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KBS 예능PD 고찬수입니다. 1995년 KBS에 입사를 했으니 벌써 20년이 넘게 예능 콘텐츠 제작 일을 하고 있네요.”
27년차 예능 베테랑 고찬수 PD는 KBS에서 웹드라마와 MCN 사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IT 분야에도 관심이 많아[인공지능 콘텐츠혁명], [스마트TV혁명] 등의 책을 출간했다. 최근에는 콘텐츠 분야에서의 메타버스 사례에 관심을 두고서 관련 글을 브런치에 올린다.
하지만 그의 본업이라고 할 수 있는 일은 역시 PD. 현재는 [박원숙의 같이삽시다 3]를 담당하고 있다. 2020년엔 34대 한국PD연합회장을 역임했다. 최근 [결국엔, 콘텐츠] (2021, 좋은습관연구소)을 발간한 고찬수 PD에게 예능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관한 그의 생각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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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국엔, 콘텐츠]에 ‘전국노래자랑에서부터 인공지능까지’라는 소개가 있던데, 전국노래자랑과 인공지능은 무슨 연관성이 있는 건가?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다기 보다는 ‘전국노래자랑’이라는 올드한 이미지를 가진 콘텐츠 제작에도 앞으로 인공지능 기술의 활용이 필요하다는 것을 얘기하고 싶어서 그런 소개를 했다. 인공지능은 모든 분야의 기반 기술로 콘텐츠 산업에도 미래에는 필수적인 제작 기술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잠시지만 실제로 ‘전국노래자랑’ PD를 하기도 했고. 그때 [인공지능 콘텐츠 혁명]이라는 책을 냈었는데, 인공지능 강연때마다 “전국노래자랑 피디하고 있습니다.” 소개하면 다들 웃었다. (웃음)
예능 콘텐츠도 그 형식에 따라 참여하는 스텝의 수가 다양하다. 일반적인 버라이어티 예능 프로그램의 제작의 경우에는 50-100명 정도의 스텝이 참여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시청자가 잘 모르는 분야에서 일하는 스텝들도 아주 많다. TV 예능 프로그램 제작비는 2,000만 원에서 1억이 넘는 경우까지 다양하다. [런닝맨] 같은 주말 예능의 경우에는 8,000만원에서 1억5천만 원까지 제작비가 사용된다. 드라마(미니시리즈)의 경우에는 1회 제작비가 평균 4억 정도.
PD가 하는 경우도 있고, 작가가 하는 경우도 있다. 보통은 PD와 작가가 함께 여러 번의 회의를 통해서 아이디어를 다듬고 포맷을 만들어 냅니다. 최근 한국의 예능 콘텐츠들이 해외에 포맷을 수출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크게 성공하는 경우도 나오면서 ‘포맷 저작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명확하게 이 포맷저작권이 누구에게 귀속되는지는 명확하게 정리되지 않았다.
= PD와 작가의 하는 일은 어떻게 구분하나? 제작과 기획으로? 아니면 정규직, 비정규직?
PD는 콘텐츠 기획과 제작의 총 책임자다. 모든 일의 결정권을 가진다. 기획할 때 같이 아이디어 회의하고 기획안을 만들 작가를 PD가 고용한다. 작가의 아이디어는 PD에게 승인을 받아야만 제작이 가능하다. 국내 방송 콘텐츠 제작 환경에서 PD는 이런 이유로 정규직으로 방송사에 소속돼 일하는 경우가 많다. PD는 방송사 콘텐츠 기획과 제작의 판단과 결정을 대리해서 하는 직원인 셈이다. 물론 PD 중에도 방송국 PD에게 고용돼 일하는 비정규직 PD도 있습니다. 작가는 결정권을 가진 PD가 고용하는 스텝 중의 일부로 PD의 기획에 도움을 준다.
= 한번 촬영하면 거의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하는 것 같던데, 보통 현장 촬영 시간은 얼마나 되나?
촬영 소요 시간은 콘텐츠 유형에 따라 큰 차이가 난다. PD 스타일에 따라서도 차이가 많고. 평균적으로는 1시간 분량의 콘텐츠를 제작하기 위해서는 최소 2시간에서 길게는 10시간 이상도 촬영이 진행된다. 심지어는 2~3일 정도 촬영한 분량으로 1시간 정도 방송을 하기도 한다.

= 편집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아는데, 실무에선 어떤가.
콘텐츠 제작에서 가장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것은 콘텐츠 기획이다. 그리고 실제 제작에서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것은 편집이 맞다. 예능 프로그램 대다수는 1주일 단위의 제작 스케쥴을 가진다. 촬영을 하루동안 한다면, 편집은 2~3일 정도가 걸립니다. 시간이 많이 걸리고, 상당히 고통스럽다. 힘들고 외로운 작업이다.

= 예능 제작 스케줄이 통상 1주일이라고 했는데, 그 1주일간의 개략적인 시간표는 어떻게 되는지? 쉬는 날은 있나?
일요일에 방송하는 프로그램이 있다고 가정하자. 그 개략적인 스케줄은 다음과 같다.
- 월요일에서 화요일 사이에 촬영
- 수요일에서 목요일 정도까지 편집
- 편집이 되면 여기에 자막, 음악, 특수효과 등을 하는 시간이 하루 정도는 필요.
- 금요일 저녁이나 토요일에 ‘종편’이라 불리는 최종 편집을 해서 프로그램을 완성.
- 일요일에 방송. 일요일 방송 때는 모여서 방송되는 프로그램을 모니터하고 회의를 한다.
= 요즘은 시즌제 예능이 많아지는 것 같다. 예전엔 짧든 길든 이어서 쭉 했는데. 이렇게 차이가 있는 이유는 뭔가?
과거에는 예능 프로그램들 대다수가 보통 몇 년씩 방송됐다. 하지만 점차 콘텐츠 소비자의 취향이 빠르게 변하면서 새로운 콘텐츠를 발빠르게 제작해야만 하는 환경이 됐다. 그래서 요즘은 시즌제 프로그램이 점점 늘고 있는 추세다
= 예능 PD는 여성보다는 남성이 더 많은 것 같은데.
내가 입사했을 때는 PD 중에 남자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아마도 현장 업무가 많고 촬영 및 제작이 힘들다는 이미지 때문이었을 거다. 하지만 점차 여성의 방송 분야 진출이 활발해졌고, 지금은 여성 PD도 많다.
= 예능에 PD나 작가가 직접 등장하는 종종 있다. 출연자들이 PD 이름을 부르며 친근하게 대하는 것 같은데. PD와 출연자의 관계는 실제로 어떤지 궁금하다. 과거처럼 갑-을 관계가 여전한 건지, 아니면 ‘스타파워’로 갑을 관계가 바뀌기도 하는지. 친해지면 정말 형동생, 친구처럼 지내기도 하는건지 궁금하다.
PD와 출연자들은 갑을 관계라기보다는 비지니스 관계라고 보는 것이 맞다. 프로그램을 같이 하면 친한 친구처럼 잘지내다가도 끝나면 연락도 거의 안한다. 물론 나중에 다시 프로그램을 같이 할 수도 있기 때문에 서로 일정한 수준의 관계는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아주 친한 관계로 친구처럼 지내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대개는 ‘비즈니스 관계’로 보면 된다.
= PD가 자신의 프로그램 화면에 출연자처럼 등장하고 자신을 노출하면 소속 방송국이 싫어하진 않나?
이제 PD들도 이름을 많이 알리는 게 프로그램 성공에 유리하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자신을 알리려 노력하는 편이다. 회사에서는 그런 PD들이 성공하는 콘텐츠를 많이 만드는 데 싫어할 이유가 없고. 뭐 물론 주변의 다른 PD들이 부러워할 수는 있겠다. (웃음)
= 요즘 업계에서 실력을 인정받는 PD는 누군가? 어느 PD의 무슨 프로그램을 주목해 봐야 할까?
이 질문엔 답하기 곤란하다. (웃음) 워낙 많은 PD들이 있어서 그 중 누구 하나를 얘기 하기는 어렵다. [결국엔, 콘텐츠]에 예를 든 프로그램들과 그 PD들을 주목해야할 프로그램과 PD로 소개한 것이니 책을 참고해 주시면 좋겠다.
= 예능 성공의 핵심은 출연자인가? 프로그램 자체의 아이디어, 참신함인가?
프로그램 자체의 아이디어가 물론 가장 중요하다. 그런데 프로그램을 홍보하는 경우에 아무래도 인기있는 출연자가 나온다는 것에 콘텐츠 소비자들이 반응을 하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인기있는 출연자를 섭외하려고 한다. 그리고 유재석, 강호동 같은 오랫동안 인기를 누리고 있는 출연자들은 참신한 아이디어를 선별하는 지혜가 있다. 이들은 식상한 소재의 프로그램들보다 참신한 아이디어의 프로그램을 선택해서 출연하려고 한다.

= 요즘은 ‘특정 방송국 프로그램’보다 ‘특정 PD 혹은 작가가 만든 프로그램’을 더 홍보하고, 수요층도 거기에 반응하는 것 같다.
콘텐츠 소비가 TV에서 스마트폰이나 OTT 서비스로 이동하면서 생기는 자연스러운 변화고,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방송사는 점점 더 중요하지 않게 될 거로 본다.
= 예능 PD로서 교양 PD와 비교하면 어떤가. 의미보다는 재미만 추구하는 것 같다는 생각에 회의감 같은 게 들기도 하나?
글쎄. 내 생각이 모든 경우를 대표하지는 않겠지만, 나는 예능 PD라는 것에 큰 자부심이 있다. 사실 콘텐츠라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소비할 때만이 그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예능 콘텐츠는 시청률도 높고 콘텐츠 소비도 높기 때문에 사회를 변화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지금 프로듀싱 하는 [박원숙의 같이삽시다3]는 가족의 현대적인 의미에 대한 논의를 예능적인 방법으로 얘기하고 있고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한다.

= 너무 예능 프로그램이 많고, 또 너무 재미있게 잘 만들다보니, 예능만 보다가 사회 이슈에 관심이 멀어진다는 비판도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우리가 모두 항상 진지한 주제만을 생각하며 세상을 살아간다면 얼마나 삭막하고 재미없는 세상일까? 심오한 주제를 모두가 즐겁게 볼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예능PD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저 재미만을 추구하는 콘텐츠도 있긴 하다. 그런 콘텐츠들도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어 세상을 밝게 만들어준다는 순기능을 가지고 있다. 이처럼 스트레스가 많은 세상에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준다는 것은 엄청난 가치를 가지고 있는 일이다.
= 같은 영상프로그램이지만, TV 예능과 유튜브 1인 방송은 많은 다르다. 차이점은 뭐고, 그럼에도 공통점이 있다면 뭘까.
TV 예능은 참여하는 전문가들이 상당히 많다. 이 분야 전문가들의 공동 창작물이라고 할 수 있죠. 그런데 유튜브 1인 콘텐츠는 공동 창작물이 아니라 개인 창작물에 가깝다. 여기서 큰 차이점이 발생한다. TV 예능은 많은 전문가들의 능력을 조율하는 과정이 가장 중요하고, 이 일을 하는 PD들가 많은 권한을 가진다. 1인 콘텐츠는 가장 중요한 것이 개인의 창의력을 어떻게 표현하느냐다.
= K콘텐츠의 위상이 대단하다. 개인적으로 체감한 사례나 기억 같은 게 있다면.
이것에 대한 사례는 너무 많아서 이제는 모두가 아는 상식이 된 것 같다. 미국 팝 시장에서 한국의 노래가 1위를 하고, 세계 영화시장에서 한국의 영화인이 최고로 인정을 받는 것을 많이 봤다. 개인적으로는 중국의 콘텐츠 전문가들이 한국 콘텐츠에 대해 칭찬을 하는 것에서 우리 콘텐츠의 위상을 느끼곤 했다.
= 미래의 예능은 어떤 모습일까?
어려운 질문이다. 최근에 관심을 두고 있는 게 ‘메타버스’다. 가상 공간인 게임에서 콘텐츠 소비가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가에 관심을 두고 있다. 최근 ‘부캐’가 인기를 끌고 있는데, 나는 이 현상이 게임의 영향이라고 본다. 미래의 예능은 게임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게 될 거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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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버스란?
메타버스(Metaverse)는 가상·초월(meta)과 세계·우주(universe)의 합성어로, 3차원 가상 세계를 뜻한다. 더 구체적으로는, 정치·경제·사회·문화의 전반적 측면에서 현실과 비현실 모두 공존할 수 있는 생활형·게임형 가상 세계라는 의미로 폭넓게 사용된다. 하지만 메타버스라는 개념에 관한 뚜렷한 정의는 아직까지 확립되지 않았고, 학자나 기관마다 나름의 정의를 내리고 있어 넓은 의미로 사용된다.
메타버스는 1992년 닐 스티븐슨(Neal Stephenson)의 소설 [스노우 크래쉬]에서 유래한 개념이다.
다음은 작품 속 메타버스에 대한 묘사를 인용한 것이다.
“양쪽 눈에 서로 조금씩 다른 이미지를 보여 줌으로써, 삼차원적 영상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 영상을 일초에 일흔두 번 바뀌게 함으로써 그것을 동화상으로 나타낼 수 있었다. 이 삼차원적 동화상을 한 면당 이 킬로픽셀의 해상도로 나타나게 하면, 시각의 한계 내에서는 가장 선명한 그림이 되었다. 게다가 그 작은 이어폰을 통해 디지털 스테레오 음향을 집어넣게 되면, 이 움직이는 삼차원 동화상은 완벽하게 현실적인 사운드 트랙까지 갖추게 되는 셈이었다. 그렇게 되면 히로는 이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컴퓨터가 만들어내서 그의 고글과 이어폰에 계속 공급해주는 가상의 세계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었다. 컴퓨터 용어로는 ‘메타버스’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세상이었다.” (‘스노우 크래시’ 중에서)
이처럼 작품 속에서 메타버스의 기술적 근간이 상세히 설명되는데, 이를 통해 메타버스는 고글과 이어폰이라는 시청각 출력장치를 이용해 접근할 수 있는 가상세계로 규정된다. (출처: 위키백과 ‘메타버스’ 중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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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같은 거대 플랫폼이 드라마나 영화를 만드는 일은 이제 익숙하다. 예능 프로그램 제작 시도는 어떤지 궁금하다. 그리고 그런 시도들은 국내 콘텐츠 시장에 어떤 영향을 줄까?
넷플릭스는 이미 예능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다. 드라마나 영화에 비해 규모가 작고 양도 아직 적어서 알려지지 않고 있지만요. 예능 콘텐츠의 가장 큰 걸림돌은 해외 시장에서 언어적인 제약과 각 나라의 문화적인 차이다. 전 세계 시장을 상대로 제작하는 넷플릭스 입장에서는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드라마나 영화를 더 많이 만드는 거다. 앞으로 예능 콘텐츠도 더 늘어날 거라 예상한다. 나는 넷플릭스보다 카카오나 네이버가 예능 콘텐츠 시장에 더 영향을 주게 될 거로 본다.

= 끝으로 미래의 PD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예능 콘텐츠는 다른 장르에 비해 시대의 변화를 더 적극적으로 수용해야 한다. 항상 새로운 것에 관심을 가지고 세상에 없는 조합을 만들어내는 것이 필요하다. 세상을 다른 시각으로 보려는 노력과 새로운 변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려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결국엔, 콘텐츠]에 콘텐츠 기획자로서 어떤 일을 하고 평소에 무엇을 준비하고 공부해야 하는지, K콘텐츠 제작하며 했던 각종 도전과 경험들을 함께 설명했다.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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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결국엔, 콘텐츠]를 발간한 ‘좋은습관연구소’가 저자인 고찬수 PD와 진행한 인터뷰를 슬로우뉴스 원칙에 따라 편집해 발행한 글입니다. 이 글에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콘텐츠를 나눈다는 것 외에는 어떤 대가도 없습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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