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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만 원 저작권법 vs. 자막 제작자 때려잡기

2014년 6월 29일 워너브라더스와 20세기폭스, NBC, ABC 등 6개 미국 드라마 제작사가 한국의 자막 제작자(ID 15개)를 저작권법 위반 혐의로 고소했다.

워너브라더스 20세기폭스 NBC ABC

워너브라더스, 20세기폭스, NBC, ABC 등 대형 미드 제작사들이 한국의 ‘자막 제작자’를 때려잡기 위해 십자군을 결성했다.

자막 제작자 잡기 위해 동원된 대한민국 경찰력

서울 서부경찰서는 고소당한 자막 제작자들을 경찰서에 불러 조사했다. 이들 자막 제작자들은 NBC의 [히어로즈], ABC의 [로스트]와 같은 인기 미드의 자막을 만들어 네이버 카페(‘감상의 숲’, ‘ND24클럽’) 등에 올린 혐의를 받고 있다고 한다. 저작권자의 경미한 사익을 보호하기 위해 공공자원인 경찰력을 동원한 것이다.

이러한 경찰 수사는 사사로운 이익을 추구하지 않고, 대부분 미드를 좋아하는 팬으로서 그 드라마를 함께 나누고자 한, 어찌 보면 공익적인 활동을 했다고도 볼 수 있는 자막 제작자를 과도하게 위협하는 처사다. 우리는 이것이 매우 잘못된 공권력 행사라고 생각한다.

자막 제작자, 과연 어떤 사람들일까?

항상 자막에 짧은 닉네임이나 아이디로만 등장하는 자막 제작자, 이들은 과연 어떤 사람들일까? 자막 제작자의 생생한 목소리를 있는 그대로 담은 다큐멘터리, [다크나이트를 지켜죠](장혜영, 2008)는 저작권 침해 사범이 아닌 적극적인 ‘문화 향유자’이자 ‘전파자’이며, ‘2차 창작자’로서의 자막 제작자를 조명한다. 하지만 현실은 우울하다. 왜냐하면, 현행법의 형식적 잣대로만 보면 그들은 ‘어둠 속에 숨어서 활동해야 하는 기사'(다크나이트), 아니 범법자일 뿐이니까.

다크나이트를 지켜죠 (2008년)

2008년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종전의 슈퍼히어로 영화에서 쉽게 볼 수 없었던 깊이를 더한 배트맨 시리즈 신작, [다크나이트]를 내놓는다. (……중략……) 같은 해, 대학교 휴학생 장혜영(‘해멍’)은 친구 다섯 명을 모아 ‘멍큐멘터리 팀’을 만들고, 청소년 미디어 창작지원 프로젝트인 유스보이스의 사전제작지원을 받아 [다크나이트를 지켜죠]란 영화를 찍는다.

그러나 이 영화의 주인공인 다크나이트는 배트맨이 아니다. 그들은 우리가 토렌트 등의 파일 공유 기술을 통해 이른바 불법으로 내려받는 수많은 해외 영상 콘텐츠에 자막을 다는 자원봉사자들이다. 그들에게 다크나이트란 이름을 붙여줄 만한 이유는 있다. 그들은 아무 경제적 보상 없이 많은 시간을 들여 자막을 만들어 해당 콘텐츠가 국내에 확산되고, 구매력이 있는 팬을 만들고, 시장을 형성하는 데 힘을 보탠다. 그러나 그들이 저작권이 있는 대본을 바탕으로 2차 저작물(자막)을 만드는 이상, 그들은 범법자로 정의된다.

– 김재연(블로터닷넷), ‘문화향유권 상실의 시대, 다크나이트를 지켜줘’ 중에서

100만 원 저작권법 시대 온다! 

저작권 침해에 대한 형사 고소가 사안의 경중을 가리지 않고 남발하고 있는 게 지금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이에 오픈넷은 저작권자 보호 효과는 미미한 반면, 가혹하게 이용자들을 위축시키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법개정 작업을 벌였고(새정치민주연합 박혜자의원 2013. 12. 19 발의 등), 관련 상임위는 저작권 침해의 재산적 피해가 100만원이 넘지 않는 경우에는 형사처벌을 하지 않도록 하는 법안을 마련했다. 그리고 법안은 상임위를 통과해 현재 법제사법위원회(국회 정식 통과 전 단계)에 계류 중이다.

100만 원 저작권법 개정안 (개요)

제안 이유

현행 「저작권법」에 따르면 저작권을 침해한 자는 권리자의 피해 규모 등에 관계없이 일률적으로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도록 되어 있음. 이에 경미한 저작권 침해에 대해서도 고소와 고발이 남용되고 고소 취하 대가로 과도한 합의금을 요구하는 행위가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실정임. 따라서 비영리 목적의 일정 규모 이하 저작권 침해행위는 형사처벌 대상에서 제외함으로써 과도한 형사범죄자의 양산을 방지하려는 것임.

주요 내용

비영리 목적의 소규모 저작재산권 침해행위는 형사처벌 대상에서 제외함(안 제136조 제1항 제1호).

저작권법 일부개정법률안

저작권법 일부를 다음과 같이 개정한다.

제136조 제1항 제1호 중 “저작재산권”을 “다음 각 목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로서 저작재산권”으로 하고, 같은 호에 가목 및 나목을 다음과 같이 신설하며, 같은 조 제2항 제3호 중 “제93조”를 “제1항 제1호 각 목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로서 제93조”로 한다.

가.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경우
나. 저작물 등의 복제물의 소매가격을 기준으로 6개월 동안 100만원 이상의 피해금액이 발생한 경우

진행 경과 개요

  1. 박혜자 의원(새정연)이 피해 규모 500만원 이상인 경우 형사처벌 가능토록 한 개정안 발의 (2013. 12. 19 발의)
  2. 오픈넷, 박혜자 의원과 공동주최 토론회 개최 (2014.04.16.)
  3. 오픈넷,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중대한 침해나 피해규모 250만원 이상인 경우에만 처벌 가능토록 하는 캠페인 (2014.04.24.)
  4. 교문위 법안심사소위, 영리목적 침해인 경우 또는 피해규모 100만원 이상인 경우에만 형사처벌 가능하도록 하는 안이 통과됨 (2014.04.24.)

그런데 바로 이 사건에서 자막제작자들은 드라마의 한글 자막만을 제작하여 텍스트 파일로 공유했을 뿐 드라마 영상파일을 무단으로 배포하지는 않았다. 전체 작품 중 극히 일부만을 새로운 언어로 재창조하였을 뿐이다. 전체 작품에서 대사의 의미만 따로 추출해보자. 그 비중이 얼마나 되겠는가.

영상 파일을 본 사람은 정식방송을 해도 보지 않을 가능성이 높지만, 한글 자막만을 읽었다고 해서 해당 드라마를 보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 자막 파일 자체가 영상파일 저작권자 시장을 잠식하는 효과는 미미할 뿐이고, 1백만 원을 넘지 않을 것이다. 현재 추진 중인 100만원 저작권법 개정안이 통과하면 자막 제작자들은 무죄 판결을 받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

자막 제작자, 과연 공력권 동원할 불법 저질렀나?

물론 이들 자막은 영상파일을 인터넷에 올려 무단 복제 및 배포하려는 사람들이 더 많은 다운로더들을 유혹하는 데 도움이 되기는 하겠지만, 그 책임을 자막제작자들에게 지우는 것은 가혹하다. 더욱이 자신만 보기 위한 다운로드하는 것은 불법도 아니다.

굳이 비유하자면, 3D 영화를 볼 수 있도록 3D 안경을 무료로 배포한 사람들에게 3D 영화파일의 무단복제에 대해 책임을 지울 수는 없는 것이다. 결국 직접 침해와 간접 침해의 피해를 모두 합쳐봐도, 이들이 공권력을 동원해야 할 정도로 큰 피해를 초래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픈넷 카드

자막 제작자를 형사 고소한 사례는 전 세계적으로 매우 드물다. 이들을 처벌한 사례는 더 드물다. 2007년 폴란드에서는 무단으로 자막을 제작해 사이트(napisy.org)에 올린 네티즌을 경찰이 체포해 조사한 적 있다. 8년을 끈 이 사건은 결국 지난 2013년 5월에 검찰의 불기소 처분으로 결론 났다.

자막 ‘자원봉사자’ 수사? 처벌? 부작용만 키울 터

게다가 이들은 아무런 대가 없이 원어민 수준의 영어를 하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드라마를 볼 수 있게 하려고 이런 수고를 했다. 따라서 비록 그것에 일부 위법행위가 있다고 하더라도, 국가의 형벌권을 발동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팬 문화를 위축시키고, 문화의 향상, 발전을 저해해 부작용만 키울 우려가 있다. 더욱 심각한 범죄들을 단속할 시간에 경찰이 많은 사람들의 언어장벽 극복을 위해 재능기부를 하려는 사람들을 단속하고 있다고 생각해보라.

고소했다고 알려진 미국드라마 제작사들에 대해서는 그 내심에 의구심마저 생긴다. 자막 제작자들은 미국 드라마의 가장 적극적인 팬이다. 자신들은 쉽게 보고 끝날 수 있는 드라마를 그렇지 못한 않은 사람들이 볼 수 있게 하려고 대사를 번역하고, 자막 제작 작업에 노력과 시간을 들였다. 생각해보라. 소위 ‘미드’가 한국에서 인기를 끌게 된 것도 이렇게 자연스럽게 성장한 팬 커뮤니티의 역할과 공유문화의 덕분임을 부정할 수 없다. 한국 내 미국 드라마 시장은 이들과 함께 성장할 것이다. 더 큰 수익을 좇는 기업이라면 이들과 함께 성장할 방법을 찾는 게 먼저다.

저작권법 제1조

자막 제작자는 과연 미드의 적일까? 아니면 미드의 전도사일까? 형사 고소 고발로 문화 산업의 발전을 약속할 수 있을까?

더 크고, 더 넓고, 더 길게 생각해보라

미국 드라마 제작사들의 고소의사가 진정한 것인지 의문이다. 이들의 취지를 꼼꼼히 확인해야 한다고 본다. 세계적 규모의 미국 드라마 제작사들이 한국의 힘없는 팬에 불과한 자막 제작자를 고소한다? 이것이 정말 그들의 진정한 의사란 말인가. 한국에서 미국 드라마의 인기는 이들의 ‘재능기부’에 의존해 왔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 ‘사실’을 저작권자들은 방치해 왔다. 그런데 이제 와서 자막 제작자에게 저작권 침해의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너무 이율배반적이다.

만약 자막 제작자를 ‘때려잡는’ 것이 미국 미드 제작사의 진정한 의사라면, 우리는 미국 드라마 제작사들이 조금 더 크고, 더 넓고, 더 길게 생각하기를 바란다. 미국 드라마 제작사들이 먼저 해야 할 일은 미국 드라마의 적극적인 팬들이 미국 드라마를 더 쉽고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합법적인 유통채널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미국 드라마가 한국에서 성공하는 길은 미드를 방영하는 케이블 TV의 단기적 이익을 보전해 주는 것이 아니다. 미국 드라마를 사랑하는 그래서 자신의 시간을 쪼개 아무런 대가 없이 자막을 기꺼이 제작하는 그 ‘팬’과 함께 가는 것이라고, 우리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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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넷
초대 필자, 비영리 사단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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