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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트 컨버전스(The Great Convergence; 리처드 볼드윈, 엄창호 역, 세종연구원, 2019)은 최근의 세계화를 역사적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책이다. 제목은 영어 제목을 그대로 쓰기보다는 ‘대수렴’이라고 번역했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

각설하고, 책은 두 개의 세계화를 대비한다.

  1. 1820년~1990년까지: 증기혁명과 제1차 세계화
  2. 1990년~현재: 정보혁명과 제2차 세계화

이 둘의 대비가 이 책의 핵심이다.

경제 활동을 가로 막는 분리 장벽은 1. 상품의 이동(에 의한 제약) 2. 지식의 이동(에 의한 제약) 3. 사람의 이동(에 의한 제약)에서 발생하는데, 증기혁명은 상품의 이동에 의한 장벽을 해체했고 정보혁명은 지식의 이동에 의한 장벽을 해체했으며 미래의 기술 발전은 사람의 이동으로 인한 제약과 장벽을 해체할 것이라는 것도 키워드다. 바로 여기에 1차 세계화와 2차 세계화가 다른 형태로 전개된 실마리가 있다.

그레이트 컨버전스

자세한 내용은 책을 참고하시고, 여기에선 핵심 내용을 짧게 설명한다.

정보혁명의 빛과 그림자 

먼저 증기혁명으로 상품의 이동 제약이 사라지면서 시장이 전세계로 확대되었고, 산업이 계속 확대될 유인이 생겼다. 하지만 이 시기 정보와 지식의 이동에는 여전히 엄청난 제약이 있었기에, 복잡한 대규모 생산과정을 총괄하기 위해서 각 산업은 지리적으로 인접한 곳에 뭉쳐 클러스터(cluster; 단지, 예: 실리콘밸리)를 이뤄야만 했다. 바로 이 때문에 G7 선진국의 자본은 자국의 노동과 동맹을 이루어야 했으며, 선진국 국민이라면 계층 상관 없이 산업 성장의 혜택을 누릴 수 있었다.

반면, 지식의 확산은 어려웠다. 이런 점은 극히 일부의 국가(일본, 한국, 대만 등)를 제외하고 산업 클러스터(industry cluster) 형성을 어렵게 만들어 세계 대부분 지역에 걸친 거대한 소득 격차를 강고히 유지시켰다.

영국산 증기기관차 'GER552' 모델 (1882년) 사진: Tony Hisgett (CC BY)
영국산 증기기관차 ‘GER552’ 모델 (1882년, 사진: Tony Hisgett, CC BY)

하지만 정보혁명이 지식의 이동이라는 제약을 걷어내자 상황이 빠르게 바뀌었다. 기존의 통신 수단으로는 할 수 없던 복잡한 조정 과정이 정보혁명으로 가능해지자, G7 기업은 생산 과정을 분절해 최고의 비교 우위를 누릴 수 있는 곳으로 이전 배치할 수 있었다.

예컨대, 과거 멕시코 상품은 멕시코의 노동자와 멕시코의 지식, 기술의 합이었다. 하지만 미국 기업이 이 자리에 들어오자, 멕시코 노동자와 미국의 지식과 기술이 합쳐질 수 있게 되었다. 바로 이 덕에 ‘사람의 이동 제약’이 허락하는 지리적 범위 안에서 광범위한 제조업 이전이 일어나게 되었다. 그 결과 중부 유럽, 동아시아와 아세안, 중앙아메리카에서 글로벌 가치 사슬 혁명에 참여하여 빠른 산업화를 이룬 국가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는 세계 각지에 복잡하고 다양한 파급효과를 낳았다. 비교적 단순하게 선진 산업국 vs 후발 개도국으로 나눌 수 있던 1차 세계화 시대와는 전혀 다른 풍경이었다.

먼저 선진 산업국의 고차 서비스업은 큰 혜택을 받았다. 선진국의 제조업 기업들이 아웃소싱을 통해 제조부문을 이전하고, 기술개발과 마케팅 등에 집중하면서, 제조업 기업들은 자국 내에서 실질적으로 서비스 기업처럼 움직이게 되었다. 여기서 막대한 부가가치가 나왔으며, 이 부문의 지휘자들은 경쟁력이 없는 저부가가치 제조업을 구조조정으로 내몰며 선진국의 전반적인 경제성장을 이끌었다.

그 다음 선진국의 제조업 노동자들은 큰 타격을 받았는데, 그간 지식의 이동비용이 높았기 때문에 G7 기업들과 맺었던 동맹조약이 파기되었기 때문이다. 외국의 더 낮은 노동 비용과 선진국의 고차 기술이 결합되자 그런 노동 비용으로 작업을 할 수가 없던 선진국 노동자들은 세계화의 혜택을 입기는커녕 오히려 배제되었다.

선진국의 제조업 노동자들은 오히려 타격을 입었다.
정보혁명으로 선진국의 지식과 비선진국의 노동력이 결합하면서, 선진 산업국의 서비스업은 큰 혜택을 입었지만, 선진국의 제조업 노동자들은 오히려 타격을 입었다.

신흥 산업국들의 경우 

빠르게 산업화했던 신흥 산업국들(I6: 폴란드, 인도네시아, 인도, 중국, 태국 + 다소 복잡한 사례로 한국)은 대신 큰 이득을 얻었다. 과거 1차 세계화 시대에 후발국의 산업화는 성공 사례가 극히 희귀할 정도로 어려운 일이었다. 19세기의 일본, 이탈리아, 20세기의 한국, 대만, 그리스 같은 국가들은 지리적 인접성, 정치적 리더십, 운, 교육수준과 사회적 자본 같은 무수히 많은 요인 덕에 간신히 그 열차에 올라탄 우등생들이었다.

이들 국가 중 특히 한국 같은 국가는 국내 전체에 걸쳐 규모의 경제를 확보할 수준의 공급사슬(supply chain; 혹은 ‘공급망’)[footnote]공급사슬: 원재료를 획득하고, 이 원재료를 중간재나 최종재로 변환하고, 최종제품을 고객에게 유통시키기 위한 조직 및 비즈니스 프로세스의 네트워크. (출처: 위키백과-공급사슬) [/footnote]을 만들어내어 국민경제 전체의 수준을 향상시키는 모범적인 사례로 특기할만 했다. 대다수 국가들은 그와 같은 성적을 거둘 수 없었지만, 2차 세계화로 이전보다 더 수월하게 산업화에 나설 수 있게 되었다.

과거 한국처럼 모든 공급사슬을 차례차례 발전시켜 국민경제 전체를 끌어올리는 어려운 도박을 하지 않아도, 부품 별로 전문화된 아웃소싱을 수행함으로써 세계화에 참여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저자는 이를 ‘빅 푸시’에서 ‘스몰 넛지’로([footnote]넛지(nudge)는 원래 ‘팔꿈치로 슬쩍 찌르다는 의미로 자연스럽게 참여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 특히 경제적으로는 ‘타인의 선택을 유도하는 부드러운 개입'(매일경제, 류지민, ‘씽크 스몰’-‘셀프 넛지’로 만드는 긍정적인 변화 참조)의 의미로 쓰인다.[/footnote]로 변했다고 표현한다. 그 결과 G7 국가의 세계 제조업 비중은 3분의 2에서 절반 이하로 떨어졌고, I6 국가의 세계 제조업 비중은 50% 이상으로 올라왔다.

I6
I6:폴란드, 인도네시아, 인도, 중국, 태국 그리고 한국 (상단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순서대로)

한편 세계 경제 파이 전체가 커지고 극빈층들이 중산층으로 떠오르면서, 자원 수요 또한 급속도로 팽창했고, 그 결과 I6 국가들처럼 글로벌 가치 사슬에 적극적으로 뛰어들 역량이 없어도 이득을 보는 국가들이 등장했다. 바로 원자재 슈퍼 사이클 덕에 막대한 돈을 쌓게 된 자원수출국들, 호주, 브라질, 나이지리아, 러시아 같은 국가들이었다.

허나 공짜 점심은 없다고, 이들 신흥 산업국가들은 또 다른 문제를 떠안게 되었다. 과거 한국처럼 힘들게 산업화 하지 않아도 많은 공장을 유치할 수 있었지만, 역시 과거 한국처럼 국민 경제 전체를 고도화하는 전략을 더는 수행하기 힘들어진 것이다. 한국은 모든 부품 생산 기지와 조립라인을 비롯한 공급사슬을 자국에 유치했으며, 그 안에서 자체적인 기술 혁신과 생산성 향상을 주도했다. 즉, 한국은 국가와 국민 전체가 단계별로 경제발전의 사다리를 올라가는 고전적 방법을 취했고, 일정 단계까지 발전한 이후에는 세계화의 적극적인 주자로 참여하면서 아시아 지역 본부 경제의 중심축으로 우뚝 설 수 있었다.

한국 한강 야경 롯데 엘타워
한국은 모든 부품 생산 기지와 조립라인을 비롯한 공급사슬을 자국에 유치했다.

하지만 글로벌 가치 사슬 혁명 이후에 산업화에 착수한 국가들은 그럴 수 없었다. 관세 장벽을 설치하고 특정 제조업 부문을 전반적으로 끌어올리는 산업정책을 실시했다가는 글로벌 가치 사슬에 배제되는, 파괴적 결과가 예견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G7 기업이 저개발국에게 아웃소싱을 하고 자신들의 제조 노하우와 지식을 열심히 전파한 이유는, 그렇게 지식을 배워봤자 해당 국가에서 자신들의 지위를 도전할 경쟁기업이 출현할 리가 없다는 것을 잘 알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중요한 건 혁신을 만들어내고 뛰어난 브랜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고차 서비스업과 거기에 투입될 인적자본의 수준이고, 이 부문에서 선진국의 우위는 대체로 2차 세계화 동안 더 강화되었다. 따라서 한국을 제외한 I5 국가들 같은 경우는 G7 제조업을 유치하여 도시화, 산업화, 중진국으로의 성장과 같은 긴급한 과제를 이루어내는 데는 비교적 쉽게 성공했지만, 역설적으로 바로 그 때문에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데는 어찌보면 더 큰 장벽을 마주하게 되었다.

텔레프레즌스와 텔레로보틱스의 미래 

물론 이런 고민도 2차 세계화의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한 대다수의 국가들에 비하면 행복한 고민이라고 하겠다. 정보혁명은 지식의 이동 비용은 획기적으로 줄였지만, 사람의 이동 비용을 줄이지는 못했다. 지식은 이제 워드프로세서 파일에 담겨 온 세상을 1초만에 움직일 수 있게 되었지만, 사람은 아직도 배, 기차, 비행기에 실려 이동해야만 했다.

문제는 G7 기업에서 글로벌 생산의 조정 과정을 담당해야하는 것이 바로 이 ‘사람들’의 몫이었다는 것이다. 결국 선진 경제권의 중심지로에서 비행기로 하루에 왕복할 수 있는 권역의 지역들은 2차 세계화의 혜택을 볼 수 있었지만, 그보다 더 먼 거리에 있어 장거리 여행을 요구하는 지역들은 2차 세계화의 과정에서 배제되었다.

폴란드는 독일에 붙어 있어 큰 혜택을 보았지만, 우크라이나는 반대의 이유로 배제될 수밖에 없었고, 훨씬 더 멀리 떨어져 있는 라틴아메리카의 페루나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카메룬 같은 국가는 더 심하게 배제된 것이다. 이들 국가는 선진국의 기술과 자국의 값싼 노동력을 결합한 I5 국가들과의 경쟁에서 도저히 이길 수 없었고, 그 결과 자국의 산업기반이 오히려 축소되는 것을 감내해야 했고, 잘 해봤자 1990년과 비교해서 아무 변화가 없는 정도에서 그쳤다.

리처드 볼드윈은 세계화의 미래는 마지막 장벽인 ‘사람의 이동비용’을 해결하는 데서 결론날 것이라고 전망한다. 가상현실과 증강현실을 이용해 원거리 통신으로도 실제 대면접촉 효과를 낼 수 있는 텔레프레즌스(Telepresence), 거리의 제약을 극복하고 로봇 조작을 통해 노동력을 제공할 수 있는 텔레로보틱스(Telerobotics) 등의 기술이 그런 돌파구가 될 것이라고 볼드윈은 기대한다(기술사적으로 보았을 땐 정보혁명의 연장선상일 것이다).

'셀링 비주얼라이저'를 이용한 온라인 비디오 웹 회의 (출처: Murray 1010, CC BY SA 3.0)
‘셀링 비주얼라이저’를 이용한 온라인 비디오 웹 회의 (출처: Murray 1010, CC BY SA 3.0)
미공군의 초기 텔레로보틱스 시현 모습 (Rosenberg, 1992, CC BY-SA 4.0)
미공군의 초기 텔레로보틱스 시현 모습 (Rosenberg, 1992, CC BY-SA 4.0)

볼드윈은 이런 기술들이 상용화될 근 미래에는, 2차 세계화에서 겪은 변화보다 더 심원한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왜냐면 그동안 선진국 노동계급이 시민권 지대에 의존할 수 있던 저부가가치 서비스업도 원격 기술의 침략에 위협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시급 10,000원을 주고 고용해야 하는 서울의 맥도날드 종업원은, 로봇을 원격조종하여 햄버거를 만드는 필리핀 마닐라의 시급 2,000원 노동자로 대체될 수 있는 것이다. 한편, 거리 제약이 더 줄어들고 기존 I5 국가들의 임금이 상승함에 따라, 2차 세계화에서도 배제된 저개발 국가들에도 기회가 일부 돌아가게 될지도 모른다고 예상한다.

일자리 아닌 노동자 중심으로  사회안전망 재설계하라

영어 원서는 2016년에 나왔다. 즉 브렉시트와 트럼프 당선으로 시작된 반세계화 충격이 아직 본격적으로 다가오기 전에 쓰여진 책이라 세계화에 대해 전반적으로 낙관적인 시선을 볼 수 있다. 물론 현실을 역사적 관점과 경제학의 모형으로 재구성하는 건조한 시각이 대부분이긴 하다. 예컨대 이 책에선 G7 국가의 개방성과 경제적 이익 때문에 세계화가 당분간 후퇴하지 않을 것이라고 조심스레 전망한다. 그리고 출간된 그 해 브렉시트와 트럼프 당선이라는 사건이 있었다. 이 점은 볼드윈의 잘못이라고 보긴 어렵지만, 볼드윈이 현재의 반세계화 흐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하다.

그 외 나머지는 세계화 논의를 간명하게 내용 정리한 책 정도의 의미로 나에겐 다가왔다. 그래도 몇 가지 흥미로운 얘기를 접할 수 있었던 책이다. 특히 후반부에서 1차 세계화의 막차를 탄 한국과 2차 세계화를 탄 타이, 베트남을 비교한 부분은 참 한국 현대사라는 게 아슬아슬함의 연속이 아니었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리처드 볼드윈은 텔레프레즌스와 텔레로보틱스 같은 원격 기술선진국 노동시장에는 AI보다 훨씬 더 현실적인 위협이 될 것으로 전망하면서 일자리 대신 노동자에 초점을 맞춘 사회안전망 재설계를 주문한다. 이 점에 대해서는 쇠퇴하는 지역 대신 그곳에 사는 사람에 집중하라는 에드워드 글레이저나 엔리코 모레티의 지적과 상통한다. 이 점에서 두 책과 유사한 시대적 배경과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책이다.

우리가 게으르다고? (사진: Alexandre Dulaunoy, CC BY SA)
이제 선진국 노동시장에서는 AI보다 텔레프레즌스와 텔레로보틱스와 같은 ‘원격 기술’이 훨씬 더 현실적인 위협이 될 것으로 볼드윈은 전망한다. (출처: Alexandre Dulaunoy, CC BY SA)

 

한편 이런 책을 읽다보면 아무래도 앤드류 양을 비롯한 실리콘밸리 민주당의 선전에 고개를 젓게 되는 부분이 생긴다. 나도 그들의 비전과 문제의식에 전반적으로 공감하는 입장이지만, “세계화와 자유무역, 이주에는 잘못이 없고 진정한 문제는 AI를 비롯한 기술발전이다. 현재의 반세계화는 진짜 적을 보지 못하고 눈 앞의 공포를 이용하려는 정치세력이 선동한 결과물이다”(앤드류 양 연설문에도 나오는 말)는 그들의 선전은 여러모로 잘못되지 않았나 싶다.

최근의 세계화는 이 책에서 말하듯 정보통신 기술의 발전에 결정적인 영향을 받은 현상이다. 즉, 자동화 기술과 AI 발전과 세계화는 모두 정보통신 기술 발전과 긴밀히 연결된 것이기에 떼어놓을 수 없다. ‘세계화, 자유무역, 이주에는 잘못이 없고 자동화와 AI가 문제다’는 선전은 다수 대중의 불안감을 무지한 것으로 치부하고 자신들은 눈이 깨어있어 진정한 진실을 알고 있다는 엘리트주의적이고 계몽적 발상에서 나온 것인데, 그런 발상으로는 민주정의 규칙 안에서 포퓰리즘의 도전을 이겨내기가 쉽지 않아보인다.

만약 진정으로 세계화를 구하고 싶다면, 기술 발전과 자동화라는 적을 부풀리고 세계화의 양면성을 억지로 숨기려고 하는 것보다는, 먼저 솔직하게 인정하고 시작하는 게 낫지 않을까.

Bernard Goldbach, "Telepresence Robot", CC BY
Bernard Goldbach, “Telepresence Robot”, CC 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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