로 보면 민주 대 반민주, 70년대 후반, 80년대 반정부 운동 담론의 관성이 지금 진보담론의 기저에 그대로 깔려 있는 거라고 봐요. 그래서 저는 지금 가장 시급한 게 ‘도덕성이 진보의 무기다’ 이런 헛소리를 빨리 제거하는 것이다. 이건 정치사상사적으로도 말이 안되는 거고, 정말 완전 한국에만 있는 듣보잡 논의예요. 진보와 보수가 마치 도덕성 기준으로 갈리는 것처럼, 이건 너무 무식한거지.”

– 구체적인 각론, 구체적인 프로그램의 차원에서 그렇다면 가장 우선해서 진보가 준비해야 하는 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우선 역사의식이 있어야 할 것 같아요. 진보가 가장 먼저 평심하게, 평범하게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핵심지표가 도덕성이 아니다. 그 점을 이제는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7,80년대의 잘못된 경험 때문에 기계적으로 반복되어 온 그런 전제였다. 그걸 강조하고 싶어요.

두 번째로 정책과 배분의 우선순위와 상대주의를 말하고 싶어요. 상대방의 정책과 배분의 우선순위를 매도하지 말라는 거죠. (다시 격정적인 톤으로) ‘저 쪽은 인간이 아니냐?’ 진정한 상대주의를 채택할 필요가 있어요. 진보 논객의 담론구조는 철두철미하게 배타적이고 독선적인 거잖아. 상대주의가 아니야! 우리가 도덕성을 독점하고 있다는데 그게 어떻게 상대주의가 될 수 있어?”

FTA 이야기: “FTA 추진하면 비도덕적인가?”

– 앞서도 나왔지만 FTA 논쟁에 대한 교수님의 입장을 좀 더 듣고 싶습니다.

“반FTA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도덕성을 독점하고 있다는 전제 하에 임해요. 그러면 FTA를 추진하는 사람은 비도덕적인가? 도덕성이라는 걸 정치담론의 전면에 끌어들여버리니까 더 이상의 합리적인 논의가 불가능해지죠. 상대방을 일방적으로 매도해버리고, 상대방은 나쁜 놈이고, 우리는 좋은 놈이고… 이런 유치한 수준으로 한국의 정치담론이 완전히 바닥을 치고 있는거라고 생각해요.”

– 나이브하고, 감상적인 수사에 불과하다?

“그렇죠. 감상적이고, 나이브하고, 자기애에 빠진 자화자찬이라는 거죠. 그럼 상대방은 뭐냐는 거예요. 상대방은 비도덕적이라는 말인가요? 진보와 도덕성을 등치관계로 설정하니까 정책에 대한 논의가 극단적인 반목 밖에는 안되요. 우린 도덕적이고, 너흰 썩었다, 이 말 밖에는 안되고요. 대표적인 경우가 FTA를 둘러싼 논쟁이예요.”

– 그렇다면 어떤 입장과 방법론을 취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FTA에 대해선. 우선 이게 미래에 있을 일이예요. FTA가 진행되면 누가 득보고, 누가 손해보고, 전체적으로 이게 나을건가, 저게 나을건가, 이거는 미래에 있을 일이야. 아무도 미래 일을 지금 알 수는 없어요. 우선 첫 번째로 이걸 인정해야 해요. (억양이 강해진다) FTA하면 끝장난다? FTA하면 끝내준다? 이런 논의는 이제는 중단해라. 이게 첫 번째예요, 저한텐.”

– 구체적인 데이터를 가지고 이야기하자?

“아니야. 아직 구체적인 데이터 자체가 없어. 나중에 우리가 지나온 길을 꼼꼼하게 점검해가지고, 어느 부분이 틀렸고, 어느 부분을 개선해야 한다. 이 논의를 해야지. (다소 흥분한 톤으로) 지가 무슨 선지자야? 지가 무슨 신이야? FTA하면 끝장난다? 끝내준다? 니가 무슨 능력이 있어서 그걸 지금 알어? 너무나 말이 안되는거죠. FTA 찬성이 마치 윤리적인 악인 것처럼 단죄하려고 하지 마라, 그건 그냥 너의 무식을 노출할 뿐이다. 그렇게 말하고 싶어요.”

– 그럼에도 국민 중 상당수는 현정권, 특히 정권 말기의 부패상들이 대단히 비도덕적이기 때문에 지난 총선에서 야권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생각을 분명히 했을 것 같다는 거죠.

“당연하죠. 당연하죠. 그거는요. 정치인이나 정치평론가들이 정권의 비리행위, 부패, 이런 것들은 당연히 비난을 해야 하고, 공격을 해야 하는 겁니다. 그거 비난하고 공격하면 됐지, 자기가 도덕적이란 말은 할 필요가 없는거지. 왜냐? 도덕성이라는 거는 너무나 당연한거니까. 도덕성이라는 거는 모두에게 요구되고, 모두에게 전제되고, 하지만 모두가 거기에는 못미치는 거예요.”

– 하지만 예전 대화에서도 김 교수께서 인정하셨듯, 상대적으로 ‘공직’이라는 영역에선 좀더 높은 도덕성을 기대하게 되고, 공직자 윤리규정 따위가 존재하는 이유이고요.

“네, 네. 진보적인 세력이 집권을 해도 비리가 있고, 범죄행위가 있고, 부패가 있으면 당연히 비난을 하는거고. 보수가 집권을 해도 똑같은 거예요.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이퀄(=)에 양쪽에 다 (도덕성이) 있기 때문에 소거를 하는거예요. FTA에 대해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느꼈던 건 뭐냐? 협상이 타결이 됐어. 타결이 됐어.

(한번 더 단호하게 강조하는 김기창) 양 정부가 타결이 됐다고 서명까지 했어. 그랬는데 이번 정부 들어서자마자 쇠고기 확 열어줬어. 그거는요, 도덕성 문제가 아닙니다. 순전히 그냥 ‘이익균형’이 깨졌네. 우리가 타결된 협상을 다시 열어서 양보를 했네. 여기에서 오는 분노지, 도덕성과는 전혀 상관없는거예요.

FTA 문제는 말이죠. 추가협상해서 깨뜨렸던 이익균형을 회복하는데 필요한 추가협상을 이번에는 한국측이 제기를 하는거지! 그렇게 하면 되고요.”

누구나 그렇듯 열받으면 목소리 톤이 높아지고, 말이 많아지는 법이다. 김기창도 예외는 아니었다. 나는 그 순수한 이성적 분노와 열정이 오늘날 오픈웹의 돈키호테를 만들었다고 순간 느꼈다. 김기창은 개성공단 문제로 화제를 옮기더니, ISD(투자자-국가 간 소송제도)에 대해 이야기를 계속했다.

ISD(투자자-국가 간 소송제도)? “법률가 입장에서 보면 정말 쪽팔린 주장”

“그리고 개성공단 문제, 이것도 지난 정부에서는 불분명하게, 불분명한 형태로 타결이 되어 있어요. 어느 쪽도 아니게, 그렇게 불분명하게 타결이 되었는데요. 이번 정권에서 대북 강경책을 써서 아예 안되는 걸로 굳어져버렸어요. 그걸 다시 교정해서 가능성을 열고, 그렇게 하는거지요.

(문득 한탄에 가까운 소리를 낸다.) 햐~~ ISD? 햐~~ 그거는 정말 (저 같은) 법률가 입장에서 보면 반FTA 진영에서 너무 쪽팔리는 주장을 한거예요. ISD가 사악한 제도인 것처럼. 햐~ 그리고 또 뭐예요, 이행법률? 미국정부가 통과시킨 자기네들이 조약을 비준한 뒤에 그 조약을 미국 국내법화 하기 위해서 미국 국회가 통과시킨 이행법률이 있어요.

그 이행법률에 국법보다 상위고 뭐 어짜고, 와~~ 그건 완전 사기예요.”

– 하지만 ISD는 실제로 FTA를 반대하는 측의 논거를 강화해주는 사례들도 존재하지 않나요?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존재하지만요.

“아, ISD는요, 제가 설명을 해드릴게요.

1) 일단 ISD는요, 지난 정부와 한 자도 바뀐게 없어요. (“예, 맞습니다.” 옆에 동석한 경실련 윤철한 국장이 거든다). 한 자도 바뀐게 없는데, 이번 정부 들어와서 ‘옛날엔 내가 몰랐다?’ 이게 정치지도자로서 할 말인가? 이건 정말 바보인증이지. XX인거지.

2) 그리고 또 하나, 제가 오픈웹하면서 절절히 느낀게 뭐냐? 공인인증제도 이거 정말 한줌의 보안업체와 금감원 공무원 몇 명이 완전히 말아먹는거예요. 이거는 딴거 없어요, 정말. 딴거 없는데, 절대로 안바뀌는 이유가 뭐예요? 은행, 카드사들이 금감원을 상대로 정면으로 소송을 못해, 절대 죽었다 깨어나도 못해. 왜? 했다간 그 날로 끝장나니까. 여기는 완전 마피아예요. 힘으로 하는거예요, 여긴.

그런 상황에서 외국투자기업들이, 구글이 됐던 뭐가 됐던, 너희들(한국정부) 지금 하는 짓이 위법하고, 그래서 우리 투자 손해봤다 해서 국제중재재판부로 한국 정부를 끌고가서, 만약 그래서 바뀌면 누가 덕을 봐요? 누가 덕을 보냐 이거지? (억울한 기업들과 소비자들에게 이익이라는 취지)

지금 위법하게 온갖 진행되는 규제들 중에 한국사업자들은 감히 제기를 못하는 여러 이슈들이 국제중재판정부에서 교정이 되면 누가 덕을 보냐 이거지!! 저는 ISD를 가지고 무슨 온갖 악의 근본원인인 것처럼 하는 사람들의 심리는 뭐예요? 국수주의, 배타주의, 한국은 띨띨하고 촌놈이다? 한국은 국제무대에 가면 백전백패다? 이런 자기비하, 그거 말고 그 안에 뭐가 있어요?”

– 한국의 외교적 역량이 객관적으로 떨어진다고 볼 수 있지는 않을까요?

“외교 역량이 객관적으로 떨어진다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오해하는거야. 국제중재써클이라는 게 말이죠, 제가 영어 좀 한다고 해서, 또 민법 계약법 교수니까, 국제중재에서 전문가 증인을 해달라는 부탁이 많아요. 또 실제로 많이 하고. 또 제가 국제 중재에서 중재인도 하고 그래요. 그 업계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아요. 누구보다 잘 아는데……

그 국제중재서클이라는 게 상당히 작아요. 그야말로 전문가들이 하는 분야고, 국제투자분쟁중재센터(ICSID, 익시드) 판정부 구성될 때도 그 쪽 사람들이 돌아가면서 하는거예요. 거기서 한국의 위상은요, 지금 전세계 정상급이예요. 몰라서 그렇지. 그거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

– ISD 협상력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다는 말씀이시죠?

“아주! 국제투자분쟁중재는 세사람으로 구성되는데, 피제소 국가가 한 사람 임명하고, 제소하는 회사가 한 사람 임명하고, 국제투자분쟁중재센터가 한 사람 임명하고, 이렇게 하는 겁니다. 실제로 누가 임명되느냐? 국제중재업계에서 알려진 사람들이 임명되는거야.”

– 우리나라의 맨파워는 충분하는 말씀이시죠?

“어휴, 그럼요. 지금 국제중재에서 한국은요. 일본? 상대가 안돼. (한국이) 훨씬 더 앞서 가 있고요. 중국? 상대가 안돼. (한국이) 훨씬 앞서가 있고. 우리의 영향력은 어디에 내놔도 안 꿀려요.”

– 그럼 우리나라 외교역량이 떨어진다는 일반적인 관념은 잘못된 것이다?

“그럼요. 그건 완벽하게 잘못된 인식이예요. 그건 팩트 자체를 틀린거야. 팩트 자체를 틀린거고, 국제중재판정부에서 한국은 무조건 불리하다? 웃기는 소리 하고 있네. 내가 정말 웃기더라고.”

– 그런데 FTA 협상 번역문 자체를 오역하고, 그런 일이 있었잖아요? 정부가 이렇게 무능할 수 있냐, 이런 성토 의견이 들끓었는데요.

“그러니까. 띨띨하게 말이야. 그건 맞아요, 그건 맞는데, 국제중재서클에서는요, 한국은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역량을 가지고 있어요.”

– 정부 영역과 민간 영역을 분리해야 한다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정부는 무능해도 민간 영역 인력은 우수하다?

“정부는 무능할 수 있어요. 그런데 실제로 투자분쟁이 있을 때 그걸 정부가 합니까? 안해요. 정부는 정상급 로펌의 변호사들을 임명해서 하는거고, 중재인? 그걸 정부 공무원이 하나? 아니예요. 거기는 오히려 외국인을 선임하는게 더 유리해요. 왜냐 세 사람이 있는데, 한국이 영어도 잘 못하고, 디립다 한국정부 입장만 주장해 봐, 그럼 무슨 소용이 있어?

나머지 두 사람이 2:1로 판정하면 끝인데. 그 안에서 사람을 설득할 사람 중에서도, 이게 무슨 사업이냐, IT 사업이냐, 물사업이냐, 장치산업이냐, 건설산업이냐… 에 따라서 그걸 고려해서 제일 잘 할수 있는, 영향령을 미칠 만한 사람을 임명하는데, 스웨덴 사람일 수도 있고, 노르웨이 사람일 수도 있고, 그런거야, 그게~!”

발가벗고 콘텐츠로 승부하자

인터뷰는 김기창 교수의 집으로 향하는 길 위에서도 계속 됐다. 우리는 세종문화회관과 종로를 가로지르며 계속 이야기했다. 그 중 인상적인 한 토막을 옮기면서 글을 맺는다.

-저는 오픈웹의 새로운 방향이 참 반갑습니다. 물론 김기창 교수가 좀 더 전문적인 분야를 파고들었으면 좋겠다는 분들도 계시겠지만요. 지식인이 반드시 자기 전공에 한정해 발언할 필요는 없고, 오히려 자신이 쌓아온 학문적인 소양, 방법론, 세계관으로 얼마든지 사회 현상을 좀 더 새로운 관점, 시각으로 볼 수 있고, 그런 차원에서 비전을 제시할 수 있다고 보거든요. 그런 차원에선 아주 반갑더라고요.

김기창, 그가 입은 티셔츠에 ‘우분투(Ubuntu)’가 선명하다.

“아, 그 전문가 논란. ‘김기창이 뭐 IT를 안다고, 디도스를 떠드냐?’ 또는 ‘진중권이 뭘 IT를 안다고, 미학 이야기나 하지.’ 저는 이런 류의 반응은 뭐랄까, 제 취향엔 안 맞아요. 마치 권위에 껌벅 죽고, 누가 전문가라고 그러면 그 사람 말 무조건 들어야 되는 것 처럼 오해하는… 발화자의 권위, 그 사람의 권위가 중요한 게 아니고, 그 사람이 말하는 내용이 내가 판단하기에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느냐, 그게 중요한거죠.

이제 사람의 권위는 좀 접고, 콘텐츠로 승부하자. 이 사람이 일자 무식이든 뭐든 간에. 콘텐츠가 중요한 거지. 그 콘텐츠가 얼마나 정확하고, 호소력이 있느냐가 중요한 거지. 내가 전문가니까 내 말을 믿고 따라와! 이건 참 웃기잖아요? 그런 것 좀 안했으면 좋겠어요. 비겁하잖아. 콘텐츠로 승부해야지. 발가벗고. 그걸로 승부해야지. 어디 계급장 가지고…그건 승부도 아니지. 계급장으로 제압하고, 승부를 피하는 거지. 그러지 말자는 겁니다.”

<삼포세대에게 김기창이 전하는 짧은 메시지> (49초)

좋은 기사 공유하고 알리기
슬로우뉴스에 커피 한잔의 여유를 후원해주세요. 필자 원고료와 최소한의 경비로 이용됩니다.

필자 소개

민노씨
슬로우뉴스 편집장

누군가에겐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뉴스일 당신, 그 안에 담긴 우리의 이야기를 생각합니다.

작성 기사 수 : 153개
필자의 홈페이지 필자의 페이스북 필자의 트위터 필자의 구글플러스

©슬로우뉴스 | 개인정보취급방침 | 청소년보호정책 | 슬로우뉴스 안내 | 제보/기고하기 | 제휴/광고문의
등록번호: 경기아51089 | 등록일자: 2014년 2월 10일 | 발행일: 2012년 3월 26일
주소: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동판교로 153 802-902 | 발행인: 김상인 | 편집인: 강성모 | 청소년보호책임자: 강성모

Scroll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