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원문:
한겨레, ‘감동의 투표율 64%’ 서울 20대에 무슨 일이, 2012년 4월 13일
기사 요약:
인천과 경기 20대 투표율 비해 두 배 가까이 높아 / 시립대 반값등록금 보며 “투표하면 바뀐다” 학습 / 나꼼수 돌풍·SNS도 서울 유권자들에겐 큰 역할
기사 총평:
야심 찬 주장에 비해 근거가 곤란하다.
기사 분석:
경향신문의 관련 보도에서 나온 “서울 20대 투표율 64.1%” 대목에 대해 이유를 진단한다는 명목으로 “누리꾼 추측” 및 일부 전문가 멘트를 자의적 채집(cherry-picking)하는 방식으로 작성된 기사다. 여러 시각을 비교하기보다는 기자의 주장을 펼친 후 지지적인 멘트를 하나씩 첨부하는 방식을 취한다. 누리꾼 멘트의 자의적 인용의 일반적 문제점은 이미 슬로우뉴스의 이전 기사에서 지목한 바 있으며, 실명 전문가 인용 3건도 모두 정식 분석 이전의 즉석 인상 비평 수준에서 이해해야 할 멘트다. 무엇보다 뼈대를 이루는 주장인 서울시민의 긍정적 선거 경험이 원인이라는 주장은, 서울시민 가운데 유독 20대만 학습할 이유가 충분하지 않기에 하나의 가설 수준에서만 제기될 수 있는 사안이다.
하지만 가장 기본적인 문제는 애초의 경향신문 보도에 제시된 방송사 합동 출구조사 기준 64.1%라는 수치가 의심의 여지가 있는 높은 숫자라는 것이다. 실제로 개표 당일 KBS뉴스에서 보도된 방송사 출구조사는 서울지역 2~30대 투표율을 43.3%로 보도하고 있는데(1분 40초 지점부터) 경향신문에서 제시하는 20대 64.1%, 30대 44.1%와 격차가 지나치게 크다. 나아가 경향신문 자체의 보도만을 보더라도 수치를 의심해볼 만 하다. 수도권 20대 투표율이 47.6%이라고 하는데, 서울이 64.1%이며 서울보다 인구규모가 1/4 수준인 인천이 38.5%라면, 서울보다 인구가 약간 많은 수준의 경기도의 투표율이 인천보다 낮은 수준이어야 한다(그런 경우라면 기자는 그 부분에 먼저 주목했을 가능성이 높다). 2개월 후 선관위의 공식 세대별 투표자료가 나와야 완전한 검증이 가능하겠으나, 그대로 의심 없이 인용할만한 수치와 거리가 멀다.
함께 제시된 다른 수치 자료들 역시 출처와 검증력이 부족하다. 나꼼수 팟캐스트 청취율이 수도권이 더 높다는 말은 실제 리얼미터가 발표했던 자료에 의하면 서울 35.2% 경기 36.2% 대전/충청 30% 대구/경북 29.6% 즈음으로, 차이는 있지만 현격하게 높지는 않다. 또한 더 들었다고 해서 더 지지적 방향으로 강하게 작용해야할 인과 또한 성립되지 않는다.
트위터 이용자 비율 역시 수치의 출처가 명시되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수도권 인구가 원래 2010년 기준으로 49.7%, 강원 인구가 2.9% (e-나라지표 기준) 가량이기에 서울주민이 특이하게 사용량이 높다고 주장할만한 충분한 근거가 되지 못한다.
즉 자료로서 정당화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닌 기자의 희망찬 가설임에도 불구하고, “이유”에 대한 설명이라고 과대포장한 기사다. 서울의 20대라는 특정층을 분리시켜 모범시민으로 추켜세우려는 정치적 기획을 미리 해놓고, 자의적으로 근거를 보충한다. 기사로서는 결격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
[box type=”info” head=”평가 결과”][ ] 아주 믿을만함
[ ] 믿을만함
[✔] 판단 유보
[ ] 믿을 수 없음
[ ] 전혀 믿을 수 없음[/box]
일단 제가 남긴 트윗을 옮깁니다.
아래 2.는 오타가 있는데, 여기엔 고쳐서 표기했습니다.
https://slownews.kr/1718 (@welovehani) @capcold) 1. 일단 평점이 너무 후하다. 이 기사의 예언(?)이 혹여 선관위가 공식 발표할 서울 20대 최종 투표율에 부합하더라도, 그럴 가능성은 낮다보는데, 소 뒷걸음..일 뿐
2. 사실판단과 가치판단의 기계적 구별은 불가능하다 본다. 양자는 자주 구별 어려운 형태로 나타난다. 하지만 가치판단을 사실판단으로 둔갑시켜선 안된다. 허씨 글이 그렇다.
3. 이런 현상을 나는 ‘가설의 신앙화’라고 부른다. 물론 선의, 과도한 정의감이랄까, 안다. 하지만 넘지 말아야 하는 선이 있는거다. 허기자 글은 그걸 넘었다.
4. 개인적인 가치판단을 자유롭게 피력하는 일과 데이터스러운(그야말로 스러운) 어떤 것을 통해 마치 사실분석을 하는 양 위장하는 건 정말 다르다. 이건 정말 빵점 기사다.
추후 ‘평점’에 대한 이견은 다시 정리해서 의견을 개진하겠습니다.
저는 비판적인 분석가이자 평론가로서 캡콜드 님을 아주 신뢰합니다. 하지만 이번 ‘신뢰도 평가’에서의 평점은 너무 안전한(?) 선택이거나, 본문에 담긴 근거 분석의 비판적 내용의 질량과 부피에 비한다면 너무 약한 평점이라고 판단합니다. 그렇게 판단하는 이유는 이렇습니다.
1. 신뢰도 평가 대상은 시점을 기준으로 다음 두 가지라고 봅니다.
A. (과거의) 사실 진술이 맞았는가? (확인이 가능한 진술)
B. (예언적) 사실 진술이 맞을 것인가? (확인을 기다려야 하는 진술)
A. 경우에는 이미 평가대상의 사실 여부와 평가 척도가 B.의 경우보다는 훨씬 더 확정적으로 드러난 경우라서 평가가 훨씬 용이합니다.
B.는 사실적 진술이지만 ‘가설’ 좀더 노골적으로 표현하면, 예언의 형태로 표현됩니다. 이에 대해선 1) 그 가설로 주장된 사실적 진술이 미래의 확정적 사실과 부합할 것인가(ㄱ. 가치판단 재료인 ‘데이터’의 진실성, ㄴ. 그 데이터에 기반한 데이터 분석의 가치에 대한 평가)에만 주목하면 평가자도 평가를 지켜보는 토론관객들도 마치 로또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소극적인 방관자 입장에 머물 수 밖에 없습니다.
그 데이터의 진실성 여부는, 현재 조건에서 추론해 볼 수는 있을지언정, 아직 누구도 알 수 없으니까요. 따라서 A와 B라는 신뢰도 평가대상이 갖는 시기상 차이점 때문에, 그러니 가정해서 A와 B가 유사한 정도의 엉망진창 논리전개, 출처에 대한 엄밀성 결여 등의 흠결을 보여주더라도 상대적으로 B에 대해선 후한 평점, 그러니 상대적으로 안전한, 방어적인(왜냐하면 아직 미래는 오지 않았으므로) 평가를 할 수 밖에 없게 됩니다.
2. 물론 ‘확정된 데이터의 진실성'(A)는 B를 평가함에 있어서는 아직 도착하지 않은 고려 요소이고, 이 데이터의 진실성은 신뢰도를 평가함에 있어 대단히 중대한 요소라는 점을 긍정합니다. 그리고 그런 차원에서 다소 신중한 평점을 내린 취지를 이해합니다.
3. 그렇다면 남는 문제는 이렇습니다. 슬로우뉴스가 ‘신뢰도 평가’를 통해 추구하는 가치가 무엇인가라는 점입니다. 독자들에게 가장 정확한 사실을 제시하는 것도 물론 대단히 중요한 가치겠죠. 하지만 아직 도착하지 않은 데이터에 바탕해 무분별하게 가치판단과 사실판단을 혼재한 언론과 오피니언 리더들의 발언을 견제하고, 합리적인 토론문화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차원에서 본다면, 평가대상이 B인 경우에도 그 가설의 추론과정, 논리적 전개, 근거 구성이 얼마나 합리적이고, 설득력 있는가라는 차원을 주목해 좀더 적극적으로 평가해야 하지 않나 저는 생각합니다.
저는 기사의 방식을 비판하는 것과 기사의 결론을 비판하는 것 가운데 본문은 전자에 강세를, 평점은 후자에 강세를 두는 쪽을 선택했습니다. 실제 서울 20대 투표율이 64%는 아니어도 다른 지역보다 유의미하게 높았을 가능성은 여전히 있고, 그런 것의 여부를 실제 데이터가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기자도 증명하지 않았지만 제가 반증할 수도 없습니다(…바로 그렇기에 더욱 기사 방식으로서는 빵점 이하지만). 즉 이 기사의 결론은 ‘믿을 수 없다’가 아니라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라고 판단한 것이죠. 말씀주신 댓글의 문제의식에 99%동의하는데, 신뢰도평가의 평점이 팩트체커로서 나서야 하는가 아니면 뉴스관행 비평으로 가야 하는가에 대해서는(본문 내용은 당연히 둘 다) 좀 더 논의가 필요할 듯 합니다.